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137화.
남자 중학생 다섯 명이 학교 인근 PC방에서 여학생의 사진을 찍다가 걸린 사건.
소위 ‘몰카’라는 것이었다.
이걸 SNS로 돌려 보다가 같은 반 여학생 한 명이 알아차리고 교사에게 신고를 한 사건이었다.
사실 기사에는 이 정도로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도 않았다.
이건 무슨 기사가 아니라 어디서 들은 찌라시 내용인가 싶을 정도로.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그 뒤 어떤 처벌이 있었는지는 구체적인 내용도 없었다.
“일부 사실이긴 한데, 강현민 선생이 학생 데리고 와서 확인을 해 봤어. 그리고 당시 중학교 학폭 담당 선생님과도 통화해서 확인했고.”
“사실인 부분은 그럼 사진을 촬영했고, 그리고 처벌을 받았단 부분이죠?”
“그렇지.”
좋지 않다.
그래도 희망은…….
“학생은 어떻던가요? 이야기 들었을 텐데.”
“그 아이 이름이 이준일입니다. 아직 오늘 처음 본 상황이라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제가 볼 때는 뉘우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아이의 담임인 강현민 선생님이 말했다.
“애는 괜찮아요? 그거 기사로 다 떴다는데도?”
“괜찮진 않죠. 이야기했더니 죄송하다고 하면서 눈물까지 보이기는 했어요. 근데 진심인지 아닌지는 아직 판단하기가 조금 이른 것 같습니다.”
당연히 지금 당장 그 아이의 진심을 알아볼 수는 없다.
사람 마음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전쟁과 싸움이 왜 계속 되겠는가.
중요한 건 그 당시 그 일로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느냐다.
“당시 처벌은…….”
“아, 그건 중학교에서 확실히 학교폭력위원회 올려서 사회봉사와 서면 사과서 제출하게 했다더군. 그쪽에서도 이게 왜 다시 붉어지는지 당혹스러워 했다던데?”
그 정도면 초범인 경우 절차상에 따른 처벌이 이루어지긴 한 것 같았다.
정확한 건 모르지만 일단 정리가 된 일.
“어떻게 생각해?”
“네? 뭘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 생각을 물어보시는 거라면 말씀드리겠지만 결정은 교장 선생님께서 해 주셔야 합니다.”
“으흠. 일만 잔뜩 시켜 놓고.”
오광필 할아버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나도 잠시 미안했고.
입학식 당일부터 이런 일이 터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게 바로 학교인데.
“처벌을 받았다면 그걸 가지고 다시 꺼내 들 순 없죠. 이미 등록해서 입학한 상태니 이제 우리 학생입니다. 학교 이름을 거론해서 특정 학생이 지목되다시피 한 상황이니 이건 인권침해에요.”
“그건 알지만…….”
“저라면 신문사에 지금 바로 전화해서 강력히 항의하고 변호사 부를 것 같습니다. 언론이 하는 일이 원래 이런 거다 해서 그냥저냥 넘어가면 안 될 일이에요. 애 인생을 가지고 장난을 한답니까.”
“저, 유현덕 선생님.”
가만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강현민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그는 아직도 우리의 관계에 대해 의아하다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또한 한 명의 교사였다.
그리고 해당 학생의 담임이었고.
내가 이렇게 나설 일은 아니었지만 습관이 이렇게 들어 버린지라 약간 실수를 한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준일이가 거짓으로 뉘우치는 척한 거라면 요?”
“네?”
근데 이 사람이…….
“그럴 수도 있잖습니까. 성범죄면 엄청 큰일인데 우리가 덮는 모습이 되어 버리면…….”
아직 젊어서일까.
아니면 위험 부담을 없애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일까.
이건 아니었다.
“성범죄라고 하더라도 그걸로 중학교에서 이미 한 번 징계를 받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우리는 그 아이를 일단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해 주는 것이 맞지 않나요?”
“하지만…….”
말을 더 이상 잇지 못했다.
나도 그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언론에 ‘성범죄를 학교에서 덮었다’는 문구 하나면 줄줄이 끌려가 조사를 받아야 할 것이다.
나도 솔직히 그게 두려웠고.
아마 그는 담임이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입학식이 있는 날이다.
게다가 그 아이는 우리 학교에서 그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었다.
나름 신경을 써야 할 아이이지만, 왜 우리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근거로 아이에게 색안경을 끼고 설정된 테두리 안에서 바라보아야 하는 건가.
“우리끼리 이래 봤자 뭐 하겠어. 근데 유현덕 선생, 담임은 여기 강현민 선생이야. 나도 최종 판단을 하고 그에 대한 책임도 지겠지만 강현민 선생이 생각할 시간을 좀 주고 거기에 따르는 것이 어떨까?”
오광필 할아버지.
방금 전 강현민 선생님이 한 말을 듣고 혹여 이상한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오광필 할아버지의 말이 옳았다.
나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나의 생각을 말할 뿐, 그 아이의 담임은 강현민 선생님이다.
아이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사람도 내가 아니라 그였고.
“네, 맞습니다. 혹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강현민 선생님.”
“아닙니다. 생각을 조금 해 봐야 하겠습니다. 아이와도 이야기를 나눠 보고요.”
이렇게 끝?
아니지.
그럼 내가 유현덕이 아닌 거다.
“교장 선생님, 학생에 대한 문제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해당 기사를 쓴 기자에게는 경고를 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기자? 어떻게?”
어떻게 하면 좋을까.
당장에 연락도 되지 않는 기자였다.
“반박 기사를 하나 내면 어떨까요? 지방지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기사? 기자들이야 뭐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괜찮겠어?”
“네? 뭐가요?”
“아직 우리도 상황 파악이 전부 되어 있는 건 아니잖아?”
상황은 의외로 명료하다.
과거의 사건이 있었던 건 중학교에 확인한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한 처벌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만약 그 사건이 있었을 때 이런 기사가 떴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학교 차원에서도 이제 입학한 학생의 과거를 언론에 노출시킨 것에 대한 항의가 필요할 것 같고요. 그리고 그 학생 학부모에게도 연락을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나설 수 있는 부분은 거기까지…….”
“학부모한테 뭐라고 연락을 해? 과거의 일이 다시 나왔다고”
“우리는 이제 학생을 받은 입장이니 강하게 붙을 수는 없죠. 하지만 학부모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미 정리가 된 과거 잘못이 언론에 다시 나온 것 자체가 강하게 항의할 수 있는 부분일 것 같아요.”
“저, 유현덕 선생님. 그래도 아직 우리도 조금 더 알아보고…….”
다시 강현민 선생님이었다.
그는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했다.
물론 내가 잘하고 있단 건 아니다.
나도 내가 이렇게 반응하고 행동하려는 것이 옳은 일인지, 또는 적절한 대응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나와 오광필 할아버지가 이렇게까지 말을 하고 있는데 어정쩡한 포지션을 취한다는 건, 불안한 것이다.
아 학생에 대한 판단이 아직 설 만한 시점이 아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확신이 들었다.
그 학생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 대한 확신.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상황을 단순하게 보면 된다.
“알아보는 건 나중에 해도 될 겁니다. 일단은 자꾸 다른 언론사에서 기사 찍어내기 전에 우리도 움직여야 해요. 우리 입장에서 충분히 그렇게 대응할 수 있는 상황이고요. 단순하게 따졌을 때, 잘못과 처벌은 이미 끝난 거예요. 그리고 기자가 이상한 시점에 다시 꺼내 든 거고요.”
그는 얼굴에서 찝찝한 표정을 지우지는 않았으나, 딱히 저 말에 대한 적절한 대답은 없는 듯했다.
나는 담임으로서 앞으로 그 아이를 지켜봐야 하는 그의 입장도 이해됨과 동시에 이걸 제대로 처리하는 건 그 아이의 과거 잘못 자체와는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건 아무 배경 없이 일어날 만한 일은 아니다.
은성 고등학교에 큰 피해를 입힐 만한 일도 아니고.
누군가의 공격이라면 상당히 조잡스럽지만, 그냥 기자가 기삿거리를 찾다가 발견하고 띄운 거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시점이 오묘했다.
“내가 알아봐?”
“알아보는 건 제가 알아볼게요. 교장 선생님께서는 최종 판단만 내려 주시면 힘이 실릴 것 같습니다.”
“그러든지. 그나저나 재벌급 인물이 일반인 흉내 내는 거야, 뭐야?”
음, 사실 이런 일은 그냥 한성 그룹 쪽에 연락을 해 보면 해결이 되지 않을까.
한성 그룹 내에 한성일보라는 신문사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막상 또 그렇게 하기에는 뭔가 양심이 조금 찔렸다.
잘못된 일은 아니겠지만, 이것도 일종의 청탁이 아닐까 싶은.
근데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그렇게 청렴결백하게 살아왔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딱히 없었다.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수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살아왔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것까지는 내가 생각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뼛속까지 서민인걸요.”
오광필 할아버지는 대답 없이 그냥 웃었다.
내가 그에게 다시 꾸벅 인사를 하고 본부 교무실로 가기 위해 교장실을 나갈 때, 얼핏 강현민 선생님의 표정을 본 것 같다.
‘재벌급 인물이라고? 정체가 뭐냐?’ 하고 생각하는 듯한 표정.
교무실로 오자마자 나는 일전에 오광필 할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지방지 기자 연락처를 찾았다.
이걸 써먹었던 때가 신성 학원에 막 들어가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서 꽤나 오래 전 일이었다.
어디 있는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살지는 않기에 정말 30분 정도 기억을 더듬으며 휴대폰 주소록을 뒤진 것 같다.
사실 이름도 기억을 하지 못했다.
조금 독특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것밖에는 단서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간신히 익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맞아, 이거였다. 이래섭.’
독특하지?
이 다음은 그가 아직도 이 번호를 사용하고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연락한 지 5년도 더 지난 번호.
-뚜루루.
다행히도 신호음은 갔다.
번호가 바뀌지 않았어야 하는데…….
-뚜루루.
받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신호음만 흘러나왔다.
이 기자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한성 그룹에 연락을 해 볼 생각이었다.
유일한 기자가 이 사람인데 연락이 되질 않으면 청렴 코스프레니 뭐니 해도 다른 끈을 잡아야 하는 것이 맞다.
-뚜루루.
번호가 바뀌었으면 다른 사람이라도 받을 텐데…….
결국 1분이 지나고, 부재중 알림 말이 나오는데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주민신문 이래섭 기자입니다. 취재 중이거나 편집 중일 때는 전화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누구신지 메시지를 남겨 주시면 전화 드리겠습니다.
삐 소리가 나고 내 이름과 함께 과거에 있었던 일을 잠시 말했다.
이건 내 이름만 가지고는 내가 누구인지 그가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빠른 연락을 바란다고 마지막으로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잠시 한숨을 돌리려는데, 교장실에서 나와 본부 교무실로 들어왔던 강현민 선생님이 내 쪽으로 걸어왔다.
“선생님,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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