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99화.
그의 말마따나 나는 옷도 잘 안 사 입는 성격이었으니.
그렇다고 지저분하게 살았다고 생각하진 말자.
단지 옷이 여러 벌 있어 봐야 편한 것만 좋아해서 빨래만 자주 하면서 계속 비슷한 옷들을 입었을 뿐이다.
“여기 이분은…….”
“참, 신성 학원 주현필 부원장님이셔.”
“아! 그 폭력적이라는……. 죄송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준서라고 합니다.”
주현필은 내 반 발짝 뒤에 서 있었다.
그리고 준서의 입에서 ‘폭력적’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쪽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아주 잠시 동안 그도 인사를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나를 한 대 치고 싶었으리라.
“하하. 반가워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주현필이라고 합니다.”
둘이 악수를 할 때에야 그래도 이 일은 조용히 묻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보였다.
준서의 인사와 주현필의 인사 사이의 시간은 일순간이었지만 내가 느낀 건 상당히 길었다.
“고생하셨어요, 실장님.”
이럴 때는 빨리 화재를 돌려야지.
“하하. 고생은요. 일 때문에라도 갔어야 했던 건데요, 뭘.”
짧은 인사를 끝내고 우리는 다시 내 차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올 때도 느꼈지만 꽤나 먼 거리.
그래도 중간 통로에 무빙 워크 덕에 다리가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던 나와 준서는 무빙 워크가 끝나기도 전에 일 이야기로 넘어가 버렸다.
“괜찮겠어? 내가 다 맡아도?”
“왜? 겁나냐? 이제 와서 발을 빼지는 않겠지?”
“장난해? 나야 원래 항상 자신감 넘치는 타입이었고, 너는 좀 신중한 성격이었잖아. 물론 S 아카데미 운영할 때 보니깐 전혀 내가 알던 유현덕이 아니었지만…….”
준서가 기억하는 내 모습은 대학생 유현덕이었다.
그리고 나는 두 번이나 듣는 수업에서 배울 것은 별로 없었기에 그냥 조용히 멍 때리거나 책을 읽었을 뿐이었고.
학원에 간다고 했을 때도 그는 꽤나 놀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은 조금 활발한 성격, 아니면 남들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선배들이 졸업 후 학원으로 갔었고, 나처럼 조용히 책만 읽거나 멍 때리는 선배들은 거의 백방 임용시험 준비를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붙고 떨어지고는 별개의 문제였지만…….
“나도 몰랐지. 내가 그렇게 잘할 줄은…….”
“입만 살았어, 학원일 하면서.”
“뭐라고?”
“하하.”
편안한 사람, 든든한 사람이 하나 더 늘었다.
어쩌면 김윤지의 빈자리를 그가 채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나 혼자 먼 곳으로 떠나겠다는 결정이 과연 잘한 것일까.
하지만 다른 선택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내린 결정에 후회를 하는 것은 유현덕답지 못한 일이리라.
그렇게 조금을 더 걸으니 주차장으로 나가는 입구가 보였고, 나와 주현필을 따라 준서와 지원재 실장이 건물 밖으로 나왔다.
“네 차 안 보이는데?”
“저기 있잖아.”
“어? 어디……. 설마?”
리모컨은 굳이 누를 필요가 없었다.
전생에는 2010년대로 넘어갔기에 웬만한 차들이 대부분 오토 도어 락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지만, 현재는 아직 2000년대 중후반일 뿐이었다.
키를 든 사람이 근처에 가면 지가 알아서 문의 잠금 장치를 해제하는 기능은 아직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멀리서 지시등 두 개가 깜빡거리고 있었고, 그쪽을 본 준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야, 저거 미국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찬데?”
“거기는 많지 않아?”
“아니, 일본차들만 잔뜩이지. 그나저나 드디어 사람 됐구나!”
“무슨 말을 그리 하냐? 지도 돈 많이 벌어 놓고서는…….”
“난 다 썼지, 대학원 다니면서. 이제 다시 벌어야 돼. 연봉 많이 준다고 했으니 수락한 거다?”
“일을 잘해야 많이 주든 말든 할 거 아냐?”
“그건 그래. 하하.”
보통은 조수석에 연장자가 타지만, 주현필은 나와 준서를 위해 자리를 양보했다.
뒷좌석에는 주현필과 지원재, 앞좌석에는 나와 준서가 탔다.
“이게 다가 아니야. 흐흐. 원래 한성 그룹 이사급은 차 한 대에 기사 한 명이 배정된대. 난 영 어색해서 그냥 안 받겠다고 했지만.”
“확실히 삶이 다르네. 그동안 도대체 왜 그리 산거냐?”
“내가 어떻게 살았다고?”
차를 빼며 룸미러로 뒷좌석을 봤더니 지원재 실장이 흐뭇한 아빠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반면 주현필은 평소의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가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고.
둘이 좀 대화라도 하지.
참 무심한 사람이다.
* * *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표님. 우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먼저 손을 내밀며 그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는 곧바로 내 손을 잡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불편해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어쨌든 나와 관련된 일로 아들을 잃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일로 나를 원망하기도 어려운 상황.
나도 그로 인해 죽을 뻔했고, 그는 참 복잡 다감한 심정일 것이다.
표정은 그래도 생각보다 편안해 보였다.
온전하지 못했던 자식이라 심적 충격의 회복이 조금 더 빨랐을까?
그건 아니겠지.
아무리 자식이 최악의 인간이라도 부모에게는 하나뿐인 자식이다.
“미안합니다. 차마 악수는 못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이쪽에 앉으시죠.”
나는 내 자리 건너편에 있는 의자를 빼고 그에게 안내했다.
그리고 그가 자리에 천천히 앉고 나서야 내 자리로 가서 앉았고.
일부러 조금 더 신경 쓰는 모습을 보여 줬다.
잘 보이려고?
그건 아니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지금 이 자리를 불편해할 사람을 내가 초대한 것이니 그렇게 노력한 것이었다.
“많이 힘드시겠지만 제가 대표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건 이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의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평소보다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감히 띄울 엄두도 못 낼 상황이었기에.
도대체 부모에게 자식이란 무엇일까.
나는 아직 아이를 가져 본 적이 없어서 모른다.
과거에는 ‘가족’이란 단어로 뭉뚱그려 내가 부모님을 생각하는 것처럼 부모님도 나를 사랑해 주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자식에게 있어서의 부모와 부모에게 있어서의 자식은 엄연히 다르리라.
당장 나만 하더라도 부모님을 생각하는 건 일주일에 몇 시간이 채 되지 않을 텐데, 어머니는 거의 매일 문자를 보내 주셨다.
강민호 같은 아들을 둔 부모의 마음은 우리 부모님과 똑같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애증이라는 감정의 크기는 훨씬 더 클지도 몰랐다.
“뜻은 잘 이해했습니다. 고민이 조금 되긴 했지만, 감사히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략적인 사안은 지난 번 전화 통화 때 말씀드린 것처럼 성공 대입학원 운영을 맡으시게 될 겁니다. 현재 실강 전담 강사 수 23명에 수능시험 대비를 전문적으로 하는 구성입니다. 예전의 맥스스쿨 정도는 안 되지만 강재훈 대표님께서 맡아 주신다면 크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딱히 대답을 요구하는 말은 아니었지만, 나 혼자 이렇게 계속 떠들고 있기도 좀 그래서 일단 그가 반응하기를 기다렸다.
그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아들이 죽이려 한 사람, 그리고 동시에 방어를 위해 아들을 죽인 사람 앞에 있다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내가 죽인 건 아니지만 그에게는 마찬가지처럼 느껴질 일.
“저…….”
입은 열었으나 말을 이어가지는 못한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는 걸까.
강민호 이야기는 나에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면 혹시?
“네, 말씀하세요.”
“이미도를 볼 일이 있을지…….”
역시나 그 문제였다.
강재훈 대표의 사생아 이미도 원장.
나도 그 부분이 걱정이 됐다.
그래서 바로 전 모임에서 미리 이야기를 해 두었고.
그녀의 대답은…….
“네. 보실 일이 많으실 겁니다. 성공 대입학원에 대해서는 대표님께서 전적으로 운영하게 되실 테니까요.”
“이해해 줄까요?”
이해라니.
자신이 그녀를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버려둔 것을 이해받기를 바라는 것일까.
설마 그건 아니겠지.
“저와 마주하게 되는 것을 이해해 줄까요?”
역시, 이렇게 나온다면 다행이지.
“저야 모르죠. 다만 이미도 원장님께서는 의외로 침착하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다행이네요.”
나의 이 말이 끝나자 그의 표정이 처음보다 한결 편해졌다.
“고맙고, 미안하네요.”
“미안하실 일이 뭐가 있습니까. 할 이야기야 많지만 지금 가장 힘들 분이 대표님이시니 마음 편히 드시고 일만 신경 써 주세요.”
“고맙네…….”
그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 것 같았다.
잠시 천장을 쳐다보던 그는 앞에 있던 물 잔의 물을 천천히 마셨다.
그가 겪은 고통은 얼마나 클까.
아들이 살인자가 되었고, 자신보다 먼저 죽게 된 것도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려다 그렇게 된 것이었으니.
“학원 원래 주인은 어떻게 된 건가요, 참? 성공 대입학원이면 예전 조규만 의원이 운영하던 곳 아닌가?”
“그분 외조카가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만, 최근 일 때문에…….”
“아……. 그럼 혹시…….”
“그 혹시가 맞을 겁니다.”
더 이상 이 이야기를 진행하기는 어려우리라.
그도 강민호가 나를 죽이려고 한 그날, 나 외에 다른 한 명이 더 있었다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니라 그 다른 사람이 내지른 칼에 강민호가 맞았고 목숨을 잃게 된 것까지.
김윤지와 내가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전부 다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그분은 괜찮으신가요?”
“괜찮을 겁니다. 저도 걱정은 되지만, 일단 휴식을 취하고 싶다고 해서요. 마침 제가 돈도 조금 있고 해서 인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군요. 여러 모로 불편하게 해 드렸네요.”
“그 이야기는 그만하시고, 학원 관련해서 이야기를 더 나누어 보시죠. 이 지역 관련해서는 신성 학원 주현필 부원장님이 빠삭하시니 많이 도와주실 겁니다. 거기에 지금은 신성 학원은 내신과 재수 학원 중심으로 운영이 되고 있고, 성공 대입학원은 수능시험에 강점을 보이기에 서로 시장이 겹치지 않습니다. 곧 성공 대입학원으로 모시고 갈 분이 오실 텐데…….”
아차, 그런데 이걸 생각하지 못했다.
뭐 이렇게까지 된 상황에서 그들 둘이 만난다고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이것도 사실 미리 물어봤어야 하는 부분이었는데.
잠깐 동안 내가 직접 강재훈 대표를 데리고 성공 대입학원 건물을 보여 줄까 생각했는데,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벌써 왔구나.’
강재훈 대표는 이미 뒤를 돌아봤고, 문이 열리며 지원재 실장이 들어왔다.
서로 놀란 눈치.
모르고 있던 것도 아닐 텐데 놀라기는…….
둘은 단지 놀랐겠지만 나는 당혹감에 빠져 버렸다.
“대표님……. 엇. 강재훈 대표님. 안녕하셨습니까.”
그래도 지원재가 먼저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했다.
강재훈 대표도 또 다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고.
“미리 말씀을 못 드렸네요, 그러고 보니깐……. 아무 생각 없이 제가 가장 믿는 분께 안내를 부탁드린다고 한 것이 그만…….”
하지만 강재훈 대표도 여유롭게 받아쳤다.
“허허.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 반가운 걸요, 뭘. 서프라이즈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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