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125화.
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것과 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그는 실제로 방금 그가 말한 것을 실행할 의지를 가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미국 교육계를 위한 일을, 지금까지의 나의 성공을 위한 일을 했던 것처럼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건 행복할까…….
옆에 서 있는 김윤지를 보았다.
그녀는 그녀대로 뜬금없이 터져 나온 내 선언에 불안한 눈빛으로 나와 오브라이언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었다.
미리 그녀에게 언질을 하고 난 뒤 이렇게 터뜨려야 옳았을 것이다.
그녀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리라.
사실 이 자리에 나를 처음 추천한 것도 그녀였으니.
“미안해요, 누나.”
“오브라이언, 잠시 미스터 유와 이야기를 따로 나누고 와도 될까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미스터 유도 어떤 생각이 있어서 그만두려는 것임은 잘 압니다. 다만 이건 나 개인뿐만이 아니라 미스터 유에게도 큰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좀 말해 주면 좋겠네요.”
김윤지는 나를 끌고 아예 건물 밖으로 나왔다.
“갑자기 뭐야?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속사포같이 쏟아져 나오는 질문들.
나는 그냥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이 한 질문을 기억이나 할까?
‘너는 뭘 하고 싶은 거야?’라고 했던 그 질문.
그녀는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다시 이렇게 만났다.
처음 우리가 만난 장소가 아닌, 하나하나가 전부 어색하고 낯선 장소에서.
“대답 안 해?”
“미안해요. 누나한테는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니깐, 미안하고 말고가 문제가 아니고 왜 갑자기 그만두겠다는 건데?”
“누나는 이걸 왜 계속하려는 거예요?”
그녀의 답은 뭘까.
어찌 보면 나는 허상을 쫓아 달려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그녀가 이 팀에 있다고 해 깊은 고민 없이 함께하기로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원래 그녀에게 이 질문을 먼저 하고 팀에 들어가든 말든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계속하려냐는 건, 왜 이걸 시작했냐는 건가?”
잠시 생각하던 그녀는 이렇게 다시 물었다.
그리고 내 질문은 바로 그거였다.
약간 미숙한 방식으로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네.”
“나는 그냥……. 글쎄. 나도 잘 모르겠지만 오브라이언 바나한의 연설회에 한 번 갔었어. 그리고 거기에서 그의 교육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었고. 질문 시간이 있어 질문을 했는데 그가 관심을 보였고, 이 사람이라면 내가 생각했던 교육의 방향을 실천해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지.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별생각 없이 길게 대답을 하던 그녀의 목소리가 올라갔다.
예전에도 이랬던 것 같다.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어가는 것.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고.
이제는 그 날로부터 꽤 오래 지났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성공 대입학원으로 그녀가 나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접근했던 그날.
‘많은 것이 변했구나.’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아직 내 에너지는 충만하다는 것?
“야!”
“네? 아. 하하. 맞아요. 그게 중요한 거예요.”
“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내 이야기도 길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내가 말을 하려는 것을 알았다.
원래 이렇게 내 생각을 장황하게 표현해 왔었으니.
“한국의 교육 제도에 손을 대 보고 싶어요.”
의외로 짧았지?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다.
“누나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기회가 이쪽에서 먼저 와서 오브라이언의 팀에 들어갔던 거고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뭘 하고 싶은지 물었죠? 교육이에요. 비록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 시장에 있었지만, 그간 제가 교육 자체에 느꼈던 생각들, 그리고 바꾸고 싶은 것들을 바꿔 보고 싶어요. 이제까지 뭘 하고 싶었는지 저 자신도 사실 몰랐어요. 그냥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애들 가르치는 일뿐이니 그 일부터 시작을 했던 것이고요.”
사실 처음부터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지.
신성 학원에 들어간 것도 아마 내 전생의 기억이 없었다면 선택하지 않을 길이었다.
게다가 뭔가를 이루려면 돈도 필요했다.
혼자서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또는 사업적으로 분명히 성공할 아이템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 돈이든 정치권력이든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전생의 학교생활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단지 미래 없는 단기적 일자리에 만족하며 매년을 보내는 것이 힘들었다.
잘못되거나, 부실한 뭔가를 찾아낸다 하더라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기회가 없었다.
“교육 제도에 손을 댄다는 건, 결국 정치를 하겠다는 거야? 아니면 다른?”
한국 사회에서 시민 활동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이게 참 우스운 일이기는 한데, 뭔가를 바꾸려면 그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을 가져야 하지만, 막상 그런 것들을 갖춘다 하더라도 정치적 힘이 없다면 올바른 답을 알고도 적용할 수 없다.
반대로 정치적 힘을 가지는 경우의 다수는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 없이 순전한 정치적 능력만 가진 경우가 많고.
이걸 둘 다 잡을 수 있을까?
강의를 하는 것, 그리고 사업을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그리고 나도 사실 이 새로운 영역에 발을 들이려 하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판단을 할 수 없다.
“정치가 그걸 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라면 그렇게 해 보고 싶어요.”
“어떻게? 뭘 가지고?”
내가 가진 돈을 가지고지.
충분할지, 아니면 이것도 부족할지는 몰랐다.
하지만 돈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기에 도전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 이전에 무엇을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이제까지 벌어 놓은 돈, 거기에 앞으로 새로 시작할 사업이죠.”
“뭐? 사업을 또 새로 한다고?”
“언제 제가 사업을 그리 많이 했다고 그래요, 누나.”
신사업.
거창하게 들리지만 그리 신식은 아니다.
이제까지 수많은 교육계 선배들이 따라온 길.
인생은 도돌이표라고 누군가가 그러지 않았던가.
“사업과 효도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흐흐.”
* * *
“아쉽네요. 나는 우리 만남을 조금 길게 보고 있었는데.”
오브라이언의 표정은 정말 아쉬워 보였다.
내가 팀에서 한 역할은 단지 팀의 일원으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는 것뿐이었는데, 오히려 프린스 리뷰의 로빈이나 김현준 대리보다도 더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달리 생각하면 사실 로빈과는 알게 된 지 오래되지 않았고 단순한 사업 파트너였으니 그랬으리라.
김준현 대리는 한국인이라서 감정 표현이 확실히 서양인보다 작은 듯했고.
“아, 벌써 가십니까? 이런…….”
이게 그의 반응 전부였다.
“죄송하게 됐어요. 그래도 만남은 이걸로 끝은 아닐 겁니다.”
당연히 그래야지.
전생과 같은 방향으로 현생도 진행된다면 이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을 두 번이나 할 사람이다.
알아 두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 나쁠 것은 없다.
아니, 나쁘지 않기만 하겠는가.
허허. 정말 내가 그에게 뭘 특별히 바라거나 하는 건 없지만, 엄청 든든할 것 같다.
“종종 만나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혹여 제가 당선이 된다면 교육 개혁과 관련해서 이것저것 도움을 구할 일이 많이 있을 겁니다.”
제발 그리 됐으면 좋겠네.
“언제라도 불러 주세요. 연락은 여기 미스 김에게 해 주시면 저는 바로 달려올 겁니다. 하하.”
이 자리는 내가 그만두겠다고 하자 오브라이언이 제안한 저녁 식사 자리였다.
우리는 뉴욕 시내에 있는 한 평범한 레스토랑에 들어와 있었고, 오랜만에 스테이크를 썰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브라이언은 이런 곳에서도 한국의 학교와 학원 교육에 대해 나와 김윤지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그간 팀원으로 있을 때는 그가 정해 준 과제만 해결하곤 했기에 따로 이렇게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식당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는데, 아직 오브라이언을 제대로 알아보고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게 이곳 사람들의 성격이리라.
사적인 부분이라고 판단되면 확실히 거리를 두는…….
그래도 이미 곧 대선에 나갈 중요 인물인지라 우리의 테이블 주변은 테이블이 하나씩 비어 있는 상황이었고, 주변으로 두 명의 경호원들이 있었다.
이것도 사실 경호팀에서는 네 명을 배치하겠다고 했으나 오브라이언이 불편하다고 거절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두 분은 어떻게 만나게 된 겁니까?”
생각해 보니 오브라이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나는 단순히 김윤지를 통해 추천받은 인물이었고, 특이하게도 제안을 고려중인 상황에서 미국 내 사교육 업체인 프린스 리뷰에서 다시 한 번 내 이름이 언급된 것이었다.
우연도 이런 우연이 있을까.
아니, 우연은 아닐지도 모른다.
세상은 결국 모든 것이 우연이거나, 또는 모든 것이 필연으로 정해져 있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내가 죽고 다시 나의 과거로 돌아와 전생에서는 상상도 못할 성공을 거두고, 전생에서도 분명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삶에 개입하게 된 것을 보면 말이다.
내가 이런 딴생각을 하는 동안, 김윤지가 그에게 우리의 첫 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확실히 조규만이 죽고 난 뒤 한동안 얼굴에 드리웠던 어둠은 완전히 걷힌 것 같아 보였다.
성공 대입학원의 운영을 계속 했더라면 결국 조규만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
다 내려놓고 떠난 것은 그녀에게 올바른 선택이었다.
“야!”
“어? 네?”
“오브라이언이 물어보잖아.”
“뭘요?”
“내가 대신 사과할게요. 이 친구가 가끔 넋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몇 번 봤잖습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브라이언은 나에게 한국에 가서 앞으로 무엇을 할 거냐고 다시 물었다.
“글쎄요. 뭘 해야 할지는 아직 완전하게 정한 건 아니에요. 사람 일이 어디로 흐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교육 관련한 일은 계속하시겠죠?”
“아마 그렇겠죠? 할 줄 아는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이렇게 대답하고 웃을 뿐이었다.
일단 로드맵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장에 오브라이언과 함께하는 이 일을 그만둔다고 하진 않았겠지.
돈은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막상 돈이 생기니 돈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과연 찾았을까?
무심코 오브라이언의 뒤편에 서 있는 경호원을 바라봤다.
나도 어찌 보면 성공한 이후로 경호원을 데리고 다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있었는데, 결론은 아니었다.
내가 무슨 남에게 해코지를 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원성을 살 만한 일을 많이 한 것도 아니었기에.
물론 그러다가 두 번 씩이나 된통 당한 적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참 힘든 일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자신이 경호하는 대상을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보호해야 한다는 것은 아마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것 이상으로 힘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멀뚱멀뚱 뒤에 서 있는 경호원을 보고 있을 때, 우리 테이블 주변 다른 테이블을 지켜보던 경호원의 눈이 나와 잠깐 마주쳤다.
표정 변화는 없었지만 나는 웃었고, 그는 못 본 척하며 다시 천천히 고개를 우리 반대 방향으로 돌리는 순간이었다.
“조심해!”
우리 테이블 기준으로 방금 내가 보고 있던 경호원의 건너편에 있던 다른 경호원이 소리를 질렀다.
탕! 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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