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115화.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피곤합니다!”
“뭘 피곤해요! 일어나세요! 등교 시간입니다!”
더 잘려는 아들과 깨우려는 엄마의 대화 같지?
퀴즈 하나 나가겠다.
‘위의 대화에서 누가 유현덕인가?’
“이사님! 이사님께서 이렇게 하자고 하셨잖아요. 얼른 안 일어나시면 그냥 이거 취소해 버립니다?”
고등학생의 생활로 돌아가는 건 상상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우리나라 고등학교보다는 훨씬 여유 있는 스케줄이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침 이른 등교는 힘들었다.
출근과 뭐가 다르랴 생각하고 덤빈 것이 화근이었다.
분명 달랐다.
“알겠어요. 아, 진짜 피곤하네.”
“그러니깐 제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도 피곤해요.”
괜히 김준현 대리만 개고생 시키나 싶었다.
나야 내가 선택한 거니 감수한다고 쳐도, 그는 순전히 나 때문에 등교를 하게 된 것이었으니 말이다.
미국 고등학교의 등교 시간은 학교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우리가 일주일간만 학생의 신분으로 참관을 하겠다고 한 곳은 바로 일전에 들렀던 데이비스 고등학교였다.
왜 굳이 이곳을 택했냐면, 여기가 가장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 그리고 일주일도 되지 않는 기간을 있던 동네인데도 왠지 안전하고 조용해 정이 들기도 했던 것 같다.
물론 이곳에 맥스는 더 이상 없었다.
샌프란시스코 근방에 위치한 한성 에듀 본사에 있겠지.
참관 허가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학교는 일단 거부를 했고, 한국에 연락하여 지원재를 통해 정부 관계자의 협조를 얻어 성사시켰다.
단 일주일의 미국 고등학교 생활.
“진짜 우리랑 학교 다니는 거예요?”
“와, 도대체 왜요?”
“그러게. 고등학교 별로 좋은 곳 아닐 것 같은데요.”
우리나라야 동방예의지국이니 뭐니 해서 나이에 따라 불편함을 가지기 쉬운 환경이나, 이곳은 그렇지 않았다.
역시나 첫 수업 시간에 만났던 학생들은 학교에 사흘 연속으로 우리가 보이자 이런저런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의아한 눈빛 뿐이었고.
“생각보다 좋지는 않네. 하하.”
이렇게 대답하는 나를 옆에서 째려보는 김준현.
눈이 마주치자 그런 적 없다는 듯 아무것도 없는 학교 벽을 쳐다본다.
“나중에 나이가 들면 여기도 그리워져, 그런데.”
“코리언들은 나이를 많이 따지죠? 왠지 모르겠어요.”
“그냥 문화가 다른 거야. 어릴 때 보는 세상이랑 나이가 들고 보는 세상이랑 다르거든. 그러면 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즐기던 시기가 그리워지기도 하고 그런 거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무슨 말인지는 나이가 들고 나면 깨닫게 될 것이다.
이들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 봤자 겪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 내가 전생에서는 학교에서, 그리고 얼마 전까지는 학원에서 수많은 학생들을 만나며 해 주었던 이야기들처럼.
김준현 대리가 다시 나를 째려봤다.
‘나이가 들면 여기도 그리워진다고? 얼마나 나이가 많다고 저런 소리를 하나.’
이런 생각이겠지.
그의 입장에서는 나도 아직 새파란 어린애일 것이다.
원래 나이 차이는 아주 많이 나지 않으면 적게 날수록 더 어리게 느껴진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다음 시간은 뭐지?”
“그걸 왜 우리한테 물어봐요. 호호. 시간표 줘 봐요.”
주섬주섬 가방 안에서 책에 눌려 구겨진 시간표를 꺼내 건네주었다.
에이미라는 조그맣고 귀여운 여자 아이는 그것을 잠시 들여다보더니 다시 돌려주며, “다음 시간은 저랑 다른 시간이에요. 여기 보면 P.E.라고 되어 있네요. 저쪽에 있는 체육관 입구로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기다리시면 될 거에요.”라고 말했다.
“고마워. 하하. 체육인가?”
“Physical Education(체육), 맞아요.”
“자, 그럼 나중에 또 보자고. 가시죠, 대리님.”
사흘 만에 듣는 첫 체육 수업.
학교 본부에서 안내받은 내용에는 우리 시간표는 학생들과는 약간 다르다고 했다.
학생들은 일주일 동안 매일 거의 동일한 수업들을 듣는다.
예를 들면, 월요일 수업이 체육, 생물, 수학, 영어, 역사, 직업 순이라면, 화요일도 동일하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다양한 수업들을 보고 싶었기에 매일 다른 시간표를 사용했다.
아마 이제 보게 될 P.E. 수업의 학생들은 매일 이 시간에 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시간표 확인하고 선생님 확인하느라 매일 정신이 없는데.
물론 개학 후 며칠만 지나면 다 외워지지만 말이다.
“자, 다들 모이세요.”
사실 다른 인종의 나이를 판단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끔씩 교실에 앉아 있으면 마치 교사가 앉아 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학생들도 있었고, 반면에 그런 학생들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교사도 있었다.
다행히도 체육 수업의 선생님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백인 남성이었다.
“오늘은 새로운 친구들이 왔네. 운동 시작하면 이것저것 많이들 도와줘요. 한국에서 온 미스터 유와 미스터 김입니다.”
매 수업 시간마다 이런 어색한 소개를 받았기에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의외로 절대로 익숙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모두의 이목이 우리에게 집중됐고, 나와 김준현 대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우리가 듣게 된 수업은 체육 수업 중에서도 웨이트 트레이닝이었다.
고등학생이 무슨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까 싶었지만,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학생들은 마치 자신이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알고 있다는 듯 각 기구로 이동해 운동하기 시작했다.
“우린 뭐 하고 있으면 될까요?”
“저기…….”
김준현 대리가 뻘쭘하게 나에게 물었을 때, 한 학생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네?”
“아, 괜찮으시면 저희와 같이 하세요. 많이 힘든 코스는 아니니까요.”
삐쩍 마른 체형의 동양인 남자 아이였다. 그 뒤로 두 명의 히스패닉(남미) 계통의 남자 아이들도 있었다.
“한국계예요?”
“네. 한국말은 잘 못하지만요.”
“아, 그래서 우릴. 고마워요. 하하.”
그를 따라 이동한 곳에는 바벨이 있었다.
그리고 바벨 양 끝에는 딱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크기의 쇳덩이가 달려 있었다.
이걸 한다고?
히스패닉 계통의 한 남학생이 쇳덩이의 무게를 슬쩍 확인하더니 기구 위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나머지 한 학생이 그의 머리 위쪽에 서서 자리를 잡고는 바벨에 양손을 갖다 댔다.
“이건 80kg 정도 되요.”
“이걸 할 수 있는 거예요?”
“네. 이 정도는 해요. 더 늘리지는 못하지만 세 세트 정도 할 거예요.”
둘 모두 바벨에 손을 대고는 아래 누운 학생이 힘을 줘 바벨을 들어 올릴 때, 서 있는 학생이 살짝 힘을 보탰다.
그리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 열하나, 열둘.”
“아오, 무겁네.”
“어제보다 5kg 늘렸잖아.”
물론 이들의 대화에는 ‘kg’라는 단위는 나오지 않았다.
이건 내 임의대로 ‘파운드’를 ‘kg’로 바꿔서 들은 것 뿐.
전 세계적으로 ‘그램’과 ‘미터’ 단위는 거의 공용이다시피 한데, 미국만 유독 ‘파운드’와 ‘인치’ 단위를 사용했다.
그리고 이는 이쪽에서 생활할 때 상당한 혼란은 야기했고.
가게에 가면 고기를 사도 우리는 “600g 주세요.” 하지만 이들은 “무슨 무슨 파운드”로 써진 걸 보고 산다.
장을 볼 때마다 머리로는 단위 환산을 하며 살아야 하는 이 불편함.
그렇게 열두 번 연거푸 바벨을 들어 올리고 나서 둘이 위치를 바꿨다.
그리고 동일한 무게를 이번에는 서 있던 학생이 들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열하나……. 으……. 열둘…….”
“무리하지 마.”
“무리는 무슨.”
“관객이 있으니 무리해서 힘쓰다가는 내일 가방도 못 들어.”
지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리고 서로의 위치를 바꿔 가며 총 다섯 회의 바벨 들기를 끝낸 뒤, 우리를 여기로 데려온 한국인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누우시면 돼요. 제가 잡아 드릴게요.”
“저요? 제가 먼저?”
“네. 먼저 하셔야 적당한 무게를 찾기 쉬워요. 이따가 제가 하면 힘이 빠져서…….”
자리를 잡고 대충 동일한 무게를 들어 올리려 했는데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할 수 없이 절반 무게까지 낮추고서야 바벨이 들렸다.
어께가 빠질 뻔했다.
“으허헉……. 윽…….”
“숫자를 세셔요. 드는 것만…….”
“일곱……. 아…….”
“크큭.”
40kg 무게도 간신히 들면서 팔이 덜덜 떨리는 모습이다 보니 주변에서 나를 보던 모두가 웃고 있었다.
젠장.
운동은 했으나 웨이트 트레이닝은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다.
주현필이 호신술을 가르쳐 줄 때도 힘 자체를 늘리는 건 할 이유가 없었고.
게다가 오랜 학원 생활과 사업가로서 잠도 못 자며 몸을 혹사시켜 온 것이 결국 체력 저하로 이어진 것 같았다.
버티려고 했으나 버티질 못하는 몸.
그나저나 김준현 대리가 웃다니.
하긴 내가 봐도 바벨이 너무 덜덜거리며 흔들리기는 했다.
팔이 무슨 바람에 흔들리는 사시나무처럼…….
“아오. 이거 무겁네요. 대리님 차례입니다.”
“네? 저는 안 합니다.”
“안 하는 것 없어요. 해야 합니다. 그죠?”
애에게 동의를 구했다.
이럴 때는 아이들의 부추김이 필요하다.
나는 하고 그는 안 할 수 없도록.
마지못해 김준현 대리가 자리에 누워 바벨의 무게를 맞추고 들기를 시작하니, 그제야 그가 왜 내 모습을 보며 웃었는지 이해가 됐다.
사실 그는 많이 참다가 터진 거였다.
터질 것 같은 얼굴이며,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이며, 거기에 후들거리는 팔까지, 웃겼다.
“여……. 열!”
그래도 그는 나보다는 많이 했다.
그가 끝을 내면서 자리에 일어나 앉자 다들 박수를 쳤다.
그래 봐야 셋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왜 내가 끝냈을 땐 박수 같은 건 없더니만 그가 끝내니 박수까지 쳤을까.
치사하네.
그와 내가 순서를 바꿨다면…….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수업을 들으니 마치 내가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전생에서 30 중반까지, 그리고 현생에서 다시 10년을 살았으니 거의 50이 되어 가는 세월을 보냈는데도 사람은 공간과 환경에 따라 참으로 달라지는 것 같다.
“축하드립니다. 저 할 때는 비웃음을 당했는데 박수까지 받으시고요.”
약간 입을 삐죽대며 땀을 닦고 쉬는 그에게 말했다.
“어? 질투하시는 겁니까, 이사님? 하하.”
“질투라니요!”
웃음이 나왔다.
다시 돌아간다면, 어? 그런데 사실 고등학교는 두 번 다녔지 않은가.
이번 생애에서 고등학교 생활은 괜한 잡생각으로 가득 차 있던 것이었다.
죽음이란 걸 겪은 직후였기 때문일까.
운동.
우리나라 초중고 12년 동안 체육 시간은 쉬는 시간일 뿐이었다.
필수 이수 시간이 있지만 일주일에 두 시간의 운동은 충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공부란 책상 앞에 앉아서만 하는 것이 아닐 텐데.
우리는 우리 몸을 머리에 비해 너무 소홀이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 허구한 날 병원 가는 학생만 늘어나는 것이고.
“이제 다음 기구로 가시죠.”
“네? 또 있다고요?”
“이런 것 세 개 더 하셔야 해요.”
아……. 내일 아침이 두려워졌다.
잠이 문제가 아니라, 뻐근한 몸을 끌고 다시 학교에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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