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82화.
흥분했나? 그랬던 것 같다.
굳이 감정을 드러낼 이유도, 필요도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요즘 따라 예민한 일들이 많이 생겨서 아무래도.
어쩌면 지원재 실장이 나의 이런 상태를 정확히 파악한 것일 수도…….
아무튼 지금 맥스스쿨, 교육방송, S 아카데미, 그리고 조규만의 제안으로 시작해 진행 중인 교육 복지 사업까지.
애초의 계획은 이러했다. 맥스스쿨의 1타 강사들 기를 죽이거나 길들이기 위해 교육방송에 추천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신규로 진입하는 강사들을 키우기 위해, 그리고 기회를 줘 보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
그래서 현재 추천을 받고 교육방송에서 촬영을 마친 강사들은 인강에 나가지 못하는 기존 맥스스쿨 실강 선생님들이었고.
그들이 교육방송 계약을 끝마치면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맥스스쿨로의 복귀, 또는 S 아카데미와의 신규 계약.
1차로 촬영한 강사들 대부분이 이미 S 아카데미와 계약을 마치고 준비 중이었다.
물론 갑작스런 폭발 사고로 촬영실이 날아가 버려서 조금 지연되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맥스스쿨 1타 강사들은 지금 자신들에게 그 교육방송 홍보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이렇게 이미도 원장에게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다.
화가 날 수밖에 없지.
“죄송합니다. 조금 흥분했네요, 제가.”
하지만 화를 내서 뭐하랴.
대화로 풀어 나가야지…….
내가 만약 정말로 화를 내고 이들과 싸운다면, 내가 나쁜 놈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야지.
갑작스레 폭발한 나를 보고 이들의 분위기도 살짝 누그러진 듯했다.
이미도 원장은 여성이고, 나는 남성이라 반응이 다른 걸까.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들을 겪었는데…….
남녀 차별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왠지 모르게 그런 경향들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남자 선생님을 대할 때와 여자 선생님을 대할 때의 학생들의 태도 차이.
“아, 아닙니다. 맞는 말씀이신데요, 저희도 그 기회를 동등한 입장에서라도 받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던 강사가 차분하게 말했다.
다른 강사들 표정을 보아하니 하나는 착한 인상에 표정도 많이 험하지 않았고, 나머지 둘이 아직도 인상을 구긴 채로 서 있었다.
인상 가지고 사람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편안한 인상이 좋지.
“알겠습니다. 이해합니다. 기분도 상하셨을 것 같고요. 거기에 오늘 저 같은 어린 녀석까지 갑자기 나타나서 더 기분 상하셨을 것 같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선생님.”
“이 일 때문에 부르신 거예요, 이미도 원장님?”
“네. 호호. 젊은 분들끼리라면 조금 대화가 통할까 싶었어요.”
간신히 누그러뜨려 놓은 분위기를 다시 망칠 셈인가…….
이미 험한 인상의 강사 둘이 이미도 원장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인 양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앞에 있던 커피 잔을 들었고.
여유야, 아니면 전보다 감을 잃은 거야?
곧 그녀의 이어진 말로 그것이 여유라는 것이 드러났다.
“선생님들, 방금 오신 분께서 실질적인 맥스스쿨 최대 주주이십니다. 그리고 S 아카데미 대표이기도 하고요. 저야 이분 뜻에 따라 맥스스쿨을 운영해 왔던 것인데, 그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에 해결도 유 대표님께서 직접 하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 오늘 이 자리에 모신 겁니다. 허심탄회하게 저에게 했던 이야기들, 못했던 이야기들까지 털어놓아 보셔요.”
그녀는 방금 전 상황을 즐기고 있었던 것인가?
내가 말은 저렇게 강단 있어 보이게 했지만 사실 엄청 위축됐었는데.
그리고, 뭐?
해결을 하라고?
이쯤에서 보통 이런 일이 있을 때 나와 함께 다니는 지원재가 어디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는 지금 한성 그룹 직원들과 S 아카데미 건물을 알아보러 가 있거든.
그래서 이곳에는 같이 오지 않았다.
맥스스쿨 일이라면 그가 큰 도움이 됐겠지만, 그래도 이미도 원장 체제로 넘어간 이후 어떻게 바뀌었을지 몰라 괜찮을 줄 알았다.
지금 그가 있었다면 뭔가 이 강사들을 살살 잘 달래 주면서도 우리 계획을 관철시킬 수 있었을 텐데.
“뭐, 지금 대표님은 이미도 원장님이십니다. 저는 전적으로 원장님 의견을 따르는 편이고요.”
이 대답이 조금은 실망스러웠을까?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내가 이제껏 보여 줬던 것과 같은 통통 튀는 방안을 기대하는 것 같기는 했다.
그녀의 눈초리가 가늘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내 저런 대답에 아무 대답도 없이 기다리고 있었고.
“저, 그러면 강사님들이 원하시는 것은 교육방송 계약인가요?”
어쩔 도리가 없었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는 것도 나의 장점이기는 하다만, 그 계획이 생각해 보면 계획대로 진행된 적이 별로 없었지.
그렇게 따지자면 내 임기응변 능력도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흐름을 타자, 흐름을.
“저희가 원하는 것이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일단은 교육방송 강의 추천을 받지 못하는 것이 억울합니다.”
억울해서 어쩌라고. 그게 운영진 정책인데.
이렇게 말하면 대놓고 파토 내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겠지.
“원하는 것들 지금 다 말씀해 주세요.”
“지금요? 정리를 해야…….”
“여기까지 오셨으면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희도 들어 보고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인지 답변을 드리죠.”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
이들이 원하는 것은 여러 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교육방송 계약을 통한 홍보 효과는 1타 강사들이 공개적으로 배제된 것이기에 트집 잡기 용이했고.
그래서 교육방송을 거론하며 항의를 하는 것이겠으나, 원하는 것은 사실 돈이겠지. 더 많은 돈.
하지만 이 강사들은 자신들이 벌고 있는 돈을 조금 더 벌기 위해 후배들의 기회를 가져가려는 것이다.
썩 유쾌한 발상은 아닌데.
그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1타들의 자존심이려나?
“일단은 교육방송 추천을 동일한 조건으로 해 주시면 충분합니다.”
오호라.
교육방송 추천만 동일한 조건으로 해 달라는 요구.
이게 사실 들어주기 제일 어려운 것이기는 했다.
동시에 내 계획의 약점이기도 했고.
지금 이들의 항의는 분명히 일리가 있었다.
1타든 아니든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을 해야 하는데, 이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도 교육방송 진출 기회를 가지고 싶은데 의도적으로 추천 대상에서 메인 강사들은 전부 배제되고 있는 상황이니.
단순하게 계약금을 올려 달라는, 또는 사이트 메인 홍보를 더 자주 올려 달라는 요구 사항과는 급이 달랐다.
기회의 균등이라. 이거 재밌겠는 걸?
“이유를 알고 싶은데요?”
“무슨 이유 말씀이십니까? 교육방송 추천의 기회를 동일하게 달라는 것의 이유요?”
“네, 그 이유 말입니다.”
“유현덕 선생님, 여기 있는 강사님들 전부, 그리고 오지는 않았지만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맥스스쿨 강사들은 그냥 지금 자리에 올라선 것이 아닙니다. 밤을 새고 몸까지 상하면서 피나는 노력 끝에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너희들은 이미 성공했으니 다른 사람들 기회도 주자, 강제적으로라도’라고 말하면 이해를 해 줄까요? 선생님께서도 엄청난 노력을 들여 맥스스쿨의 대주주, 그리고 S 아카데미의 대표까지 된 것 아닙니까.”
확실히 말로 하는 직업군의 최정상에 위치한 사람이라 말발이 장난이 아니네.
그런 의미에서는 나도 다를 것이 없긴 했지만, 그래도 놀라운 것은 사실이었다.
주현필, 이미도 원장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 할까?
“교육방송 추천이라…….”
어차피 추천해도 선택하는 건 그쪽에서 할 일이잖은가.
게다가 우리 계획에 윤주환 교육방송 사장도 동의를 한 상황이니.
이들이 이리도 그것을 원한다면 굳이 이렇게 싸울 일은 아니었다.
이미도 원장을 봤다.
그녀는 딱 ‘이번에는 어떻게 해결할 거지?’ 하는 표정.
“저, 맥스스쿨 선생님들 성함을 아직 몰라서요. 좀 알 수 있을까요?”
“우지훈입니다.”
“조병태, 김원준, 차재원이고요.”
말 잘하는 사람이 우지훈이구나.
왠지 내가 데려가고 싶은 사람.
사람이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건 순간에 이뤄지는 일이라고 했다.
참, 오해는 하지 말고. 난 남자에게는 관심이 없다.
순수하게 경영자의 입장에서 호감 가는 강사……는 개뿔.
아무튼 왠지 이 정도로 강단 있게 자기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많지 않으면 보일 때 잡아야 한다.
이 자리에 지원재 실장이 있었더라도 그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이거, 유현덕 선생님 완전히 푹 빠지신 것 같은데요?”
“네?”
무슨 소리를…….
“우지훈 선생님 말씀 잘하시죠? 호호.”
이 말에 나와 우지훈, 둘 모두 이미도 원장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말씀 잘하는 건 그렇다 쳐도, 푹 빠졌단 건 또 무슨 말인가.
그녀는 별다른 반응 없이 우리 표정을 보면서 그냥 웃고만 있었고.
“유현덕 선생님 처음 만났을 때와 참 비슷해요, 우지훈 선생님은.”
말을 잘해서?
하긴, 나도 처음에는 이렇게 당돌해 보였겠지, 그녀에게는.
슬쩍 그를 보니 그도 나처럼 ‘무슨 소리요’ 하는 표정.
“왜 그런 말씀을…….”
“아, 미안해요. 호호. 그냥 두 분 이야기하는 것 보니 몇 년 전이 떠올라서. 그래서 유현덕 선생님 생각은 어떠셔요, 직접 들어 보니?”
“지금 맥스스쿨에서 교육방송으로 가시는 선생님들 계약 방식이 어떻게 되죠?”
“교육방송에서 인원 나오면 그 인원 수 맞추어서 추천 리스트 보내요. 그 뒤 나머지 계약은 그쪽에서 알아서 하고요.”
“계약 기간은 1년만인가요?”
“더 긴 계약을 원한다면야 가능하긴 하지만, 일단 1년으로 통일해서 하는 것으로 알고 있네요.”
내가 알고 있던 사실의 재확인.
굳이 아는 내용을 다시 물어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 건 여기 있는 강사들에게 상황을 들려주기 위함이다.
이런 조건으로 계약하고 있고, 그리고 이제 내가 이야기를 꺼낼 부분을 그들도 받아들일 수 있는지.
“1년 이상 한다는 분은 없는 거죠?”
내가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하자, 이미도 원장은 바로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었고.
“돈이 안 되니깐. 거기는 강사마다 차등 없이 1년에 한 번, 30회 강의 촬영이에요. 그리고 그 30회에 1억. 계약 기간 동안에는 사교육 업체에서 실강, 인강, 과외 모두 안 되고요.”
맥스스쿨 1타에 들어가지 못하는 강사들, 인강 메인에 오르지 못하는 강사들의 입장에서는 홍보 효과를 노리고 1년 수입 버리는 셈 치고 하는 일이다.
하지만 연간 수십억을 버는 사람들이 이 조건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단순히 홍보 효과를 위해서?
물론 미래를 본다면 하는 것이 맞다.
앞으로 수년 간 수능시험의 교육방송 수능 강의 연계 율이 오를 것이기에.
이만한 홍보 효과는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아무리 1타 강사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면 그만한 노력을 해야 하고.
하지만 아직 교육방송은 태동기다.
수십억의 수입을 버리면서 교육방송의 계약에 얽매이는 도박을 이들이 과연 받아들일 것인가.
그녀의 말이 끝나고 나서 나는 이 강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미 조건은 알고 왔겠지만, 아마 따로 강의를 뛰거나 할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 부분은 혹시 거기 사장님과 협의를 해 보실 순 없으십니까?”
이번에는 우지훈이 아니라 조병태였다.
그리고 질문의 수준은 우지훈과 달랐고.
아니, 너무 빠른 판단이려나?
“어떤 부분 말씀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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