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80화.
어떻게 보면 주식 시장이란 것 자체가 구름의 면적으로 그 안에 들어 있는 물의 양을 계산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렵게 말했지만 요점은 결국 ‘신기루일 뿐이 아닐는지’ 라는 말이다.
500억을 그나저나 어떻게 투자를 해야 할지…….
“어디 마땅한 투자처라도 정해 놓으신 것 있으세요?”
“아뇨. 전혀 없습니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건물로 일단 넣을까 생각이에요”
다시 어이없어 하는 눈빛.
그렇겠지.
돈은 많은데 쓰거나 굴릴 줄은 전혀 모른다고 생각을 할 테니.
이제까지는 일부러 안 쓴 경향이 있었다.
맨 처음 종자돈으로 마련했던 땅 투자 외에는 건물이나 이런 부분은 쉽게 결정 내리기 어려웠다.
현금으로 들고 있던 것은 2000년대 말 다시 한 번 금융 위기가 올 것이기 때문.
물론 우리나라 부동산은 일본의 버블 경제가 무너질 때와는 다르게 굳건히 버틴다.
앞으로 이 500억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은 아마도 S 아카데미 전용 건물과 땅을 사고, 장비를 구입하고, 강사들을 스카우트하는 것이겠지.
당장 사고가 한 번 났던지라 강사들 몇은 벌써 계약 해지를 요구는 연락을 해 왔다.
엄청 빠른 반응이네.
“S 아카데미에서 사용할 건물 말씀이시죠? 그건 우리 쪽에서 알아봐 줄게요.”
“그렇게 해 주신다면야 감사하죠.”
“이번에는 보안이 철저한 건물로 해야 할 거니깐.”
그녀는 내 뒤에 서 있는 지원재 실장을 슬쩍 쳐다보고 말했다.
이건 질책 아닌 질책이었다.
보안 문제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부분인데.
생각을 해 봐라. 일개 학원 건물에 이런 테러가 가해질 거라고 누가 예상하겠는가.
물론 한성 에듀 건물은 1층 로비부터 경비원들이 여럿 있고, 각 층마다 전용 카드를 사용해야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한다.
이런 사고를 예상하고 그런 건 아니겠지만 철저한 것은 사실.
그리고 사고가 터지고 나니 부럽기도 했다.
돈을 가지고도 왜 쓰질 못하니, 현덕아.
“어느 정도나 걸릴까요, 그러면?”
“하루 이틀이면 돼요. 새로운 건물 알아보는 게 아니고 우리 쪽에서 가지고 있는 건물 중 한 곳으로 하면 리모델링도 수월하니까요. 강사들 분위기는 어때요?”
“문제없습니다. 하하.”
뜬금없는 웃음이라 그런지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동요가 없을 리가 있는가. 단순한 화재도 아니고 ‘폭발’인데.
촬영하다가 근처에서 터져 버리면…….
“돈만 주시면 우리 쪽에서 최대한 좋은 쪽으로 처리해 드릴 테니 유 대표님은 앞으로 사흘간은 조규만 의원 어떻게 할지 결정을 좀 내려 주세요. 뭐, 그래 봐야 그에게 다시 연락이 와야 할 수 있겠지만요.”
“저도 기다리는 입장이라, 뭐. 일이 깔끔하게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단 증거는 사본들이라도 저희 쪽에 넘겨주시고요. 혹시라도 딴생각을 품으면 곧바로 소송 절차 진행하도록…….”
“알겠습니다. 들어가서 바로 보내드릴게요.”
대화는 길지 않았다.
지원재 실장은 그녀와 만나기 전 했던 이야기를 꺼내길 기대했던 것 같지만 아직 그런 말을 할 시점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오늘 터진 일이다.
이 일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이후에 미국행을 고려하는 것이 옳겠지.
윤형진을 만나 봐야 하기도 했고.
엄청 긴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 *
그리고 딱 이틀은 아무런 일이 없었다.
어차피 건물 정리를 해야 했기에 임시로 미래 학원에서 강의를 진행했지만, 내 강의는 이제 하루에 두 개 정도.
사업이 커지면서 강의를 약간 줄여 놓았던 것이 이런 머리 복잡한 상황에서 도움이 컸다.
조규만에게서 언제라도 연락이 올 수 있었기에 강의 중에도 휴대폰을 올려놓았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다.
연락이 안 오면 그냥 경찰로 넘기면 되지.
한성 에듀에서도 나름 소송을 준비 중이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김미연 부회장과는 매일 아침저녁, 하루에 두 번씩 통화를 했다.
사고 당일 하한가 한 방.
말 그대로 시가의 30%가 사라져 버렸지만 별 감흥이 없었다.
내가 들고 있는 지분을 거기에 팔거나 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사실 부동산 등의 자산이 있으면 모를까 전혀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한 것이고, 연 매출액 기준으로 정해지는 가격이기 때문에 곧 제자리를 되찾지 않을까.
사재 출연 공시 내용으로 사고 다음 날은 하한가까지 가지는 않았다.
한성 그룹에서 지분을 더 확보했다는 소식도 전해지자 안정화되긴 했지만 곧바로 원래 가격으로 오르지도 않고.
김미연 부회장과의 통화 내용도 별것 없었다.
그룹 차원에서 주가를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들의 입장도 곧 원상 복귀는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기다리던 연락.
띠릭. 띠릭.
벨소리가 세 번 울리기 전 전화를 받았다.
-경찰서입니다.
경찰? 웬 경찰?
-S 아카데미 대표 유현덕 씨 맞으신가요?
“네? 네, 맞습니다만…….”
또 신성 빌딩 폭발 사고 때문에 연락을 한 걸까?
그거라면 탁민호 경사가 두어 번 전화를 줬는데.
지금 목소리는 그의 것이 아니었다.
-혹시 조규만 의원 아십니까? 개인적으로?
조규만이라고?
조규만 이름이 왜 경찰에게서 나오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신성 빌딩 폭발 증거물, 김윤지가 가지고 있는 그 소포는 아직 경찰에 넘기지 않았고, 언급도 하지 않았는데.
그걸 제외하면 경찰에서 나와 조규만의 연결고리를 알 리가 없는데.
“조규만 국회의원이요? 네, 압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잠시 여기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는…….
* * *
급히 달려간 경찰서.
머리가 다시 텅 빈 상태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자꾸 이렇게 충격을 받으면 치매에 빨리 걸린다던데.
뭔 충격 먹을 일이 이렇게 연달아 일어난다냐, 정말.
“괜찮아요?”
“응.”
경찰서로 출발하기 전 성공 대입학원에 들러 김윤지를 태우고 왔다.
오는 내내 그녀는 휴대폰으로 새로운 뉴스가 떴는지 확인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이런 소식을 듣고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규만에게 주기로 한 여유 3일.
그 사흘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사흘을 달라고 한지도 이제는 모르겠다.
만약 그의 말마따나, 정말 이번 테러가 그의 짓이 아니라면 김현진과 담판을 짓고 연락을 주리라 생각했는데.
김현진에게서는 그 이후로 연락이 없었다.
뭔가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것을 느꼈는지(사실 숨어 지낸다던 그가 분위기를 느끼고 자시고 할 여유는 없었겠지만) 돈을 송금 받은 이후로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기, 같이 오신 여자 분은…….”
“조규만 의원의 가족입니다. 연락 받고 같이 왔는데요.”
“아, 그렇군요. 이리로 오시죠.”
경찰서에 도착하니 다시 순찰차에 옮겨 타고 어디론가 움직였다.
시내를 빠져나가 산길로 오르기를 30분 정도.
그리고 차가 멈춘 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인적이 드문 산길 초입이었다.
“조금 올라가셔야 합니다만,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여기까지 이미 왔는데.
그렇게 우리는 차에서 내려 다시 10분 정도를 산을 올랐다.
그리고 눈앞에 보인 것은 노란색 폴리스 라인.
평소라면 넘어가면 안 되겠구나 했겠지만 이날은 우리를 안내한 경찰관을 따라 곧바로 넘어갔다.
“여기가 발견된 장소입니다. 시신은 한율대학병원으로 일단 옮겼고요.”
그가 가리킨 장소에는 나무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리고 나무의 굵은 가지 하나에 묶여져 있는 밧줄.
밧줄이라니.
김윤지는 똑바로 나무를 쳐다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까 전화로 말씀드린 것처럼 유서에서 유현덕 씨 이름이 나와 있어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걸로 보이는데 혹 짚이는 것이라도 있으신지요?”
여기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라고?
이 사람도 참.
“일단 다시 내려가죠. 한율대학병원 들렀다가 경찰서로 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연락처는…….”
“아까 연락 온 그 번호 맞으시죠? 휴대폰…….”
“네, 맞습니다. 그러면 바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해가 뉘엿뉘엿 져 가는 상황.
김윤지가 여기에 계속 있어 봐야 좋을 것이 없었다.
사람의 삶이란 참 덧없는 것.
갖은 수를 다 써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 온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이 시점에 이런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인지.
김현진을 못 찾거나, 또는…….
머릿속에 갑자기 불현듯 불안한 상상이 들었다.
조규만, 이 사람이 자살한 것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사흘의 시간을 가진 그는 김현진의 소재를 파악하러 다녔을 것이다.
그가 그를 찾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설마…….
“가죠, 얼른.”
김윤지가 옆에서 팔을 끄는 바람에 생각이 멈춰 버렸다.
‘상상이겠지…….’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 * *
장례식장은 사람이 굉장히 많이 찾아왔다.
일대 학원가를 주름잡던 사람.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하던 사람이니 그럴 법했다.
밖에는 기자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조문객들을 찍어 대며 그들만의 소설을 쓰고 있었고.
“어떻게 이렇게 허무하게 가나.”
오광필 할아버지도 조문을 왔다.
한때 그와 학원연합 회장 자리를 놓고 격돌했던 둘이었지만, 이렇게 허무히 사라진 생명 앞에서는 애도를 표하는 것이 옳으리라.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그리고 유환 선생님도 다녀갔다.
처음 안 사실인데, 조규만은 자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족끼리 사이도 썩 좋지는 않았는지, 빈소를 지키는 것은 김윤지뿐.
그녀에게 있어서도 좋은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는데, 이렇게 가는 길을 지키는 예의를 다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거웠다.
나도 조용히 조문을 마치고 김윤지를 살짝 건드리고는 다들 앉아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상하지 않아요? 어떻게 그런 꼬장꼬장했던 사람이 이렇게…….”
“이상하지. 그런데 삶이란 원래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한 번에 쌓아올린 모든 것을 잃게 되었으니. 돈은 김현진에게, 그리고 국회의원 자리도 곧 좋지 않게 내려와야 했으니.”
이미도 원장은 조용히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나도 그랬고.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신성 빌딩 폭발?
그것에 대한 정당한 죗값을 치른 거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죽은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었다.
마냥 피해만 주고 떠나는 사람인가.
유서의 내용이 떠올랐다.
거칠고 과격했던 생전 모습을 생각하면 익숙하지 않은 정갈한 글씨체.
[누군가를 원망하지는 않겠습니다. 내가 지은 죗값을 받는 거라고 생각해 주시죠. 유현덕 대표에게는 개인적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죽는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했던 잘못이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이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별 내용도 없는 글 하나만 남기고는 떠나 버렸다.
그나저나 이렇게 갈 거였다면 왜 사흘의 말미를 달라 했던 것일까.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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