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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06화 (106/200)

[106] 106화.

어른 손바닥 두 개 정도 크기의 돼지들이 각 비닐봉지마다 한 마리씩 들어 있었다.

“미스터 유?”

“아! 네!”

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자 이걸 받으러 온 학생들도 어쩌질 못하고 서 있기만 했던 것 같다.

서둘러 하나씩 조심스레 꺼내 학생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각각 내가 준 돼지를 조심스레 자신들의 조로 가지고 가서 준비된 면도칼로 해부를 시작했다.

“이거 얼마나 들죠?”

“네? 뭐가 말씀이세요?”

“돼지 한 마리 해부용으로 사용하는 거요.”

“아, 마리당 200달러 정도에요. 매년 조금씩 달라지지만요.”

지금 이 교실에서 해부되는 돼지의 수는 총 열 마리.

그럼 그에 대한 예산은 총 2,000달러.

우리 돈으로 2백만 원이 수업 한 번에 사용되는 것이다.

새삼 미국 교육의 돈 자랑을 느끼던 중, 김준현 대리가 내 옆으로 갑자기 왔다.

“대표님, 너무…….”

“너무 뭐요?”

“너무 적극적인 것 아니십니까?”

그제야 나는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다.

학생들이 전부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순간 나는 내가 참관자로써의 위치를 잊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다들 웃는다는 것. 나도 멋쩍게 웃고는 다시 수업을 구경하던 자리로 돌아갔다.

“대단하죠?”

“그러네요. 돈이 많긴 많네요.”

“돈이요? 아, 이 나라는 교육비로 참 많이 투자를 하더군요.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자부심이 들고요.”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문맹률이 낮든 어떻든 간에 어쨌든 이들은 이들이 원하는 교육을 실행할 능력이 된다는 의미였기에.

그나저나 내 본분을 잊지 말아야지.

여기서 배운 것을 이곳에서 어떻게 사용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돌아가서 적용해 볼 내용들은 꽤 있을 것 같았다.

물론 돈이 문제겠지만…….

* * *

숙소로 돌아온 나는 오늘 있었던 일들을 복기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 그리고 잊어도 될 일들을 천천히 가려 가며 노트북에 적어 내려갔다.

“안 쉬셔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아닙니다. 하하. 커피나 한 잔 타 드릴게요. 저야 이게 일인걸요. 오늘 꽤나 적극적으로 참여하시던데요?”

김준현 대리가 흥미진진한 영화를 한 편 봤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럴 만도 했다.

한국에서의 참관수업이라면 보통 그냥 학부모님들 주르륵 들어오셨다가 잠깐 구경하고 나가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나는 거의 그들과 함께 수업을 같이 듣는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요.”

“돈이 문제죠, 항상. 돈이…….”

그는 금방 머신기로 내린 커피를 한 잔 타 가져왔다.

“한성 에듀 홍보 방안은 어찌 좀 생각해 보셨나요?”

“네. 그 부분은 어제 생각 끝냈습니다. 혼자 다니기 조금 어려울 것 같아서 김준현 대리님께서 고생 좀 해 주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제가요? 뭘 해야 하는데요?”

“제 상사는 김미연 부회장님이시니 내일 중에 전화를 드리고 재가를 받긴 해야 하겠지만, 일단 구상안만 먼저 말씀드릴게요.”

이게 될지는 몰랐다.

일단은 한국에서 내가 했던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

하지만 푸글에 다녀온 이후 느낀 것은, 유사한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의 효과와 미국에서의 효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김준현 대리는 나의 구상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쥬튜브에 공개한 한성 에듀 강의가 총 몇 개나 되죠?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총 개수도 말씀해 주세요.”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뜸을 들이다 앞에 놓인 종이에 천천히 숫자들을 적으며 나에게 말했다.

“일단은 공개된 강의는 여섯 개입니다. 지원재 실장님이 각 과목별로 너무 많으면 관리가 어렵다고 하셔서 필수과목 위주로 세팅을 해 두었어요. 영어, 수학, 세계사, 정치, 생물, 화학입니다.”

“그럼 보유하고 있는 총 강의 종류는요?”

“영상 파일로 지금 당장 준비된 강의는 여기 여섯 개에 열 개가 더 있습니다. 경제, 물리, 지구과학까지 하나씩 있고, 나머지 일곱 개 중 세 개는 학년별 수학 과정, 그리고 네 개는 영어인데 문학 작품별로 분할을 해 두었습니다.”

일단 시작하기에는 나쁘지 않은 개수다.

아니, 충분하다고 봐야 할까?

“관리는 누가 하셔요? 지금 당장 업로드 하면 내일 학생들이 확인할 수 있나요?”

“지금이요? 가능하긴 합니다만……. 시간이 8시인데요?”

“부탁 좀 드릴게요. 각 강의들은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가 될 수 있는 것들이죠?”

“여기 수능시험이라고 할 만한 것은 SAT와 ACT 두 가지가 있습니다. 거의 단어 시험과 수학 시험으로 이루어져 있기는 한데, SAT2로 들어가면 사회나 과학 부분도 넣어서 시험 볼 수 있죠. 그것들을 위한 강의로도 사용은 가능합니다.”

“홈스쿨링으로도 가능하겠고요?”

“강사들은 전원 대학 교수들, 그리고 연구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그럼 바로 좀 올려 주세요. 내일 학교에 가서 인터넷으로 학생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보여 줄 수 있도록.”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연락하고 시작해야겠네요.”

뜻밖의 야근이 될 예정이었기에 김준현의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쁘다고 보기에도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이곳에 와서 멍만 때리던 내가 의욕적으로 무엇인가를 추진하는 모습을 보니 그도 기대가 되는 것 같아 보였다.

“참! 대리님! 각 영상들 앞뒤로, 그리고 중간에도 한성 그룹 로고 넣는 것 잊지 마시고요. 아예 그 영상을 보기 전에 한성 그룹 광고를 집어넣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아! 그것도 좋은 방법인데요? 그거라면……. 근데 김미연 부회장님 재가는…….”

잠깐 잊고 있었다.

그걸 어쩐다…….

“지금 연락드려 보겠습니다. 준비는 시작해 주세요.”

제2강 아스팔트에 헤딩하기

“안녕하셨습니까, 부회장님?”

-네, 유 대표님. 그렇잖아도 미국에는 잘 도착하셨는지 궁금했네요.

“네? 김준현 대리가 보고 드리지 않았나요?”

-보고 받았죠, 물론. 호호.

몇 주만의 연락인데 농담으로 시작하다니.

그래도 반가운 목소리다.

이미도 원장, 주현필, 오광필 할아버지만큼은 아직 아닐지라도, 그래도 나에게 있어 든든한 조력자 중 한 사람이니 말이다.

-무슨 일이세요? 거기 한밤중 아니에요?

미국과 한국의 시차가 있기에 서로 낮밤이 반대였다.

그래서 일부러 이 시간에 맞춰 연락을 한 것이고.

이걸 정확히 계산하고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2001년 9.11 테러 당시 소식을 들었던 것이 한국에서 한밤중, 그리고 미국은 아침 9시였다.

“한국은 오전인가요? 급히 상의 드릴 내용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푸글 건 아닌가요? 그건 잘 안 됐다고 연락 받았어요.

“아, 아닙니다, 그건. 생각대로 되지 않아서 죄송하네요.”

죄송할 것까지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한성 에듀 이사로 이곳에 와 있는 것이니, 게다가 한성 에듀의 미국 현지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온 것이니 이렇게 말해야겠지.

그런데 그녀의 목소리는 협상 실패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었다.

음, 뭐랄까.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말투.

기분 나쁠 만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단지 이게 성사되기 어렵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겠지?

어쩌면 나만이 이걸 성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조금 부끄러워졌다. 작은 성공들에 눈이 멀다니.

-아니에요. 지금 상황에서 연락을 주신 거라면,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른 거겠죠?

“네. 한국에서의 일에 너무 심취해 있었던 것 같아요. 푸글과 제플 같은 회사들과 곧바로 협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자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듣고 싶은 건 지나간 일이 아니라 앞으로의 계획이에요.

무서운 여자.

내가 약간의 변명을 둘러대자 딱 끊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게 그녀가 나에게 바라는 것일 터.

고만고만한 사업가였다면 애초에 나에게 접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내 스타일도 변명만 늘어놓고 끝내는 건 아니다.

“한성 에듀 미국 지부 직원이 총 다섯 명이라고 확인했습니다. 한 달 정도만 이 분들을 제 계획에 동참시켜도 될까요?”

-유 대표님은 한성 에듀 이사님이셔요. 그리고 지금 당장은 미국 지부를 총괄하는 역할을 맡으러 가신 거고요.

“기존에 진행했던 계획들을 잠시 멈출 수도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부회장님 재가를 받으려 했습니다.”

-좋습니다. 결과만 나와 준다면 당연히 총괄해서 운영해 주세요. 그럼 됐죠? 계획이 뭔가요?

나는 곧바로 옆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김준현 대리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현재 준비된 강의 동영상들을 일괄적으로 쥬튜브 사이트에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내일 아침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고등학교를 시작으로 각 학교에 한성 에듀 강의 사이트를 홍보할 거고요.”

-홍보를 받아 줄까요? 모든 학교에서?

“일단 수강료가 없는 무료 교육 페이지니 거부할 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조금 더 효과적인 홍보를 위해 강의를 제작해 주신 교수님들과 연구원 분들의 특강을 같이 준비하려고요. 그래서…….”

‘돈이 더 필요합니다.’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하지만 마치 이런 내 생각을 읽은 듯 그녀는 선수를 쳤다.

-특강비가 필요하시군요?

“네, 지금 당장 강의 개수를 늘려서 하나의 완성품을 만드는 것보다는 차근차근 확장시키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려면, 안정적인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고요.”

내가 찾은 문제는 이거였다.

이미 S 아카데미와 맥스스쿨의 성공, 그리고 한성 에듀까지 관여하며 완성된 형태의 사업을 운영하는 것에 익숙하다 보니, 새롭게 론칭하는 사이트까지 완성시켜 시작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신규 사업은 신규 사업대로 다르게 접근을 해야 한다.

아래를 훑고 지나가야 기초가 탄탄해져 그것을 기반으로 성장할 수 있다.

과거 신성 학원이 그랬고, S 아카데미가 그랬다.

그리고 이제 한성 에듀 미국 사업이 그 길을 따라 가야 할 차례였다.

그런데 푸글에다 ‘우리 프로그램 만들 테니 써 주시오.’라고 제안을 하다니…….

보여 줄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

-돈은 유 대표님도 많으시면서. 호호.

“제 돈으로 해도 되는데 그럼 지분 주시는 겁니까?”

-아뇨. 지분 배정은 없습니다. 그리고 영리사업이 아니니 지분 별로 쓸모도 없으시잖아요.

맞는 말이긴 하지.

지분을 받아 봐야 돈이 되는 사업이어야지 쓸모가 있는 거지, 이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알겠어요. 어차피 일회성 사업이 아니니, 품의 날아오는 대로 이쪽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이거면 됐죠?

충분하다.

“네, 감사합니다.”

-아버지도 꽤나 관심 있게 지켜보고 계셔요. 그러니 실수 없이 잘 해내시길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조금 긴장됐다.

아버지라면, 한성 그룹 김용현 회장.

내가 한성 에듀와 함께 일을 한다 하더라도 그를 만나 본 적은 없다.

김미연 부회장이야 워낙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집안에서도 별 터치를 하지 않는 것 같았고, 사실 그녀처럼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해 나가는 딸이라면 나라도 그냥 놔두겠지.

아무튼 마지막 말은 이 일이 만약 잘되지 않는다면 회장에게 끌려가 혼날지도 모른다는 소리로 들린 건 내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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