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114화.
제4강 고등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네? 저희가 조사한 바로는…….”
“커미션은 어떤 커미션을 말씀하시는 거죠? 저희가 프린스 리뷰와 협력하게 되면 받는 커미션인가요?”
“저……. 이사님, 조금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
김준현 대리가 당황해하며 영어로 더듬더듬 말했다.
나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는 아니고 아마 로빈도 똑똑히 들었을 것이다.
이건 사전에 그와 입을 맞춰 놓은 행동이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굳이 영어로 나에게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잖은가.
“괜찮겠어요, 대표님? 너무 센 계획인데…….”
내가 그에게 이렇게 하자고 말했을 때 그의 반응이 이랬다.
푸글과도 엎어진 마당에 프린스 리뷰와의 협상까지 무산되면 일이 꼬인다.
아무리 쥬튜브 조회 수가 어느 정도 나오고, 한성 그룹 기획실에서 조사한 미국 내 그룹 인지도가 올랐다고 하더라도, 기업 간 협상이 시작된 이후 깨지면 아예 하지 않느니만 못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나도 그가 걱정하는 바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협상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이런 계획을 세웠다고 설득했다.
그는 이해가 되진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가 확고하게 말하기에 그냥 체념한 것 같았다.
이번에는 목이 타는 척을 하며 물 컵을 들었다.
실제로 목이 타기는 했다. 전형적인 블러핑(허풍)을 시전했으니…….
“미안합니다. 커미션 이야기에 제가 조금 흥분을 한 것 같습니다.”
프린스 리뷰에서 강의당 일정 금액의 수수료를 준다고 한다면 그것이 뭐가 나쁘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 돈은 없다.
한성 에듀의 미국 진출은 교육 서비스로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다.
수익이 생기면 애초의 그룹 홍보 계획에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괜찮습니다. 하하. 오히려 제가 실례를 범한 것 같군요. 미안합니다.”
오, 이 사람 생각보다 내공이 센데?
물론 내가 어찌 감히 50이 넘은 경험이 풍부한 로빈의 내공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안색 하나 안 변하고 능청스럽게 분위기를 주도하는 모습은 솔직히 놀라웠다.
이건 마치……. 맞다! 오광필 할아버지 같은 느낌.
“저희 한성 에듀는 수익 사업이 아닙니다. 완전히 공익 목적만 있다고 하긴 어렵겠으나, 수입 구조가 없고 앞으로 갖출 생각도 아니기에 커미션을 주고받는 건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사실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커미션은 저희가 강의 제작비에 충당하시라고 지원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조건은 아니었구나.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커미션을 받는 순간 우리의 사업은 우리 것만이 아니게 된다.
투자를 받는 경우와 마찬가지.
투자를 받으면 투자자의 의도에 따라 움직여야 할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럼 굳이 프린스 리뷰라는 거대 업체와 협약을 맺으려는 이유가 뭐냐고?
일단은 프린스 리뷰가 가진 미국 내 인지도를 이용하여 광고 효과를 노리는 것이 첫 번째 이유이다.
현재의 한성 에듀 강의가 쥬튜브에서 어느 정도의 조회 수를 올리고 있지만, 강의를 보는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한성’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영향력은 거의 없다.
즉, 언제라도 후발 주자가 좋은 강의로 경쟁을 건다면 뒤집힐 수 있다는 말이지.
하지만 프린스 리뷰의 타이틀을 붙이면 상황은 달라진다.
현재 프린스 리뷰는 자체적으로 강의 동영상을 업로드 하는 사이트를 가지고 있고, 그 사이트를 사용하는 회원 수는 상당하다.
일단 우리나라의 맥스스쿨이나 S 아카데미처럼 회원 가입과 대금 결제를 통해 운영되는 사이트기에 한 번 등록을 하면 상당 시간 머물며 시청하게 된다는 의미다.
한성 에듀 강의들은 쥬튜브를 통해 무료로 시청할 수 있고, 프린스 리뷰 사이트에 일부 강의들을 업로드 함으로 회원들을 일부 한성 에듀 무료 강의로 끌어올 수 있으리라는 판단.
그런데 그렇게 되면 프린스 리뷰 입장에서는 얻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제안은 감사드립니다만, 저희는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기에 조금 다른 방식을 다시 제안 드리고 싶습니다.”
돈을 원하지 않는다?
이건 사업가로써 믿기 어려운 말일 것이다.
로빈도 그리 생각하는지 약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사람, 사업가가 아니었나? 돈이 목적이 아니라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인생에는 특정 시점에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물론 나는 아직 30대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
하지만 이른 나이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물질적으로는…….
돈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성 에듀의 공익적 사업에 완전하게 동의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뭐냐고?
글쎄…….
“홍보 효과만 서로 가져가는 겁니다. 저희 회사를 알아보셨다면 저희가 현재 쥬튜브에 무료로 공개해 둔 강의들도 보셨겠군요?”
“네, 그렇죠.”
“그럼 어떻게 그런 강의들이 무료로 공개되고 있는지 생각해 본 적은 있으십니까?”
강의를 무료로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기 자신의 PR(홍보)을 위해 무료 강의를 올리는 교사들이나 학원 강사들이 있다.
전생에도 있었고, 사실 현생에서는 내가 상당히 초반에 그걸 통해 인지도를 쌓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런 목적으로 강의를 올리는 건 대개 자신이 할 수 있는 강의의 일부분.
한성 에듀 강의들처럼 한 학기, 한 교과서 내용 전체를 만들어 공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강의를 만드는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할 테니깐.
한성 에듀는 무료로 고등학교 과정, 그리고 일부 중학교 과정의 학습 내용을 전부 공유한 상태였다.
이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돈이 지출됐고.
“글쎄요. 하하. 확실히 강의 내용이 무료 맛보기 강좌들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더군요. 몇몇 강사들은 우리도 강의 촬영을 의뢰할 만큼 인지도 있는 학자들이었고요. 참, 그럼 혹시…….”
“미국에서는 그냥 여러 해외 기업들 중 하나이겠으나, 한성 그룹은 한국에서 상당히 큰 대기업입니다. 강의 제작 및 운영비용은 전액 한성 그룹에서 나오고요. 그 대가로 한성 에듀는 모든 강의에 한성 그룹의 제품들을 사용하고, 영상의 앞뒤로 한성 그룹 계열사들의 로고를 약 10초간 집어넣습니다.”
“저희에게 원하시는 건 뭡니까, 그러면?”
계산이 빠른 사람이다.
역시 이 정도 되는 사람이니 미국이라는 거대 시장에서 5위권 안에 드는 사교육 업체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겠지.
커미션도 우리에게 줄 필요 없이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우리가 줄 것임을 알고 있다.
“음, 저희는 일단 앞뒤로 한성 그룹 계열사 로고가 나오는 화면을 5초로 줄일 겁니다. 나머지 5초 동안은 프린스 리뷰를 단독으로 내보내겠습니다.”
프린스 리뷰 정도의 업체라면 5초의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광고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광고까지 굳이 내가 만들어 줘야 할 필요는 없지, 암.
지금 로빈은 머릿속으로 쥬튜브에 올라가 있는 한성 에듀 제작 강의들의 조회 수와 그 증가 추이를 떠올리며 광고 효과를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그 대가로 저희가 제작하는 강의들 중 일부를 프린스 리뷰에 무료로 올려놓도록 해 주십쇼.”
“그건 우리만 얻는 것이 너무 많은 걸요? 원하는 것을 말씀하시지요.”
그래.
여기까지라면 확실히 프린스 리뷰 입장에서 거절하지 못할 명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그들은 아무런 돈도 들이지 않고 회사 홍보와 강의 확보를 동시에 하는 것.
물론 프린스 리뷰에 올리는 강의도 무료로 올려놓는 것이니 직접적인 수익은 없다.
하지만 이런 온라인 사교육 업체에서 돈이 들어가는 건 강의 제작과 운영.
여기에서 제작비를 우리가 전액 부담하겠다는 것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 사이트 배너로 저희 강의와 쥬튜브 강의들을 홍보해 주시면 좋고요. 이것도 프린스 리뷰 입장에서 돈은 전혀 드는 것이 아닙니다.”
“알 수가 없군요. 그거야 당연히 해 드릴 수 있는 부분이죠. 조건상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한성 에듀에 가는 것이 없는 협상인데요?”
“이런 협상은 없죠. 그러니 땡 잡으신 겁니다. 하하.”
“정말이십니까? 방금 말해 준 내용이 전부?”
이게 전부였다.
하지만 ‘일단은’이란 단서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일단’은 이게 전부입니다. 거절하지 못 할 제안이죠.”
나는 프린스 리뷰의 업체 히스토리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기억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프린스 리뷰는 몇 년 내로 제플의 제이튠즈 U의 주요 고객으로 진입한다.
바로 답변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조건이 좋다 하더라도 현대의 회사는 오너 혼자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더군다나 오너 또한 이 사람 혼자가 아닐 것이고.
“잘 들었습니다. 이사회에서 논의를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일단 들은 제안으로는 저 개인적으로는 함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군요.”
속은 숨기지 못한다.
이상하리만치 이번 생애에서 내 주변 사람들은 다들 착하다.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고 있고.
아닌가?
조규만 의원이나 강민호 같은 자들은 빼자.
그들은 나와 연관된 사람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내 주변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려우니.
“네. 조금 의심스러우실 만한 제안이지만, 지금 당장은 프린스 리뷰에서 거절하지 못할 내용일 겁니다. 계약을 하고 함께 일하게 되면 그때 또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드리도록 하죠. 저희는 쥬튜브에 올라가 있는 강의와 프린스 리뷰에 앞으로 올라갈 강의들의 조회 수를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의심스럽기는 합니다만, 거절하지 못할 제안은 맞는 말씀이시군요. 하하. 앞으로 뭐가 필요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일이 잘 풀린다면 성과에 따라 해 드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뭘 해 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맨 처음 언급했던 커미션 빼고는 단 하나도.
내가 원하는 건 일단 한성 그룹의 홍보 효과를 최대화시키는 것.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제플을 뚫어야 했다.
프린스 리뷰는 제플로 가기 위한 계단인 것이고.
이렇게 한성 에듀와 프린스 리뷰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잘될까요?”
건물을 나오며 김준현 대리는 나에게 물었다.
‘잘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궁금증과 동시에 조금 세게 나가 보자는 계획이 효과가 있던 것인지 궁금했겠지.
효과는 있었다.
지난 번 푸글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든 것을 솔직하게 나갔다면,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의심만 크게 부풀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전부 가정이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만약’이란 질문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을 수 없다.
“잘될 겁니다. 계획이 효과가 있던 것 같아요.”
“그래요? 저는 전혀 모르겠던데…….”
머리를 긁적이는 김준현 대리.
그를 보니 웃음이 나와 나도 웃으며 머리를 따라 긁적였다.
“저도 사실 모르죠, 뭐. 하하. 일단 스미스랑 만날 때와는 다르게 시종일관 주도권은 제가 잡고 있던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람은 감정이 앞서면 합리적인 생각이 어려워진다.
프린스 리뷰의 입장에서 내가 한 제안은 거절하기 어렵긴 하나 의심이 들 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의심이 들면 세세한 내용에 대해 더욱 더 따지고 들게 되고.
만남 초반에 내가 화를 내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그에게 내 감정을 드러내 보였다.
그는 그 모습을 보고 ‘아, 이 녀석은 감정적인 녀석이구나.’ 하고 생각했겠지.
비슷한 내공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싸움에서는 상대방을 얕보는 순간 밀린다.
나는 그에게 얕보이려고 했고, 그것이 성공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분명 대화의 분위기는 내가 원하는 흐름이었다.
“음, 주도권은 이사님이 가지고 계셨던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제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기다리면서 뭘 해 볼까나.
“대리님, 우리 이제 한동안 기다리는 것밖에 할 일이 없는데, 학교나 계속 구경하시겠어요?”
“학교요?”
“네! 학생으로 고등학교 다닐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헐……. 학생으로요? 제 나이가 몇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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