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101화 (101/200)

[101] 101화.

제1강 2.5막

캘리포니아.

80년대에는 이곳을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꿈과 희망의 장소. 캘리포니아 드림.

“으헉…….”

하지만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내가 느낀 건 후끈한 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햐, 숨이 막힐 정도네.”

유난히 왜 더 그랬냐면 지금이 12월이기 때문이다.

응? 12월인데 왜 더워 하냐고?

한국에서 12월의 날씨에 맞는 옷을 입은 상태로 LA공항에 내렸으니 그런 거지.

분명 같은 북반구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기온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다.

급히 파카를 벗고 셔츠를 팔뚝까지 걷어 올렸다.

햇볕은 눈이 아플 정도로 쨍쨍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 하냐……. 전부 다 영어로 쓰여 있기는 한데 익숙하지가 않네.’

차라리 미국인과 대화를 하라면 할 수 있겠지만 표지판을 읽는 것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평소 자주 보던 단어들이 아닌지라 몇 번을 헤매고는 간신히 약속 장소에 기다리는 한성 에듀 직원을 만날 수 있었다.

“미스터 유?”

“헤이. 나이스 투 밋 유.”

“안녕하세요. 저 한국말 잘 합니다. 하하.”

이 사람이 말이야. 우리말을 할 줄 알면 우리말로 말을 걸어야지.

하긴, 근데 엉뚱한 사람을 짚을 수도 있긴 하겠다.

그랬기 때문에 일부러 영어로 물어본 거겠지.

영어라고 해봐야 ‘Mr. Yu’, 딱 두 단어네.

“아, 반갑습니다. 유현덕이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한성 에듀 대리 김준현이라고 합니다. 지원재 실장은 잘 지내나요?”

발음이 약간 어눌했다.

교포인가? 아니면 2세?

“네. 여기 분이셔요?”

“저요?”

“네, 그럼 다른 분도 없으신데…….”

“하하. 아니요. 3년 전에 여기 왔습니다. 내년에 다시 한국 들어가요.”

뭐야. 3년이면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근데 왜 이리 혀에 버터를 바른 것 마냥 발음을 이렇게 굴리는 거지?

내 표정에 어이없음이 드러났나 보다.

운전을 하면서 가는 그가 말없이 가만히 있는 나를 잠깐 바라보더니 먼저 말을 이어갔다.

“혹시 발음 때문은 아니시죠? 미국 처음 와 보셨어요?”

헐, 이젠 사람을 무시하기까지.

“네.”

짤막한 대답. 사람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데 왜 이리 직설적이야?

“여자들은 그렇지 않은데 남자들은 그렇다고들 하더라고요. 저도 몰랐는데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이랑 통화할 때면 발음 이상해졌다고 막 뭐라고 하셔요. 제 생각에는 저만 이런 것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도 몇 년 있으면 이리 되는 것이, 언어에 있어서 남자는 하나를 배우면 나머지 하나를 까먹는 것 같습니다. 하하. 유현덕 대표님도 곧 저처럼 되실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호탕하게 웃는다.

나도 그렇게 될 거라고? 과연 그럴까?

사실 처음 미국 땅을 밟아 본 것도 사실이었다.

전생부터 현생까지 각각 다른 이유로 그럴 여유가 없었다.

저렇게까지 이야기했는데도 내가 가만히 있자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는 “화나셨어요?”라고 물었다.

딱히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

영어 교육 전공에게 미국 처음 와 봤냐고 물은 것이 기분이 심하게 나쁠 것도 아니었다.

아니, 기분이 조금 상하긴 한 것일까?

이러려고 여기 온 것은 아니지.

“아닙니다.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요. 제가 김준현 대리님처럼 발음이 바뀌면 안 되는데 하고요.”

“경험상 우리말 어눌해지는 것만큼 영어 회화는 편해져요. 참, 영어 전공이라고 하셨죠? 그럼 저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훨씬 많이 어눌해지실 겁니다. 하하.”

우리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차는 이국적인 풍경을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여기 와서 놀란 것은 높은 건물들이 생각보다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야자수야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봤던 것이지만, 건물들은 아무래도 뉴욕 같은 대도시 도심 지역이 익숙한데, 딱 봐도 거의 2층 내지 3층 높이였다.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미국이란 나라인데 아파트 하나 없는 풍경이 꽤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전생에 학교에서 미국 드라마를 애들한테 참 많이도 보여 줬는데.

그중 ‘The O.C.’라는 성장 드라마가 떠오르네.

거기의 배경이 이 근처였을 텐데 아마…….

사실 이런 느낌은 LA공항에서부터 있었다.

최근 지어진 인천국제공항에 비해 LA공항은 크긴 했지만 정말 오래된 외형을 가졌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벌써 내․외관 리모델링을 몇 번을 했을 텐데, 이 사람들을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지 않는 걸까?

그러고 보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그랬다.

제대로 된 옷을 입고 다니는 것 같지가 않는 그런 풍경.

아니, 이게 혹시 제대로 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외관에만 너무 신경을 쓰다 보니 정작 중요한 것은 소홀히 하진 않았을까.

옷차림과 건물 상태 보고선 뭘 그리 깊게 생각하느냐, 현덕아.

“다 왔습니다. 말씀이 별로 없으시네요.”

“아, 고생하셨습니다. 빨리 왔네요, 생각보다?”

“오늘은 목적지까지 바로 모시지 않습니다. 거기까지 가려면 5시간은 달려야 하거든요. 여긴 LA 북부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되고, 가실 곳은 북가주 지역이니 내일 출발하시면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 아무것도 없었다.

건물이 낮네 마네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아무것도 없는 컴컴한 지역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한 건물.

간판에 Holiday Inn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여관(Inn)인가?

이건 여기 오기 전에 본 적이 있었다.

Inn은 사전을 찾으면 바로 나오는 뜻이 ‘여관’이지만 우리나라의 여관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다.

약간 값싼 모텔 정도 되는 것 같았는데 외관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못 들어갈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다.

차가 주차되고 나서 김준현 대리가 먼저 내리고 나도 그를 따라 내렸다.

“쉬실 때 입으실 옷은…….”

“백팩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가 먼저 앞장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의 뒤를 바짝 따라 걸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 뒤를 졸졸 따르는 기분이 들어 살짝 불편했지만, 그래도 완전히 낯선 곳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들어가기 직전, 밤하늘을 쳐다봤다.

우리나라에서 열 몇 시간 전에 봤던 밤하늘, 그리고 이곳의 밤하늘.

같은 하늘인데 무엇이 다르랴 싶었으나, 생각보다 큰 차이가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은하수.

내 인생에 있어서, 그러니깐 전생까지 포함한 수많은 시간들 동안 나는 이런 것을 왜 놓치고 살았는지.

검은 배경에 희뿌연 가루를 흩어 놓은 것처럼 반짝이는 별들에 한쪽 편에는 우유를 살짝 흘린 것 같은 길쭉한 은하수가 보였다.

“하늘이 참 다르죠?”

“네? 아, 네. 별이 이렇게 많은 건 처음 보네요.”

“저도 여기 와서 처음 봤어요. 한성 그룹에 들어가고 무슨 교육 서비스 계열사로 들어가라고 해서 처음엔 조금 서운했는데, 막상 미국에 와 보니 내가 왜 이렇게 빡빡하게 살았던 건가 생각이 들더라고요.”

모두가 꿈을 꾸는 대기업 입사.

그것을 이뤄 낸 사람이다.

하지만 얻는 것만큼 내놓아야 할 것도 많았을 터.

어쩌면 이런 기회를 얻은 그는 대기업 직원 중에서도 상당히 상위권에 드는 인재가 아닐까.

나는 잠시 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김현준 대리가 들어간 문으로 들어갔다.

* * *

“으아! 진짜 힘든데요?”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무덥던 기온은 확실히 떨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내리는 비가 문제.

캘리포니아는 사막 기후라고 했는데, 웬 비냐.

다행히 마구 쏟아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추적추적 조금씩 내리는 비.

“저는 운전하고 있습니다, 대표님.”

“아, 죄송합니다. 편히 가면서 불평을…….”

“하하. 아닙니다. 여기 처음 오신 분들 다 그리 말씀하세요. 일단 차로 어디 한 번 가려면 5시간은 기본이라 서요.”

이게 말이 다섯 시간이지 정말 고역이다.

좁은 공간에 앉아서 차체의 흔들림을 고스란히 느끼며 두어 시간 달리다 보면 몸 전체가 쑤신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도 11시간 정도 타고 왔구나.

하지만 그건 별로 불편하진 않았지. 왜냐하면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왔기 때문이었다.

돈이 좋긴 좋구나. 이코노미 석을 잠시 가 봤는데 거긴 엄청 좁더구먼.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하죠?”

“지금 3시간 달렸으니, 3시간 정도 더 가면 샌프란시스코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일 때문이 아니라면 조금 천천히 갔을 텐데…….”

“당장 내일 만남이 있으시다면서요. 차라리 빨리 숙소에 가서 짐 풀고 쉬는 것이 나으실 겁니다.”

김준현 대리는 이런 장거리 운전을 종종 했는지 별로 피곤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여기에서 몸 관리를 꾸준히 해 왔는지 탄탄한 체격의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호남 형으로 한국에서 여자들 깨나 울렸을 듯한 외모였다.

결혼은 했으려나?

“저기, 대리님은 정확히 하는 일이 어떻게 되세요?”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이런 걸 물어본다는 건 분명 큰 실례일 수 있겠지만, 궁금함은 참을 수가 없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한성 에듀 소속 대리라는 정도.

미리 지원재에게 이쪽 직원들에 대해 물어보고 왔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나는 S 아카데미 대표이면서 동시에 한성 에듀 이사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이쪽에서 한성 에듀 소속으로서 내가 할 일은 사업 확장을 위한 업체들과의 협상이었고, 그건 사실 지원재가 어느 정도 배경을 만들어 둔 상태라 그냥 사람만 만나고 계약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사실 김미연 부회장과도 협의한 내용이지만, 한성 에듀 하나만으로 온라인 강의에 낯설어 하는 미국인들을 끌어들이기는 어려우리라 판단, S 아카데미를 통해 시장 자체를 확 키울 계획도 있었다.

“저요? 저는 유현덕 대표님 전담 비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하.”

아, 그래서 공항까지 마중을 나온 건가?

“전에는 지원재 실장 전담 비서를 했고요.”

“지원재 실장도 전담 비서가 있었어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보통 혼자 움직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네. 그렇긴 한데 그분은 혼자서도 잘하시더라고요.”

이 사람이…….

근데 지원재 실장은 그랬을 것이다.

나랑 같이 있을 때도 업무 처리 다 해 놓고 결재만 받으러 오는 형식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에서도 그렇게 움직였겠지.

그나저나 전담 비서라…….

S 아카데미에서는 그런 건 없었는데.

확실히 대기업 계열사라 업무 체계가 잘 잡힌 걸까?

“신기하네요…….”

“아무튼 그래서 앞으로 거의 같이 다니실 겁니다. 일단 지금은 숙소로 가는 게 급한 일이니 가셔서 쉬시고, 내일 오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한성 에듀 미국 지부에 들렀다가 움직이시면 됩니다.”

“할 일을 다 말씀해 주시고……. 이거 바쁘게 들리는걸요?”

“바쁘게 움직이셔야죠. 돈은 그냥 들어오지 않습니다. 잘 아시면서요.”

그러고 보니 나보다 다섯 살은 많아 보이는 사람을 비서로 두고 있으려니 불편할 것도 같았다.

지원재 실장은 그렇지는 않았겠지?

오히려 아직 30대도 아닌 나보다는 그는 30대이니…….

그 사람도 이제 30이 넘었구나. 처음 만났을 때만 하더라도 20대 후반이었는데.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났고,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그나저나 오늘 이리 몸이 뻐근한데 내일 아침부터 제대로 움직일 수 있으려나.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뭐 어떡하랴. 이사급이라고 해도 결국 월급 받는 입장인데.

한성 에듀……. 순간 때려치우면 조금 편해지려나 생각이 들었다.

* * *

“푸글과 제플…….”

-일단 그 두 군데 연락해 놨으니 만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둘 모두를 할 수는 없을 텐데요?”

-S 아카데미 사업도 같이 진행할 것 아니십니까? 일단은 운만 떼어 놓았으니 결정은 대표님께서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세상에……. 푸글과 제플이라.

내 머릿속에도 저 두 회사의 이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은 몰랐다.

그만큼 지원재 실장이 준비해 둔 것은 컸다.

제플은 곧 제이패드를 시장에 내놓고 초중고교에 보급한다.

그나저나 제이패드가 나오는 시점이 언제였지.

내가 IT 전문가는 아니기에 그들이 내놓은 건 지금까지는 제이폰이란 것밖에 모른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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