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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12화 (112/200)

[112] 112화.

“와 계신 김에 한 번 얼굴이나 보시는 것이 어떠실까 싶어서요.”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쪽도 이미 알고 왔을 것 아냐? 타이밍 딱 맞춰서 연락 주고 만나 보고 싶다고 했다면…….”

“그렇겠죠? 달라지는 건 없겠지만요. 그나저나 소식 참 빠르네요.”

스미스는 지난 달 한국에서 온 유현덕의 제안을 듣고 곧바로 대표인 브린에게 보고했다.

제플 제이폰의 성공을 보고 모바일 운영체제로 사용할 안드로이드 업체를 인수하며 곧바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준비 중이던 푸글은 의외의 문제에 봉착했다.

그것은 바로 어플리케이션 공급.

그들은 해결책을 모바일 기기 사업의 단초가 될 수 있는 컴퓨터 사업의 역사에서 찾아보려 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 하나만으로 어마어마한 이익을 얻는 것을 보고 그 길을 따르고 있었고.

하지만 과연, 컴퓨터와 다른 모바일 기기에 운영체제를 설치하기 위해 소비자들은 지갑을 열 것인가?

결론은 ‘아니다’로 나왔다.

그렇다면 그들이 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운영체제의 판매 외 절대적인 수익원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고, 그것을 ‘마켓’이라는 형태의 시장으로 준비할 예정이었다.

즉, 유료 어플리케이션을 만든 업체에게 일정 수준의 수수료를 받고 시장을 열어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이 친구들은 아예 운영체제와 함께 깔리는 기본 어플리케이션으로 자신들의 어플을 넣어 달라고 했다.

아직 프로토타입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상태의 안드로이드에.

도대체 그들은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얻고 제안을 하게 된 것일까?

“정보원을 알려 달라고 하면 거절하겠지?”

“그렇겠죠. 아마 안드로이드 기본 어플에 집어넣어 주겠다고 해도 그건 밝히지 않을 겁니다.”

“음……. 우리 에듀봇은 잘 만들어지고 있는 거고?”

“네. 늦어도 이번 달 안에 집어넣을 수 있을 겁니다.”

“아깝게 됐구먼, 그 친구들은. 허허.”

약속 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하지만 스미스는 일부러 조금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급한 사람이 손해를 보는 것은 모든 사업의 진리.

지금 급한 건 자신들이 아니었다.

아주 미안한 마음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기본 어플 구성에 교육용 어플리케이션을 넣는 건 누구라도 생각해 낼 수 있는 아이디어다.

하지만 처음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신들이 아닌 그 사람인 것도 사실.

그의 입장에서 지금 자신들이 하는 건 도둑질이다.

하지만 이 업계에서는 빈번한 일이다.

똑똑.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마침 대표님이 본사에 와 계셔서 같이 오셨습니다. 브린 푸글 대표님이십니다.

* * *

세르지오 브린.

레리 펜지와 함께 푸글의 창업주 중 한 명이다.

뉴스나 인터넷 기사에서 종종 보던 얼굴이지만 그걸 기억할 만큼 내가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지는 않았다.

스미스야 전에 봤던 얼굴의 백인 남성이고, 다른 한 명 또한 백인 남성이 세르지오 브린인가?

무슨 사람 묘사를 백인, 흑인, 황인 이런 식으로 하느냐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말고는 구분이 잘 안 되는걸 어떡하나.

지난 번 스미스의 사무실은 아니었다.

조금 넓은 회의실 느낌에 전면이 유리로 된 방.

외부 손님이 올 경우 맞는 곳 같았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둘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복도 측도 유리라 그들이 걸어오는 것을 전부 볼 수 있었는데, 이런 인테리어는 그들의 자신감처럼 느껴졌다.

아무튼 꽤나 젊은 나이에 검색엔진으로 성공한 개발자면서 사업가인 만큼 나와는 레벨 자체가 다르게 느껴졌다.

위압감이라고 할까.

“당신이 미스터 유?”

“반갑습니다.”

그는 자리에 앉기 전 내 쪽으로 와서 나와 김준현 대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하면서도 외모에서 느꼈던 위압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여기에 온 건 그들의 대단함을 경외하며 감탄하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온 건…….

“곧바로 일 이야기는 조금 그렇지만, 대표님도 오셨으니 하나 여쭤 보고 싶습니다.”

“하하. 너무 빠르신 것 같은데요? 뭡니까?”

“푸글이 교육용 어플리케이션 제작을 위한 업체를 인수한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그는 말을 하면서 우리의 자리에서 테이블 건너편으로 걸어갔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자리에 앉기도 전 일 이야기부터 한다는 것은 미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겠으나, 나는 사실 이렇게 해서라도 그의 신경을 긁어놓고 싶었다.

우리와 스미스의 만남을 그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제안한 내용은 거절하고, 자신들이 직접 그 사업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이것이 푸글의 입장에서 이득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들 또한 스마트폰 업계에서는 제플의 뒤를 따르는 후발주자였으니 말이다.

“사실이 아니죠. 정확히 말하자면요.”

“네?”

브린은 대답 없이 미소만 지으며 자신의 자리에 앉았고, 스미스가 대신 자리에 앉기 전 말했다.

내 정보가 사실이 아니라고.

김미연 부회장의 자료가 잘못된 건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나 또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자리에 앉기도 전의 브린에게 일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들 또한 그런 식으로 주도권을 다시 회수할 수 있다.

젠장, 바로 깨달았어야 하는데 이건 나중이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업체를 인수할 것이 아니라 이미 인수는 끝났거든요.”

말장난이구나.

“저희가 먼저 제안을 드린 내용이지 않습니까? 너무한 것 아닌가요?”

“아이디어는 좋았어요. 다만 우리는 그 아이디어는 평가하되 우리 스타일로 일을 진행하길 원했습니다. 미국에도 사교육 업체들이 이미 있는데 무슨 이유로 우리가 한국의 업체와 손을 잡겠습니까?”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도 미국은 가능성을 봐줄 줄 알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나.

당연히 푸글에서는 미국 내에서 유명한 업체를 선호할 것이다.

그래야만 안드로이드 시장 확장에 도움이 될 테니깐.

“저희가 제안한 내용은 푸글의 입장에서 단순히 프로그램 하나만 기본 어플리케이션 구성에 추가해 주면 될 부분이었습니다. 어플 제작이나 관리까지 저희 쪽에서 부담하고요. 이것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었을 텐데요.”

“무료로 진행한다고 하셨죠? 그 회사가 어디였더라…….”

브린은 우리 한성 에듀도 모르고 있다.

한성 그룹이 이렇게나 작았나 싶었다.

아니면 ‘아직’ 충분히 크지 않은 것일까.

“한성 그룹입니다, 대표님.”

“맞네요. 한성. 무료로 진행하면 그만큼 책임감도 약해집니다. 우리는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운영할 업체를 고른 겁니다.”

무료로 운영하면 책임감이 약해진다니.

이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아니,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입장에선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자유경쟁 사회에서 대가가 따르지 않는 노동은 결국 동기를 약화시킨다고 했나?

이건 또 어디에서 봤던 내용이지?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판단한 것이었다.

답답해졌다.

앞에 놓여 있던 물 컵을 들고 한 번에 들이켰다.

이렇게 내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안드로이드에 들어가는 그 어플리케이션은 유료로 운영한단 말씀이신가요?”

“그건 아직 정해진 바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만드는 것이 운영체제인데 그것의 기본 어플리케이션으로 당신들이 만드는 어플리케이션을 넣는 건 불가합니다. 시장에서 평가가 나오지 않은 업체를 우리가 아이디어만 보고 덜컥 손잡고 계약할 수는 없잖아요.”

“인수하신 곳이 어디 업체인지는 알 수 있을까요?”

우리의 공신력과 역량을 의심하기에 우리와 계약할 수 없다는 말.

그러면 그들이 원하는 공신력과 역량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했다.

그의 표정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여유가 넘쳐흘렀고, 나는 그렇지 못했다.

적어도 이번 만남은 나의 패배로 흐르는 것 같았다.

“비밀입니까?”

대답 없이 내 얼굴을 보며 미소만 짓고 있는 브린과 스미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었으나, 어차피 오늘 온 것은 구걸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푸글과의 협상은 첫 만남에서의 거절 이후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만남을 다시 요청한 것은 푸글이 과연 무엇을 믿고 일을 진행하는지 알아야 우리 대응이 올바른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계획과 정말로 유사한 방식의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같은 내용의 강의 영상들 중 하나는 앞으로 성장이 확실한 모바일 운영체제에 기본으로 깔리고, 나머지 하나는 웹과 쥬튜브로만 승부를 봐야 한다면 답은 뻔한 일이었다.

“글쎄요……. 이건 말해 줘도 되지 않을까?”

스미스에게 동의를 구하듯 브린이 말했다.

물론 결정 권한은 브린이 가지고 있겠지만, 의견을 구하는 것뿐이겠지.

우리에게 오픈해도 될 일인지 아닌지에 대한.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업체가 무엇인지 안다고 해도 그들을 뛰어넘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는 판단을 묻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이런 비슷한 분위기의 상황을 겪어 본 일이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철저하게 약자로 비춰지는 상황.

스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얘네들은 말해 줘도 못 따라올 겁니다.’라는 의미의 표현이었다.

“캐플턴(Kapleton)이죠.”

미국 2대 사교육 업체 중 하나인 캐플턴.

이로써 내가 접촉을 준비해야 할 새로운 업체는 정해졌다.

캐플턴과 양대 산맥인 프린스 리뷰(Prince Review)였다.

물론 이 계획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곧 틀어진다.

* * *

“괜찮으셔요?”

김준현 대리가 약간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괜찮을까?

나도 모르지.

하지만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처음 스미스를 만난 자리는 분명히 예상치 못한 타격을 입었지만 이번 자리는 그런 자리가 아니었다.

원한 것은 그들이 택한 노선이었고 그걸 나는 얻었다.

“캐플턴이 크긴 큰가 보죠?”

“그죠. 여긴 그런 교육업체가 많지는 않습니다. 빅 파이브 안에 들어가는 곳이에요.”

“그렇군요.”

다시 침묵.

김준현 대리가 이 분위기가 조금 불편했는지 끊긴 대화를 이었다.

“어쩌실 겁니까?”

“푸글은 나가리 된 거죠, 뭐. 하하.”

“그럼 이걸로 포기하는 건가요?”

벌써 포기라니.

미국 와서 뭘 했다고 포기를 한단 말인가, 이 사람.

하지만 내가 별 반응이 없으니 낙심한 거라고 생각했으리라.

“이제 다시 시작이죠. 포기는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한 달밖에 안 된 걸요?”

“그럼 앞으로 어떻게…….”

“계속 점유율 늘리는 것만 신경 써 주세요, 대리님. 캐플턴이건 어디건 점유율 높아지면 지금처럼 무시 못 합니다. S 아카데미도 처음에는 맥스스쿨에 잽도 안 됐어요. 지금은 다르잖아요.”

점유율이 관건이었다.

예상하는 만큼의 점유율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푸글이건 제플이건 먼저 찾아올 수도 있다.

그게 아니더라도 협상이 이처럼 불리하진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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