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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34화 (134/200)

[134] 134화.

“안녕하세요. 은성 고등학교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상당히 떨렸던 첫 인사말.

무게란 것이 이런 것일까.

대입이라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사람들.

학원 입시 설명회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학교라는 이름의 중압감.

뭐가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교육이 공교육보다 효율적이라고 하더라도, 공교육을 놔두고서는 사교육을 논할 수 없다.

청중의 반응은 조용했다.

적어도 신성 학원에서의 입시 설명회 때는 이렇지는 않았는데.

그때는 어떻게 보면 약간 축제 분위기로 진행됐고, 이번에는 훨씬 더 진지한 것 같다.

만약 학원이었다면 아마 조금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애썼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했겠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는 없다.

이 산골까지 학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왔다는 건 그만큼 기대치가 높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그 기대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고.

“멀리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는 은성 고등학교에서 근무할 유현덕이라고 합니다.”

나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할 필요가 없다.

교사가 진행하는 고등학교 입학 설명회는 말 그대로 학교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지, 그리고 학생들이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를 설명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미 여기까지 왔다는 말은 언론을 통해 나를 알고 왔단 의미겠지.

아니, 나보다는 오브라이언을 보고 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기대를 학교에 대한 믿음으로 바꿔 놓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대략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온몸은 땀으로 젖었다.

긴장감은 설명회를 시작하고 곧 풀렸지만 실로 오랜만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발표였다.

“여기 물.”

“고마워요, 누나.”

연단을 내려오자 밑에서 지켜보던 김윤지가 내가 마시던 생수를 건네주었다.

시원하진 않지만 마실 만은 했다.

건물은 완공됐으나 아직 냉장고 같은 집기들은 전혀 들어오지 않은 상황.

교무실이란 곳도 결국 그냥 텅 빈 방일 뿐이다.

신성 학원 입시 설명회와는 반대로 내가 포문을 열고 주현필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이사장은 아니지만 오브라이언이 입시 설명회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미국에서 날아올 수는 없기에, 주현필이 이사회 대표로서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주현필 선생님은 여유가 넘치시네요.”

“그러게. 누구와는 다르지?”

“저도 신성 학원 때는 달랐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더 능숙해져야 하는 거 아냐?”

“할아버지도 조금 이따 나가셔야 하니 준비 잘하시죠.”

우리가 이런 시답잖은 이야기를 뒤에서 나누고 있는 동안 주현필은 연단 위에서 열심히 몸짓 손짓을 해 가며 학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 그냥 인사만 하는 자리지만 원래 이런 자리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무뚝뚝하고 거친 그의 성정과는 다르게, 나름 주목받는 자리를 즐기는 듯했다.

신성 학원 입시 설명회 때도 학부모들께 농담도 중간 중간 던져 가며 딱딱한 분위기를 푸는 모습도 보였었고.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신문을 보신 분들께서는 이 자리에 혹시라도 오브라이언 미국 대통령이 와 인사를 나눌지 모른다고 생각하셨겠지만, 그렇게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니더군요. 저도 같은 이사회 소속이지만 딱 한 번 얼굴 봤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보셨던 바로 이 신문 기사 사진이 찍힌 날 말이죠.”

저러면서 자신과 오브라이언이 악수를 나누는 사진을 화면에 띄웠다.

내용만 보면 별로 우습지 않겠지.

하지만 평소처럼 나에게 막 거친 말을 쏟아 놓는 사람인데다 굉장히 마른데 인상 더러운 외모다.

그런데 말투는 나를 제외하고 항상 나긋나긋하게 하는 걸 보면, 외모와 말투의 괴리가 너무 심해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랄까?

아무튼 신기한 건 나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그냥 흥미롭게 받아들이는 것 같단 점이다.

“자, 그러면 이제 저희 은성 고등학교의 초대 교장 선생님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광필 교장 선생님이십니다.”

잠깐, 오광필 교장 선생님?

내가 수년 간 할아버지라고 지칭하던 그 사람?

맞다.

은성 고등학교의 교사는 전부 신규 채용이기에 공채를 거쳐 채용했다.

그리고 교장 직도 원래는 지역 학교들에다 공모를 해 뽑으려고 생각하다 급히 노선을 바꾼 것은 오광필 할아버지가 젊었을 적 꽤나 오랜 기간을 학교에서 보냈단 이야기를 듣고 결정한 것이었다.

오광필 할아버지는 이사회 이사라고 하지 않았었나?

맞다.

이건 사립 학교에서 근무를 해 봤던 나도 몰랐던 사실인데, 웬만한 사립 학교들은 교장도 이사회의 당연이사직을 겸임한다.

“화이팅입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라니! 이제 교장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해!”

“그건 학교 안에서만 그렇게. 흐흐.”

그는 투덜거리며 연단을 올라갔다.

그리고 방금 전의 투덜거림이 무색할 정도로 주현필처럼 능숙하게 연설을 시작했다.

특별히 감동적인 부분은 없었다.

쥬튜브에서 나오는 그런 건 쥬튜브에서나 나오지 현실에서는 보기 어렵다.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깔끔한 연설.

대략 1시간 30분쯤 지나서 입시 설명회, 또는 입학 설명회라고 부를 행사가 끝이 났다.

끝나자마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피해 신성 학원까지 차를 타고 내달렸다.

내일 신문 기사에는 뭐라고 나올까.

일단 입시 설명회까지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만한 분위기.

하지만 뚜껑은 열어 봐야 알 일이다.

참가 인원은 많았지만 실제로 중학생들이 원서를 얼마나 넣는지가 중요하다.

일단 우리는 은성 고등학교의 정원을 학년 당 90명, 세 개 반으로 운영할 예정이었다.

일반 고등학교에 비하면 상당히 작은 크기.

특히나 내년에는 정원을 채우더라도 애들 숫자가 90명밖에 되지 않는다.

개교 후 3년이 되면 최대 총 270명.

이건 대안 학교이기에 다른 방식을 도전해 보려는 것이고, 재단이 탄탄하니 작게 실험적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교장 직을 맡게 될 오광필 할아버지를 포함하여 총 교원 수는 45명.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첫해는 학생 두 명당 교사는 한 명이 되겠구나.

“후. 드디어 끝났구먼.”

나와 차를 같이 탄 오광필 할아버지가 한숨을 크게 내쉬며 넥타이를 풀었다.

학원에서도 강사들이 종종 풀 정장 차림으로 수업을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건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이나 그렇고 조금만 지나면 편한 복장을 선호한다.

오늘의 복장은 꽤나 불편했겠지.

짜증 섞인 그의 표정을 보고 조수석에 앉아 있던 김윤지가 웃었다.

“호호. 앞으로 그렇게 입을 일 자주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끝난 게 아니라 이제 시작입니다.”

“오늘 일정이 끝났으면 끝난 거야. 다른 건 시작될 때 고민하고 걱정하면 되고.”

오광필 할아버지다운 대답.

그러고 보면 참 넉넉한 사람이다.

내가 워낙 바쁘게 이것저것 벌리고 다니는지라 서로 볼 일은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성공 대입학원과의 경쟁에서부터 맥스스쿨 인수까지 그는 항상 우리 편이었다.

아마도 처음 학원 연합 회장 자리를 되찾기 위해 우리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인 듯한데, 어쨌든 나는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이제 시작하는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삐걱거림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로 해야 하며, 대안 학교이기에 다른 일반 학교의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오지도 못한다.

뭐 굳이 참고를 하자면야 할 수는 있는 일이지만 그럴 거면 일반 학교를 만들지 대안 학교를 할 이유는 없다.

아직 장단점 자체가 있을 수 없는, 모든 것을 백지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배의 선장은 그런 불협화음을 이해하고 인내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 근데 진짜 오광필 회장님을 교장 선생님으로 앉힐 생각이야? 장난으로 해 본 소리가 아니고?”

내 생각을 들은 주현필의 반응.

그리고 오광필 할아버지 본인의 반응도 당혹 그 자체였다.

“뭐? 교장을 하라고? 미쳤냐?”

그가 나에게 했던 말 중에 가장 거친 말이었지.

말투로만 보자면 꽤나 능글맞은 사람인데 막상 하는 행동은 완전히 신사였다.

그런 그가 나에게 욕까지 하고.

대안이 없어서 그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겠다는 내 입장에서 모시고 있어야 할 교장 선생님이라도 조금 편한 분을 뽑고 싶었던 것이다.

“부탁 좀 드릴게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교장 선생님 맡아 주시면 든든할 것 같은데.”

학교 경력에 기나긴 학원 운영 경력, 거기에 학원 연합 회장으로 지역 학원가를 이끌었던 경험도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생판 모르는 사람보다는 확실히 훨씬 낫지.

어쨌든 그는 결국 동의했고, 오늘 입시 설명회 자리에서 학부모들 앞에 서기까지 했다.

그래도 나이는 속일 수 없는 것.

아무리 에너지가 넘치는 그라고 하더라도 오늘처럼 격식, 내용 다 따져야 하는 자리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진이 다 빠진 상태로 운전대를 붙잡고 있었다.

“누나도 고생 많았어요.”

“뭘, 새로운 일자리 구해 준 사람인데, 이 정도야 뭐. 그나저나 이제 편히 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

김윤지는 교원 자격증이 없다.

거기에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본 적도 없었기에 교사로 채용할 수도 없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기숙사 관리.

한성 그룹에서 앞으로 학교 주변 일대를 개발할 계획이라고 하지만, 언제쯤 시작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일단 산골에 위치한 대안 학교인 만큼 기숙사를 짓기로 했다.

돈이 엄청 들었다.

최대 270명의 학생들과 45명의 교사들 숙소까지 지어야 했으니.

공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그래도 조감도는 나왔고, 사감 교사를 45명의 교원에 포함시킨 상황.

기숙사장은 명목상의 자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김윤지에게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기숙사 학생들만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급식과 기타 행정실에서 담당하지 않는 행정 업무들을 맡을 예정이다.

가는 길에 오광필 할아버지와 나는 앞으로의 학교 운영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다시 일 이야기였지만 왠지 힘들지는 않았다.

너무 힘들게, 너무 거칠게 살아간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는 흰머리 할아버지의 말.

하지만 이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결단이 섰기에 하는 일이었다.

열심히하는 사람은 성공하지만,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일을 즐기고 있었다.

* * *

한성 에듀 건물 상층부.

예전에 한성 에듀에 대해 처음 알게 되고 그들의 사업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때, 김미연 부회장을 처음으로 만났던 장소였다.

은성 고등학교 입시 설명회가 끝나고 며칠 뒤였다.

그날도 나는 은성 고등학교 기숙사 공사가 시작되는 것을 구경하다가 김미연 부회장의 호출을 받고 한성 에듀로 급히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회장님. 유현덕입니다.”

나를 기다리던 건 김미연 부회장이 아니었다.

그녀라면 그래도 서로 알게 된 기간이 있었으니 조금은 편했지만 오늘은 전혀 편한 자리도 아닌 것 같았고.

도대체 나를 왜 부른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그녀의 콜을 거절할 성격이 아닌지라 그냥 달려왔다.

보통 때는 김미연 부회장이 앉아 있던 그 자리에서 노년의 남성이 일어났다.

큰 체구는 아니었다.

하지만 등을 돌리고 있던 그가 내 쪽을 보았을 때, 나는 뉴스에서 가끔씩 보곤 했던 그 익숙한 얼굴이 실제와는 정말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은 항상 순간을 기록하지만, 현실에서는 멈춰 있는 순간은 없다.

태어나서 처음 만난 대기업 회장의 위압감은 이제껏 내가 느껴 왔던 그 어떤 기분보다도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반갑소. 김승주라고 합니다.”

중후한 목소리까지 무게가 느껴졌다.

김미연과 김승주 회장, 그들을 처음 만난 곳은 같은 사무실. 같은 자리였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누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는 아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레벨의 차이라고나 할까.

김미연 부회장을 처음 만났을 때가 기억났다.

대기업 총수 2세의 이미지만 하더라도 상당히 거대했는데, 지금 이 앞에 약간의 미소를 지으며 서 있는 남자와는 크기가 달랐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허허. 딸아이가 신세를 많이 졌다고 들었네만, 고생이 많으셨더군요. 그리고 옆에 있는 분은…….”

“안녕하세요, 회장님. 김윤지라고 합니다.”

최근 은성 고등학교 기숙사 건축이 진행되기에 김윤지 또한 매일 아침 나와 만나 학교로 출근하다시피 하던 중이었다.

그리고 김미연 부회장의 전화를 받고는 함께 여기까지 왔고.

아무튼 내가 김미연 부회장 때문에 덕을 보면 봤지 고생을 한 건 없는데.

어쨌든 그냥 인사치레로 한 말을 가지고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계속 잡혀 있는 손이 민망했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손을 뺄 수도 없고.

“회장님, 손은 이제 놓고 말씀하시죠.”

“엇? 이거 그만 실례를. 이리 앉으시죠.”

이 사람이 나를 무슨 연유로 보자고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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