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131화.
완벽했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미국 대통령의 한국 교육에 대한 관심.]
[새로운 교육에 대한 관심, 에듀파티 재단 이사장 오브라이언.]
[시골에서 교육의 변화를 꿈꾸다, 에듀파티 재단 대안 학교 설립.]
각 신문사의 1면에 에듀파티 재단 이사회의 대안 학교 설립 기념회 내용이 실렸다.
그리고 대부분의 내용은 깜짝 이사장인 오브라이언에 대한 내용이었다.
물론 정확한 내용은 별로 없다.
우리 쪽에서도, 그리고 오브라이언 측에서도 어떻게 그가 이 재단의 이사장이 됐는지는 철저히 함구했으니깐.
하지만 숨기면 숨길수록 신문 기자들의 상상력은 더욱 광대해진다.
내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기념회가 끝나고 오브라이언은 나에게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이렇게 말했다.
“다음번에는 미스터 유가 실험한 것들의 결과를 알려 줘야 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미국 교육에도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따로 추려 주면 고맙겠네요.”
그리고 내 손을 잡은 상태로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기자들에게 날리고는 떠났다.
오브라이언의 방문은 당일부터 어떻게 알았는지 걸려 오는 전화와 꽉 찬 메일함으로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뭔가 나의 목적을 위해 친한 친구를 써먹었다는 기분도 들어 기분이 아주 깔끔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언론의 관심을 끌고 학교 운영이 수월해질 것이었다.
어쨌든 그 전화가 오기 전 까지는 완벽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삐비빅. 삐비빅.
모르는 번호.
평소라면 그냥 부재중 처리를 해 놓았을 텐데, 이날따라 왜 그걸 받았는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기자들의 전화로 전화기를 들고 다니지도 않았는데 딱 그 시점에 왜 내가 그걸 들고 있었는지.
일어나야 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더니만, 이것이 그런 일이었을까?
삐비빅. 삐비빅.
거기에 옆에 있던 주현필까지 한마디 거드는 바람에.
“전화 안 받아?”
나도 모르게 무심코 받아 버렸다.
급한 일이라면 문자로 다시 왔을 테고, 그랬다면 나도 대비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여보세요?”
일은 이미 벌어졌다.
-유현덕 대표이십니까?
“네, 맞는데요. 누구십니까?”
차분한 목소리의 남자.
나이는 가늠이 되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국회의원 곽한영이라고 합니다.
국회의원이 도대체 무슨 일로 나에게 연락을 해 왔을까.
공교육에 발을 디밀고, 그리고 기회가 온다면 조금 큰 틀에서 교육 정책 분야에 내 생각을 펼치고 싶긴 했지만 아직 밑그림도 그리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사실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나에게 좋은 기억은 없었다.
그나마 알던 유일한 의원이 조규만이었으니.
“아……. 네. 무슨 일이십니까?”
-잠깐 뵙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으실까요?
무슨 일로 나를 본단 말인가?
“네? 시간이야 내면 됩니다만, 무슨 일로…….”
-제 지역구가 S아카데미가 있는 곳입니다. 훌륭한 일을 또 시작한다 하시기에 도움이 될 일이 있을까 해서요.
“아…….”
도움 받을 일은 없는데.
하지만 막상 또 도와주겠다고 만나자는 사람을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알겠습니다. 제가 찾아뵙죠. 시간을 알려 주시면…….”
-아니요. 제가 가겠습니다.
굳이 홈그라운드로 오겠다는데 피할 이유야 없지.
하지만 그가 도대체 뭘 원하는지 모르기에 불안했다.
약속은 이틀 뒤, S 아카데미에 있는 내 사무실에서 잡혔다.
“뭐야? 누구야?”
전화를 끊고 멍하니 내 폰을 바라보던 나에게 주현필이 물었다.
“곽한영 의원이라는데요?”
“곽한영?”
“네. 누군지 아세요?”
난 전혀 들어 본 기억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달 전까지 미국에 있었고, 한국에 온 뒤에도 계속 에듀파티 재단 설립과 대안 학교 문제에만 매달렸기 때문이었다.
주현필은 전혀 모르겠다는 나를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야, 우리나라 다음이나 다다음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모르면 어뜩하냐. 뉴스 좀 보고 살아.”
전생의 기억들이 필요한 시점.
하지만 곽한영이란 이름은 그 기억 어디에도 없었다.
아무리 학교란 곳이 정치에 큰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대통령 선거에 누가 나왔는지, 그리고 누가 당선이 됐는지 정도는 기억을 하지만 그 이름은 없었다.
“누군데요? 힘 좀 있는 사람이에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그렇단 의미였다.
주현필이 만약 내 말의 진짜 의미를 알았다면 까무러치겠지만.
“어휴. 우리 동네 국회의원이잖아. 조규만 죽고 보궐 선거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타 후보들을 압도한…….”
조규만의 다음 국회의원.
사실 전생에서는 조규만이 계속 의원직을 유지했었다.
3선을 했었나?
그래서 그의 이름을 기억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현생에서는 그가 이미 죽은 상태.
그럼 그 빈자리를 꿰찬 사람이 방금 나에게 연락을 한 곽한영이란 사람?
“그런 사람이 절 왜 보자고 했을까요?”
“그걸 나한테 물어보고 있냐. 네가 알겠지 내가 어떻게 알아?”
“그……. 그런가요? 하하. 왜지?”
멋쩍게 머릴 긁적이며 내 자리로 돌아갔다.
설마 이번에도 돈 문제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아닐 것 같았다.
주현필의 말마따나 대통령 자릴 노릴 만큼 실력이 있다면 내 돈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한성 그룹 같은 대기업 총수들과 직접 상대를 하겠지.
나도 만나기 어려운 그런 사람들 말이다.
도대체 왜?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리고 이틀 뒤, 약속대로 그가 내 사무실에 찾아왔다.
그간 나는 곽한영이란 사람에 대해 검색을 해 봤고, 혜성처럼 나타난 여당의 스타 정치인임을 알 수 있었다.
‘스마트한 외모에서 오는 매력, 그리고 중진 의원들에게도 할 소리는 다 하는 개혁적 성향을 띤 사람’이 아마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그에 대한 평가이리라.
“안녕하세요. 전에 연락 드렸던 곽한영입니다.”
그는 따로 보좌관을 대동하고 오지 않고 혼자 왔다.
나에게 손을 내미는 그는 왠지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대다수의 정치인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자는 특히 그게 더 심했다.
차라리 조규만은 인상부터가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곽한영은 멀끔한 외모에 호감 가는 미소까지.
“처음 뵙겠습니다. 유현덕입니다.”
“이거 듣긴 했습니다만 훨씬 젊은 분이시군요. 대단하십니다.”
칭찬까지 능숙했다.
“아닙니다. 운이 좋았죠. 이쪽으로 앉으시죠.”
새로 꾸민 사무실에는 가끔씩 외부 손님들을 맞이할 일이 있을까 싶어 소파와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이것도 다 대안 학교를 시작하면 쓸 일은 없어진다.
아마 이쪽 일은 지원재 실장에게 일임을 해 둔 상태로 학교에 가 있을 생각이었기에.
곽한영은 자연스럽게 내가 가리킨 소파에 가서 앉았고, 나는 미리 물을 넣어 둔 포트를 끓이러 내 자리 쪽으로 갔다.
“젊으셔서 소박한 걸 좋아하시나 보죠?”
“네?”
뜬금없는 그의 말.
아마 내가 가지고 있는 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몇백억을 가진 사람의 사무실로는 초라해 보일지도.
하지만 사무실은 일하라고 있는 곳이지 삶을 즐기기 위한 곳은 아니기에 딱 필요한 수준으로 꾸며 놓았다.
“그건 아닌데 일하려고 만든 곳이라 필요한 것만 넣어 두었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리고 내가 커피를 내려 그에게 한 잔 가져다 줄 때까지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향이 좋네요.”
“잠을 피하기에는 이것만한 것이 없어서요. 그나저나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본론으로 빨리 들어가야 했다.
딱히 다른 약속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상대방의 의도를 모르는 상태로 대화가 길어져 봐야 좋지 않을 것 같았다.
특히나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을 상대할 때는…….
곽한영은 다시 한 번 미소를 띠었다.
“급하시네요. 천천히 이야기해도 될 것을. 하긴 저도 빨리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깐 그게 무슨 이야기냐고.
그는 굳이 더 이상 뜸을 들이진 않았다.
“대안 학교 설립을 진행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역시나 그 일 때문인가.
“네. 크진 않지만 그래도 사회에 어느 정도 제가 받은 걸 환원하고 싶어서요.”
“겸손하시기는요. 유현덕 대표가 이룬 것들은 다 유현덕 대표의 능력 덕인데요.”
“아닙니다. 일단 자식을 공부로 성공시키길 원하는 학부모님들에게서 돈을 긁어모아 제가 가지고는 있지만, 저는 그만큼 많은 돈을 가질 만한 일을 한 적은 없습니다.”
“하하. 훌륭하신 말씀이십니다. 정치를 하셔도 되겠는걸요?”
필요하면 하겠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때는 기다려야 무르익는 법.
하지만 이런 이야기나 하려고 온 건 아닐 텐데.
“신문에서 봤습니다. 오브라이언 미국 대통령이 이사장직을 맡았다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날 개선당 행사도 있었고요.”
“아…….”
곽한영이 무엇을 원하고 나를 만나자고 한지는 아직 몰랐다.
하지만 내가 모른다는 티를 내면 안 된다는 생각.
인터넷 검색의 효과였다.
당일 개선당 행사가 있었고, 아마 그쪽에서도 오브라이언을 초청했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니까.
하지만 그는 나와의 선약을 지켰고, 그 행사는 참석하지 않았다.
뭔지 모르지만 일단 한 방은 내가 먼저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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