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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90화 (90/200)

[90] 90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야 했는데 왜 조규만의 얼굴과 몸이 보였던 것이었을까.

잠시 그 자리에서 앉은 자세로 가만히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는 것을 알아챘다.

마치 아까 낮에 그 이상한 분위기의 숲에 들어갔을 때처럼…….

“귀신 보고 이렇게 놀라냐.”

아주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나는 물을 마시러 그녀와 내 방 사이에 있는 거실로 나갔다.

불을 켜면 혹시 그녀가 깰까 봐 조심조심 보이지 않는 벽을 더듬으며 냉장고까지 갔는데, 눈이 어둠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서 그녀의 방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

‘뭐지? 열어 두고 자는 건가?’

하지만 아까 자러 들어갈 때는 분명 닫혀 있었다.

기억이 왜곡된 것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잠시 그 자리에서 그대로 반쯤 열린 방문을 보고 있자니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궁금한 건 궁금한 것이었다.

그때 방문 안에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완전히 정지한 상태에서 숨소리까지 죽인 지금,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방안에서 움직임의 기척이 느껴졌다.

팔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닌, 마치 힘을 잃고 툭 떨어진 듯한 하얀 팔.

“누나!”

방안의 기척이 멈췄다.

다시 아무도 없는 것과 같은 상태.

그리고 나는 그제야 그녀가 쉬던 방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쿵!

방문이 건너편 벽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새까만 어둠, 그리고 그곳에 쓰러져 있는 그녀.

방에 들어오자마자 불안한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문 오른쪽에 전등 스위치가 있었을 텐데.’

벽을 더듬거리며 스위치를 찾았지만 쉽사리 손에 걸리지가 않았다.

“누나!”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건 쓰러진 것이 확실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결국 스위치를 찾지 못해 어렴풋이 보이는 그녀에게 그대로 다가갈 때, 사라졌던 기척이 느껴졌다.

휙. 퍽!

“아악!”

뒤에서 들려온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무의식적으로 몸을 살짝 비틀었던 것 같다.

다행인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머리에 맞았을 법한 무언가가 내 왼쪽 어께를 강타했고, 나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극심한 충격이 맞은 어께와 그 아래쪽에 퍼졌다.

하지만 정신은 온전했다.

무엇에 맞았는지, 누구인지 파악하기 이전에 몸을 굴려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어께가 땅에 눌리자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를 악물고 몸을 넘겼다.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우며 내가 막 들어왔던 방문 쪽을 봤을 때, 캡 모자를 눌러쓴 누군가가 서 있는 모습이 처음으로 보였다.

“누구야!”

하지만 대답 없이 그 사람은 고개를 한 번 갸웃하더니 횡으로 움직였고, 이내 거실을 통해 방문으로 들어오던 희미한 빛 밖으로 사라졌다.

나는 나대로 그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는데, 이건 방 한가운데에 김윤지가 쓰러져 있기에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였다.

의외로 내 몸놀림도 그간 주현필에게 훈련받은 덕에 느리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내가 뛰어들리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는지 이번에는 손에 들고 있던 것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

몸으로 들이받는데 단단한 몸이 그대로 느껴졌다.

“흑…….”

벽에 부딪히며 입에서 신음 소리가 새 나왔다.

일단 충격을 준 것 같기는 한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그자는 곧 내 허리를 위에서 감싸듯 끌어안고 열려 있던 방문으로 집어던졌고, 잠시 동안의 수세는 사라졌다.

쾅!

“으헉!”

방문에 허리가 찍히며 어께에 이어 두 곳이 망가진 느낌.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판단이 들자 오히려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도망가는 일.

그리고 방금 전 내던져지면서 김윤지의 팔이 쓰러진 내 얼굴 바로 앞에 있었다.

날아가서 문에 부딪히고 땅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그녀의 팔을 붙잡고 문밖으로 끌고 나갔다.

온몸에서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며 방금 전까지 잠에 빠져 있던 몸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치 빠른 동작이었다.

그녀의 팔을 붙잡고 거실로 거의 내팽개치듯 집어 던지고(너무 급한 나머지 어쩔 수가 없었다.) 반대쪽 손으로는 방문을 닫아 버렸다.

방안에서 그자가 문을 열려고 했으나 내가 약간 더 빨랐다.

쿵! 철컥! 쾅! 쾅!

안에서 잠기는 문이었기에 그가 문을 열려고 당길 때마다 문이 들썩였지만 그런대로 버틸 수는 있었다.

의외로 끌어당겨 문을 여는 구조는 힘의 차이가 있더라도 밀어서 여는 구조보다 버티기 편했다.

서로 힘이 상당히 빠지는 상황이기에.

“으응…….”

내가 집어던져서 깬 건가?

만약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었다.

이 녀석을 방안에 붙잡아 두는 건 한계가 있었다.

그러면 도망치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데, 아니 지금 상황에서는 두 가지 전부 해야 할까? 아무튼 그녀가 계속 정신을 잃은 상태라면 불가능했다.

“누나! 누나! 정신 좀 차려요!”

덜컥덜컥덜컥!

내 목소리에 반응이라도 하듯 문이 심하게 덜컥거렸다.

당장이라도 손이 빠질 것 같았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고.

말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

그녀는 곧바로 정신이 들지는 않는 것 같았다.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상당히 비틀거렸으니.

“누나! 빨리 일어나!”

반말까지 나오다니.

하지만 이런 판국에 반말이고 존댓말이고 뭐가 중요하겠는가.

실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었다.

방문 저쪽의 괴한이 문을 열려고 힘을 줄 때마다 몸이 들썩였지만, 그 와중에 방 안을 빠르게 스캔할 수 있었다.

식칼 같은 것으로 부딪혀 볼 수는 있겠지만 그건 나나 그녀에게 너무 위험할 것 같았고, 이미 저 괴한은 몽둥이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식칼은 예비용으로, 그리고 중요한 건 그녀가 먼저 이 건물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

휴대폰은? 휴대폰은 내 방 안에 하나, 그리고 그녀의 것은 괴한이 있는 그 방 안에 하나가 있었다.

내 방에 있는 것을 그녀가 가져올 수만 있다면…….

“누나! 방 안에 휴대폰! 빨리!”

“아? 뭐야? 머리가 너무 아파.”

“빨리요! 윽…….”

쾅! 쾅! 덜컥 덜컥 덜컥.

방문이 반쯤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정신이 조금씩 드는지 그녀는 완전히 일어서서 나를 보았다.

상황 파악이 조금 느리기는 했지만 이내 내 방으로 들어갔고, 잠시 뒤 그녀가 손에 휴대폰을 쥐고 나왔다.

“어디다가! 이거 어떡해!”

“그거 들고 베란다 통해서 나가요! 전화! 경찰에 전화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금 전까지 정신을 잃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뛰어서 나가는 그녀.

내 손도 점점 미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던 것은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이었다.

계속 쓰러져 있었다면 결국 문을 열렸을 것이고, 우리는 둘 다 어떻게 됐을지 모를 일이니.

방 안도 잠시 조용해졌다.

나는 문을 꽉 잡고는 다시 한 번 내가 나갈 경로를 확인했다.

그녀가 나가면서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갔기에 그리로 나가면 될 것 같았지만, 같은 경로로 나가는 것이 안전할지, 아니면 로비로 통하는 길로 나가는 것이 안전할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둘이 만약 다른 길로 간다면?

그나저나 도대체 저자는 누구기에 이런 산골짜기 산장까지 들어와 이러고 있는 건지…….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그걸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경찰 온대! 얼른 내려와!”

베란다 문을 통해 김윤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방 안의 사내도 내가 들은 것을 들었는지 잠시 멈칫했다.

과연 경찰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차까지 도망칠 수는 있을까?

그것 또한 불확실했다.

자신 혼자라면 혹시 몰라도 김윤지는 여성이다.

느릴 수밖에 없겠지.

선택을 해야 했다.

더 이상 여기에서 버티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차로 뛰느냐, 아니면 숨느냐…….

하지만 막상 숨는다고 하더라도 숨을 만한 곳이 떠오르질 않았다.

숲? 아까 낮에 봤던 그 이상한 기운이 도는 숲?

그곳에는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딱히 이 산장 외에는 숨을 곳이 없었는데, 이미 산장 안까지 괴한이 들어온 상황이라 숨는 것은 선택지에서 빼야 할 것이다.

“당신, 누구야! 이제 곧 경찰 올 거야. 끝났어.”

나는 잠시 움직임을 멈춘 방 안의 괴한을 향해 소리쳤다.

딱히 대답을 기대하고 내지른 소리는 아니었다.

아마 단순한 분노였으리라.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오기 전에 네가 죽을 거다.”

익숙한 목소리.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 목소리였다.

어디서였을까. 최근에 들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죽기는 누가 죽는다고…….”

하지만 그가 한 저 말은 실수였다.

죽는다고? 이 말을 들으니 오히려 침착함이 돌아왔다.

죽는다.

두렵다.

하지만 한 번 죽었던 몸, 허무하게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갑자기 이제껏 없던 오기가 생겼다.

왜 덤벼 보지도 않고 도망치기만 했던 것인지.

아마 김윤지는 산장 밖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녀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 도망친다 한들 그녀와 함께 두려움에 떨다가 잡히는 것 말고 다른 결과가 있을까.

운이 정말 좋다고 하더라도 잘 숨어 있는 정도겠지.

덜컥!

조용했던 문이 한 번 다시 덜컥거리며 열리려 했다.

일단 열리던 문을 다시 닫은 후, 나는 심호흡을 했고.

‘하나, 둘…….’

덜…….

“으쌰!”

쾅!

다시 한 번 덜컥거리려는 문을 이번에는 발로 냅다 차 버렸다.

정말 온 힘을 다해서 찼더니 문에는 구멍이 움푹 파였고, 강하게 차인 문은 내 계획대로 괴한의 몸에 제대로 부딪힌 것 같았다.

곧바로 안에서 다시 한 번 신음 소리가 들린 걸 보니.

“으윽!”

이제까지 내가 저 소리를 냈는데.

하지만 뿌듯함도 잠깐, 나는 곧바로 베란다 반대편의 주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내 뒤를 따라 달려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칼……. 칼…….’

머릿속에는 온통 저 생각뿐이었다.

칼이라니.

내가 무슨 사이코패스도 아니고.

하지만 어쩌랴.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내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런데 왜 김윤지를 먼저 공격했던 것일까.

그렇게 하는 것이 아무래도 조용히 일을 끝마치고 빠져나갈 수 있어서였을까?

주방 안쪽에 칼이 있던 곳은 낮에 바비큐를 하면서 확인을 해 두었다.

무섭지 않은가. 칼의 위치를 확인하다니.

다른 의도는 없었다.

혹시 필요할까 싶어 봐 두었던 것이니깐.

고기를 자를 때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스테이크 같은 것.

식칼(입에 담기도 서늘한 단어)을 손에 쥐었다.

자취 생활을 하며 수백, 수천 번 쥐어 봤던 칼이지만 지금은 기분이 달랐다.

당연히 달라야지. 사람을 상대로 쥐어 든 칼인데.

그리고 거의 동시에 뒤를 따라오던 괴한이 나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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