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81화.
제2강 경험은 언제나 소중하지.
“선생님, 엄마가 이번 달까지만 다니고 다음 달부터는 집에서 하래요.”
“위험하다고 오늘 인사만 드리고 오랬어요.”
이런 젠장.
폭발 사고까지 일어난 장소에서 계속 강의를 한다는 것이 우려스럽긴 했지만 당장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주현필이 매일 오전 강의가 없는 시간에 건물 구매를 위해 돌아다니고는 있었지만 쉽지 않은 일.
대부분의 매물들이 이미 임대 계약이 되어 있어 방법이 없었다.
급한 대로 불이 났던 신성 빌딩을 보수해서 강의실을 열었지만, 학부모들의 불안은 곧바로 수강생 감소로 이어졌다.
이건 내가 신성 학원에 근무를 막 시작했을 때의 찌라시 사건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미래 학원을 계속 빌릴 수도 없잖아.”
“성공 대입학원은요?”
“거기는 원래 그쪽 학생들로 꽉 찬 학원이고…….”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사실 S 아카데미 건물만이라도 빨리 확보가 되면 신성 학원을 그리로 옮길까 생각했겠지만, 김미연 부회장과 통화를 해 보니 그쪽에서 알아보는 건물은 사실상 실강이 불가능했다.
강의가 불가능한 건물을 사서 뭐 하냐고?
전적으로 보안이 유지된 상태에서 S 아카데미의 강의 촬영과 서버 관리, 편집과 홍보를 위한 장소를 만들 계획인 것 같았다.
한성 에듀가 그런 시스템으로 운영이 되는 중이었고.
하긴, 지난번 같은 사고가 한 번 더 일어나면 그때는 정말 되살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주주들을 안심시킬 필요도 있었다.
“자금 상황은…….”
“괜찮아. 이쪽은 곧 적자투성이가 되겠지만 맥스스쿨이 건재해서 아직까지는.”
“선생님 자리 위험해지는 것 아닙니까?”
“이 새끼가…….”
주현필의 자리가 위험해질 리가.
언제든 맥스스쿨로 불러올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신성 학원을 이 상태로 놔두고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이고, 지금 맥스스쿨의 경영 상태는 나도 정확히 잘 모른다.
이미도 원장이니까 잘하겠지 하는 기대감 빼고는…….
아무튼 이 일을 해결해야 할 텐데…….
“선생님?”
“왜? 또 맞고 싶냐?”
“아뇨. 저기……. 혹시 신성 학원도 임시로 인강 중심으로 돌려놓는 것은 어떤가요? 아니면 맥스스쿨 강좌를 신성 학원 실강생들에게만 열어 주는 건……. S 아카데미 강좌 열어 드릴까요?”
갑자기 또 떠오른 생각.
신성 학원은 전형적인 동네 내신 중심 학원이었다.
물론 내가 몇 년 전 제안하고 시작했던 재수 종합반 인원이 있었지만, 그래도 중심은 내신 시장.
S 아카데미 강의의 상당수도 내신 시험 대비.
이렇게 하면 임시로나마 유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혹 신성 학원이 신성 빌딩에서 다른 건물로 이전한다 할지라도 기존의 학생들을 잡아 둘 수 있지 않을까.
“좋은 생각이긴 한데, 아직 그 단계까지는 고려할 때가 아니 것 같아.”
주현필, 이 사람은 참 결단력 있고 단호한 사람인데 이런 일에서 방향을 조금 엉뚱하게 잡는 경향이 있었다.
그는 지금의 원생 수 감소가 사고로 인한 일시적 감소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는 상황은 달랐다.
말은 편하게 했지만 이대로 놔뒀다가는 망하는 건 순식간.
성은 쌓는 것보다 무너뜨리는 것이 훨씬 쉽고 빠르다.
“이미도 원장님과 한 번 상의를 해 보시는 건 어때요?”
내가 바로 물러서지 않자 그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이제 와서 신성 학원이 잘되든 망하든 나에게 별 영향은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처음으로 시작한 직장이었다.
웬만하면 잘되는 것이 망하는 것보다 낫겠지.
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영상 통화용 모니터를 켰다.
서울에 있는 이미도 원장님과 통화하기 위해서.
주현필이 내 등 뒤로 작게 말했다.
“뭐, 따지고 보면 너도 맥스스쿨 대주주 중 한 명이기는 하네.”
내가 대주주인데 주현필의 눈치를 자꾸 보게 되는 건, 혹시라도 맘대로 했다가 한 대 맞을까 봐 그런 것이겠지.
잠시 뒤, 화면에 이미도 원장의 얼굴이 나타났다.
맥스스쿨로 올라가고 나서는 강의를 직접 하지 않았기에 바로 연락이 됐던 것이었다.
“안녕하셨어요, 원장님?”
-바로 며칠 전에 보고서는. 무슨 일이에요, 유 선생님?
며칠 전 조규만 의원의 장례식에서 얼굴을 보긴 했었지.
슬쩍 주현필의 표정을 살폈다.
아직 이미도 원장은 지금 신성 학원의 사정을 모르는 것 같았고.
알았다면 바로 그 내용을 꺼냈겠지.
“저, 이건 주현필 부원장님께서 직접 설명을 해 주시는 게…….”
“알았다고. 어휴. 원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주현필 부원장님.
“다름이 아니라, 신성 빌딩 사고 후로 그만두겠다는 원생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꽤 반응이 빠르네요?
예상했다는 눈치. 별로 놀라지도 않는 모습.
이게 바로 이미도 원장의 관록이지, 암.
그리고 다음은?
-어느 정도나 빠지고 있죠?
“오늘 하루만 대략 10% 정도입니다.”
헐. 그 정도로 많은 줄은 몰랐다.
오늘이 사고 후 미래 학원에서 임시로 첫 수업을 하는 날인데, 10%라면 내일은 그 이상으로 빠질 것이다.
누누이 말하지만 사업의 성공과 실패는 일정한 수준으로 차근차근 발생하지 않는다.
어떤 변곡점이 생기면, 예를 들면 어제 사고와 같은 그런 사건들, 그러면 한순간에 쏟아져 들어오기도, 밀려 나가기도 하는 것이 이 시장인데.
어쩌려고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고 나가는 원생들을 보고만 있었던 건지…….
-생각보다 빠르군요. 오늘 바로 학부모님들께 안내 공지 돌리세요. 맥스스쿨의 강의 중 내용이 겹치는 부분들을 공개하겠다고요. 그리고 유현덕 선생님도 조금 도와줬으면 하는데…….
당연히 이게 제대로 된 안정화 수순이지!
“네. S 아카데미 강의도 일부 공개로…….”
-아니, 그게 아니고요. 서울로 내일 올라와 줄 수 있어요?
어라? 내가 생각했던 이야기가 아니었나?
“서울이요?”
-네.
“갈 수야 있는데, 무슨 일로요?”
-여기 정리를 좀 도와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나에게 맥스스쿨 운영과 관련하여 뭘 부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정리를 도와 달라고?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맥스스쿨에도?
“내일 올라가겠습니다.”
* * *
원래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들 하지 않는가.
요즘 내 상황이 딱 그 말에 어울리는 경우였다.
S 아카데미의 주가는 훅 떨어지고 나서 횡보를 하는 상황.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강의를 개설하지 못하는 기간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참에 이전부터 염두에 두고 있던 공무원 시험 시장도 진출을 해 버릴 생각이었고.
맥스스쿨은 몇 년간 별 일 없이 운영이 되나 싶었는데, 본사에 올라가 보니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도대체 어느 학원에서 1타 강사들을 이렇게 무시한단 말입니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거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이미도 원장이 있는 원장실에 가 보니 강사들 네 명이 그녀의 앞에 서서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의외로 침착했고.
좀 웃긴 장면이기도 했다.
그녀는 미소를 띠고 있었으니.
“안녕하세요.”
내가 조용히 인사를 하며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다들 내 쪽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당신은 누구야? 지금 어른들 이야기하고 있는 것 안 보여?”
강사 중 한 명이 저렇게 말을 하며 다가왔다.
무슨 이유에서 화가 났는지는 모르지만 예의도 없는 사람 같으니라고.
곧바로 주총 당시 내 얼굴을 기억했던 다른 한 명이 방금 말한 강사를 막아서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유현덕 선생님.”
이 사람 얼굴은 주총 때 봤던 기억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나머지는 전부 처음 본 사람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자 나에게 초면에 반말을 하면서 다가오던 남자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순간이었지만 확실히.
“저도 오랜만에 뵙네요. 여기 자주 오는 것이 아니라 서요. 하하.”
“선생님들께서 요구하시는 내용은 저 혼자 판단하여 결정할 것이 아니라고 판단해 유현덕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괜찮으시겠죠?”
내가 이 자릴 와서 뭘 하겠냐 싶었으나, 방금 전까지 그녀에게 소리를 질러가며 따져 대던 사람들의 분위기가 빠르게 가라앉는 모습을 보니 또 필요했던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돈의 위력을 느낀 경우는 거의 처음인데…….
뭐 별것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이미도 원장의 말에 다들 대답이 없었다.
사실 그들의 상황도 딱하긴 했다.
뭐 때문에 이렇게 흥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여기에 개입하면 아무래도 대주주의 입장에서 상황을 판단하지 그들의 입장을 돌아보기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이것을 알고는 있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절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것일 테고.
“무슨 일인데요, 원장님? 다들 앉아서 이야기하시지, 왜 서서…….”
“그럼 오신 김에 전부 다 말씀드리죠. 유현덕 선생님께서는 지금 맥스스쿨에서 교육방송 지원을 하고 있다는 것 잘 아시겠죠?”
알다마다. 내가 그렇게 하자고 결정을 내렸던 것인데.
원래 당신들이 아니라 S 아카데미로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조규만 때문에 일이 맥스스쿨로 넘어갔지만.
“잘 알고 있습니다만…….”
“교육방송은 강사 개개인의 홍보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아실 테고요?”
“네.”
“맥스스쿨 기존 1타 강사들은 지금 교육방송 지원에서 완전히 배재되고 있습니다. 이게 옳다고 보십니까?”
옳고 그르고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1타를 의도적으로 배재한 것이 아니라 교육방송 지원은 그들에게 큰돈이 되지 않으니깐 뺀 것인데.
1타 강사들 한 명 한 명은 1년에 강의비로 버는 돈이 수십억이다.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이미도 원장과 대치하는 사람들 넷의 연봉을 합치면 수백억이 될 것이고.
“그건 제가 제안한 건데요?”
불에 기름을 붓는 행위일까?
하지만 어차피 터질 일, 이번 기회에 썩은 풀들은 조금 솎아 낼 생각이었다.
나는 이들 전부의 연봉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이미 더 썩어 버린 상황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엄청 많이 버는 강사들 또한 여기 오기까지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겠지만, 그래도 지금 내 머릿속에는 자기 앞가림 못 하는 신규들을 키우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돈을 많이 벌면 나쁜 사람인가?
아니다.
하지만 돈의 노예가 되면 거리낌이 없어진다.
모든 일에 있어서.
그리고 그 모든 일에는 남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주는 일도 포함되어 있고.
조규만처럼…….
“뭐라고요?”
“선생님들께서 맥스스쿨에서 벌어 가시는 돈이 한 해에 각각 수십억입니다. 그리고 교육방송 강의 촬영으로 나오는 돈은 각 1억 정도이고요. 그러면 그 정도 일은 선생님들의 후배들을 위해 양보해 주실 수 있는 거잖습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맞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죠. 지금도 이렇게 많이 버시는 선생님들께서 교육방송 강의 나가신다고 맥스스쿨 강의를 줄일 것도 아니시잖습니까. 거기 출연하면 인지도 오르고, 그러면 선생님들 맥스스쿨 강의 수강생 늘어나고. 결국 이것 원하시는 거잖아요.”
“흥분하지 마셔요, 유현덕 선생님.”
이미도 원장의 제지로 정신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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