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78화.
“어떻게 하시면 좋겠습니까?”
“글쎄요……. 방안은 다양하게 있지만, 이 소문을 잠재우기가 어려울 것 같은걸요.”
그녀는 나에게 휴대폰을 보여 주었다.
화면에는 조규만 의원의 이야기가 표시되어 있었다.
대주주 중 한 명인 국회의원이 사기를 당하고 복수심으로 S 아카데미를 공격했다는 내용.
아직은 찌라시였지만 앞으로는 사실로 밝혀지겠지.
“사실이에요?”
“네? 뭐가요?”
“조규만 의원. 지분을 넘겼다는 소문이 있던걸요?”
소문 참 빠르다는 생각.
이번 사고가 일어나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이야기가 떠돌다니.
기자들이 능력이 좋은 건지, 아니면 그중에 엄청난 소설가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맞춘 것은 맞으리라.
여기에 김윤지가 가지고 있는 증거만 터뜨리면 확실한 사실이 되겠지.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조규만이 이 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을 공개한다면, 그 다음은…….
그는 국회의원이다.
법정 싸움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이길 수나 있을까.
증거는 있지만 이긴다고 하더라도 그게 S 아카데미의 주가를 회복시킬 수는 있을까.
방안……. 방안이라.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이번 주가 폭락의 가장 큰 피해자는 한성 그룹보다도 제가 되는 거죠.”
내 지분이 한성보다 더 많다는 의미였다.
“여기에서 우리도 발을 빼면요?”
무서운 사람.
내가 가장 큰 피해자니깐 찬찬히 생각하겠다는 의미였는데 이걸 저렇게.
하긴, 장사란 것이 그런 것이다.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든 순간 발을 빼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한 곳이겠지.
여기까지 같이 온 지원재는 지금 밖에 서 있었다.
입구 밖에서 김미연 부회장의 비서와 함께 서 있는 그.
그는 내 결정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직 하지 않은 결정.
하지만 곧 내가 입 밖으로 꺼낼 그 결정 말이다.
“발 못 빼게 해 드리죠. 부회장님, 공시 그쪽에서 하나 내 주시죠.”
“뭐라고요? 공시요?”
무슨 공시일까…….
“시총을 다시 5천억 수준으로 올리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제 사재 털겠습니다.”
사재라…….
내 개인 돈을 회사에 쏟아붓겠다는 의미였다.
얼마 쯤 되려나.
기업 공개 이전 기준 다섯 배 금액으로 S 아카데미의 지분 40%를 천억에 넘겼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사재 투입은 대략 500억 정도로 이뤄지면 어떨까 하는 생각.
“그걸 저희 쪽에서 공시를 할 이유가…….”
“한성 에듀에서 인수해 주십쇼.”
“네?”
“조규만 의원이 이번 사고 터뜨렸다는 증거는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그 사람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죠. 계속 살아 있으면 이런 짓 계속할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고소 전에 회사 정상화 방안으로 제 돈 500억을 S 아카데미 촬영 및 강의에 사용할 건물 구입비로 내놓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한성 에듀로 지분 6%를 무상으로 넘기겠습니다. 그 부분 공시 좀요.”
조규만에게서 받은 지분은 지금 기준 15%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분은 15%. 한성 그룹은 20%.
여기에서 조규만 지분이 나에게로 넘어왔으니 내 지분이 30%인데, 이 중 6%를 한성 그룹이 가져간다면 내가 24%, 한성이 26%가 된다.
시장에서는 한성 그룹이 악재에도 S 아카데미를 버리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것이고, 나 또한 사재 출연까지 하면서 악재를 이겨 내겠다는 의지를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다.
인수는…….
인수가 문제이긴 하지만, 지금 내 이름 석 자로 좋지 않은 분위기를 넘길 수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시장은 유현덕을 보고 S 아카데미에 투자한 것이 아니라 한성 그룹을 보고 투자한 것이고, 순전히 매출액만으로, 그러니깐 부동산 등 재산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이만한 시총이 유지되는 이유 또한 한성 때문이었다.
김미연 부회장의 입장에서는 가만히 앉아서 회사를 먹는 셈이니 나쁘지 않을 것이고.
“그래도 괜찮겠어요? 이거 너무 파격적인데?”
“원상 복귀시키려면 손해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만 약속해 주시면 바로 그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건 김미연에게 엄청 큰 이득인 거래였다.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결국 한 가지.
“조규만 의원 건을 터뜨릴 때, 한성이 그룹 차원에서 그 사람을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무너뜨려 주십쇼. 그리고 사재 출연 시 한성 그룹에서도 약간의 부담을…….”
“자세한 사항은 논의를 더 해 봐야 하겠죠. 유 대표님께서 사재 출연까지 하신다면야 우리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리고 지분 양도는 내부 논의 이후 무상이 아닌 유상으로 받겠습니다.”
“유상으로요?”
“네. 일단 유 대표님이 S 아카데미가 흔들리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셨으니,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을 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오늘 공시 내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유상가액은, 아마 오늘 하한가 친 그 금액으로요.”
이게 무슨 의미를 가질까 싶었지만, 왠지 나쁘게 들리지는 않았다.
나야 나쁠 것이 없는 정도이지만,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어떨까.
한성에서 딱 오늘 금액으로 지분을 유상 양도 받는다고 한다면, 시장은 그 금액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쩐 많은 한성이 손해를 보면서 이렇게 할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인수는 안 하겠습니다. 한성 에듀가 교육 복지 사업인데 사교육 기업인 S 아카데미를 인수하면 복잡해져요. 호호.”
“아, 그렇군요.”
아직 한참을 더 배워야 하겠네, 이 판은…….
* * *
“통이 큰 사람이구먼…….”
오광필 할아버지가 한 손을 턱에 괸 상태로 말했다.
내 이야기는 길었다.
길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리가 이렇게 모인 것이 꽤 오래된 일이었기 때문.
그리고 모인 자리도 실로 오랜만에 온 곳이었다.
미래 학원 원장실.
오광필 할아버지는 많은 나이에도 계속 현역으로 원장 일을 하고 있었다.
학원연합 회장도 역임하고 있었고.
“김미연 부회장님이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유상으로 하겠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야. S 아카데미 무상 인수 제의까지 받았는데도 그대로 놔둔 상태로 유상으로 도와주겠다니. 오늘 금액으로?”
“네. 오늘 하한가 쳐서 많이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그리고 김윤지와 새로 온 지원재 까지 전부 그냥 나와 오광필 할아버지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이미도 원장?
그녀에게 연락하자마자 곧바로 고속철도를 타고 내려왔던 터라 피곤했으리라.
아무튼 그녀가 와 주니 내 입장에서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셈.
지금 맥스스쿨 사정도 썩 좋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하한가는 하한가고. 한성 그룹에서 공시 띄우면 내일은 어느 정도 방어가 될 거에요. 생각해 보면 지금 금액 기준으로 투자금 늘린다는 건 그들이 지금 주가 아래로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이고…….”
“확실히 베테랑은 다르구먼. 하하. 이미도 원장이 정확히 짚었어.”
“정말 그것만으로 주가가 안정이 될까요?”
김미연의 답변을 듣고도 반신반의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녀가 그렇게만 해 준다면 큰 도움이 되긴 하겠으나, 그래도 왜 그렇게 무리해서까지 위험부담을 감수하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에.
무너지고 있는 S 아카데미를 위해 그런 돈을 투자한다니.
“아마 지금 떨어지는 회사를 먹는 것보다는 일단 회생시켜 놓고 나중에 이득을 가져가는 편이 훨씬 이익이라 판단했겠지. 그리고 나도 그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떨어졌으니…….”
“S 아카데미가 뭔가 큰 실수를 해서 주가가 움직인 것이 아니잖나. 멀쩡히 잘 돌아가던 회사인데 예기치 못하게 사고가 터진 거야. 그래서 떨어진 주가는 회사만 살아남으면 다시 원래 자리를 찾게 되어 있어.”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이쪽 세상.
합법적인 돈놀이라고 하더니만, 정말 돈놀이인가.
그래도 내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이, 어쩌면 예상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었다.
“유현덕 선생님, 그러면 이번 사고는 조규만 짓인 것이 확실한가요?”
이미도 원장이 나에게 물었다.
조규만이라.
사실 내 상대가 아니라 그녀와 원한 관계가 더 크겠지.
그런데 왜 나만 자꾸 공격하는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김윤지가 했다.
“맞아요. 이 자리에서 공개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외삼촌이 꾸민 일이라는 증거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면 뭘 망설여? 여기에서 공개하지 말고 바로 경찰서로 넘겨야지?”
조급한 주현필이 나섰다.
그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일지도 몰랐다.
이미 한 건 터뜨린 조규만이 자신의 계획이 실패했단 걸 알면 또다시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내 고집이었다.
이 상황.
정말 짜증나는 상황이지만 이걸 어떻게 최선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경찰에게 지금 당장 증거를 가져다준다면 그쪽에서 제대로 해결이 될까 하는 의구심.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저는 바로 경찰로 넘기지 않은 유 대표님 생각을 지지합니다만…….”
“뭐? 왜요?”
지원재?
지원재 실장은 나의 생각을 지지한다고 했다.
“일단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우리 쪽도 아직 명확하게 파악한 상태가 아닙니다. 이게 정말로 조규만 의원이 한 짓인지, 만약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 한 일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조력이 있었는지도 모르고요. 조력자가 있다면 조력자가 누군지 확실하게 특정되어야 추후 다른 테러를 방지할 수 있을 겁니다.”
내 생각이 그랬다.
아직 지원재 실장에게 내 생각을 말했던 적은 없었는데.
확실히 나랑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했다.
웃긴 것이, 나도 원래 이 정도로 치밀하게 생각하고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왠지 이번 생애에서는 그렇게 살지 않다가는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벌써 몇 번이나 망했겠지.
“그건 경찰에서 할 일이잖아?”
“맞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기다려 보면 어떨까 싶어요. 조규만 의원 쪽에서 연락이 먼저 오지 않을까요?”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건 조규만이나 김현진의 연락이었다.
먼저 연락을 시도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것도 웃길 일.
테러범에게 연락을 시도하는 피해자라.
스스로 복수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기에 굳이 그럴 필요도, 그럴 능력도 없으리라.
“한성 쪽에서는 어차피 자신들이 조규만 의원 테러 행위는 법적으로 처리하겠다고 했잖아? 그러면 증거는…….”
“일단 우리와 대화를 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고 했습니다. 증거를 공개하는 건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고요. 공개를 하긴 할 건데, 언제 하느냐가 문제이니까요.”
그리고 기다림의 시간.
뭐 굳이 더 할 말이 있겠는가.
오광필 할아버지는 내 마지막 저 말 이후로 이미도 원장에게 지금 맥스스쿨 상황에 대해 묻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대화의 주제를 넘겼다.
원래 계속 내 고집대로 해 온 일이다 보니 다들 이제는 익숙해진 듯.
“누나한테도 아직 연락 안 왔죠?”
“응. 연락을 나한테 할까, 그 사람이?”
그 사람은 물로 조규만이다.
“누나한테 할지도 몰라요. 힘들겠지만…….”
그리고 그 말을 끝마치기 전, 내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고.
“통화 좀 하겠습니다.”
예의 있는 말 같은가?
그냥 조규만이 전화했고, 이제 통화 시작이니 조용해 달란 의미였다.
“여보세요?”
잠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조규만이라고 떴는데.
“여보세요?”
다시 한 번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기다리던 목소리.
-나 조규만일세.
“네, 의원님. 연락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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