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76화.
제1강 위기
젠장.
모든 것이 다 타 버리고 있다.
연기로 자욱한 복도.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매캐한 연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굉음과 함께 건물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폭음이 들렸다.
폭음? 진짜 이게 무슨 일이냐.
그리고 이어지는 화재경보기 소리.
귀를 찢는 듯한 소리가 강의실 안팎으로 가득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급히 강의실 문을 열었더니 그새 복도에 가득 찬 연기가 순식간에 강의실로 밀려들어 왔다.
그 순간 누군가의 손이 연기를 뚫고 들어와 내 멱살을 잡아끌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직도 아마 강의실에 갇혀 버렸겠지.
그 손은 내 멱살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단숨에 나는 거의 끌려가다시피 비상구 쪽까지 와 버렸고, 그곳은 건물을 빠져나가려는 아이들과 강사들로 인산인해였다.
그렇게 건물을 간신히 빠져나와 사람들이 모여 구경하고 있는 도로 근처까지 나왔다.
“폭발이야. 폭발.”
나를 끌고 온 손의 주인은 주현필이었다. 그의 얼굴은 약간 그을려 있었다. 화상을 입거나 한 것 같지는 않지만 연기와 재를 뒤집어쓴 모습.
“폭발이요?”
“어. S 아카데미 촬영실 쪽에서 소리가 난 것 같아. 그리고 곧바로 불이……. 테러든 방화든, 이건 누군가가 일부러 이렇게…….”
어떤 일을 겪더라도 단단함을 잃지 않을 사람인 것 같았는데, 지금은 그런 그조차도 꽤나 놀란 모습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신성 학원 강사들이 근처에서 불이 붙은 건물을 쳐다보고 있었다.
멀리서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은 기분. 이런 기분을 느낀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마지막이 언제였더라.
“선생님들! 아이들 체크 한 번만 해 주세요! 건물 안에서 아직 못 나온 아이들이 있나 확인을!”
얼이 빠져 있는 강사들에게 주현필이 급히 소리쳤다.
신성 학원 건물 위로 하늘은 검게 변했다.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사람.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그가 보이지 않았다.
신성 학원 소속 강사들, 그리고 학생들은 주현필이 신경을 쓰겠지만 S 아카데미는 달랐다.
다행히 한 명은 확인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쪽 방향으로 뛰어 오고 있었다.
“유현덕 대표님! 윤형진 기사님이 아직 안에…….”
강의 촬영 및 편집을 담당하는 윤형진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평소에 윤 형이라고 부르며 지내던 사람.
S 아카데미 론칭 당시 촬영 장비를 설치해 주러 왔다가 그 후로 우리와 함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급히 주변을 둘러보며 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건물 안으로 냅다 다시 달려갔다.
“야! 유현덕!”
뒤에서 주현필이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지금은 오후 3시 정도.
그가 한창 강의 촬영을 하고 있었을 시간이었다.
폭발은 그 촬영실 주변에서 일어났던 것 같고.
* * *
건물 안은 이미 가득 찬 연기로 보이는 것이 별로 없었다.
급한 나머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그대로 뛰어 들어왔기 때문에 옷으로 코와 입을 막고 기억을 따라 윤형진이 있을 촬영실을 떠올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숨이 너무 찬 상태였다.
보이는 것도 없고 매캐한 연기 냄새가 폐부를 마구 찔러댔다.
“헉……. 헉…….”
더 이상 계단에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일까.
촬영실이 있는 층의 비상구를 조심스레 여는데, 내부에서 강한 열기가 뿜어 나왔다.
그래도 대충 안을 보니 아직 최악은 아닌 것 같았다.
복도로 진입하면 세 번째 문이 촬영실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문 안쪽에서부터 복도로 소화기 분말이 뿌려져 있었고.
냅다 안쪽으로 뛰어갔다.
위에서 떨어지는 것은 다행히 없었지만, 연기와 열기가 심해 위험했다.
촬영실 내부가 보이는 곳까지 가니 한 사람이 소화기를 손에 꼭 쥔 상태로 쓰러져 있었다.
윤형진이었다.
“유현덕! 유현덕! 어디 있어!”
방금 들어왔던 비상구 방향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연기로 누군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들리는 목소리는 주현필이었다.
이 상황에서 나를 따라 이 건물 안으로 들어올 심장을 가진 사람은 아마 그밖에 없겠지.
“여기요! 주현필 선생님!”
곧바로 누군가가 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윤형진의 몸을 끌고 나가려고 하는데 힘에 부치는 상황.
주현필이 나를 따라온 것은 다행이었다.
만약 나 혼자 있었다면 윤형진을 움직일 수나 있었을까.
끙끙대며 윤형진을 복도까지 움직였을 때, 주현필이 내 몸에 부딪쳤다.
부딪쳤다고?
진짜 말 그대로 들이박은 상황.
“으악!”
“보이지가 않아. 누구야? 왜 들어왔어?”
“형진이 형이요. 촬영실에서…….”
“일단 나가자고!”
그는 바로 윤형진의 하체를 들어 올렸다.
축 늘어진 인간의 신체는 마치 쌀 포대와 비슷해서 가지고 있는 몸무게보다 훨씬 무겁게 느껴진다.
움직이느라 이리저리 흔들릴 때도 힘이 더 들어가고.
평소라면 촬영실에서 비상구까지 걸어서 10초도 안 걸렸을 텐데 지금은 무한한 거리처럼 느껴졌다.
뛰어서 여기까지 올라오느라 숨을 헐떡이는 상황에서 연기가 계속 코와 입으로 들어가 기침을 콜록거리고, 거기에 쓰러진 사람 한 명까지 데리고 나가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내부는 처참했다.
얼핏 보건데 그냥 불만 난 것이 아니라 폭발이 일어난 듯 보였다.
그것도 촬영실이 있었던 층에서 일어난 폭발.
안쪽으로 들어가 보진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얼핏 연기 사이로 보이는 실루엣에는 벽 한 면이 박살이 나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복도에 널려 있는 저 잔해들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원 건물에서의 폭발이라니…….
촬영실에는 딱히 폭발할 만한 물건들이 없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현상은 있는데 이유가 파악되지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지만, 일단 급한 것은 구조였다.
“계단 내려가야 하니깐 내 등에 업혀.”
“네? 제가 업혀요?”
“멍청아! 윤형진 기사 업히라고. 너는 네 발로 내려와!”
웃음이 나올 법한 대화 내용이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상황.
말을 하기에도 어려울 법한 공기인데도, 급하니깐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하고 있었다.
윤형진의 머리 부분이 땅에 닿지 않도록 조심스레 받아 들고는,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주현필의 등에 밀어 올렸다.
아직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끌고 나오는데도, 그리고 몸을 움직이는데도 윤형진은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았다.
‘숨은 쉬는 건가…….’
갑자기 든 무서운 생각과 함께 두려움이 엄습했다.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제발 그가 큰 문제없이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리고 주현필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멀리 들리던 사이렌 소리가 건물 바로 밖까지 가까워졌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 * *
“어떻게……. 어떻게 사람이 이래요?”
손에 들려 있는 사진들. 그리고 누군가의 통장 내역서.
나는 분노에 차 옆에 있는 하얀 벽을 세게 내리쳤다.
손등에서는 붉은 피가 흘렀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그 내역서는 최근 며칠 간 몇억의 돈이 왔다 갔다 한 조규만의 것이었다.
사진에는 그가 나온 것도 있고 안 나온 것도 있었지만.
“빨리 알려 줬어야 했는데…….”
“하아……. 잠깐만요.”
살면서 내가 이토록 흥분한 일이 있었을까.
아니,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전생이건 현생이건 이럴 일이 없었는데.
눈앞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것도 본인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업을 했던 사람이 이런 짓을 꾸밀 생각을 했는지…….
그때 내 흥분한 상태를 본 김윤지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미안함을 넘어 내 흥분한 모습을 보고 겁에 질려 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여기서 화를 내 봤자 나 혼자 속이 상하고 마는 것인데.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니에요. 누나도 아까 전화했을 때 알았던 거잖아요. 그런데 김현진 이 사람도 아주 안 되겠어요.”
병원 복도.
윤 형의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이라고 해 봐야 만삭의 형수밖에 없었다.
그의 부모는 이미 몇 해 전, 그러니깐 내가 그를 채용하기 전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윤형진은 살아 있었다.
다만 연기를 너무 많이 들이마셨기 때문에 산소 부족으로 정신을 잃었던 것이었고.
다행이었다.
하지만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형수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울면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충 그가 쓰러져 있던 곳의 상황과 폭발이 일어날 때 그와 함께 촬영을 진행하던 강사의 이야기를 종합한 결과, 그는 아마도 폭발 현장에 붙은 불을 끄기 위해 그 자리에 남았던 것 같다.
하지만 소화기로 진압할 수 없을 정도의 화재였기 때문에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불의 진행 속도를 늦추는 정도였고, 그새 차오른 연기로 정신을 잃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자세한 것은 소방관들이 화재 진압을 완료하고 조사가 진행돼야 알 수 있겠지.
지금 불은 꺼진 상태라고 연락을 받았다.
현장에 남아 있던 주현필은 상태가 괜찮은 강사들과 학생들을 전부 귀가시키고 있었고.
“어떻게 할 거야?”
김윤지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조금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이었다.
“신고해야죠. 이 정도면 누가 봐도 확실한 것 같은데…….”
“그렇겠지?”
사진 속에는 작은 사제 폭발물, 그리고 조규만과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조규만의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무실 내부를 찍은 사진에 다른 사진에 나온 폭발물이 있다는 것.
이제 기다릴 건 아마도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이 폭발물의 잔해를 찾거나, 또는 화재의 원인이 어떤 폭발에 의한 것임을 확인하는 일이겠지.
통장에는 자그마치 1억이 총 세 번에 걸쳐 같은 계좌로 송금된 내역이 찍혀 있었다.
그나저나 몇 년 전 퍽치기에 이어 이번에는 폭발물이라니…….
지분을 어느 정도 만족스럽게 넘겨주면 본인도 살아야 할 테니 이렇게까지 공격을 할 줄은 몰랐는데. 그래서 그만한 지분을 넘겼던 것이었고.
그런데 이제는 테러까지 저지르는 사람이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나의 선택이 최선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각오하고 싸워 꺾어 놨어야 했나…….
나의 선택으로 인해 그와는 전혀 무관한 윤 형까지 다치게 되다니.
“근데 이걸 그냥 줬을 리는 없고……. 혹시 그가 무슨 거래를 요구했었어요?”
질문이 아니라 추궁처럼 들렸을까?
그녀의 표정은 살짝 기분이 나빠 보였지만, 거래가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응. 돈 빌려 달라고 했던 것, 여기 들어간 거야.”
“예? 백억이요?”
정보료로 백억이나 지출할 만한 내용인가?
물론 사고가 터지기 전이라면 그 이상이라도 줬겠지만 이건…….
“김현진 씨 명의로 되어 있던 지분, 그거 전부 받았어. 30%, 아니 지금 기준으로는 15%구나.”
조규만의 소유였던 30%의 지분.
그것이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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