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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33화 (133/200)

[133] 133화.

그는 ‘아직’이란 단어를 강조해서 말했다.

그 의미는 언젠가는 결국 그쪽으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나의 생각을 읽었단 의미일까.

아니면 그냥 툭 던져 본 말일지도.

어쨌든 확실히 정치인들의 촉은 주의해야 했다.

화제를 돌려야 하는데.

“나라의 교육에 대해 확신이 생기면 그럴지도 모르죠. 어쨌든 아직은 한참 배워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일단은 새로 만드는 학교에서 아이들과 지내고 싶고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군요. 그런데 유 대표님.”

“네?”

뭔가 불안한 기분.

“혹, 정치에도 관심이 있으신가요?”

역시나였다.

왜 항상 좋은 감은 맞지 않고 나쁜 감만 맞는 것일까.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 곽한영.

나는 속으로 뜨끔하긴 했다.

물론 방금 전까지의 대화로 학교생활을 재밌게, 후회하지 않고 하고 싶단 결심이 확고해졌으나, 솔직히 말하자면 학교 설립의 시작은 결국 정치적 결단이었다.

대화를 하면서 나도 긴가민가하던 속마음을 정리한다고 말하면 ‘무슨 그리 줏대 없는 사람이냐’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의외로 아주 먼 옛날부터 인간은 대화를 통해,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질문을 통해 답을 찾아왔다.

질문이 없다면, 이런 대화가 없다면 답도 없는 것이다.

개똥 철학 1.

“정치요?”

“네.”

뜬금없다는 내 표정과 대비되는 곽한영의 모습.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고민이 됐다.

있다고 해야 하나, 없다고 해야 하나.

“갑자기 왜…….”

“하하. 그냥 궁금해졌습니다. 딱 대표님 같은 분들이 정치로 튀어나오시거든요.”

튀어나온다니.

본인도 듣자 하니 갑자기 조규만이 죽으면서 기회를 잡아 튀어나온 것이면서.

순간 그의 표정이 돌변했다.

진지함에서 웃음을 머금은 편안함, 그리고 이제는 뭐랄까, 날카로움?

“그리고 폭풍을 일으키죠.”

폭풍이라.

정치판은 정말 다양한 요소들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중에서도 풍(風)은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산업화에서 민주화라는 큰 시류에 정치판은 마치 돛단배처럼 흘러갔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여야 인물이 스스로 그 시류를 만들었다.

아니, 그들도 새로운, 더 작지만 더 강한 시류를 탔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가 폭풍을 언급했다는 건…….

“폭풍이요?”

조심해야 할 사람이란 것이다.

내가 우려했던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들킬 수는 없다.

나조차도 그리지 않은 그림을 그가 먼저 그려 버리면…….

“정치권에 약속이란 없습니다만, 그리고 대표님은 아직 그럴 시기가 아니긴 합니다만 약속 하나 해 주시겠습니까?”

미소를 다시 지었으나, 그의 날카로움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약속이라.

“아무 약속도 해 드릴 수 없습니다.”

“허허. 들어 보지도 않으시고 거절이라니. 한 번 들어 보고 결정하시죠?”

“아뇨. 듣지 않아야 제가 거절하는 것이 덜 죄송해지죠. 뭔지는 모르지만 제가 의원님께 약속해 드릴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분명 내가 지키지 못할 약속을 말할 것이다.

왠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둘 중 하나일 거라는 생각.

‘정치에는 손을 대지 말라’거나, 아니면 ‘정치를 하게 되면 자기네와 함께 하자’는 것.

그런데 도대체 내가 왜 이 사람이랑 이런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있는 건가.

“아쉽네요. 제가 드리는 호의였는데.”

호의라니.

곽한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일어나 봐야겠군요.”

“가시겠습니까?”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왔고 이야기를 나눠 봤으니 이제 가야죠.”

그는 나를 보고 한 번 씩 웃더니 손을 다시 내밀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반가웠습니다. 부디 교육계에서 큰일을 해 주시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맞잡은 그의 손은 처음에도 느꼈지만 단단했다.

피부가 두껍다기보다는 힘이 느껴지는 손아귀 힘.

도대체 뭘 하던 사람일까.

인터넷에는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곽한영’이란 이름을 검색하면 나오는 건 내가 사는 지역 국회의원 선거 내용, 그리고 그가 국회에 입성한 뒤 내놓은 수많은 혁신 정책들뿐이었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짤막한 기사들 몇 개.

지방의 작은 회사를 다니다 IMF 경제 위기의 여파로 1998년 퇴사했고, 그 뒤로 건설 현장 막일부터 아파트 경비원,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 안 해 본 일이 없어 보였다.

그러다 조규만이 갑자기 죽었고, 공석으로 남겨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그간 모은 돈을 가지고 뜬금없이 출마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그는 개선당원조차 아니었다고 한다.

사실 무소속 후보로 광역시 급 도시에서 당선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선거란 단단한 조직이 필수적이며, 각 당은 당선에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고정적 지지층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고정적 지지층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의 성향이 보수적이냐 진보적이냐가 결정되는 것이고.

그런데 그는 무소속으로 선거 활동을 완주하고, 당선까지 이뤄 냈다.

당시 국회 다수당이지만 야당이었던 개선당에서는 그의 스타성을 깨닫고 곧바로 영입에 들어갔고, 그는 그 후로 줄곧 개선당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게 내가 그를 만나기 전 그에 관해 찾은 정보의 전부였다.

나의 사무실을 한 번 슥 쳐다본 그는 씩 웃으며 나갔다.

비웃거나 하는 건 아니었기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

문득 전생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학교에 근무할 때, 높으신 분들이 오면 건물 입구까지 나가 배웅을 하곤 했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고, 나와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예컨대 교장 선생님 손님이라면 내가 굳이 나가서 배웅을 해야 할 이유는 없지.

하지만 가끔씩 나도 관계된 분들, 그러니깐 장학사들이나 감사관들의 경우에는 두어 번 나가 배웅을 했던 것 같다.

만약 그때 국회의원이 학교에 방문을 했었다면, 그것도 나를 보러 왔더라면 교문까지 나가 팔을 흔들고 있었으려나.

“무슨 일로 널 찾아온 거래?”

“어라? 밖에 계셨어요?”

“아니, 왔다 갔다 하고 있었지. 무슨 일이래?”

정말 곽한영이 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주현필이 자신의 강의실에서 나타났다.

진짜 궁금한 표정으로.

그런데 그의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오래 나누긴 했으나, 사실 왜 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따로 없었다.

단지 ‘오브라이언 대통령’의 시간을 자신들보다 먼저 가로챈 사람이 누군지 궁금했다는 것뿐.

“오브라이언 때문에 왔던 것 같아요.”

“그 미국 대통령? 왜?”

“모르죠. 우리 학교 재단 설립하던 날 개선당 행사에 오브라이언을 초청했던 것 같더라고요. 근데…….”

“우리 행사에 왔지. 야! 큰일 난 것 아냐?”

어라.

항상 강한 모습만을 보이던 주현필이었다.

하지만 그도 현역 국회의원에게는 위축되는 걸까?

처음 보는 그의 호들갑떠는 듯한 모습.

“큰일 날 게 뭐가 있겠어요.”

나는 그냥 그의 어색한 호들갑에 반응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나저나 이건 어디서 본 듯한 어색함인데…….

기억이 났다.

주현필이 그 험악한 얼굴로 이미도 원장 앞에서 미소를 지을 때의 그 어색함.

유사했다.

“그것 때문에 기분 나빠서 온 거래?”

그조차도 이렇게 말은 하면서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뇨. 얼굴 한 번 보고 싶었대요. 우리나라에 미국 대통령을 오라 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 흐흐.”

“그게 다야?”

다는 아니었다.

보복을 당할 수도 있으리라.

근데 다시 생각하면 국회의원이 아무리 일개 시민에게 굴욕감을 조금 느꼈을지언정 그걸 가지고 보복까지 하겠는가.

약간 걱정은 됐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일단은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뭐 국회의원들이 시간이 남아도는 건 아닐 것 아녀요. 선생님은 그냥 잊어버리시고 학원 일이랑 학교 교사 채용 부분 신경 써 주세요.”

“그렇잖아도 그것 때문에 머리가 아파. 야, 아무리 내가 학교에 잠깐 근무를 했었다고 하더라도 그건 정말 잠깐이었어. 잘 몰라, 나도.”

“저도 잘 몰라서 부탁드린 거예요. 그래도 대학 다니면서부터 계속 학원일 해 온 저보다는 많이 아실 것 아녀요.”

“그건 그렇겠지.”

전생까지 포함한다면 학교 경력은 내가 많다.

주현필은 일전에 술자리에서 자신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잠시 했던 기간제 교사 생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단 6개월짜리 일이었지만 그래도 그때 학생들과 아직도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하고.

당시에는 믿을 수 없었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건 아니지만, 그의 인상은 절대로 사람을 편하게 해 주는 인상이 아니다.

아이들도 눈이 있으니 나처럼 느꼈을 텐데.

그래도 오랜 시간을 가깝게 지내면서 깨달은 건 역시 사람은 외모로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

요즘 말로 ‘츤데레’라고 하나, 주현필 같은 사람을?

허구한 날 불평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다녀 본인 자신도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만, 막상 도움이 필요하면 굳이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척척 도와주고 처리해 주는 남자.

게다가 나름 싸움도 잘해서 든든하기까지 하고?

음, 싸움 잘하는 건 빼야겠다.

못해서 좋을 건 없지만 나이 서른 넘어서 싸움 잘하는 건 특별한 장점은 되지 못하겠지.

“네가 말한 대로 일단 경력자 중심으로 보고는 있어. 그런데 공립 대비 월급 150% 조건 때문에 현직 교사들도 신청한 사람들이 있더라고.”

“현직은 일단 빼 두셔요. 눈에 확 띄는 분들만 따로 모시고 대부분은 현직이 아닌 분들로요.”

“오케이. 네 계획이니 네 말을 따르기는 한다만, 그나저나 교장은 정말 네 말대로 해도 되는 거야?”

“네. 말씀드렸잖아요. 저는 그냥 기간제 교사로 뽑아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좀 이상하긴 하네요. 제가 돈 들여 만든 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들어간다니…….”

“그러게. 우리나라 역사상 그런 경우는 처음일 거다. 이 별종아! 흐흐. 너도 공채 시험은 봐야 해.”

아, 또 시험인가.

나는 그의 마지막 공격에는 대응하지 않았다.

방금 전 곽한영과의 대화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 * *

정신없이 일을 하는 시기에는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일들도 반복되면 점점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는 만큼 시간도 다시 천천히 흐른다.

새로운 일은?

새로운 일을 할 때는 다시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5개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었다.

재단 설립 후 학교 부지 선정, 건물 건축, 그리고 함께할 선생님들을 채용하는 것까지.

이렇게 말하면 많지 않아 보이지만 하나같이 후딱후딱 처리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학교 부지 선정부터 건물 건축까지 한성 그룹 계열사인 한성 건설에서 사람이 나와 도와주었고, 학교 설립 인허가와 기타 제반 사항들은 지원재 실장이 알아서 처리해 준 점이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입시 설명회 날.

입시 설명회라고 하면 신성 학원 강사로 일할 때가 생각난다.

그때만 해도 신성 학원은 동네 보습 학원 정도 크기였는데.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입시 설명회라기보다는 대학 진학 설명회였다.

입시 설명회는 각 대학들에서 학생을 받거나, 또는 학원에서 원생을 받을 때 하는 것이고.

아니, 입학 설명회라 해야 하는 건가?

“뭔가 떠오르지 않아요?”

“오랜만에 이런 기분 느껴 보네요. 원장님은 매년 느끼실 것 아녀요? 맥스스쿨 입시 설명회 매년 하니깐 요.”

“그건 그렇지만 신성 학원에서 처음 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네요.”

이미도 원장도 이 자리에서는 이사 중 한 명으로 인사를 하기 위해 왔다.

그러고 보니 S 아카데미 이사진과 이 새 학교의 이사진이 거의 동일했다.

내 좁은 인간관계가 그렇지, 뭐.

“많이들 왔네?”

오광필 할아버지. 이제 회장님이 아니라 이사님이다.

“산골에 학교를 짓겠다고 해서 걱정했더니만, 학생 안 들어와서 문 닫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

“주현필 선생님도 여기 이사이십니다. 문 닫으면 좋을 일 없어요.”

“그렇긴 하지. 그나저나 괜찮겠어?”

뭐가 괜찮냐는 것일까. 내 기분?

하나도 괜찮지 못했다.

설명회 참석하는 학부모들과 학생들 숫자가 예상을 넘어서가 아니었다.

어차피 절대적인 숫자는 신성 학원 입시 설명회 때 왔던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우리나라의 과도한 교육열.

성공을 위해서 필요한 교육에서, 이제는 생존을 위해서 필요한 교육이 되어 버렸다.

성공은 생존 이후에 생각이나 해 볼 수 있고.

우리 학교는 산골이다.

읍내에서 적어도 5분 이상 차로 달려와야 도착할 수 있다.

일부러 이런 곳을 고르기는 했지만, 그리고 이런 곳에서는 여러 가지 도시의 학교들에서 줄 수 없는 기억을 학생들에게 줄 수 있을 것 같아 결정했지만 아마 여기 있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은 그것 이상을 바라고 왔을 것이다.

유현덕이란 이름은 이미 사교육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물론 직접 강의를 뛴 건 몇 년 됐지만, 국내 최대의 온라인 사교육 업체 S 아카데미의 창립자 및 전 대표, 그리고 다른 거대 학원 맥스스쿨의 대주주 중 한 명인 나를 교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한 번 이상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교사로 진행하는 입시 설명회.

그리고 S 아카데미의 유명 강사 중 사범 대학 출신 교사가 여러 명 포진되어 있는 이 새로운 학교에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기대하는 건 결국 성공적인 대입이다.

밝은 미래를 보장해 줄 것 같아 보이는 성공적인 대입.

그들의 기대와 희망을 부추겨 지금의 내가 되었지만, 뭔가 모를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왜요? 기간제 교사가 학교 생기고 첫 입시 설명회에서 진행을 맡아서요?”

“흐흐. 그건 생각도 안 했는데.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

능청스럽게 웃음으로 넘기는 주현필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30대 초중반.

팽팽했던 그의 얼굴에도 이제 주름이 꽤 생겼다.

나는 그때 내가 봤던 그의 얼굴을 닮아 가고 있었고.

아, 물론 인상이 닮아 가고 있다는 건 아니다.

나이 말이다, 나이.

“이제 들어가 봐야겠네요.”

약속했던 시간이 다 되었다.

신성 학원 입시 설명회 때보다 훨씬 긴장되는 기분.

그때는 주현필이 먼저 진행했고 내가 세부적인 사항들을 설명하기 위해 나중에 올라갔었지.

오늘은 주현필이 했던 역할을 내가 해야 한다.

“화이팅!”

“떨지 말고. 평소처럼 하고 내려와. 나머지는 여기 오광필 회장님이 알아서 해 주실 거니깐.”

주현필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전혀 반가운 웃음이 아니다.

무섭다.

나는 천천히 강당의 계단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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