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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22화 (122/200)

[122] 122화.

만날 때도 거의 따로 떨어져 다닌 터라…….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뭐야? 얼굴 왜 이리 빨개졌어? 나 그리웠지?”

“에? 아녀요. 그나저나 왜요? 아니, 어떻게 지냈어요?”

“그런 이야기는 끝나고 하자. 일단은 너 이거 할 거야 말 거야?”

“모르죠. 그걸 어떻게 갑자기 결정을 내려요. 누나는 바로 결정했어요?”

“응.”

뭐야. 바로 결정을 내렸다고?

그녀가 그리 충동적인 성격은 아니었는데.

“예전에 기억나? 앞으로 뭘 할 거냐고 물어봤던 거?”

기억한다.

전에 그녀는 그런 질문을 나에게 했다.

내가 그 질문에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대답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거나, 지금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대답이었다는 의미이리라.

뭘 하고 싶은가.

현덕아, 너는 앞으로 뭘 해야 하니.

“네.”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질문을 했고, 그에 대한 대답을 했다.

뭐였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쪽 일은 어때? 교육 정책에 대해 파고들어 가는 거지.”

“교육 정책?”

“그렇지. 사교육 전문가 출신 교육 정책 전문가는 없잖아. 미국식 교육 제도를 따라가는 한국이니깐 이쪽에서 이 사람 도와주면서 그런 부분을 준비하는 거지.”

그런데 교육 정책에 대해 배운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이 시대는 나라의 교육을 바꾸겠다느니, 아니면 세계의 교육 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느니 하는 꿈을 꿀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기껏해야 TV에 나오는 정도일 테고, 그건 사실 S 아카데미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큰 꿈을 가지고 있어, 나는.”

“꿈이요?”

“응. 같이 가 주지 않겠어?”

나를 두고 홀로 떠났던 그녀가 이번에는 나에게 함께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제6강 성공의 의미

두 달째.

오브라이언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가 운영하는 교육정책 팀으로 이동하고 흐른 시간이다.

팀의 운영은 상당히 자율적이었다.

그냥 매주 한 번씩 회의가 있고, 회의 때마다 오브라이언이 하나씩 주제를 준다.

예컨대 이번 주 주제는 ‘공교육과 사교육의 균형’이란 것이었다.

그 전에는 ‘한국식 교육 시스템을 어떻게 미국에 적용할 것인가?’라는 주제도 한 번 있었고, ‘독해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영어를 가르쳐야 하나?’라는 주제도 있었다.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우리가 알아서 공약을 만들어 주면 오브라이언이 그걸 공식화시키는 정도려나 싶었는데, 이건 아예 프로젝트였다.

맞다, 회사 같은 곳에서 하는 그런 팀 프로젝트.

“어제는 잘 잔 거야?”

“아뇨. 전혀 못 잔 것 같아요.”

김윤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뉴욕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간 함께했던 김준현 대리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어차피 한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올 때 많은 짐을 가지고 온 건 아니라 특별히 불편한 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있긴 있었다, 불편한 것이.

미국은 나라 자체가 대륙이기에 동부와 서부의 날씨 차이가 크다고 들었는데, 이건 들었던 것보다 훨씬 심했다.

여름에 고온 다습하고 겨울에는 온난 건조한 서부 지역 날씨와 다르게 이쪽은 딱 한국 날씨와 비슷했다.

푹푹 찌는 여름과 눈까지 엄청 쏟아지는 겨울.

“왜 그러지? 한 달쯤 되지 않았어?”

“네, 그 정도 됐죠. 저도 모르겠어요. 그냥 피곤하긴 한데 졸리지가 않아요.”

“자꾸 집을 옮겨 다녀서 그런가?”

처음 한 달은 잠을 푹 잔 것은 아니나 그럭저럭 늦은 밤이 되면 잠에 빠졌다. 하지만 최근 한 달은 거의 잠을 못자고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왜인지는 몰랐다. 불면증에 이유가 딱히 있을까.

스트레스? 스트레스를 받는 성격은 아니다. 낯선 곳이지만 김윤지도 있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한국인들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잠에 들지가 않았다. 침대에 누우면 온갖 잡생각이 떠오른다.

특히나 힘들었던 것은, 전생의 기억이 현생의 과거 기억보다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점이었다.

“병원은?”

“가 봤죠. 돈 엄청 깨지던데요? 그냥 말만 몇 마디 하고, 자기 전에 우유 따듯하게 데워 먹으라고 하는 정도인데. 수면제는 받아 왔는데 듣지를 않아요.”

“수면제도? 그거 먹고도 잠에 안 들어?”

“네.”

전혀 잠을 못 잔다는 것은 굉장히 두려운 일이다.

사람의 뇌는 휴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잠은 사실 뇌의 활동을 중지시키는 건 아니지만, 자는 동안 우리는 낮에 겪은 경험들을 장기 기억 속으로 정리하여 어딘가에 보관해 두는 작용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잠을 못 자면 정리하는 활동이 일어날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뇌에는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정리 안 된 방을 계속 쓰다가는 쓰레기통이 되는 것처럼.

이건 전생에 학교 영어 교과서 지문으로 봤던 내용인데?

요즘은 이런 것까지 기억을 한다. 전부 잠을 못 자고 누워 있으면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이다.

“계속할 수 있겠어? 아무래도 환경 때문인 것 같은데? 오브라이언에게 한 번 휴가를 달라고 해 보는 건 어때?”

“지금도 그리 빡세지는 않아요.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걱정되잖아. 한국이라도 한 번 다녀오는 건? 부모님도 뵙고 오고.”

부모님.

오랫동안 잊고 살아왔던 것 같다.

가끔씩,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로 연락을 드리지만 벌써 여기에 온지도 1년이 다 되어 간다.

자식의 도리란 무엇일까.

성장해서 부모님을 손을 떼고 자신의 발로 세상에서 걷는 것이 자식의 도리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혼자 서더라도 부모님은 항상 내가 가는 곳 주변에 계셨다.

참, 이렇게 뭔가 하나가 던져지면 온갖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원래도 이런 성격이기는 했는데 유독 요즘 더 심해진 것 같…….

“현덕아!”

이것이 그날 마지막으로 들은 목소리였다.

마지막 목소리가 김윤지의 목소리라 다행이었을까?

내가 일어난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 * *

“으응…….”

다시 아무도 없다.

이건 언젠가 겪었던 일인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하얀 천장이 눈에 들어오고, 잠시 뒤 허둥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환자 눈 떴어요!”

“어? 현덕아! 정신 좀 들어?”

기억으로는 방금 그녀가 나를 큰 소리로 불렀던 것 같은데, 그 직후에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혼란스러웠다.

“누나?”

그리고 김윤지가 그에 대답도 하기 전에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한 명이 간호사 둘과 함께 뛰어 들어왔다.

어디선가 봤던 장면과 유사했다.

내가 대학을 다니다 신성 학원에 강사로 일하게 된 뒤, 성공 대입학원 원장 조규만에게 밤중에 습격을 당한 후였나?

조규만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때와 비슷했다.

막 들어온 의사는 나에게 몇 가지를 물어봤다.

내 이름이 뭔지, 그리고 나이와 사는 곳 주소 같은 것들.

주소는 의외로 기억해 내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위치는 알지만 주소는 영어로 되어 있어 생소했다.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무슨 일이었어요? 어떻게 된 거예요?”

“기억 안 나?”

“우리 방금 전에 저 불면증 때문에 누나가 걱정해 주던 것까지요. 그게 방금 전 일인 것 같아요.”

“근데 그게 일주일 전이야.”

“그러니까요. 허, 참.”

“참 느긋하네, 성격. 너 갑자기 쓰러졌다고. 그러고 나서 병원에 실려 왔는데 일주일 동안 깨어나질 못했어. CT, MRI 다 별 문제없다고 했고.”

“잠을 못 자서 몰아서 잔건가?”

“수면제도 좀 받아 왔으니깐 다시 먹어 봐. 걱정되게…….”

그녀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울지 마요. 하하. 이런 것 가지고 그러네.”

“멍청아,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고 놀라서 그런 거야.”

“알겠어요. 오브라이언은요, 참?”

일주일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미 한 번의 미팅을 놓쳤을 것이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걸 걱정하냐?”

“아니, 일이니까요.”

“너도 참, 독종이다. 오브라이언에게는 내가 연락해 뒀어. 나도 미팅 못 갔거든.”

그 말은 곧 그녀가 내 옆을 계속 지켜 주었다는 의미일까?

상상만 한 건데 미소가 지어졌다.

“멍청아!”

그녀는 나에게 한 번 이렇게 쏘아붙이고 앞장서서 병원 밖으로 나갔다.

병원에서는 과로가 원인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는 애매모호한 답을 줬다.

그냥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학교에 있다 보면 아이들이 도대체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근데 그걸 억지로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해가 생기고, 그렇게 불신이 쌓이고 관계가 틀어진다.

있는 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아무튼 외적으로 별 문제는 없다고 하니 일시적인 일이라 생각했다.

그날 밤 자기 위해 침대에 누울 때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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