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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32화 (132/200)

[132] 132화.

“허허. 이거 역시 생각이 빠른 분이시네요.”

나는 일단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그가 물을 마시는 모습을 지켜봤다.

딱히 대답을 요하는 말도 아니었다.

곽한영이 나를 찾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오브라이언이 개선당 행사에 불참하면서 나의 부탁은 들어주었고, 그것 때문에 개선당 입장에서는 조금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것과 관련된 일로 나를 찾은 것일 테고, 나는 그걸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줬던 것.

“으흠. 그럼 저도 빙빙 돌려서 알아볼 필요는 없겠군요.”

그의 목소리에 변화가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좋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원하는 것을 직접 찌르려나?

그는 다시 한 번 시간을 끌었다.

초조한 시간.

S 아카데미로 그가 직접 온 것은 나에게 행운이리라.

아무래도 내가 생활하던 곳이기에 분위기에 말리지 않을 수 있을 테니.

“대안 학교를 설립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직진.

“네. 맞습니다.”

“인허가는 이미 나 있는 상황이라고 들었고요.”

“전부 준비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오브라이언 대통령이 이사장이란 사실은 굉장히 큰 홍보 효과를 가졌고요?”

뭘 원하는 건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홍보 효과.

그건 내가 의도한 부분이 맞다.

내가 계산하지 못한 건 그가 같은 날 개선당 행사에 초청받았단 사실.

미리 알았더라면 물론 날짜만 바꾸면 될 일이었다.

그랬다면 그가 이 시점에 나를 찾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렇습니다만…….”

“언론을 이용해서 말이죠.”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이 대화의 종착지가 과연 어딜지.

목이 탔다.

그리고 마치 내 불안감을 느꼈다는 듯, 곽한영이 갑자기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내 쪽으로 한껏 기울인 자세.

“불안하시죠?”

표정에는 어떤 변화도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 보였던 그 미소 그대로였다.

그런데 분위기가 달랐다.

내 불안한 감정의 영향인지, 아니면 그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다르게 느껴졌다.

조규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어찌 보면 굉장히 단순했다.

단순 무식함이 때로 굉장히 큰 힘을 발휘하듯, 그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이 앞의 곽한영은, 뭐랄까.

뱀.

“불안하네요.”

“네?”

아악!

내가 왜 이렇게 대답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미 뱉어 버린 말.

재밌는 건 곧바로 후회를 하려 했지만 미처 후회하기도 전 그 대답이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었다.

“불안합니다. 하하.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의원님께서 무슨 이야기를 꺼내시려고 저 같은 사람을 직접 만나자고 하신 건지 모르겠거든요.”

분명 정돈된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상대가 이런 대화에서 나보다 훨씬 수준이 높은 사람이라면, 그리고 내 상태를 제대로 파악했다면 굳이 내 감정을 숨기려 하다가는 오히려 우스운 꼴을 보이지 않을까?

어른들은 어린 아이들의 거짓말을 쉽게 간파한다.

물론 오해를 하는 경우도 있겠지.

많은 아이들이 억울해하는 일들도 종종 생기고.

이해되는 건 이 사람이 정치인이기에 나보다 훨씬 이런 대화에 능할 거라는 사실.

그리고 이해되지 않는 건 이 곽한영이란 사람이 정치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벌써 이렇게 정치에 능숙하다?

애초에 이쪽 분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거나, 아니면 습득이 빠르거나 둘 중 하나겠지.

어쨌든 쉽게 보면 안 될 상대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조심해야 할 사람이다.

좋은 말만 늘어놓고 반응 떠보면서 다음 수를 생각하는 나보다는 몇 수 위일 것이다.

오광필 할아버지나 주현필이 옆에 있었다면…….

“허허.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그냥 순수한 마음으로 오브라이언 대통령을 우리보다 앞서 모셔 간 사람이 어떤 분인지 궁금했을 뿐입니다.”

이미 잔뜩 긴장하게 말을 꺼내 놓고선…….

일단 이것도 대답할 필요는 없는 말이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먼저 연락한 쪽은 그쪽이었다.

뭔지 모르기에 불안함을 느끼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뭔지도 모르면서 불안해할 필요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그나저나 왜 차명으로 재단을 설립했는지가 궁금하네요. 대표님은 이사진에 포함도 안 시키고 말이죠.”

차명?

“차명이요? 제가 만든 재단이 아닌데요?”

“제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그렇지가 않던데요? 오브라이언이 한국에 직접 학교를 설립할 계획을 세운 것도 아니고요. 전부 다 유 대표님 머리에서 나온 것 아닙니까? 돈도 그렇고…….”

차명이란 단어가 가져오는 불법적인 느낌에 움찔하긴 했다.

어디서 들은 정보였을까.

다행인 건 차명은 아니었다.

내가 돈을 들인 건 맞지.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내 돈으로 재단을 설립한 것은 아니다.

혹여 오해를 살까 싶어 이리저리 꼬아 놓은 덕을 보는구나.

“그럼 그 정보가 조금 잘못됐네요. 제 돈은 아닙니다.”

곽한영의 눈썹이 약간 씰룩였다.

시간만 충분히 있었다면 아마 그도 이 정도는 알고 왔을 것이다.

설립 기념회는 바로 며칠 전.

그리고 오늘 나를 만나러 직접 왔단 건 성미가 느긋한 사람은 아니라는 의미.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오브라이언의 장학 재단은 아직 모르시나 보군요.”

“오브라이언이 장학 재단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재단에 기부를 했고요.”

학교법인 에듀파티는 전액 오브라이언의 장학 재단 돈으로 운영될 예정이었다.

인허가도 그렇게 난 것이고.

사실 우리나라에는 해외 선교사들이 처음 설립한 대학들이 많다.

아직까지 해외 재단에서 지원을 받는 곳은 거의 없겠지만, 설립 자체는 가능하다.

고등학교도 대학교 부설 고등학교들 중 그런 학교들이 일부 있고.

에듀파티는 정말로 오랜만에 해외 장학 재단의 주도로 우리나라에 설립되는 고등학교가 될 것이다.

곽한영은 상상도 못했겠지.

아, 물론 그 장학 재단에 내가 기부한 금액은 설립 비용보다 훨씬 크다.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이 학교의 설립을 계획한 것도 내 머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럼 유현덕 대표 돈이죠.”

“제 머리에서 나온 것도 맞고 제 돈이 이 학교법인 에듀파티의 상급 재단인 오브라이언의 장학 재단에 들어간 것도 맞지만, 재단과 학교의 운영에서 완전히 배제시키기 위해 이렇게 해 놓은 겁니다. 나쁜 의도는 없죠.”

“그럼 학교 운영비를…….”

“저와는 관계없는 일입니다.”

공수가 분명히 뒤바뀌었다.

곽한영의 표정에 큰 변화는 없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이 새끼, 이상한 녀석이네?’ 하고 생각하겠지?

내가 그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저렇게 생각하기보다는 ‘괜찮은 사람이네, 생각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둘 모두 나에게 나쁠 건 없었다.

적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는 것이 직접적인 위협으로 인식되기보다는 훨씬 나으니깐.

물론 적인지 아닌지는 정확히는 판단할 수 없다, 아직은.

“이해가 되질 않네요. 도대체 그럼 왜 학교를 세우는 겁니까? 돈도 아니고 재단 설립자 쪽도 아니면 명예도 아닌데요.”

나도 전생이었다면 이해가 되질 않았을 것이다.

나 살기도 빠듯한데 무슨 큰 의의가 있어 학교를 설립한단 말인가.

과거라면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아주 예전, 우리나라가 정말 어려웠을 때는 각 지역에 제대로 된 학교를 국가의 돈으로 설립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한다.

부모님 세대의 졸업 앨범을 본 적이 있는가?

한 반에 50~70명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에서 바위 같은 데 앉아 찍은 사진을 보면 도무지 누가 어디에 찍혔는지 찾는 것만 해도 한참 걸릴 정도다.

이때는 자산가들이 학교를 설립하면 세금 혜택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줬다고 한다.

거기에 사립 학교의 등록금도 해당 사립들이 직접 걷어 사용하기에 공립보다 등록금도 비쌌고.

하지만 현재는 다르다.

대안 학교이기에 등록금은 공립 대비 약간 비싸질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운영할 생각은 없다.

할 수 있다고 다 하는 건 아니다.

“글쎄요. 꿈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까요? 하하.”

꿈이라니.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꿈?

거짓말이지.

그렇지만 나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며 느낀 것이 있었다.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했나?

아무리 많은 돈을 더 벌더라도 돈 욕심은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돈이 아무리 늘어난다 하더라도 내 마음 속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찾은 것이 다른 일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이 가르치는 것뿐이기에 생각한 계획이었다.

“학교에서 돈 걱정하지 않고 애들 가르쳐 보고 싶었습니다.”

이건 거짓이 아니었다.

전생부터 이어진 나의 공허함은 어쩌면 돈 때문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데, 돈이란 건 현실적인 부분이라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교사라도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동안 부모님께 부담을 지워 드릴 수도 없었기에 선택한 기간제 교사의 삶.

끝이 보이는데 그 끝의 모습이 막막한 심연으로 떨어지는 기분을 안고 살았다고나 할까.

외적인 부담이 없는 상태라면 내가 정말로 교사로서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더욱 크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아…….”

그는 아직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이다.

정치나 사업이나 결국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심이다.

물론 나도 정치를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닌 만큼, 그리고 권력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만큼 약간은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뿐, 때가 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그래도 그건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되지.

“그럼 교사로 일을 하신단 겁니까?”

교사에서 강사로, 다시 교사로.

인생은 되풀이되는 것인가.

물론 두 번의 삶, 아니 세 번의 삶을 거치는 긴 대장정이다.

그리고 그 끝은 교사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수년, 수십 년까지 계획하고 일정에 맞추어 살겠는가.

눈앞에 놓이는 문제, 아니면 눈앞에 만들어 놓은 과제부터 하나씩 해결하고 성장하는 거지.

“네. 맞습니다.”

“허허. 이거, 절 놀라게 하는 분은 별로 없는데…….”

사실 나도 뜨끔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하겠다는 말은 아직 윤지 누나, 그리고 오브라이언에게밖에 하지 않았으니.

적어도 에듀파티 이사진들에게는 말을 해 뒀어야 했나 싶었다.

그들에게 말하기도 전에 오늘 처음 보는 정치인에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하지만 곽한영은 꼬투리를 잡으러 왔던 것.

아마도 차명으로 재단을 설립한 것이라면 그걸로 걸고넘어졌을지도 모르고, 재단 이사진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면서 비공식적으로 학교의 운영에 관여하는 비선 실세 같은 존재로 봤을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는 것이 돈 아니면 명예가 이유일 거라고 본다면, 나의 행동에서는 약점 잡힐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둘 모두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입장에서도 공격할 구실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내가 왜 공격당해야 하는 거지?

“복수하러 오신 것 아닙니까?”

약간은 의미심장한 미소로 말했다.

좀 전에 불안하단 대답과 마찬가지로 정곡을 찌르겠지.

하지만 역시나 경솔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는다.

이건 나도 혹여 정치를 하게 되면 배울 부분이다.

물론 학교에서도 써먹을 수 있겠지.

전생에도 그리 해 왔었고.

교사가 감정을 드러내면 애들을 다루기 어려워진다.

물론 잘한 일이 있다면 진심으로 칭찬해 주고 좋은 일이 있다면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줘야 하겠지만 말이다.

“복수요? 당 행사에 오브라이언 대통령을 뺏긴 것 때문에?”

“네.”

“허허. 이미 끝난 일은 끝난 일이죠.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만 말이죠. 지금 보니 대표님은 선생님보다는 정치인에 어울리시는 걸요?”

“정치인이요? 아닙니다. 만약 복수하려고 오신 거라면 어떻게 복수하실지가 궁금했네요.”

과연 이렇게까지 하는데 진심으로 내 일에 방해가 되는 일을 할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뭐, 유현덕 대표님께서 야당과 관련이 있으시고, 그래서 일부러 저희 행사에 재를 뿌리려고 그렇게 하신 거라면야 다르겠지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렇진 않으신 것 같습니다. ‘아직’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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