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89화.
“유환 선생님? 그것도 생각은 해 봤는데, 그 사람이 너나 주현필 부원장 사이에서 버틸 수가 있겠니.”
“하긴, 저는 몰라도 주현필 선생님과는 경쟁을 하게 되겠군요.”
고기가 슬슬 익어 가면서 사방에 냄새가 진동을 했다.
조금 걱정했던 부분은 산짐승 이야기를 관리인 할아버지한테 들었기에 고기 냄새를 맡은 동물들이 혹시 몰려들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
정말 어떤 동물도 오지 않았다.
아니, 이것도 내가 인식을 잘 못해서 그렇지 조금 이상한 부분이기는 했다.
이상한 숲길에 이어 또 다른 이상한 분위기.
이 산장에 올라온 뒤로 어떤 동물도 보이지 않고, 어떤 동물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새 지저귀는 소리도 전혀 없었다.
나와 김윤지가 대화하는 소리, 그리고 앞에서 숯불 타오르는 소리를 제외하면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한 느낌.
“고기 잘 굽네? 이런 것 많이 안 해 봤을 줄 알았더니.”
아직도 나는 내가 직접 집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물론 지금처럼 숯불에 굽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허구한 날 집에서 고기 먹는걸요. 누난 누가 구워 줘요?”
“구워 주기는…….”
“돈 있으면 사람 시켜서…….”
“야, 돈은 네가 있지 내가 있냐? 조용히 고기나 구워.”
친해지니 은근 막 대하는 그녀였지만, 막상 말은 저렇게 하면서 어조는 그리 강하진 않았다.
그냥 장난스런 말투.
바비큐를 대충 해 먹고 나니 1시간쯤 걸린 것 같다.
산장에 켜진 불을 제외하고는 주변이 어둠에 잠겼다.
소리도 없는데다 빛까지 사라지니 어찌 보면 도시 삶의 피난처로 아주 적절한 분위기일 수는 있었다.
방으로 올라온 나와 그녀는 잠시 이야기를 더 나누다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숙소 안은 거실을 가운데에 두고 방이 두 개 있는 구조였다.
거실도 좁지 않아서 소리가 서로 들릴 일도 없을 것 같았고.
화장실은 하지만 한 개.
조용히 나는 화장실에 다녀오며 그녀의 방문이 닫혀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방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젊은 남녀 둘이 1박까지 하면서 왜 따로 자냐고?
그녀와 내가 약간 그런 분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격적으로 만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서로 부담이 됐다.
그리고 이번 여행은 그런 목적보다도 그녀가 안정을 찾도록 휴식하는 목적이 훨씬 더 컸으니.
물론 내 방으로 돌아오고 나서 곧바로 잠에 들지는 않았지.
아무래도 약간 긴장도 되고 하니 잡생각만 머리에 떠올랐다.
그녀가 뭘 하고 있는지 종종 궁금하기도 했고.
곧바로 자려나?
그렇게 1시간 쯤 뒤척이다 겨우 잠에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뜬 건 언제인지…….
“읍……. 읍…….”
무슨 꿈을 꿨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그래서 눈을 떴는데.
눈앞에 죽었다던 조규만이 내 몸을 누르고 있었다.
* * *
-알겠네.
조규만은 김현진에게서 온 전화를 끊고 바로 사무실을 나왔다.
그는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 않았다.
그 정도 사기를 쳤으면 중국이라도 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만나자고 한 장소는 자신이 국회 입성 전 운영하던 학원 근처 모텔이었다.
남자들끼리 만나는데 모텔이라는 장소가 굉장히 부적절하게 느껴졌지만, 그는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여 그런 장소를 택했다고 했다.
당장에라도 멱살을 잡아 이곳으로 끌고 오고 싶었으나, 김현진이 들고 있는 자신의 약점은 그리 간단히 무시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만나고 싶다……라.”
그는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협상을 하려 하는 것인가.
그럴 만한 여유는 없을 텐데.
누군가를 경호로 데려갈 만도 했지만, 사실 조규만은 이제 50대 초반.
학원을 운영했다고 하더라도 몸 관리를 철저히 해 왔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이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이제 1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302호…….”
건물은 자신이 출퇴근하며 자주 봤던 것이었다.
30대 초반부터 학원을 열고, 지역에서 가장 잘나가는 학원으로 만들고 나서는 꽤나 큰돈을 만졌다.
돈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 자신의 욕구들을 채워 줄 훌륭한 수단이었다.
많은 사업에 손을 댔고, 많은 여자에 손을 댔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텔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굳이 이 모텔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새로 만난 여자를 데리고 호텔을 가지 모텔로 갈 필요가 없던 것이었다.
김현진이 말한 302호 방문 앞에 서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가 가져간 백억이 넘는 돈.
사실 전부 다 자신의 돈도 아니었다.
S 아카데미가 상장을 하게 되면 분명 지분 가치는 최소 세 배가 될 것이기에 여기저기에서 빌려온 금액도 꽤 되었다.
일단은 그걸 받는 것이 급선무였고, 김현진에 대한 처리는 추후에 계획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역 조직 폭력배들과 심부름센터를 총동원하여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이곳이 아니라 전라도 해안가 쪽에서 그의 목격이 하루 만에 확인되었다.
조폭들조차 그를 잡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그런데 그가 이곳에 나타난 것이었다.
그것도 제 발로…….
유현덕에게 약속한 날은 하루 남았다.
똑똑.
문을 두드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 302호라고 했기에 다시 한 번 방문 번호를 확인했다.
똑똑.
좁은 복도에는 다행히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았다.
호텔이었다면 간간히 문이 여닫이고 사람들이 들락거렸을 텐데.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다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분명 이곳으로 와서 협상을 해 보자고 했는데.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문손잡이에 손을 갖다 댔다.
철컥.
이런 방문은 잠겨 있었다면 헛돌아야 정상인데 걸쇠 걸리는 소리가 났다.
열린 것 같긴 했지만 잠시 기다렸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결국 맞닥뜨려야 할 일이다 생각하고 문을 조심스레 당겼다.
문이 열리는 동안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끼익 거리는 소리라도 났을 텐데, 아무런 소리가 없었기에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리라 생각한 그는 천천히 열리고 있는 문틈으로 내부를 살폈고,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방에서 눈에 처음 들어온 장면은 너무도 무서운 모습이었다.
“이. 이건…….”
쾅.
자신도 모르게 당기던 문의 손잡이를 놓친 그였다.
방 안을 들여다본 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그는 분명히 보았다.
방 한가운데에 사람 한 명이 공중에 떠 있는 모습을.
아니다.
사람이 공중에 떠 있을 수는 없다.
정확히는 보지 못했지만, 그것은 공중에 매달려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헉……. 헉…….”
“많이 놀라셨나 봅니다, 의원님.”
그리고 자신만 있었던 복도에서 웬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것도 낯선 목소리가 아니었다.
너무 충격을 받아 누군지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분명 자신이 들었던 목소리였다.
익숙하진 않지만 과거 언젠가 들어 봤던 목소리.
과거랄 것도 없었다.
그와 만났던 것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일이었으니깐.
“다……. 당신은…….”
“방으로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시죠.”
* * *
“신기한 일이네. 거, 참.”
“그러게 말입니다. 결국 이 사람이 조규만 의원을 죽이고선 자신도 자살한 걸까요?”
“일단 가시적으로는 그렇다고 봐야겠지? 근데 조규만 그 사람도 자살한 것처럼 되어 있었잖아?”
“그럼…….”
탁민호 경사의 추리도 여기에서 벽을 만난 것 같았다.
사실 그가 강력계로 옮긴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
2년 선임인 유순주 경위는 이런 사건만 수두룩하게 맡아 보았을 것이다.
아직 유순주 경위가 답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 사건은 그도 확신하지 못하는 듯했다.
현직 국회의원의 자살, 그런데 알고 보니 타살 증거가 조금 나온 상태였고, 그리고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이 용의자는 김현진, 조규만 의원의 비서였던 사람이었다.
그의 죽음 또한 자살처럼 보이기는 했으나, 또 모를 일이었다.
조규만은 유서라도 있었는데 이자는 그런 것도 없었고.
“오랜만에 연쇄 살인 사건인가? 허허.”
“참, 선배님도……. 설마요.”
이렇게 대답은 하긴 했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애초부터 돈 때문에 시작된 일이라고 보자면 위험할 수 있는 사람은 유현덕이 유력했는데, 용의자로 지목됐던 김현진이 먼저 죽어 버렸기에 상황은 더 꼬인 것 같았다.
뭔가 하나씩 풀려야 하는데…….
“신기한 사건이네……. 아니면 아주 단순한 사건이거나.”
“단순하다면…….”
“김현진이 조규만 의원 뒤통수를 치면서 돈을 가져갔다며. 그러면 돈은 김현진이 가지고 있었을 테니 그 돈을 노린 것일 수도 있겠고…….”
“하지만 김현진이 그 돈을 가지고 있단 걸 아는 사람이 없잖습니까?”
“없는 것 같긴 한데, 있었을 수도 있지.”
짚이는 곳이 아직 없었다.
조규만과 김현진 외에 다른 누군가가 그 돈을 알고 있다?
“혹시…….”
“혹시?”
유순주 경위는 단서만 던질 수 있을 뿐이었다.
보통은 범인 특정이 쉬운데 이 사건은 자신이 처음부터 맡았던 건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제대로 사건의 전후 관계가 확 들어오지가 않았다.
후배 탁민호 경사가 담당이었고, 그가 발견하기를 기대해야 했다.
“애초부터 돈이 걸려 있던 것이 아니었을 수 있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야?”
“글쎄요……. 원한 관계라든지.”
“그러니깐 무슨 원한 관계?”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만약 이때 탁민호에게 김윤지가 가지고 있는 사진들이 있었더라면, 아니면 봤던 기억이라도 있었더라면 알아챌 수도 있지 않았을까.
조규만과 김현진이 S 아카데미 폭발 사고를 일으키기 위해 접촉한 제3의 인물이 찍혔던 사진을 아직 그는 알지 못했다.
“아니에요.”
“이 사람아, 증거가 있는 걸 좀 찾아봐. 지금 상황에선 외통수야. 용의자가 심적 부담감으로 자살했다고 처리할 수밖에 없어. 뭐, 그게 전부라면 다행이겠지만, 조금 미심쩍단 말이지.”
“네, 선배님.”
* * *
“으악!”
숨이 막힐 것 같았는데, 일단 눈을 뜨고 죽은 사람이 내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 없던 힘이 솟아났다.
아니, 조금 이상하게 들리겠지.
죽은 사람이 목을 조르고 있었다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눈앞에 나타난 조규만의 얼굴은 반쯤 썩어 가고 있었다.
죽은 지 며칠 지났으니.
놀람, 당혹감, 그리고 두려움으로 내가 손을 뻗어 그의 몸을 밀쳐 냈을 때, 그는 마치 그 자리에 애초부터 없던 것처럼 사라졌다.
연기라도 뿜으면서 ‘펑’ 하고 사라질 줄 알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헛것을 본 것처럼.
“헉……. 헉…….”
하지만 숨이 막혔던 것은 현실이었다.
목이 졸려서 숨을 쉬지 못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가위를 심하게 눌린 것인지는 모르지만.
가쁜 호흡을 몰아쉬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방을 불안한 마음으로 두리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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