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119화.
그도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알아채고 말고는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내 계획이라.
이제까지의 성공했던 계획들은 사실 대부분 전생의 기억에 기반한 것들이었다.
나 혼자서, 말 그대로 이 시대를 살아가며 내 판단 하나만으로 뭔가 이룬 것은 없다는 의미.
그랬기에 성공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 있는 S 아카데미를 놔두고 한성 에듀의 사업에 동참을 했던 것일지 모른다.
예전에 나에게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질문을 했던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건 김윤지였다.
오브라이언은 흔쾌히 30분의 시간을 주었다.
사실 무슨 입사 면접 보는 것도 아니니 계획 같은 건 말을 해 줄 필요도 없었지만, 그래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 이 만남이 두 번째 얻은 내 삶에 있어서 큰 변곡점이 될 것이라는 느낌.
느낌만으로 사안을 판단하고 진행하는 것은 위험하겠지만, 사실 그것이 없다면 큰일을 이룰 수는 없다.
이미 나온 수치를 분석하고 앞을 예측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건 달리 말하자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감이란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브라이언,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네요.”
“하하. 아닙니다. 사실 계획을 여쭤본다는 것 자체가 큰 실례일 수도 있죠. 그래도 시간을 달라고 하셔서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혹시라도 그냥 거절하시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했거든요.”
“하나만 먼저 여쭤보죠, 저도.”
질문은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협상에서 우위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적절한,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질문인 경우에 말이다.
“네, 그러시죠.”
“제 계획을 알아서 무엇 하시려는 건지 아직 모르겠습니다.”
“흠…….”
나름 정곡을 찌른, 또는 적절했던 질문이었던 것 같다.
이 자리가 시작된 이후로 시종일관 여유 넘치던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신중해졌다.
“그걸 먼저 말씀드리지 않는다면…….”
“그럼 저도 제 향후 계획, 교육과 관련된 그 계획을 말씀드리는 것에 있어서 망설일 수밖에 없습니다.”
“뭐, 말씀드려도 지금 시점에서는 상관없을 것 같네요. 좋습니다.”
과연 그는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에 한국 교육 제도에 관심이 많았다는 건 가끔씩 나오는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다.
창의성을 키우기에는 좋으나 전체적인 문맹률이 높은 미국 교육 제도, 그리고 창의성에는 최악이지만 전반적인 교육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나라의 교육 제도는 서로를 본받기에 좋은 기준점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식 교육 제도를 도입하려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상황에서 미국은 우리나라 교육 제도를 본받으려고 했기에 뭔가 아이러니한 상황이기는 했지.
“아직 시기상으로는 이르지만 저는 대통령 선거에 나갈 생각입니다.”
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미국이란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다.
재선까지 총 8년의 시간을 백악관에서 보내고, 상당한 인기를 재임 후반까지 끌고 갔던 영웅이었다.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어떤 자리라고 생각하나요?”
다시 나에게 질문인가?
“아, 글쎄요. 모든 국민의 활동에 도움이 되고 책임을 지는 자리?”
“그렇죠. 하지만 그것과 약간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통령이란 자리는 국민들 각자가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일하는 자리라고요.”
국민들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멋진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리고 그 방법이 바로 교육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관련이 있는 국가의 정책에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지금보다는 훨씬 강력한 기초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씀이시고요.”
“네, 그렇죠.”
“그럼 저는 굳이 왜?”
“한국의 교육 제도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미스터 유께 향후 계획을 물어본 것이고요. 한국 교육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하나 운영할 생각입니다.”
‘미국 대통령 후보가 한국 교육 전문가들로 구성된 팀을 조직하고 운영한다.’라.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신성한 충격이었다.
전생의 기억에서도 내가 학교에서 봤던 모습들은 우리가 미국 교육 제도를 선진 문물이라고 하며 따르려고 부단히도 노력하는 모습이었는데.
어쩌면 그때 내가 어딘가에서 읽었던 기사, 즉 오브라이언 대통령이 한국 교육 제도를 칭찬하며 미국도 그런 식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했던 말은 말뿐인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그는 이런 팀을 구성하여 일정 부분 우리나라의 제도를 미국에 도입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고.
“이미 구성은 거의 끝난 상태입니다. 알아보다 보니 특이한 사실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거의 이원화되어 운영되고 있더군요. 공교육과 사교육으로요.”
이원화까지는 아니지.
경쟁이지만 개인적 의견으로는 상호 도움이 되는 경쟁 관계라고 본다.
물론 사교육은 과거 모든 정권에서 타도의 대상이 되어왔 기는 하지만.
“공교육 전문가들 셋, 그리고 사교육 전문가들 셋, 추가로 그쪽 분야를 조금 접해 본 친구 한 명, 이렇게 총 일곱 명으로 구성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구성원으로 미스터 유가 참가해 주시면 어떨까 싶어 계획을 여쭤본 거죠.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
“네? 아, 네.”
그가 이렇게 자세한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은 내가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내 계획을 말하기 전에 그걸 알고 싶다고 했는데, 그는 모든 것을 말해 줬다.
이젠 내 차례였다.
젠장, 이건 입사 면접이 맞았다.
내 계획이라.
교육에 대한 나의 미래의 계획이라.
“일단 지금 당장은 한성 에듀 소속으로 미국에서 교육 비영리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이건 오브라이언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
“그것의 일환으로 한성 그룹에서 나온 자본을 바탕으로 제작한 강의들을 인터넷 사이트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고요.”
이것 또한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근에는 여기 있는 로빈과 함께 프린스 리뷰와 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브라이언이 아는 것이다.
“혹시 푸글이라는 회사를 아시나요?”
“푸글이요?”
“네. 검색 엔진으로 유명한…….”
“알다마다요. 근데 거기는 왜?”
“푸글에서 모바일 운영체제를 곧 선보일 겁니다. 그리고 아마 초기 모델에 케플턴의 강의들이 포함될 겁니다.”
로빈의 표정을 살짝 살폈다.
역시나 썩 좋지 못한 표정이었다.
케플턴은 그들의 최대 라이벌이었다.
“그리고 한성 에듀는 프린스 리뷰와의 협의를 통해 제플과 접촉할 생각입니다.”
“제플? 그런 이야기는…….”
“미안해요, 로빈. 이번 만남에서 사실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이 자리를 먼저 잡으셔서 미리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저의 계획이 그렇다는 것이니 기분 나빠하진 않으시면 좋겠어요.”
제플과의 협업 이야기는 아직 로빈에게 하지 않은 상황.
그도 그럴 것이 그들과 제플의 관계를 나는 모르기 때문이었다.
한성 에듀가 어느 정도 프린스 리뷰에서 정착을 한 뒤, 우리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우리도 제플과 직접 협상을 그들이 도와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 지금 이 앞에 있는 오브라이언과의 친분이 쌓인다면, 그걸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브라이언의 제안은 분명 구미가 당겼다.
내가 돈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업가였다면 어떤 사업에 도움이 될지를 판단하겠지만, 이때 이미 나는 반쯤 사업 자체보다도 교육과 관련한 다른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말씀대로라면 저도 그 팀에 포함을 시키길 원하신다는 건가요?”
“일단은 후보 순위에 두고 있습니다. 하하. 다른 팀원들과의 만남도 미리 해야 해서요. 그리고 아직 저도 조금 더 알아봐야 할 것 같고요.”
“시간은 충분히 가지셔도 될 것 같네요. 특별히 바쁜 사람은 아니니까요.”
“아뇨. 많은 시간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인상은 참 좋았어요. 그리고 혹시 미국 교육 제도에 대해 잘 아십니까? 한국의 교육이 지닌 강점을 우리 미국 교육에 도입시키는 부분을 구상해야 해서요.”
한국 교육이 지닌 강점이라.
미국에 도입할 만한 그런 부분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재밌네요. 한국 교육 제도를 한국에서는 그렇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오히려 미국에서는 우리를 배우고 싶다니…….”
“적어도 한국의 학생들은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지 않습니까.”
맞는 말.
누누이 생각하는 점이지만 양국의 교육은 정말 달랐다.
서로 배우고 개선할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건 또 하나의 기회가 될 것이고.
“미국 교육 시스템은 아직 잘 모릅니다. 학교 수업을 몇 번 참관하면서 느낀 바는 있지만 이걸로 충분할지도 모르고요. 다만 지금 이 팀을 꾸려서 얻기를 원하시는 것이 문맹률을 줄이기 위함이라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디에서 나오는 자신감인가.
애들 앉혀 놓고 수업하는 것 외에는 교육 제도 전반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하다.
하지만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것 있지 않은가?
TV를 보면서 정치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해도 저것보단 잘하겠다.’ 하는 그런 자신감.
오브라이언은 내 말을 끊지 않고 기다렸다.
“홈스쿨링 시스템이 굉장히 잘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 수업도 나쁘지 않았고요. 다만 자는 학생이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문맹률이 낮다는 사실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건 기회다’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 사람이 내 전생처럼 정말 미국의 대통령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건 내가 학원 강의, 사교육 사업에서 교육 정책으로 영역을 넓일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말입니다. 홈스쿨링의 졸업 인증 시스템은 참 잘되어 있는데 홈스쿨링 프로그램의 구성 자체가 조금 잘못됐다고 생각합니다.”
“홈스쿨링, 그 부분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요. 하하.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요?”
홈스쿨링을 초중고 각급의 졸업을 인증해 주는 체제 자체는 우리나라도 본받을 만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운영하는 각 회사마다 프로그램의 구성에 차이가 있고, 그마저도 대부분 학교 수업 시스템보다 훨씬 양적으로 부족했다.
교육도 어느 정도 각 개인의 자율에 맡기는 미국의 특성상 그리 됐을지라도, 통일되지 않은 교육 내용은 기본 교육에 있어서 큰 단점이다.
“회사마다 너무 프로그램 차이가 큽니다. 어떤 곳은 학교와 비슷한 커리큘럼으로 운영하는 곳이 있고, 다른 어떤 곳은 너무 과목 개수가 적어 학생들이 학교와 다르게 선택권이 없이 운영됩니다. 어쨌든 둘 다 이수를 마치면 졸업장이 나오는 것은 동일하고요. 조금 더 홈스쿨링 이수제를 통일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미국 와서 느낀 부분은 학생들이 굉장히 다양한 수업들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사실 그렇게 하다 보니 각 과목별로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놓치고 졸업하는 경우가 생길 것 같았습니다.”
“자유와 제한이라……. 자유를 추구한 나머지 통일되지 않는 교육을 하고 있단 말씀이시군요.”
내 말이 그 말인가?
갑작스럽게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려 하다 보니 머리가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로 입 밖으로 생각이 나와 버렸다.
미국 공교육의 수업 선택 시스템은 우리나라도 분명 본받을 점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기본적인 필수교과에 소홀히 하는 결과 또한 발생한다.
재미있는 과목에 집중하고, 재미는 없지만 꼭 필요한 과목에는 상대적으로 시간 투자를 적게 하는 것.
이것이 내가 판단했던 미국 교육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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