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129화.
“이런 곳에 학교를 만들어?”
주현필이 어이없어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무리 산 중턱에 기숙형 대안 학교를 짓는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오지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리라.
고민이 되긴 했다.
대안 학교는 학생을 배정받지 않고 신청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위치가 이런 곳에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신청을 할 것인가.
물론 기존 일반 고등학교에서 도저히 관리가 되지 않는 부류의 학생들을 받는 곳이라면 학부모 입장에서 이런 절 같은 곳이 차라리 안심이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학교를 추구하는 건 아니었다.
“좋지 않아요? 공기도 좋고.”
“공기만 좋지. 여길 어떻게 와, 학생들이?”
“기숙사도 만들어야죠. 안에서 다 해결할 수 있도록.”
“선생님들은?”
“선생님들 기숙사도 따로 만들면…….”
“미쳤어?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한다면 교사들이 올 것 같아?”
그의 말이 맞긴 하다.
학교의 성공을 위해서는 유능한 교사가 필수적인데, 유능한 교사는 다른 직종처럼 도시에 사는 경우가 많다.
뭐, 누군들 도시에 살고 싶지 않으랴.
“조건이 좋으면 오리라 생각합니다. 흐흐.”
“조건?”
이게 내 한 수였다.
이걸 얼마나 유능한 많은 선생님들이 받을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조건?”
딱히 다른 설명 없이 웃고만 있는 나를 보면서 주현필이 궁금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건이라고 해 봐야 별것 없다. 임금 조건, 복지 조건, 신분 조건, 요 세 가지?
“나 같아도 조금 고민해봐야 하겠는걸요?”
“부회장님이야 당연히 안 오시겠죠. 이런 곳까지 뭣 하러 오십니까. 일단 월급을 공립 기준 150% 정도 준다고 하고, 숙식 해결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작점으로는요.”
“헐. 뭐, 네 돈이니 어떻게 쓰는가도 네 자유이기는 하지. 근데 시작점이란 말은 더 있다는 거야?”
“도로도 요 앞까지는 뚫을 거고, 그 부분은 군청이랑 이야기 됐습니다. 어차피 이쪽에 공사 시작하려면 도로가 있어야 하든 말든 하잖아요.”
군청에서 도로를 막 뚫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원재 실장의 수완으로 군청과 도청에 학교 설립을 위한 도로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고, 허가만 떨어지면 바로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도로만 일단 뚫리면 그 다음부터는 이쪽에서 돈을 쏟아부을 차례.
그 전에 이사진으로 들어와 주기를 부탁한 동료들에게 이곳을 보여 주고 확인받기 위해 온 자리였다.
당장은 이미도 원장과 오광필 할아버지는 오지 못했다. 각자 학원 일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주현필은 이제 수업을 많이 하지 않고 행정 일에 집중하는 편이라 올 수 있었고, 김미연 부회장은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새로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이런 것도 인연이라 해야 할까.
한성 그룹에서는 자체적으로 사립 학교 하나를 운영 중이었다.
근처 천안에 있는 자사고를 가지고 있는데, 그 외에 몇 개 학교에 추가적으로 지원을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물론 지원 조건은 야구팀을 운영하는 조건으로.
한성이 KBO에 프로야구 구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학교도 야구팀을 운영할 생각이냐고?
그건 아니었다.
단지 여러 학교에 지원을 계획하던 와중에 내가 새로 대안 학교 하나를 설립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또다시 김미연 부회장의 추천으로 운동장 정비와 건물 건축은 자기네가 도와주겠다는 의사를 전해 왔다.
학교 세우는 데 운동장과 건물 건축을 도와준다면 실질적으로 그들이 세우는 것 같을 것이다.
하지만 돈은 내가 내고 굉장히 좋은 조건으로 한성 그룹 계열사인 한성 건설에서 일을 맡아 준다는 의미였다.
공짜로?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세상에 공짜가 있을까.
한성에서는 이사회 두 자리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건 사실 내 입장에서는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것.
하나는 김미연 부회장이 가져갈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누가 들어올지 아직 전해들은 바는 없다.
“그나저나 유 대표님이 이사장 자리 맡지는 않는다면서요? 누구에요?”
“그러게. 우리도 누군지 알아야 모시든 말든 생각을 해 볼 거 아냐?”
나는 이사진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원칙적으로 학교를 세우고 학교를 운영하는 건 이사진이 아니다.
그건 바로 학교 교사들.
물론 이것저것 이사회에서 학교 인사 시스템에 관여를 할 방법은 많지만, 적어도 내가 그 교사의 한 명으로 있다면 마음대로 그리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사회 구성원부터가 내 의견에 웬만하면 동의해 주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건 조금만 이따가요. 흐흐. 아직 이사장님께서 허락을 해 주질 않으셨습니다.”
“이사장님? 너 우리가 모르는 무슨 단체에 소속되어 있냐?”
“아뇨. 이사장 되 주실 분이죠.”
* * *
상당히 불편한 분위기.
아마 이건 내가 이번 생을 살면서 두 번째 겪는 일일 것이다.
첫 번째는?
그때는 신성 학원에 근무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야밤에 공격을 당하고 병원에서 세 달을 있었을 때.
그때도 이런 분위기였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녀석이 왜 그래?”
“아버지,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남에게 피해 입히고 산 적 없으시잖아요. 다른 일 있는 것 아니에요. 이번 일도 누구에게 피해 입히거나 하는 거 아니고요. 그냥 이름만 올려 주시고 회의만 참석해 주시면 되요.”
아버지는 완강하셨다.
아마 순전히 자신이 이뤄 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셨으리라.
하지만 이 일은 따로 월급을 받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이건 직함밖에 없는 허울일 수도 있었다.
내가 걱정하던 건 이런 것이었는데, 그분은 오히려 자신이 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거절하고 계신다.
자식이 이룬 일에 숟가락을 얻고 싶진 않다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이에요. 아버지 경험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내가 했던 일이라고는 중공업 회사에서 근무하다 능력 부족으로 퇴직당한 것과 집에서 책이나 보면서 자식 돈으로 유유자적하던 것밖에 없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런 자리에 이름만 올리라고 하면 할 줄 알았니?”
“회사에서 나오게 되신 이유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잖아요! 능력이랑 관계없이 때 되면 자리 빼고, 생생하고 혈기 넘치는 젊은 사람들로 채우려 그런 거고…….”
“회사 일은 해 보지 않았잖니. 어쨌든 학교 재단 이사장이라니, 난 그런 것 능력도 없고 관심도 없다.”
생각보다 설득이 어려울 것 같았다.
아니, 이 정도 해서 안 됐으면 이미 끝난 것이었다.
이제야 내 생각이 같잖은 머릿속에서 나온 꾀일 뿐임을 깨닫는 기분이었다.
효도?
이게 과연 부모님께 진정 효도하는 길일까.
부담만 가중시켜 드린 건 아닐까.
자식이 성장하여 부모님께 뭔가를 해 드려야만 그게 효도일까.
안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던 나와 아버지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방문이 열리고 어머니가 깎은 사과를 들고 들어오셨다.
“거의 몇 년 만에 본 것 같은데 뭘 그리 역정을 내셔요. 그리고 너도 그만하면 됐어. 아버지 고집 잘 알잖아.”
실로 몇 년 만에 찾아뵌 부모님이셨다.
어머니의 얼굴을 봤다.
두개골에 종이 치듯, 강한 충격과 함께 몸이 떨렸다.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방금 전까지 나와 대화를 나누던 아버지의 모습이 내가 기억하는 전생의 부모님 모습보다 전혀 밝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막 어둡거나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분명한 건 내가 이번 생애에서 경제적 부담을 덜어 드린 만큼 그분들의 삶이 행복해진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오히려 오랜만에 찾아온 내 모습에 잠깐 잠깐 스쳐 가는 빛들이 그들이 원한 것이 경제적 풍요가 아님을 알려 주는 듯했다.
“얼굴 좀 자주 비춰. 아버지가 네 얘기 얼마나 자주 하시는지 모르지?”
“엄마…….”
밝은 표정, 밝은 얼굴.
행복이리라.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부모님은 전생보다 훨씬 좋은 집에서, 아무런 경제적 걱정 없이 살고 계신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전생과 다를 것이 없었다.
왜?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리고 아버지 일 또 시키지 말고. 이제까지는 일 안 하게 해 드린다고 그렇게 말하더니만 갑자기 왜 그래?”
이사장직.
욕심이었다.
그것 외에는 달리 내가 쉬고 계시는 아버지를 그 자리에 올리려 했던 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아버지를 그 자리에 앉혀 드리면 아버지가 기뻐하시리라 생각했던 걸까.
“죄송해요. 아버지께도 사과를…….”
“아니, 아버지는 네 맘 아셔. 그러니깐 오늘은 그냥 들어가. 다음번에는 시간이나 많이 비워 둬. 그 학교라는 곳 한 번 보여 줘야지?”
“다 들으셨어요?”
“그럼, 내가 타이밍 딱 맞춰서 들어갔잖아. 호호.”
* * *
“도대체 누군데 재단 설립하는 이사들이 이사장을 몰라? 이게 말이 돼?”
오광필 할아버지는 정말로 화가 나 보였다.
원래 사립학교 재단 설립을 하면서 이사들이 이사장이 누군지 모른 채 진행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만은 약간 의도적으로 이사장이 누군지를 철저히 비밀에 붙인 채 진행했다.
“지 실장, 자내도 모르는 거야?”
“저는 당연히 알죠. 하지만 유 대표님 허락 없이는 발설 금지라서요.”
“자네까지!”
우릴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명색이 재단 설립 기념회에 참 웃기는 모습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게 평소 모습인 걸.
그나저나 아버지를 이사장 자리에 앉혀 드린다는 생각은 완전히 접었다.
나도 내 눈에 뭐가 씌었는지 왜 그렇게 무리한 발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방식으로나마 그들의 사랑에 보답을 해 드리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정말로 잘못된 방식으로.
그럴 거면 차라리 내가 이사장을 하는 것이 맞지.
부모님과의 대화를 김윤지에게 말했다가 엄청 혼나기도 했다.
그게 어떻게 효도하는 거냐고.
다행인 것은 그 대화에서 비록 아버지께서는 목소리를 높이셨지만, 그 이후 우리 가족 사이가 더욱 돈독해진 것 같다는 점이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그 후로 주말마다 꼭 찾아뵙고 식사를 같이했다. 가끔씩은 외식도 하고.
아이러니한 일이다.
자식 입장에서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할 방법은 없다.
그냥 스스로 일어설 나이에 스스로 일어서고, 건강하게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드리는 것 밖에는.
내가 어떤 부귀영화를 드린다고 하더라도 그 분들께서 나에게 이제까지 쏟으신 노력과 정성은 갚아지지 않는다.
“이사장 할 사람이 오긴 오는 거야?”
다시 오광필 할아버지.
재단 설립 기념회 자리 자체는 조촐했다.
기념회랄 것도 딱히 없었고.
그냥 앞으로 같이 일할 사람들 모여 식사하는 자리.
원래 그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사장 역할을 맡아 줄 그분 때문에 계획은 계획대로 진행되기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걸 의도한 것이기도 했고.
전에도 말했듯이 대안 학교는 학생을 배정받지 않는다.
신청을 받아야 하는데, 그렇기에는 이제 막 생기는 학교 입장에서 정원을 채우기가 어렵다.
S 아카데미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뭔가 언론의 관심을 끌 만한 사건이 필요했다.
그럼 아버지를 이사장 자리에 앉히려고 했던 건?
그건 순전히 내 욕심이었다.
우리가 모여 있는 곳은 학교가 세워질 허허벌판.
몇 달간 군청과의 조율로 도로는 이미 이곳까지 깔렸다.
사진이나 한 방 찍자는 생각이었지만 사진은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많이 찍어 줄 분위기.
입구 쪽에서는 한성 그룹 보안 요원들이 기자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기자들?
무슨 시골 대안 학교 하나 만드는데 기자들이 왔냐 싶을 것이다.
“서프라이즈도 좋긴 한데 이거 사람 너무 기다리게 하는 것 아녀요?”
이미도 원장까지 약간은 지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곧 도착할 것이다.
이미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이쪽으로 들어오는 길 초입에 진입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잠시 뒤, 검정색 벤 세 대가 먼저 주차장 쪽에 멈춰 섰고, 안쪽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내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전부 다 외국인들.
“뭐야? 도대체 누구야?”
“소란스럽네, 이거.”
주현필은 심기 불편한 표정.
“놀랄 만한 분이십니다. 흐흐. 이사장 자리에 모시기 어려운 분이죠.”
우리 쪽을 간간히 찍어 대던 카메라들이 주차장 방향으로 움직였다.
몇몇은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뛰기까지 하다가 검은색 정장 사내들에 의해 제지당하는 모습이었다.
“대통령이라도 오는 거예요?”
“유 대표님 인맥은 저도 놀란다니까요, 정말. 호호.”
김미연 부회장도 자리에 함께 있었다.
한성 그룹에서 상당히 적극적으로 이번 일을 도와주고 있던 상황이었고, 사실 김미연 부회장의 아버지까지 이 자리에 온다고 하는 걸 그녀가 극구 말렸다고 한다.
그녀는 이사장을 할 사람이 누군지 이미 알고 있었다.
더 친해서 알려 줬다기보다는 덜 친해서 미리 알려 준 것.
그러다 보니 이거 친한 사람들에게만 너무 숨겼나?
“미스터 유?”
주차장에서 올라와 잠시 주변을 확인한 남자 한 명이 나를 찾았다.
“네. 언제 쯤 오시나요?”
“이제 곧 도착하십니다.”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장 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이번에는 똑같이 생긴 검은 색 벤츠 두 대가 산길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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