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94화 (94/200)

[94] 94화.

지원재는 목을 몇 번 가다듬고는 말하기 시작했다.

감기에 걸린 건가?

“흠. 음. 유현덕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경영자는 이미 확보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교육 업계에 대해서도 잘 아는 사람이고요. 다만, 아직 조금 젊고 경험이 없어서 여기 계신 이미도 원장님과 오광필 회장님, 그리고 주현필 부원장님 같으신 분들께서 많이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는 사람이요?”

최근 들어 이런 회의가 있을 때마다 별말 없이 조용히 듣고만 있던 오광필 할아버지가 말했다.

문득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조규만,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그자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간 나이가 많이 더 들어 보이셨다.

흰머리도 엄청 많아지고.

아직 미래 학원 원장직을 유지하면서 업무도 보고 있기에 현역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얼마 남지 않았으리라.

이분의 삶은 행복할까.

뜬금없이 든 궁금증이었다.

“아실 수도 있고,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 성공 대입학원, 그러니깐 맥스스쿨 본원에서 교육을 받고 성공 대입학원의 강사로 몇 년 있기도 했던 분이죠.”

“김윤지 원장은 알겠구먼?”

“네, 아마 아실 겁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자리에 없었다.

그녀 또한 이 회의에 주요 일원인지 오래였지만, 곧 성공 대입학원 운영을 그만둘 것이기에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사실 그녀처럼 나도 떠날 거라는 이야기를 아직 그녀에게 하진 않았다.

왠지 부담을 주는 것만 같았다.

잘해 보려고, 그녀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감싸 보려고 제안했던 여행이 아마 그녀에게 인생 최악의 여행이 되었을 텐데…….

“강사로 있었던 사람이라면, 실상 유현덕 선생님과 상황은 비슷하겠군요?”

“경영적인 마인드도 어느 정도는 갖춰야 할 것이라 생각해서 지금 유학 중입니다. 이번 겨울에 학위 마치고 입국할 예정이고요.”

“만든 친구에요? 지원재 실장님이?”

오호라.

주현필의 질문은 나도 항상 궁금했던 부분이기는 했다.

준서가 뜬금없이 경영 쪽을 공부한다고 지원재에게 들었을 때부터.

나는 그와는 친구 사이이기도 하고, 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물어보지는 않았다.

주현필이 이런 질문도 할 줄 아는구나.

사실 성공 대입학원에서 나름 자리를 잡아가던 녀석이 갑자기 지원재 실장과 함께 미국으로 간다는 결정을 한 것인지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여기까지 오다 보니, 설마 내가 이제까지 하던 일들을 무리 없이 받아서 진행할 수 있도록 그가 준서를 유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이 간 추측이려나?

그래도 지원재 실장은 항상 놀라운 사람이었지.

아마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이 나를 보면서 느끼는 것과 비슷하게 나도 그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는 유독 준서를 챙겼고…….

“저도 궁금한데요, 그건?”

약간 장난스런 표정으로 지원재 실장을 쳐다봤다.

회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기에 당황할 수도 있으련만, 그는 너무도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게 말이 됩니까? 하하. 스스로 선택한 길인걸요. 그게 어쩌다 보니 유현덕 대표님 상황과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진 것이고요.”

“하지만 우리가 뭘 믿고……. 아니지, 유현덕이가 그 친구를 어떻게 믿고 전부 맡긴단 말인가?”

“믿을 수 있어요, 그 친구는…….”

어차피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거창하게 말해 S 아카데미 설립자의 경영 퇴진.

요즘은 내 회사가 매스컴에 언급되는 일이 조금 뜸한데, 이 정도 일이라면 다시 한 번 회자되는 정도는 되겠지.

부디 그 이유를 찾는답시고 소설을 너무 깊게 쓰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겨울이라고 하셨죠?”

이미도 원장이 지원재에게 물었다.

교체의 대략적인 시일이 나와야 그들 또한 준비할 여유가 있을 것이다.

지금이 여름이니 앞으로 6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

“네. 그 동안에는 제가 일 좀 더 벌려 놓으려고요.”

“일? 무슨 일?”

이번에는 주현필이 반응했고.

“공무원 시험 시장을 제대로 진출시켜 놓아야죠. 전에 이야기만 하고 진행이 안 된 상태라서……. 그리고 학교 경력 있으신 선생님들께도 제안 좀 드려 보고요. 대단하신 분들이 많으신데 이쪽을 잘 안 쳐다보시는 분들…….”

“하긴, 맞는 이야기죠. 안정적인 직업 놔두고 정글로 움직여 주실 분들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이미도 원장이 그녀답지 않게 약간은 뼈가 있는 말을 내뱉었다.

사실 그녀가 신성 학원을 처음 설립할 당시에도 시도했던 일이라고 들었었다.

현직 교사 초빙.

높은 계약금과 학교에 걸맞는 신분보장이 된다면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열 번의 제안 중에 성사된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걸 내가 다시 해 보겠다니, 당연히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게 가능하지 않을 텐데.’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노리는 건 기간제 교사들.

월급 등 근무 조건은 정교사와 큰 차이가 없지만 정년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또한 연금도 공무원 연금이나 사학 연금이 아니라 일반 국민연금 대상자이고.

처음부터 이쪽을 노린다면 가능하다.

내가 항상 궁금했던 경쟁도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고.

교사 출신 강사가 처음부터 사교육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강사들과 경쟁이 될 것인가 하는 부분이었다.

나는 ‘경쟁력이 있다.’ 쪽에 한 표를 걸었고, 지원재 실장은 ‘그래도 힘들 겁니다!’에 한 표를 걸었다.

어찌되었건 초빙될 예정인 선생님들 입장에서도, 그리고 S 아카데미 입장에서도 손해 볼 일은 전혀 없었다.

“지금으로써는 희망 사항이지만 실제로 대상자들 조사하고 컨텍을 다음 주부터 시작할 예정입니다. 제가 직접 움직여 다녀야죠.”

오랜만에 내가 전생에 근무했던 학교들에도 다녀오고.

딱히 그곳에 특별한 추억이 있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리울 뿐이랄까?

군대도 있을 때는 지옥이지만 나오면 다 추억이 된다고 하지 않은가.

군대 가지도 않은 20대 청년이 무슨 소리냐고?

전생에 이미 한 번 다녀왔고, 두 번 가기는 싫어서 이렇게 나이 차도록 버텨 보고 있는 것이다.

“그거야 뭐, 일단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그럼 일들 더 벌리고 경영도 그 새로운 분께 맡기면 유현덕 선생님은 뭘 하실 건데요?”

“잠시 동안은 쉬려고 합니다. 너무 달렸어요.”

“웃기는 소리 하네. 달리기는 뭘 달렸다고…….”

주현필이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는데, 사실 이런 표정은 그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이제 40 주변 나이.

본인이 부원장이라 마음대로 정장을 입지 않고 청바지에 셔츠 차림으로 다니기에 젊어 보일 수는 있겠으나, 말투와 희끗희끗해지는 머리카락에서 흘러나오는 나이의 흔적은 지울 수 없다.

특히 말투는 정말…….

“이만 하면 꽤나 달린 거죠. 주현필 선생님은 제 나이 때 뭐 하고 계셨는데요?”

“호호. 아…….”

이미도 원장의 웃음이 터졌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그녀의 마음 편한 웃음이었지만 그녀는 곧 얼굴을 굳히며 나머지 웃음을 삼켰다.

이 회의의 분위기가 자꾸 어둡고 불편해지는데, 그건 이들 모두 근래의 일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조규만, 김현진, 그리고 강민호의 죽음까지…….

다시 급격하게 어두워진 분위기.

“그나저나 부원장님과 원장님은 썸도 안 타십니까? 서로 최측근으로 계신 것이 몇 년인데…….”

“포기하게. 나도 그 말만 몇 년째인데, 주현필 저 사람은 온전한 남자가 아닌가 봐. 허허.”

“회장님!”

뭐, 나도 거기까지 의심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 이상하단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미도 원장에게 관심이 없는 것은 분명 아닐 텐데.

유환 선생님처럼 돈에만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미도 원장의 얼굴이 발그레해진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대충 6달 정도 남았습니다. 그 동안 맥스스쿨 지분 정리를 조금 하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이미도 원장님?”

“물론. 돈 많이 벌고 가네, 유현덕 선생님은요. 호호. 그나저나 한성이랑은 이야기 된 거예요?”

“다 이야기됐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해외 교육 복지 서비스업 개척을 위한 출장이에요. 흐흐.”

“날로 먹네, 아주.”

“부럽습니까?”

“아니. 김윤지 원장이랑 같이 가는 거야?”

김윤지 원장도 곧 떠난다는 사실을 다들 알고 있었다.

비슷한 시점에 나도 그만둔다고 하니 이런 생각을 해 보는 건 당연하겠지.

그녀와 나만 모르고 사실 여기 있는 대부분이 우리 둘의 사이가 언제 가까워지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날이 더욱 멀어진 것 같기도, 아니, 오긴 할 것인지 모르게 되어 버렸지만.

“아니요. 어디로 가시는지 모릅니다. 저는 그냥 출장이죠.”

“내년 교육정책 팁이나 좀 줘. 족집게 도사 도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받아야지.”

“아무렴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찍어 드리고 가겠습니다. 하하.”

내년 교육정책이라.

올해가 2007년이다. 그리고 내년은 2008년.

기억이 전부 나는 것은 아니었다. 그만큼 현실에서의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영어 회화가 학교에서 강조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요?”

확실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너무 확신을 가지고 주장한다면, 정말 나보고 점을 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

아무튼 2000년대 중후반의 트렌드는 영어 회화 수업, 그리고 교과 교실제와 수준별 이동 수업이 중심이었다.

내년에 있을 대선에서 내가 기억하는 그 사람이 당선이 된다면 큰 차이는 없겠지.

그리고 ‘어륀지’ 파동이 일어날 것이다.

오렌지를 현지 발음 그대로 ‘어륀지’라고 우리말로 표기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그땐 참 경악스러운 생각이었는데 그것에 대처를 해야 하다니.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니야? 족집게 수준이 조금 떨어진 것 같은데?”

“아직 대선 이전이잖아요.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서 내년은 별 변화는 없을 거예요. 변화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만 무성하겠죠. 적어도 내년은 지금 그대로 가셔도 괜찮을 겁니다.”

지원재 실장에게만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 해 두고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준서가 S 아카데미를 경영하기 시작하면 이런 부분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하나는, 이건 나중에 주현필, 이미도 원장에게도 이야기해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국가영어능력평가.

NEAT라고 불리던 이 시험에 대해 너무 깊게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해 두고 싶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그것에 대응하는 강의를 내놓아야 홍보가 되겠지만, 분명 망할 시험이었다.

* * *

“신기한 사람이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죽었으니 다행인 건가…….”

“무서운 사람이죠, 신기한 게 아니고. 이런 사람 보셨어요?”

“직접 본 적이야 없지. 들어 보고 읽어 본 적은 있어도……. 사이코패스 사건들 있잖아? 왜, 연쇄 살인범인데 별다른 이유도 없이 이사람 저사람 죽이고 다니는. 그런 사건 기록들 보다 보면 결국 이유는 범인 자신에게만 있거든. 그거랑 어찌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경찰서 건물 옆쪽으로 나와 있는 베란다에서 탁민호와 그의 선배가 담배를 피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중이다.

건물 사이드라 바람이 잘 불어 연기는 입에서 나오자마자 공중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사라진 연기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겠지.

이렇게 생각은 들었으나, 경찰일은 술과 담배 없이 오래 하기 어려웠다.

탁민호는 이번 사건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완전하게 자살로 위장한 타살 두 건, 그리고……. 유현덕 씨와 김윤지 씨 일은 살인미수라고 봐야 하겠죠?”

“살인자가 이미 죽은 상황이라 처벌도 불가능하고, 일단 검찰로 수사 자료는 넘기겠지만 그쪽에서도 별로 움직이지는 않을 거야. 매스컴에만 빵빵 터지고 끝나겠지.”

아마 그럴 것이다.

강재훈이 가져온 강민호의 일기장.

내용을 보면 앞서 언급된 조규만과 유현덕에게 가지는 피해 의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신기한 것은 이게 20대 중후반의 사람이 쓸 만한 수준의 글이 아니었다는 사실.

거의 중학생이 쓴 글이나 다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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