[139] 139화.
“어? 어떻게 아셨어요?”
그와 연락을 나눈 건 이미 꽤 오래 전 일이다.
내가 아는 한 그가 은성 고등학교와 나의 관계에 대해 알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유현덕 대표님 기사는 조금 모아두고 있었습니다. 혹시 또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까 해서요. 허허.
“아니, 도움을 받다니요. 항상 저희가 도움을 받는 입장인데…….”
도움은 그가 나에게 줬던 것이었다.
물론 내 독점 인터뷰를 따낸 것과 S 아카데미 관련 기사들로 중앙지까지 진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 필요에 의해 기사를 부탁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그에게 연락한 이유가 은성 고등학교와 관련이 있단 걸 이미 알고 있는 이상, 길고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어졌다.
“그럼 제가 연락을 드린 이유는 알고 계시겠군요?”
-소식 들어서 미리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잖아도 터지기 전에 말씀을 드려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미리 알고 계셨어요?”
미리 귀띔이라도 주지.
근데 그렇게 했더라도 방법은 없었다.
돈으로 막는 것 빼고는.
그리고 그 방법은 내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기도 했다.
이래섭 기자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따로 그에게 특종감이나 그런 걸 미리 받은 적은 없었기에 모르는 일이지만, 아마 이게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오늘 아침이라 미리 알려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뭐, 며칠 전에 연락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확인이 필요한데다가 사실 기사로 쓰기에는 과거 일이라 애매하기도 했겠지만요.
그럼 오늘 아침에 찌라시가 돌았다는 말이었다.
3월 2일.
은성 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초, 중, 고가 개학하고 입학식을 하는 날.
대처할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그럼 오늘 아침에 연락을 받았다는 말씀은…….”
-찌라시가 돌았습니다. 요즘은 문자로 받거든요. 그리고 저도 놀랐던 것이, 보통 찌라시가 돌면 확인 작업을 하느라 며칠 걸리거든요. 물론 기자의 사명은 무조건 특종을 잡는 것이니 확인 없이 일단 지르고 보는 경우도 있지만요.
“이번에는 지른 것에 얻어맞았다는 건가요?”
-그렇죠. 저도 확인하고 있던 중에 첫 기사가 떠서 놓쳤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 직전에 연락을 받긴 했지만요.
연락?
“누구한테서, 무슨 연락을 받으신 건가요?”
-네? 대표님께서 지시해서 연락 주라고 하신 게 아니셨습니까?
그는 오히려 그조차도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 의아하다는 듯 말을 했다.
나는 몇 시간 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것도 기사로 다 뜨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고 난 이후.
그에게 연락을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도달한 것도 방금 전인데, 누군가가 나보다 먼저 움직였던 것이다.
“저는 아닌데요?”
-아, 지원재 실장이 연락을 줬습니다. 당연히 대표님께서 알고 계신 거라고 생각했네요.
지원재 실장, 원재 형이?
그는 현재 군대에 입대한 준서를 대신하여 S 아카데미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물론 궤도에 오른 회사를 총괄하는 건 시작하는 일보다는 여유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가 은성 고등학교에 대한 일에 관심을 내비친 적은 없었다.
“아, 제가 지시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지금 상황에 대해선 기자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군요.”
궁금증이 마구 솟구쳤지만 지금 당장 그걸 확인하는 건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찌라시가 돌았다’, ‘지원재 실장이 먼저 연락을 줬다’는 내용은 이미 벌어진 일.
지금 해야 할 일은 벌어진 일을 봉합하는 것이었다.
-그렇죠. 확인은 아직 못 했습니다만, 사실인가요?
역시나 기자답게 사실 확인 먼저.
우리 입장에선 다행히도 숨길 건 없었다.
보통 때 같으면 이런 질문이 두려웠겠지만, 내가 전화를 먼저 한 건 우리가 사건에 대해 확인을 어느 정도 하고 난 뒤였다.
“저희도 몇 시간 전 기사 뜨기 직전부터 학부모님들께 전화 오고 난리도 아니었네요. 중학교에 확인한 결과 일부 사실이 있긴 했습니다.”
-그렇군요. 이거 하나 놓쳤네요.
“놓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중학교 때 처벌까지 끝난 일을 기사화시킨 것이 잘못이죠.”
뭔가 내가 그 학생의 입장을 해명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도 왠지 자꾸 그렇게 되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지만, 말리는 걸 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 은성 고등학교의 대응은 사실 확인을 한 것까지 인가요? 혹 이미 입학한 학생이라 조용히 넘어가시려는 건…….
맞다. 전에도 그는 매우 날카로운 질문을 하곤 했었다.
S 아카데미 대표로써 독점 인터뷰를 할 때도 사교육이 중고등학교 교육 전체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한 질문을 했었지.
난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때 뭐라고 대답을 했었지…….
“저희가 할 수 있는 사실 확인은 이미 끝났습니다. 뜬 기사의 내용 일부에 사실이 있었지만, 저희는 이미 처벌까지 끝난 사안에 대한 기사를 지금 시점에 올린 것에 대해 반박 기사를 내보낼 예정입니다.”
-반박 기사…….
내가 그에게 직접 연락을 한 이유였다.
그라면 적어도 거절은 못 하겠지.
아니, 상당히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써 줄 확률이 높았다.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그는 내 입장을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기대를 벗어났다.
어쩌면 그에게 곧바로 “네, 그렇게 합시다!”라는 대답을 기대했던 것 자체가 순진한 생각이었을지도 몰랐다.
-대표님, 반박 기사 자체는 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효과?
일단 이만큼 여러 언론들의 관심을 끈 주제라면 그에 대한 반박도 그만큼 쉽게 퍼지리라 생각했다.
예컨대 A라는 사건이 퍼지면 A-라는 반박도 관심을 유도하지 않을까 하는…….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찌라시가 돌고 난 뒤 올라간 기사가 이렇게 메인에 빠르게 올랐다는 건 누군가의 도움이 따로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도움이요?”
-가장 쉽게 말씀드리면 일단 기사의 노출이 가장 어렵지만 가장 파급력 있는 포털 사이트들 같은 곳이죠.
그의 요지는 이거였다.
만약 이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언론의 관심을 이 정도로 받았다면 그건 순전히 사건의 힘으로 그렇게 된 것.
그런 경우라면 반박 기사의 효과도 어느 정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오늘 뜬 기사들은 사건이 일어나고 한참 뒤, 그것도 처벌까지 다 끝난 상황에서 절묘하게 학생들 입학 시즌에 맞추어 찌라시가 돌고 포털 메인으로 터졌다.
누군가의 도움, 또는 무엇인지 모를 의도 없이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포털 관리자가 그냥 그랬을 리는 없고, 누군지는 모르시고요?”
-찌라시는 번호 주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전에 몇 번 근원지를 찾아보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게 명확하게 허위 정보가 아니라면 경찰에 조사를 요청할 수도 없고요.
“그럼 기자님께서 추천하시는 대응은…….”
-과거의 잘못을 다시 끄집어낸 부분에 대한 문제는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다시 상처가 아물도록 기다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확실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 주었다.
그의 말마따나 반박 기사를 내는 건 어렵지 않겠지만, 포털이 이미 한 번 그쪽 손을 들은 상황이기에 반박 기사는 그대로 묻힐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판단을 재고하고 싶지 않았다.
반박 기사 하나로 지금 상황을 전부 뒤집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잊혀졌다 수면 위로 잠시 올라온 이 사건에 대한 관심만 높아져 이 학생이 더욱 상처받을 수도 있다.
“일단 제가 부탁드리면 기자님은 기사 올려 주실 수 있으시죠?”
-그거야 당연히 그렇게 해 드려야죠. 나쁜 일을 부탁하시는 것도 아닌데요. 저는 다만 효과가…….
“효과는 관계없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이 일에 대해 강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만 알리면 되요. 효과는 만들면 됩니다.”
효과를 어떻게?
S 아카데미와 맥스스쿨까지도 끌어들여 볼 생각도 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내가 이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들어와 있다는 건 아직 언론에까지 노출되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직접 전면에 나선다면 어떻게 될까?
포털 자체는 움직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얼마 전까지 대한민국 사교육 시장의 큰 손이었던 사람이 학교에 근무를 시작하며 이런 사회 문제를 전면에 들고 나와 인터뷰를 진행한다면…….
단순히 사건에 대한 반박 기사 하나보다는 뭔가 입질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이 문제를 크게 만든다 하더라도 이 사건을 지금 터뜨리기를 유도한 그자의 의도는 충족된 것이나 다름없을 것만 같았다.
뭔가 다른 생각이 필요했다.
그리고 떠오른 것.
지금까지 우리 학교에서의 대응은 철저하게 우리 학교 입학생을 중심으로 고려한 것이었다.
그런데 사건 자체가 이 정도로 다시 주목받을 경우 힘들어 지는 건 그 사건의 피해자가 아닐까.
“반박 기사만 내일까지 하나 부탁드립니다. 우리 학생 인터뷰와 교장 선생님 인터뷰도 좀 넣고요.”
이건 미리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하는 또 다른 미친 짓이지.
오광필 할아버지가 노발대발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학생만 인터뷰를 하는 것보다는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서 주면 어떨까 싶었다.
-유 대표님이 아니고요?
“네, 저는 그 아이 담임은 아니에요.”
-아, 그런데 왜 그리 신경을……. 참, 학교를 유 대표님이…….
“저희 학교 학생이니 그렇죠. 도움이 될 수 있는데 가만히 있는 건 싫습니다. 아무튼 기사 하나만 부탁드려요. 내일 와 주실 수 있으신가요?”
-당연히 가야죠. 알겠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있을 인터뷰에서 나올 것이다.
강현민도 담임으로써 인터뷰를 해 보면 어떨까 싶었지만, 기사가 어느 정도의 길이로 나갈지도 모르는데 굳이 여러 사람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피해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어쨌든 우리 아이는 가해자였다.
사건의 내막도 자세한 이야기는 전달받지 못했고.
피해자가 누구인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만날 수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그런 일에 적합한 사람이 지원재 실장이었고.
연락하는 김에 어떻게 우리보다도 먼저 그 일을 인지하고 이래섭 기자에게 연락을 해 둔 것인지도 물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그건 부수적인 문제.
중요한 건 피해자를 최대한 빨리 찾아보고 지금 상황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일 인터뷰 약속을 잡고, 지원재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대표님.
“안녕하셨어요, 실장님. 다름이 아니라…….”
-은성 고등학교 학생 기사 터진 것 때문에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에게 연락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대답하는 지원재 실장.
참으로 든든한 사람이긴 한데, 달리 생각하면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내가 생각하고 결정하는 행동들은 대부분이 전생에서부터 이어진 기억에 따른 판단이었다.
그렇기에 좋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았던 것이고.
그 확률이 높았기에 지금 이 정도로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이지.
하지만 그는 거의 항상 내 판단을 읽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 결정에 앞서 미리 행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나 모든 일에 완벽한 모습을 보여 주는 그 또한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세상에 몇 없는 엄청나게 능력 있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혹시…….
하지만 흰머리 할아버지는 나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른 회귀자와 만날 거라든지, 또는 세상에 회귀자가 엄청 많으니 조심하라든지 그런 건…….
말을 하지 않았다는 건 그런 일은 없다는 의미 또한 아니었다.
순간 떠오른 생각.
이걸 왜 그리 오랜 시간 동안 지원재라는 사람을 알고 지내면서 이제야 생각하게 된 건지는 모른다.
어쨌든 나의 이 가설에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이 사람은 도대체 왜 나를 위해 내 일을 해 주고 있는 것일까.
성공하는 삶을 찾아갈 수도 있을 텐데.
도대체…….
-대표님?
“네?”
-혹 피해자와 연락을 해 보실 생각이십니까?
헐, 그는 내가 방금 이래섭 기자와 통화를 하면서 떠올린 생각 또한 미리 예측했다.
정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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