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126화.
제 1강 에듀파티 유현덕
인생이란 무엇인지.
사람의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약하다.
물론 아무리 거친 파도 속에서도 버텨낼 때가 있는가 하면, 아주 약한 바람에도 감기에 걸리고 죽는 경우도 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숨 쉬는 이 공기 구성의 아주 일부분만 변하더라도, 전 세계에 살고 있는 60억의 인구가 모두 죽을 수도 있다.
어디 신체만 그런가?
정신적인 부분 또한 강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강한 정신력?
그런 게 어디 있는가. 그냥 성격 차이일 뿐이지.
정신 그 자체는 가까운 사람에게 닥친 슬픈 일 하나로 수 개월 동안이나 무너진 상태가 될 수도 있다.
탕. 탕.
두 발의 총소리.
아무리 여기가 미국이라고 하지만 총소리를 실제로 듣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처음 들어 본 건 아니었다.
이번 생에서는 아니지만 적어도 전생에서는 현역으로 전역했으니,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여러 번 사격 훈련을 통해 들었던 소리였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는 힘든 소리기도 했다.
총은 영화에서처럼 ‘탕탕’ 소리가 나지 않는다.
처음 들어 본 사람은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의 굉음.
본인의 사격 시간이 될 때까지 저걸 어떻게 귀 옆에다 대고 버틸 수 있는가 고민한다.
물론 방금 전의 총소리는 군용 소총과는 다르다.
권총은 작지만 밀폐된 공간이라 훨씬 크게 다가온다.
“꺄악!”
분위기 있던 식당은 순식간에 바닥에 엎드리는 사람들과 쓰러지는 테이블들, 그리고 음식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리고, 바로 눈앞에 있던 정장의 거구가 천천히 쓰러졌다.
모든 것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아 보였다.
김윤지와 오브라이언이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그들의 뒤로 의자들이 각각 뒤로 넘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건너편의 경호원이 총소리가 난 방향, 그러니깐 첫 번째 경호원이 쓰러지던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엎드려요!”
오브라이언이 김윤지에게 외치는 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건너편 경호원이 우리 테이블을 지나치며 총을 꺼내 들었다.
탕. 탕탕.
세 번의 총소리.
이번 소리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난 걸로 보아 우리에게 총을 쏜 자와 경호원이 상대방을 향해 총을 쏜 것 같았다.
다시 오브라이언과 김윤지를 봤다.
그들 둘 모두 이번에도 무사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놀란 듯 양손을 어정쩡하게 귀 근처에 대고 있었고.
“엎드려!”
급한 나머지 우리말로 소리친 나를 멍하니 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아직 상황이 종료된 것이 아니었다.
1차 공격은 쓰러진 경호원 방향에서 있었으나, 나는 그 반대편, 그러니까 방금 총을 꺼내 쏘면서 쓰러진 경호원 쪽으로 뛰어간 다른 경호원이 서 있던 곳에서 뭔가를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오브라이언이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애초에 둘밖에 경호를 안 붙인 것이 실수일까.
대통령 선거까지 준비 중인 사람이?
경호원 한 명은 총에 맞은 듯했고, 나머지 한 명은 첫 번째 저격수를 잡으러 원래 있던 위치에서 움직였다.
그 말은 곧 두 명의 저격수가 있었다면, 아니 그 이상의 저격수가 있다면 지금은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위험이 현실이 되었다.
“뭐? 꺅!”
나는 일단 김윤지를 지나치며 거의 끌어 돌리다시피 그녀를 쓰러뜨리고는 오브라이언을 향해 몸을 던졌다.
그 또한 내가 자신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김윤지에게 무엇인가 소리를 질렀지만, 아직 위험한 상황이 끝나지 않았단 것을 직감했는지 엉거주춤 몸을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영어로 바닥에 엎드리라고 해야 하는데!’
참 우습지.
총알이 날아다니는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이걸 영어로 어떻게 표현할까 라는 것.
그러는 동안에도 나는 이제 완전히 공중에 떠 오브라이언에게 날아가고 있었다.
“What! What the……. (뭐? 뭐 이런…….)”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뒤편에 서서 자신에게 총을 겨눈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의 시선은 완전히 우리 쪽, 그러니깐 반대편으로 가 있었고, 내가 그의 정면에서 덮치는 상황이었다.
그의 체구는 상당히 단단했다.
하지만 나 또한 비록 부실한 몸이나 주현필에게 호신술을 배운 이후로는 틈틈이 관리는 해 두었었다.
사실 이렇게 무식하게 돌진하면 아무리 체격 차이가 나더라도 쓰러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탕탕.
쿠당탕.
첫 번째 총소리는 나의 몸이 오브라이언에게 닿음과 동시에 들렸던 것 같다.
그리고 두 번째 총소리는 미묘한 차이였으나 그와 내가 엉겨 붙어 그의 뒤에 쓰러져 있던 의자에 부딪히며 났다.
탕탕탕탕.
그리고 곧 끔찍한 그 소리가 네다섯 발이 연달아 들렸다.
이건 방향으로 미루어 보아 반대편으로 갔던 경호원이 쏜 것이 아닐까.
바닥에 닿을 때 나도 모르게 쓰러져 있던 의자 쪽으로 몸을 억지로 끼워 넣었다.
오브라이언은 그런 내 위로 몸을 짓눌렀다.
엉덩이 뼈 부분과 허리가 완전히 뒤집혀 있던 의자 다리에 직각으로 눌리며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
물론 곧바로 그랬던 건 아니었다.
총소리가 네 발 연달아 들리고 나는 그렇게 드러누워 있는 채로 아까 우리에게 총을 겨누던 사람이 서 있던 방향을 봤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영화는 상당수가 거짓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니, 요즘 나오는 영화들은 저런 식으로 표현하려나?
총알이 그의 몸을 관통했는지 그의 등 뒤로 붉은 수증기 같은 것이 훅 퍼졌다.
분무기로 붉은 물감 탄 물을 뿌린 것 같다고 해야 할까?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이 무엇인가에 강하게 부딪힌 듯 뒤로 살짝 튕겨 나가며 누워 있는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주변은 다시 조용해졌다.
사실 조용한 건지, 아니면 귀에 들어오는 모든 소리들을 뇌에서 처리하지 못하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생각보다 너무 고요했다.
드러누워 있는 내 눈에는 방금 전 소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천장의 샹들리에가 보였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시야의 한쪽 구석에서 얼굴 하나가 들어오더니 그와 동시에 천장이 마구 흔들렸다.
멀미가 날 지경.
“현덕아!”
“어? 어, 누나. 괜찮아?”
누가 누구한테 괜찮다고 하는 건지.
김윤지가 나에게 달려와 몸을 마구 흔들며 불렀을 때, 나는 쓰러져 있는 의자 위에 몸이 반쯤 걸린 채로 드러누워 있는 모습이었다.
다행히 그녀가 먼저 움직였다.
일단 내 상태가 어떤지는 몰라도 그녀는 나보단 나은 상황이란 의미겠지.
그리고 또 중요한 한 사람…….
오브라이언은 내 바로 옆에 쓰러져 있었다.
미동도 없이……라고 한다면 불안하겠지.
다행히도 움직임은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태껏 내가 보지 못한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김윤지나 나나 그에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그는 한쪽 어께를 부여잡은 상태로, 그리고 그 어께를 땅바닥에 완전히 누른 상태로 엎드려 있었고, 경호원 하나가 오더니 그의 어께를 살짝 들어 올려 보았다.
어두운 색의 정장이라 내가 본 것이 정확한지는 모른다.
하지만 얼핏 본 것은 그의 어께 부위가 마치 물에 흥건히 젖어 있는 것이었다.
어께만 손으로 부여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 발을 어께에, 아니면 좋지 않더라도 두 발 다 어께에 맞은 것으로 보아야 할까?
식당 밖에서 대기하다 소란에 들어온 경호원들이 오브라이언과 나, 그리고 김윤지 주변을 완전히 에워쌌다.
“어떻게 된 거야?”
나는 다시 김윤지를 보고 물었다.
나보다는 그녀가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겠지.
놀랐다면 나보다는 그녀가 더 놀랐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데도 전혀 듣지를 못했다.
방금 전까지 붙잡고 있던 정신의 끈을 잠시 놓았나?
“누나!”
“어?”
“어떻게 된 거야? 오브라이언은 괜찮아?”
“아……. 내가 어떻게 알아! 야, 이 미친놈아!”
갑자기 욕을 하다니.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왜 네가 나서는데? 총 맞고 멀쩡한 사람이 어딨어?”
걱정해서 욕을 한 건가.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분노 같은 건 엿볼 수 없었다.
놀람과 안도감이 겹치는, 그런 표정이었다.
“저기…….”
그리고 오브라이언의 경호원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식당 안에서 같이 있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오다가다 몇 번 봤던 얼굴이었다.
“네?”
“병원으로 같이 가시죠. 피가 납니다.”
나와 김윤지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봤다.
하얀 셔츠 위로 언제 그랬는지도 모르게 빨갛게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 몸에 피가 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야!”
지금은 소리를 지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피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저는 괜찮아요. 스친 것 같은데…….”
어떤 통증도 없었으니 그렇게 착각할 만도 했다.
하지만 나오는 피의 양은 스친 건 아니었다.
“오브라이언은?”
“나는 괜찮아요. 미스터 유, 같이 병원으로 가시죠. 거긴 어떤 상태입니까? 미스 김은요?”
김윤지의 몸에는 다행히도 어떤 상처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 전 공격의 타깃이었던 오브라이언의 목소리도 나쁘지 않은 듯했고.
다행이었다.
만약 그의 상태가 심각했다면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미국의 역사가 바뀔 뻔했으니.
나는 피가 배어 나오는 곳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멈출 생각을 하질 않는다.
벌써 손가락 사이로 피가 울컥거리며 새어 나온다.
“빨리……. 여기가 급해요! 빨리 병원으로!”
김윤지가 내 바로 옆에 있는데도 마치 먼 곳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이 들렸다.
오히려 우리에게 처음 병원으로 가자고 했던 경호원의 표정이 질려 보였다.
아, 내 인생은 왜 이러냐.
이번 생도 쉽지가 않았다.
아니 훨씬 더 스펙터클하다. 총에 맞는 일이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이걸 네가 바란 것이 아니었더냐? 허허허.’
흰머리 할아버지.
그분이 내 생각을 들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을 하지 않았을까.
다시 주변이 소란스러워 졌지만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건 김윤지의 목소리뿐이었다.
“현덕아! 현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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