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77화.
어떻게 보면 한 배를 탄 사람이 왜 갑자기 이런 무모한 일을 벌였나 했더니만…….
상황을 대충 정리해 보자면 김현진이 모종의 이유로 조규만의 뒤통수를 치기로 결심했고,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지분을 우리에게 전부 넘기며 자신은 돈을 받아 가는 것이었겠지.
이건 조규만에게 엄청난 타격이었다.
애초에 그는 50억만 투자하겠다고 했던 것인데, 내가 그걸 세 배로 올렸으니 여기저기에서 돈을 융통했을 것이고.
김현진의 이름을 빌려 투자를 했던 것이기에 김현진이 다시 그 돈을 가져가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조규만이 결국 무리수를…….
띠릭. 띠릭. 띠릭.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아무도 없는 복도를 찾아 김윤지와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기에 마치 그 공간에 특유의 전화벨 소리만 가득 찬 느낌.
폰을 꺼내 화면을 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네. 유현덕 씨 되십니까?-
처음 듣는 목소린데?
“전데요?”
-아, 서부경찰서 탁민호 경사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신성 빌딩 폭발 사건으로 여쭤 볼 것이 있어서요.
경찰이라니. 내가 조사를 받는 건가?
지금 상황이라면 내가 가장 큰 피해자인데?
아니, 신성 학원이 가장 큰 피해를 입었으려나.
-혹시 지금 어디신가요?
왠지 경찰이라고 하면 죄 지은 것 없어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약간 억울한 생각은 들었지만.
“왜? 누군데 표정이 또 그래?”
나는 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만으로 “경찰”이라고 했다.
그리고 마치 내 입모양을 저쪽에서도 들은 듯…….
-저, 걱정하지 마시고, 저희는 단순히 사건 일어났을 때 유현덕 씨께서 안에 계셨다고 해서 연락드린 겁니다. 주현필 선생님 옆에 계시는데 바꿔 드릴까요?
그렇게 나에게 말하는 탁민호 경사.
독심술이라도 쓰는 걸까?
하긴, 경찰 일을 하려면 상대방 표정, 목소리만 듣고도 심중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애들 표정이나 목소리만 듣고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의심해 보는 것처럼…….
물론 여기에서 우리는 학교 선생님들 이야기니, 지금의 나와는 다르지만.
그나저나 주현필도 조사를 받았나 보네?
“아니에요. 제가 가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될까요?”
그리고 곧바로 김윤지에게 “여기에 좀 있어 줘.”라는 의미로 눈빛을 보냈지만 알아들었을 리 만무하지.
그녀는 내 표정을 보고 “뭐라는 거야?”라는 입모양을 만들었다.
-서부경찰서로 오시면 됩니다. 좀 전에 말씀드렸지만 저는 탁민호라고 합니다. 입초에서 말씀해 주시면 제가 나가겠습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김윤지에게 윤형진의 상태에 변하가 있으면 바로 연락해 달라는 말을 한 뒤 경찰서로 출발했다.
“너, 은근 나까지 부려먹네, 이제는?”
내 뒤통수에 대고 이렇게 말하는 그녀.
살짝 뒤돌아봤더니 말은 저래도 이제 조금 웃는다.
나도 답례로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었지만…….
“더러워.”
돌아온 것은 저 말뿐이었다.
* * *
“누군가가 사제 폭발물을 설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방서에서 온 자료로는…….”
서에는 주현필이 꽤 오랜 시간 있었던 것 같았다.
신성 학원의 현 원장이면서 동시에 신성 빌딩 소유주가 그다 보니 아무래도 답변할 내용이 많았겠지.
그나저나 사제 폭발물이라……. 역시나 김윤지가 좀 전에 보여 줬던 자료와 일치하는 걸까.
“혹시 사진 있으십니까?”
“네? 무슨 사진이요?”
“그 폭발물 사진이요.”
앞에 앉아 나에게 이제까지의 경과를 설명하던 탁민호 경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약간의 의심 어린 눈초리?
“그걸 왜 궁금해 하시는지…….”
그렇겠지.
김윤지가 보여 준 그 사진. 그걸 확인하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던 주현필이 끼어들었다.
“저도 보고 싶네요, 경사님. 벽이 박살 나고 불까지…….”
“그건 저희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폭발물 잔해가 발견된 곳에서 다량의 신나 통으로 보이는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폭발에 방화라…….”
그냥 폭발이라면, 그것도 사실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복수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방화까지 준비한 것이라면…….
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이 위험해지는 것 아닌가.
조규만 본인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사람이면서. 어떻게 이런 짓까지.
하긴,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이 사람…….
“저, 유현덕 대표님 뵈러 왔습니다만…….”
갑자기 입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아니, 소란스럽다고 하긴 좀 그렇고, 그냥 새로운 누군가가 조사실 안으로 들어온 것인가?
지원재였다.
“실장님,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알고 오긴요. 김윤지 원장님이 여기 계신다고 전화를……. 그나저나 어떻게 된 거에요?”
그도 꽤나 놀란 눈치였다. 이 사람은 별로 이런 일에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인데.
“잘 모르죠, 저도. 폭발이 일어나고 불까지……. 저기, 경사님.”
“네?”
“그러면 지금 건물 상태는 어떻다고 하던가요?”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가.
나와 주현필이 윤형진을 데리고 나올 때만 하더라도 불타오르고 있었으니.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주현필이 주었다.
“너 구급차 타고 간 뒤에 소방차들 바로 와서 껐어. 괜찮아. 다행히 그 층만 불타고 연기만 다른 층으로 들어간 것 같더라고.”
그나마 다행이려나. 다친 사람은 일단 윤형진 한 명뿐이었다.
“그럼…….”
“그것도 문제겠지만……. 저기, 탁…….”
“탁민호입니다. 실례지만 선생님께서는…….”
“아, 저는 S 아카데미 행정실장 지원재입니다. 잠시 저희 대표님과 따로 이야기를 나눠도 될까요?”
내가 용의자로 조사를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한 것일까?
굉장히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지원재.
그리고 그는 나를 데리고 경찰서 건물 밖 주차장으로 나왔다.
* * *
“문제가 조금 큰 것 같습니다, 대표님.”
“네? 무슨 문제요?”
지금 이 상황보다 더 큰 문제가 있을까.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다치지는 않았다는 것인데.
그것을 빼고는 일단 촬영실도 사라져 버린 상태이니…….
“아직 확인하지 못하셨나 보네요. 우리 기업 공개한 상태잖아요.”
“기업 공개요? 아, 주식 시장 말씀하시는 건가요?”
여러 번 누누이 말하지만 나는 그쪽 분야는 젬병이다.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지원재에게 맡겨 둔 상태.
그리고 한성 그룹 김미연의 조언도 종종 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화재가 난 것과 회사의 가치가 무슨…….
아니구나, 엄청 큰 영향이 있겠구나.
“하한가까지 떨어졌어요. 그리고 오늘 떨어진 이유가 그 폭발과 화재 때문이라 며칠 간 계속 그 수준으로 아마 계속 떨어질 겁니다.”
“주가가 떨어졌단 말씀이세요?”
“네. 일단 30% 빠진 상태에서 오늘 장은 끝이 났고, 아마 내일도 까딱하다가는 그 정도 다시 한 번 빠질 수 있습니다.”
감이 잘 오지는 않았지만 그의 표정에서 심각함이 느껴졌다.
30%가 빠졌다면, 시총의 30%가 몇 시간 만에 날아간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나는 이쪽 시장을 잘 모르니…….
“곧 김미연 부회장님께서도 연락을 주실 겁니다. 아무래도 그쪽이 가지고 있는 지분이 20%가 조금 넘으니까요. 장내에서 더 확보한 지분이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럼 어떡하죠?”
“오늘 사고는 조규만 짓인가요?”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골치 아프네요. 증거도 없는데……. 막상 확 터트리기도 어려운 상대이니, 도대체 왜 그랬답니까? 자기 지분 가치도 떨어지는데…….”
참, 그는 아직 조규만의 지분이 나에게 다시 돌아왔단 것을 모르는 구나.
“그 사람 지분 이제 없어요. 김현진 비서가 조규만 뒤통수 치고 돈 받아 가면서 지분 다시 저에게 넘긴 상태입니다.”
세상은 참 복잡하게 돌아가지 않는가.
종이 쪼가리의 가치가 수십억, 그리고 수천억까지 가고.
막상 일해서 돈을 버는 사람은 딱 정해진 금액만 받아 가야 하고.
종이 쪼가리 없어졌다고 해서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짓까지 벌이고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지원재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물론 그가 경찰서에 들어올 때부터 좋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하아……. 그래서 그 사람이 이런……. 그렇게 되면 이번 사건은 우리만 피해가 막심합니다. 조규만은 피해 입을 것이 없어요.”
“증거는 있습니다만.”
“폭발 증거요? 조규만이 했다는 증거요?”
“네. 그런데 이걸 경찰에 넘기는 것이 좋을지 나쁠지 모르겠어요.”
내가 고민하던 부분.
그는 현직 국회의원이다.
그를 원래 알고 있던 사람이 아닌 한, 그가 일개 학원을 망하게 하기 위해 이런 테러 행위까지 저질렀다는 것을 믿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원재도 그 부분을 염려하지 않을까.
“그럼 일단 대주주는 유 대표님과 김미연 부회장님이십니다. 두 분께서 빨리 만나 보시고 앞으로의 대응책을 논의해 보시는 게…….”
“공개는 아직 하지 않는 것에 동의하시는 건가요?”
“증거요? 그거 공개하든 안 하든 지금 주가에 영향은 미미합니다. 그리고 대주주 중 한 명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 자체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일단 한성 그룹과의 공조가 필요하겠죠. 그쪽에서 어느 정도 막아 줄 흐름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이럴 때 쩐 많은 친구가 있는 건 큰 도움이에요.”
주식 시장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큰 문제가 될 것 같기는 했다.
내 회사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 회사에 투자한 수많은 투자자들. 그중에는 빚을 내서 투자하고, 가족의 미래를 담보로 투자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빚을 내서 주식 시장에 들어온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고 내가 주식 시장을 싫어하는 이유이기도 했지만…….
일단 내가 대표다.
그리고 나는 나를 믿고, 내 회사를 믿고 투자한 사람들을 신경 쓸 의무가 있으리라.
김미연 부회장과 만난다…….
“전화 오고 있습니다만…….”
아직 내가 그녀에게 할 말이 결정되지 않았기에 바로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주머니에서 계속 진동이 울리고 있었다.
지금 나에게는 어떤 선택이 최선일 것일까?
* * *
분위기는 무거웠다.
그럴 수밖에.
시총 5천억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벌어진 최악의 악재.
S 아카데미가 부동산이라도 여러 곳에 보유하고 있었다면 그나마 충격을 줄일 수 있었겠지만, 촬영실이 있는 신성 빌딩 공간이 전부였다.
어마어마한 매출 덕분에 현금 보유량은 큰 편이었지만, 지금 이 악재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리라.
소문으로 시작해 소문으로 끝나는 주식 시장.
“시총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유 대표님.”
김미연 부회장의 목소리도 가라앉아 있었다.
어쩌란 것인가.
내가 원해서 일어난 일도 아니고, 나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도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결해야 할 의무는 있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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