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86화.
“너무 벌리는 것 아냐?”
김윤지의 눈이 또다시 휘둥그레졌다.
그럴 만하겠지.
현재 성공 대입학원은 꽤나 안정적으로 그녀의 지휘하에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하나의 학원을 운영하는 것에 있어서도 종종 어려움을 느끼던 그녀였기에, 내가 방금 말한 구상은 너무 거대해 보였을 것이다.
내가 생각해도 좀 거대했다.
이걸 내가 혼자 어떻게 다 운영을…….
“벌리기는요. 이제까지 매출에 비해 너무 소규모로 운영을 해 오긴 했어요. 기업 공개도 어떻게 성공했는지 모를 정도로.”
“그거 운영은 다 어떻게 하려고? 가능하긴 해?”
“학원 운영을 제가 하나요, 뭐? 그건 다 전문가들이 해야죠. 하하.”
“있어?”
학원 운영의 전문가라…….
사실 인선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강사들이야 S 아카데미와 계약했던 강사들 중 일부를 지방으로 보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운영하는 주체는 따로 있어야 했다.
지원재 실장이 열 명 정도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나에게 지원재는 한 명이었다.
“아뇨. 이제 찾아봐야죠.”
목소리가 작아졌네.
이건 김미연 부회장을 통해 한성 그룹 쪽을 알아보면 좋을 것도 같았다.
김윤지에게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머릿속에만 담고 있고, 그녀에게는 일단 강사 지원을…….
“성공 대입학원 인수할 생각은 없어?”
“네?”
응?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외삼촌도 이제 없고. 외삼촌 있을 때도 여기 관련해서는 다 내 앞으로 돌린 상태라서 이제는 마음대로 처분이 가능해.”
“그걸 어떻게 인수해요……. 혹시 돈 필요해요, 누나?”
그리고 날아온 주먹.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어서 맞을 일은 없겠다 생각했는데, 꽤나 먼 거리를 정확히 날아와 내 이마에 꽂혔다.
“아이고.”
“돈이 필요하다니. 나 돈 충분히 있다, 야.”
“그렇다고 때릴 것까지는 없잖아요. 그냥 운영하시면 되지 왜?”
그녀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도 아차 싶었고.
내가 그리 느낄 것까지는 없지만, 그래도 그냥 그 학원을 운영하라는 말은 하지 말걸 그랬나.
“그냥. 일하기 싫어졌어.”
이제는 죽어 버린 조규만 의원이 그녀에게 넘기고 간 학원.
예전 신성 학원과의 경쟁에서 밀릴 때처럼 경영 상태가 안 좋지는 않았다.
그때는 무리하게 여기저기에서 강사를 데려오느라 현금 흐름이 안 좋아졌던 것이었고.
조규만의 국회의원 준비로 나가고 나서 김윤지 원장 체제에서는 철저하게 안정적인 운영을 했기에 지금은 완전히 자리를 잡은 상태.
김윤지는 확실히 그런 면에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조규만이 운영하던 학원, 그가 쓰던 강의실에 계속 있고 싶지는 않은 걸까.
“아, 미안해요. 누나 사정은 다른데 괜히 우리 회사 이야기했나?”
“아냐. 그런 의미가 아니라, 정말로 인수할 생각 있는지 물어본 거야.”
“글쎄요. 지금 운영 중인 학원을 인수한다는 건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요.”
“생각해 보고 말해 줘. 하긴, 잔뜩 늘어난 학원들 운영할 사람 구해야 하는데 우리 학원까지 넘겨받으면 더 고민이겠네. 능력도 없는데 말이야.”
“헐.”
이렇게 말하면서 한쪽 눈을 찡긋하는 그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사람이 죽는 건 정말 한순간이란 것도 깨달았고.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에 김윤지가 함께 있었다.
나에게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
그녀에게 나란 사람은 어떤 존재일까.
앞에 놓여 있는 커피 잔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 그녀를 보며 문득 든 이런 생각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지 그녀는 알까?
“누나, 그건 그렇고, 우리 여행이나 갈래요?”
“뭐? 대답은 안하고,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
“진짜로요. 바람이나 쐬고 오죠?”
내가 왜 갑자기 여행을 제안했냐고?
자신의 외삼촌에게 사업상의 목적으로 납치당하고, 그리고 그 외삼촌이 자살을 했다는 소식에, 자살이 아니라 타살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내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그런데, 만약 저게 내 이야기라고 한다면 나는 지금 그녀처럼 태연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미쳤냐?”
헐. 이런 반응.
하지만 정말로 날이 서 있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오히려 ‘진짜?’ 이런 반응?
“그냥 편안하게, 아무 생각하지 말고 멀리 다녀오는 거예요. 1박 안 해도 되고요. 당일치기나, 아니면 밤새고 오는 거죠.”
“뭐? 1박?”
“부담되면 당일치기……. 아! 또 때리네.”
손버릇이 별로 좋지 않구나.
그녀를 알면 알수록 깨닫는 새로운 모습들.
“됐습니다, 유현덕 선생님. 생각은 고마운데 제 타입 아니에요.”
“누나도 제 타입 아니…….”
하지만 말을 끝내지 못했다.
재차 날아온 그녀의 주먹을 날렸고, 나는 그걸 피하려다 앞에 놓여 있던 녹차를 쏟았거든.
허겁지겁 내 다리로 쏟아진 녹차를 닦으면서 우리는 모처럼 편안하게 웃었다.
제3강 공포 특급
“야! 뭘 이렇게 많이 싸 왔어? 당일치기라니깐?”
“정확히 말하면 밤샘이죠, 밤샘. 당일치기는 해 지면 오는 거고, 이건 해 지고 나서 동 튼 다음에 오는 거니까요. 흐흐.”
하지만 또 주먹을 뒤통수에.
장난스럽게 던져 본 대화가 실현이 되다니.
꿈만 같았지만, 다른 생각은 없었다.
아니, 다른 생각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 뒤로 계획을 세우면서 몇 번 더 맞아 본 주먹 탓에 그런 것보다도 살아서 돌아올 걱정이 우선이 되어 버린……. 흑.
내가 챙긴 건 별것 없었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가 본 적이 없어서 자칭 여행 전문가인 유환 선생님에게 팁을 조금 받아서 챙긴 짐들.
차도 좁을 듯싶어서 렌트까지 하고.
“차는 또 이게 뭐야. 크기만 하고.”
“크면 좋은 거죠. 이거 짐들 다 넣어야 하니깐 좀 도와줘요, 누나.”
“이래저래 번거로운 사람이네. 그냥 바람만 쐬고 온다더니만.”
내가 고르고 골라 즉흥적으로(말이 이상하긴 하지만 열심히 골라서 바로 결제까지 끝내 버렸다) 선택한 곳은 시 근교에 있는 무성산 산장이었다.
원래 바다를 가고 싶었으나, 여기는 내륙이라 바다를 다녀오려면 하루 가지고는 부족할 것 같았다.
그리고 동이 트면 돌아오기로 정했기에 바다보다는 차라리 산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고.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렸을까?
멀리 목적지인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거기까지 가려면 아직 산 두어 개 정도는 지나가야 할 것 같았지만.
“그나저나 여기는 어떻게 알고 고른 거야? 인터넷 찾아봐도 안 나오던데?”
“전에 인터넷에 무료로 강의 올릴 때, 학생 한 명이 댓글을 달아서 메일까지 주고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그 친구가 무성산 초입 마을에 산다고 하면서, 자기네 동네에는 학원이 없다고 고맙다고 했어요.”
“뭔 소리야, 그건. 그래서 그 애 만나러 가는 거야, 지금?”
이 사람이. 남녀가 여행을 가는데 학생 만나러 가야 되겠는가. 사람 참.
“아뇨. 그게 아니고, 무성산이 좋다고 해서요. 시원하고 산세도 적당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을 만한데 그렇지가 않다고요.”
“많이 찾지 않으면 이상한 거 아냐? 사람 없어서 간다고?”
“일단 가 보시죠. 저도 처음 가 보는 곳이니.”
“널 뭘 믿고 가냐.”
“그러면서 잘 따라오고 계시면서요. 하하.”
산장은 그러면 어떻게 찾았냐고?
사실 무성산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인터넷을 찾는데 제대로 된 숙소가 거의 보이질 않았다.
다 너무 오래되어 벌레가 들끓을 것 같은 모습.
아니면 깔끔한데 연락을 하면 문을 닫은 곳이거나 했다.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이미 장소를 정한 것이기에 열심히 뒤적이다 한 곳을 찾았다.
지금 가는 곳.
이름도 산 이름을 그대로 딴 무성 산장.
김윤지의 첫 반응은 조금 긴장한 것처럼 보였다.
“좀 으스스한데? 무성 산장. 무슨 귀곡 산장도 아니고.”
“귀곡 산장이요? 귀곡 산장 그거 엄청 오래된 거잖아요.”
“알긴 알아?”
“들어봤죠. 우리 부모님 세대……. 윽.”
그렇게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무성산 입구에 다다랐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해 준 대로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와서 맞닥뜨린 무성산.
생각보다 거대한 산세였다.
아니면 그곳에서만 그렇게 보였을 지도.
일단 경사가 워낙 가팔라 산꼭대기가 보이질 않았기에 그렇게 느낀 것일지도 모르지만.
“야! 뭘 이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왔어!”
“다 들고 가야 해요. 하나도 남김없이.”
짐이 조금 많았는데, 이건 왜냐면 무성 산장 관리인 아저씨가 산장 안에 이불조차 없다고 해서였다.
무슨 산장에 이불도 없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 무슨 그런 산장을 골랐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큰 배낭 안에 구겨 넣은 것들, 그리고 그 위로 쌓은 침낭까지, 어께에 메자 무게가 족히 군장 무게를 훌쩍 뛰어넘었다.
“윽. 아이고.”
“네가 오자고 했으니깐 다 들어!”
그녀는 슬쩍 내가 멘 가방을 드는 척하더니만 무게를 느끼고는 이렇게 말했다.
어쩔 수 없지.
달리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면.
벌써 후회 중이지만, 정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산장이라 차가 직접 올라갈 수는 없고, 등산로를 따라 15분 정도 올라가야 했다.
등에 실린 무게 때문에 내 발걸음은 거의 기어가다 시피 느려졌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심장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들지 않고 앞서 길을 오르는 김윤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올라갔다.
“경치는 좋네.”
“경치가, 헉헉, 보여요? 헉헉.”
가쁜 숨을 내쉬며 산장에 다다랐을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경치 따위를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유 있는 모습으로 말했다.
“보기보다 길은 험하지 않아서 좋구먼, 뭘.”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장 문으로 들어가 버렸다.
내가 정말 이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을 때부터, 그리고 여행지로 이곳을 선택했을 때부터 기대했던 모습은 이건 아니었는데.
가장 어이없었던 것은, 그렇게 온 힘을 쏟아 가며 침낭까지 메고 왔지만 막상 산장 안에 침구가 버젓이 있었다는 사실.
“뭡니까! 전화로는 침구 전혀 없다고 하셨잖아요!”
“허허. 전화 받고 급히 찾아봤더니 몇 개 있더라고. 침낭 가져왔으면 그걸로 써요. 우리 이불들은 오래 돼서 좀 그래.”
사람 좋아 보이는 관리인 할아버지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버린 내 상태를 보고 재밌는 듯 ‘허허.’거리며 말했다.
젠장, 나는 죽을 것 같은데.
“빨리 와!”
“네!”
나도 짜증이 나서 소심하게 대답을 하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올라간 우리 방.
우리 방? 어감이 조금 그렇기는 하다만, 애초에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여기에서 잠을 잘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남녀 일은 모른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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