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136화.
시련은 이겨내라고 있는 것
똑똑.
“들어오세요.”
교장실의 문이 열리고 교무부 현지훈 선생님이 얼굴을 배꼼 들이밀었다.
현지훈?
혹시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 이름이라면 그 감이 맞을 것이다.
내가 S 아카데미를 열고 난 뒤 학교 현직 교사 중 처음으로 연락하고 초빙했던 그 선생님이다.
학원 생활에 특별히 어려움은 느끼지 않는 듯했지만, 그래도 몇 년 간 학원의 타이트한 스케줄에 조금 질린 것처럼 보였다.
살도 많이 빠져 핼쑥해지고.
그는 은성 고등학교 채용이 뜨자마자 나에게 연락을 준 뒤 공채를 거쳐 정교사로 선발되었다.
“교장 선생님,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뉴스 뜬 것 같습니다.”
“무슨 뉴스인데요?”
“몰라, 나도. 한 번 직접 봐 봐.”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광필 교장의 자리에 있는 컴퓨터로 갔다.
포털에 들어가 ‘은성 고등학교’를 검색하고 나온 건…….
[기숙형 대안 학교 은성 고등학교, 학교 폭력 가해자 입학 확인]
[남녀 공학 기숙형 학교에 성 관련 학폭 가해자 입학]
이게 뭐지.
오광필 할아버지도 멍한 표정이었다.
“이런 학생 들어온 적 있어요?”
“내가 어떻게 알아? 입학 신청 받고 확인한 뒤 받은 것뿐인데.”
당연히 학부모들 입장에서는 개학일부터 청천벽력 같은 뉴스였을 것이고,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전화 오는 건…….”
“그 뉴스들이 사실이냐는 학부모들 전화, 거기에 다른 언론사들도 확인 요청하고 있어.”
“확인 요청해 봐야 우리도 모르는 건데.”
“그래서 일단 애들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아.”
애들한테 직접 입학 날 이런 조사를 한다고?
물론 이미 부모님께 연락을 받은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걸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을 받는 건 그것대로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애들 조사를 어떻게요?”
“각각 불러서 일일이 확인해 봐야지.”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뉴스에는 해당 학생의 구체적 범죄 행위나 그런 일이 있었다는 중학교 이야기는 언급되지 않았다.
“교장 선생님, 이거 지금 애들한테 확인받고 그러면 끓고 있는 물 완전히 엎질러져요.”
“무슨 말이야?”
“되돌릴 수가 없게 된다고요.”
‘그럼 그것 외에 대안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오광필 할아버지.
대안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단지 우리 입장에서도 뉴스의 진위를 파악해야 했기 때문에 떠오른 생각이 있긴 했다.
학생들의 출신 중학교 명단은 교무부에서 정리된 자료를 가지고 있다.
가장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각 중학교에 연락을 돌려 보죠, 먼저. 학생들 출신 중학교는 다 가지고 있잖아요. 뉴스가 사실이라면 시간만 있으면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중학교? 애들한테는 일단…….”
“일단 함구하고요. 애들이 이걸 알아서 좋을 게 없잖아요. 게다가 지금 뉴스가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거고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단 거야?”
“그거야 모르죠.”
우리도 몰랐던 학생의 과거 범죄 전력을 신문에서 아무런 소스 없이 확보하는 건 불가능하다.
슬슬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지만, 확신은 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학교다.
이 정도 일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다니.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누군가가 있긴 한 건지도 아직 모르지만 어쨌든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다.
게다가 무슨 학폭 가해자가 어느 학교에 입학했단 사실을 이런 기사로 내는 기자가 도대체 어디 있는가.
가해자라고 했으면 이미 잘못에 대한 합당한 처벌은 받았을 것이고, 그걸 왜 애들 고등학교 입학하는 이 시점에 메인 급 뉴스로 올린단 말인가.
오광필 할아버지는 곧바로 본부 교무실 쪽으로 나가 각 담임 선생님들께 담당 학생들의 중학교로 연락을 돌려 보라고 했다.
나도 교무실을 나와 하나씩 명단을 확인하며 연락을 했다.
역시나 중학교들에서는 난처해했다.
학생의 범죄 경력 조회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런 건 경찰에 정식으로 민원을 접수한 후 받아야 하는 내용이지 일이 벌어진 학교에 확인하는 것이 합당한 절차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 현재 상황을 알려 주고 난 뒤에는 이해를 해 주고 약간의 귀띔 형식으로나마 사건이 있었던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말을 하면 굉장히 많은 건수가 있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사실 내 반에서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게다가 성 관련 문제는 전혀 아니었고.
단 한 번, 학교에서 친구와 놀다가 사고로 친구가 다치는 바람에 운이 나쁘게 걸린 녀석이었다.
이 정도 건으로는 뉴스에서 그렇게 소란스레 떠들어대기 어렵다.
우리 반 아이들의 중학교에 연락을 전부 돌렸을 때쯤, 뉴스 기사 페이지를 열었다.
해당 뉴스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연락을 해 보면 어떨까 싶은 생각.
이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런 일로 기자와 연락을 한 적은 전생에도, 현생에도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소스를 알려 주려고 하지는 않겠지만 ‘있다, 없다’ 정도는 알 수 있지 않을까.
곧바로 나는 아까 교장실에서 봤던 기사를 찾아 메일 주소와 신문사 이름을 확인하고는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희망이었지.
해당 기사를 낸 기자와 통화가 가능할 리 없었다.
그러고 있는 사이, 교무실의 선생님들은 바삐 각 중학교들에 전화를 걸고 있었지만 뉴스에 나온 내용의 학생은 없었다.
개학하고 아직 오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무슨 수십 년 된 학교에서 큰 사고가 터진 듯 정신이 하나도 없는 분위기.
오광필 할아버지도 가끔씩 교장실에서 나와 본부 교무실에 들러 뭔가 나온 정보가 있는지 물어봤다.
뭔가 잘못되고 있었다.
자기 자식을 어떻게 그런 학생과 같은 학교에 보내냐는 식의 항의를 하는 학부모님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이건 실체가 보이질 않았다.
기사 내용도 자세히 살펴보면 내용은 없고 한 제보자에 의한 ‘카더라’ 통신.
그리고 그 기사를 기반으로 다른 기사들이 뜨고 있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부정확한 정보를 흘려 놓고는 발을 빼는 것이 아닐지 생각이 들 무렵.
드디어 실체가 드러났다.
“찾았습니다.”
남자 선생님 한 분이 이렇게 말하면서 교장실로 뛰어 들어갔다.
오늘이 우리가 서로 근무를 시작한 첫날이기에 이름은 모른다.
내가 아는 얼굴이 아닌 것으로 보아 그는 S 아카데미나 맥스스쿨 출신도 아닌 듯 했다.
그냥 단순히 젊은 남자 선생님이란 것 외에는…….
나도 그를 따라 교장실로 가 볼까 하다 말았다.
어차피 내 자리에 그대로 있더라도 오광필 할아버지가 대충 상황 정리가 된 후 나를 부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참을 분주하게 각자 전화기를 붙들고 있던 선생님들의 시선이 모두 교장실로 쏠렸다.
나는 그 사이 조용히 본부 교무실을 나왔다.
내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위치인 만큼 정말 경치는 끝내 줬다.
이런 곳에서라면 뭘 하더라도 마음이 편안해 질 것만 같은 그런 장소.
그리고 오늘이 개학 첫 날인데.
즐겁고 기대감이 가득해야 할 날인데.
누군가가 축제 분위기에 재를 뿌려 놨다.
성범죄라니.
처음에는 이게 사실이 아니라 생각했다.
뭐, 사실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지.
만약 우리 학생 중 누군가가 정말로 기사 내용대로 그런 아이라면 집중 관리를 하면 될 일이다.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도 있고.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진행형이 아닌 과거의 죄라면 그걸 가지고 계속해서 여러 번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마도 지금 있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그 기사 내용이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어쨌든 상당히 사실에 근거한 기사일 경우.
그리고 우리 학교에 오늘 입학하게 된 누군지 모를 그 친구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경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우리 반은 아니었다.
각자 자신이 맡은 반의 학생들 등록부를 보면서 전화를 했기 때문에 아마 교장실로 달려 들어간 그 선생님 반의 학생일 것이다.
하지만 시작부터 별로 좋지 못한 일이 발생하다니.
S 아카데미 일이었다면 바로 반박 기사를 냈겠지만 학교는 그리 가볍게 움직이기 어려웠다.
일단 우리 학교 학생과 관련된 일이 어떤 일인지 정확히 파악을 한 뒤 대처해야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 소모되는 시간이 너무 치명적으로 느껴졌다.
“왜 나와 있어? 수업 아니야?”
김윤지였다.
아직 학생들이 기숙사 방 배정을 받기 전이라 그녀가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아마도 그냥 빈 기숙사 안을 돌아보다가 잠시 학교 쪽으로 나온 거겠지.
“아, 누나. 그냥요.”
“표정이 좋지 않은데? 벌써 무슨 일이 있을 시점이 아닌데.”
이럴 때 느끼는 여자의 촉은 정말 날카롭다.
그리 어두운 표정으로 있을 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평소와 다른 약간의 차이를 그녀는 눈치챘던 것이었다.
이래서 남자들이 결혼하고 와이프에게 꼼짝 못하고 잡혀 사는 걸까.
그래도 나는 여기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김윤지도 있고 오광필 할아버지도 교장으로 있다.
신성 학원 시절부터 함께 어려운 일들을 이겨 낸 파티.
골치 아픈 일이지만 이겨 내야 한다.
이제 시작이고, 이런 일을 하기 위해 다시 학교로 돌아온 것이니깐.
“누나, 저 들어가 봐야겠어요.”
오광필 할아버지가 나를 찾고 있을 것 같았다.
아마 지금쯤이면 대략적인 사정은 학생을 불러 들었겠지?
내가 결정을 내릴 사항은 아니다.
하지만 내 의견을 피력할 수는 있을 것이다.
김윤지는 의아하다는 듯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런 저런 힘들 일들을 많이 겪었지만, 그것도 다 오래 전 이야기들.
상처는 흉터를 남긴다.
하지만 일단 아물고 나면, 흉터가 고통을 주지는 않는다.
그녀는 그 힘든 일들을 이겨냈지.
이건 아무것도 아니리라.
이제 시작이다.
“그래. 알겠어. 너무 무리하지 마. 첫날이니깐.”
“네. 이따 퇴근할 때 봬요.”
“오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교장실로 갔다.
역시나 할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까 교장실로 들어왔던 그 선생님과 함께.
“어디 갔었어? 찾아오라고 했는데 본부에도 없고.”
“바람 좀 쐬려고요.”
“뭐야. 나이 많은 나한테 이런 일 시켜 놓고 혼자 내뺀 거야?”
옆에 서 있는 남자 선생님은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모를 얼굴로 서 있었다.
S 아카데미와 맥스스쿨 출신 교사들을 제외하면 내가 은성 고등학교와 어떤 관계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굳이 일부러 그런 걸 말하고 다닐 이유가 없잖은가.
게다가 오늘이 첫날이라 모르는 게 당연하고.
“안녕하세요. 인사를 못 드렸네요. 유현덕이라고 합니다.”
“아! 그 유현덕 선생님이시군요!”
어라, 이름은 알고 있었나?
“참, 저는 강현민이라고 합니다. 수학 교과…….”
그의 이름은 강현민이었다.
나이는 내 나이또래.
아마 사범대를 졸업하고 거의 바로 우리 학교로 들어온 것일까.
아무튼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교장 선생님?”
“그냥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평소처럼.”
그럴 수가 있나. 엄연히 공적인 명칭이 있는데.
“일단 기사 내용은 일부 사실이긴 해. 아까 봤지, 그 기사?”
“네.”
자극적인 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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