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116화.
삐익!
드디어 끝났다. 고통스러운 신체 운동의 시간이.
원래 두뇌 활동이 에너지 소모는 훨씬 크다는데, 그건 운동을 평소에 하는 사람들 이야기인 듯싶었다.
두뇌 활동이든 신체 활동이든, 둘 다 힘들다.
“좋지 않아요?”
“네? 뭐가요?”
“그래도 여기에서는 매일 이렇게 운동을 한 시간씩은 하니깐요.”
사실 몸은 아프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았다.
내가 40kg짜리 바벨을 들겠다고 낑낑거리고 있을 때, 여기 고등학생들은 70~80kg는 거뜬히 들어 올린다.
단순히 신체적 차이가 문제가 아닌 것이, 의외로 마른 친구들도 나보다 무거운 것들을 들어 올린다는 사실.
이건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꾸준히 운동을 해 온 결과 때문이리라.
우리나라 학교생활에 비하면 지식을 집어넣는 시간이 훨씬 적고, 다양한 활동으로 그 시간들이 분배된다.
과연 우리나라에서도 적용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나도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 답이 쉽게 나올 것이었다면 벌써 다른 전문가들이 시행했겠지.
“좋긴 한 것 같아요. 몸도 조금 풀리고요. 오늘은 아파 죽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요. 애들 너무 하루 종일 앉아만 있잖아요.”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드러누워 자죠. 하하.”
이게 될 일이든 아니든 간에 김준현 대리가 말한 내용은 나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문제다.
이것 말고도 어제는 직업 교육의 일환으로 자동차 정비 수업을 들었었다.
수업이 시작되기에 앞서 몇몇 학생들이 자신의 차를 정비 수업용 차고 앞으로 끌고 왔고, 차고 문이 열리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차를 리프트 위로 가져다 놓았다.
리프트가 올라가면서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자체의 아랫부분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생각해 보니깐 어제 정비 수업도 재밌었네요. 조금, 신기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기술 시간에 무슨 크랭크가 어쩌고 하는 걸 그냥 글과 그림으로만 보고 넘어가니 기억도 잘 나지 않고.”
자동차 타이어를 뺐다 꼈다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마는, 미국이란 나라는 땅이 워낙 넓어 갑작스러운 타이어 펑크를 스스로 처리할 능력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처럼 전화 한 통으로 레커차를 불러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것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겠죠. 근데 우리는 확실히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져 있는 것 같긴 하네요.”
우리는 책으로 얻는 지식에 너무 치우쳐져 있고, 미국은…….
뭐, 다른 문제가 있겠지.
아직까지는 그냥 좋아 보인다.
물론 몸이 힘든 것과는 별개의 생각이다.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건 엄연히 다르다.
누구나 자신의 학창시절을 그리워하나, 만약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의외로 다시 돌아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적을 걸?
군대를 그리워하나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로 돌아가지 않을 것처럼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진짜 군대 어쩌지…….
“어서 이동하시죠. 다음 시간은 수학입니다.”
“수학……. 네.”
김준현 대리는 아까 P.E. 수업에 올 때 오늘 시간표를 찬찬히 다 읽어보는 것 같았다.
원래 나도 해야 할 일이었지만 귀찮아서 패스.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체육관을 나와 교정 중앙에 위치한 광장을 지나 수학 수업을 들으러 걸어갔다.
이 학교는 앞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문학 관련 건물, 과학 관련 건물, 수학 관련 건물, 예체능 관련 건물 식으로 여러 건물이 있었다.
학생들은 6분이라는 짧은 쉬는 시간 동안 다음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로 각자 이동해야 했다.
우리는 어쨌든 손님이기에 늦게 들어가면 민망해질까 봐 발걸음을 서둘렀다.
* * *
“도대체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매번 나의 유별난 결정에도 ‘허허’ 웃던 오광필 할아버지까지 지금 선언에는 얼굴을 굳혔다.
“그러게요. 저도 조금 당황스러운 걸요?”
이미도 원장까지 나섰다.
평소의 순서를 따른다면 주현필이 가장 먼저 반응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는 오히려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번 결정은 준서나 지원재 실장과도 사전에 논의했던 내용이 아니었다.
그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놀란 눈치였다.
모두들 ‘도대체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 하는 표정들.
갑작스러운 결정은 아니었다.
거의 몇 달간의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내가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위해 다시 살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민들.
이런 고민들을 내가 처음 한 건 아니었지.
전생의 힘든 기억들, 꿈이 사라진 생활, 그리고 의미를 찾지 못하고 보내온 나날들까지, 그러한 것들이 지금 내가 이만큼 성공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뭔가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 속 빈 공간은 아무리 돈이 쌓이고, 사업적 명성이 오른다고 하더라도 채워지지 않았다.
“갑자기 내린 결정은 아니에요. 오랜 시간 동안…….”
“그러니깐 이유를 말해 달라고. 우리가 그걸 알 정도의 관계는 되잖아?”
잠자코 있던 주현필까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 결정에 대한 이유라.
그의 말이 옳았다.
지금 이 자리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알 자격이 있었다.
내가 이번 생애에서 이룬 대부분의 일들에 이들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 나는 어디쯤 위치해 있었을까.
“윤지 누나를 미국에서 만났어요.”
“뭐? 김윤지 원장?”
오광필 할아버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나와 김윤지가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헤어진 지 고작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조금은 빠르다고 생각이 들겠지.
사실 나도 그녀를 다시 이렇게 빨리 만날 줄은 몰랐다.
어디로 떠난다는 말도 없이 홀연히 사라진 그녀.
나 또한 우리나라에서 겪은 많은 일들을 정리하기 위해, 그리고 새로운 경험을 위해 떠난 미국에서 그녀를 만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 사업 그만하겠다는 결정은 김윤지 원장과의 만남 때문인가요?”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아니, 거의 그것 때문이다.
만약 그녀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에게 새로운 기회, 새로운 꿈을 가지도록 할 계기가 없었을 테니.
“영향이 어느 정도는 있겠죠. 하하. 왜 이리 분위기가 무거워졌을까요?”
능청스럽게 무거워진 분위기를 조금 밝게 만들어 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내 말만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후…….”
왜 한숨이 나왔을까.
어차피 내 결정도 이들이 가고 있는 길과 아예 관계없는 일도 아닌데.
“돈은 충분히 벌어 놓은 것 같으니, 이젠 조금 의미 있는 일을 해 보고 싶어서요.”
* * *
데이비스 고등학교에서의 학생 체험이 끝나고, 나와 김준현 대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학교생활,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을 겪은 뒤 다시 체험한 고등학생의 생활까지, 이것들은 거의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도대체 왜 이 시점에 내가 학교로 다시 돌아갔을까.
김준현 대리에게 처음 이 생각을 제안할 때만 하더라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바람 쐬러 밖에 나왔다가 정처 없이 걷다 보면 어느새 익숙한 장소에 도달해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은.
학교, 그리고 학생들, 교사들이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세 가지의 공통점은 바로 ‘교육’이란 것.
‘교육’이라…….
“프린스 리뷰 측에서 우리 강의들 올려놓기 시작했습니다. 말씀하셨던 대로 SAT 대비 강의 위주로 한정해서 다섯 개 들어가 있는 것 확인했습니다.”
“고생하셨네요, 대리님. 이제 다시 기다리면 될 시점인가요?”
“그렇죠. 일단 론칭하고 한 달 정도는 시장 반응을 봐야 하니까요.”
미국에서의 일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푸글과의 협상이 무산될 때만 하더라도 어떡하나 싶었는데, 땅이 얼마나 단단하든 뚫고 올라올 구멍은 있나 싶었다.
푸글이 인수한 곳이 케플턴.
그리고 미국 온라인 사교육 시장은 아직 어느 누가 압도할 정도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경쟁이 치열하기에 케플턴의 피인수는 경쟁 업체였던 프린스 리뷰에게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그걸 노리고 그쪽으로 접근했던 것이었다.
한성 에듀는 이제 걸음마를 막 뗀 어린 아이 수준의 업체였다.
게다가 영리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푸글이나 제플 같은 플랫폼 업체와의 협력을 통해 인지도를 올릴 생각이었지만, 이건 사실 무모한 도전이었다.
겪고 나서 돌이켜 봐야 알 수 있는 일이지만, 그들이 듣도 보도 못 한 교육 업체의 강의들을 보여 주는 어플리케이션을 그들의 운영체제에 넣어 주리라고 기대한 내 잘못이었지.
그래도 위태위태한 시점에 떠오른 제플의 제이튠즈 U.
케플턴과 프린스 리뷰의 교재들과 강의들이 푸글과 제플 양 사로 들어간다.
일단 케플턴이 아예 푸글에 인수된 상태이니 프린스 리뷰와 함께 간다면 제플과의 협상 자리는 저절로 만들어질 것이다.
물론 그 전에 프린스 리뷰에서 한성 에듀를 유능한 파트너로 인정해 줄 만한 결과가 있어야 하겠지.
“강의 추가 문제는 잘 되고 있나요?”
이건 김준현 대리가 일임 받아 하고 있는 일이었다.
이쪽에서 통할 만한 강사들이 누구인지, 강의를 어떤 방식으로 제작해서 유통해야 하는지는 나보다 그가 전문가였다.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 번은 캘리포니아 이곳저곳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네. 일단 올라가 있는 건 계속 조회수 변동 지켜보는 중이고요, 추가될 강의들은 거의가 프린스 리뷰 쪽 강의들이라 일정 체크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에서의 나날도 하루하루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기다리던 그 전화가 오기 전까지는.
아니, 그 사람의 전화를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내용은 전혀 예상하진 못한 일이었다.
* * *
“여보세요?”
프린스 리뷰의 로빈이었다.
-오랜만입니다, 미스터 유. 잘 지냈나요?
그의 목소리는 기운찼다.
우리나라에서 일을 할 때는 이렇게 활기찬 목소리를 들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정말 사회가 빡빡하니 사람들 목소리나 말투까지도 다들 힘이 없었다.
“네, 안녕하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프린스 리뷰에 올라와 있는 한성 에듀 강의들 중간 성과와 차후 계획에 대해 논의를 좀 하고 싶어서요. 저희 쪽으로 좀 와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약속 날짜는 언제가 좋을까요?”
프린스 리뷰 본사 건물도 사실 큰 편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맥스스쿨 본원 건물의 절반도 되지 않는 정도?
사실 온라인 교육만 보자면 S 아카데미도 강의실 몇 개만 가지고 운영했던 적도 있었기에 굳이 넓은 공간이 필요하진 않다.
하지만 프린스 리뷰는 온라인 강의 이상으로 교재 제작에 강한 회사.
출판업까지 같이 할 규모를 갖추고 있다.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다는 그의 말에 나는 이번에는 혼자서 움직여 보기로 했다.
미국에 온 뒤로 거의 김준현 대리가 내 비서 역할까지 겸해 주었는데, 이건 상당히 도움은 됐지만 불편하기도 했다.
나보다 다섯 살 이상 많은 사람이 딱 붙어서 내 결정대로 일을 해 주는 것도 그렇고.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겪은 일이었지만, 지원재 실장과 김준현 대리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아무튼, 비행기를 타고 프린스 리뷰 본사로 날아갔다.
뉴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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