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74화 (74/200)

[74] 74화.

‘내가 자신이 없으면 어떻게 남을 설득하나…….’

억지로 끌어올린 자신감.

적어도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그리 보여야 했다.

게다가 상대는 일반적인 사람도 아니고 정치판에서 잔뼈가 굵은 김현진.

이게 잘못되면 다시 한 번 조규만에게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기에 분노까지 겹쳐졌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혼합되어 독기 어린 목소리가 되었고, 김현진도 여기에 어느 정도 넘어간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사정까지는 몰랐지만.

“그간 잘 지내셨나요? 외삼촌이 벌이는 더럽고 위험한 일 처리하시려면 힘드셨을 텐데.”

“음……. 의원님 험담하려고 부르신 건 아니실 테고 말이죠.”

“그렇죠. 김현진 비서님께서 외삼촌 밑에서 무엇을 기다리는지 알고 싶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드렸습니다.”

그러게, 자신은 그의 아래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답은 나와 있었다.

‘성공’.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수년 간 활동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보좌관은 결국 보좌관으로 끝난다는 것이었다.

‘왜 이 길을 시작했지?’라는 질문에 그는 ‘언젠가는 나도 저들의 위치에 서겠다.’라는 답을 했었다.

하지만 그 길은 시간이 지날수록 요원해졌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그 위치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

‘능력’보다도 ‘욕심’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삼선, 사선 의원들의 보좌관 생활을 끝내고 초선인 조규만 의원실로 들어갔던 것이었고.

말 그대로 초선을 끌어 주어 ‘욕심’을 실현시키겠다는 ‘욕망’.

하지만 조규만은 전혀 초선답지 않은 초선이었다.

보통 자신이 본 초선 의원들은 순수한 패기가 남아 있어 좌충우돌하며 지내기에, 그런 부분에 있어 도움을 준다면 곧바로 중앙당까지 진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수십 년 간 의원직을 해 온 사람처럼 어마어마한 욕심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위험할 정도로.

그리고 이 판에서 ‘욕심’은 결국 ‘힘’으로 직결된다.

욕심 없이 순수하게 국민을 위한 국회의원?

다들 그런 모습으로 매스컴 앞에 서지만 전부 가면일 뿐이었다.

그런 사람들은 어쩌다 한 번 당선은 될지 몰라도 재선, 삼선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재물이나 권력에 욕심이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적어도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우선시하는 확고한 욕심이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판이다.

조규만에게 자신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원하는 것을 얻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조규만은 자신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굳이 필요하다면 이런 위험천만한 비자금 관리 정도.

“뭐, 다른 사람들과 똑같지 않겠습니까. 성공하는 거죠. 조규만 의원님이라면 그렇게 해 주실…….”

“호호.”

갑작스런 김윤지의 웃음에 김현진의 말이 끊겼다.

자신도 모르게 불쾌한 표정이 나왔으나, 그는 정치판에서 놀던 사람답게 이내 평상시의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본인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듣기를 원하는 말을 하고 있는지 눈치가 빨라지거든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녀는 정말 김현진이 자신이 방금 한 말을 믿고 있다면 어떡할까 걱정했다.

그래도 일단 시작한 일, 밀고 나가야 하리라.

여기에서 멈춘다면, 또는 이것이 실패한다면 이 사람은 조규만에게 가서 이 만남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가 또다시 어떤 위험한 짓을 할지 몰랐다.

다행히 김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앞에 놓인 물컵을 들고 홀짝였다.

이건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단 것이고.

“그분께서 자신의 성공 말고 남에게 관심이 과연 얼마나 있으실까요. 그리고 그 이전에, 김 비서님께서 원하시는 성공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원하는 성공이라.

사람이 규정하는 성공의 척도는 크게 두 가지밖에 없다.

정치적 성공, 그리고 경제적 성공.

그 둘 모두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부모에게 받은 것, 그리고 운에 기인하는 면이 크다.

즉, 본인이 노력을 얼마나 하든, 또는 본인이 얼마나 능력이 있든 이 두 가지 대표적 성공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과는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노력해서 얻으려고 했던 것은 정치적 성공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한 시간이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고, 성공으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간 적도 없었다.

계속 그 자리에서 남의 성공만을 위해 노력하고 결국 내쳐지는 인생.

조규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당장 위험한 일은 전부 자신의 이름으로 해 두는 상황이니.

그런데 또 지금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은 그의 외조카였다.

이 여자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별것 있겠습니까. 의원님 밑에서 의원님 성공하시는 것 돕고, 크게 성공하시면 저에게도 기회가 올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의원 비서로 일하신 것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습니까?”

“…….”

“지난번, 외삼촌이 저에게 협박하셨을 때 일이 처리되는 모습을 보고 생각했어요. 아, 이 사람도 결국 지저분한 일들 해 주다가 사고 터지면 버려지겠구나, 하고요.”

“뭐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정도 이야기는 예전부터 많이 들어 왔습니다만.”

우리는 모두 본인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 없다.

내가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실패해야 하고, 내가 실패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쓰러진 나를 밟고 성공으로 올라서는 것이니깐.

결국 쳇바퀴 속에서 ‘나는 그만 뛸래!’ 하고 멈출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길의 끝이 좋지 않을 걸 알면서도 달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현진 비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 김윤지는 생각했다.

“전부터 들어오셨겠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으셨겠죠. 제가 이 이야기를 굳이 꺼내는 건, 외삼촌께서 김 비서님을 평생 데려가지 않으실 걸 알고 계신다면 김 비서님도 확실한 차선책이 있는지 찾아보셔야 좋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차선책은 그녀의 머릿속에 있었다.

다만 혹여나 쓸데없이 충정만 강한 사람이라면 이런 것조차 먹히지 않을 것이었기에 희미한 밑그림만 내비친 것.

그리고 김현진도 그녀의 밑그림을 바로 확인했다.

단호히 거절하고 바로 나간 것이 아니라 잠시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던 그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순간적으로 김윤지는 김현진이 이 자리에서 바로 결단을 내릴 것인가 기대했으나, 기대는 오늘 이뤄지지 않았다.

“저에게 의원님을 배신하라고 하시는군요. 일단 이 이야기는 함구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원님께 보고 드리는 것이 옳으나, 그래 봐야 지난번처럼 김윤지 원장님만 위험해질 것 같군요.”

“그래 주신다면 고맙습니다만, 연락은 앞으로도 계속 기다리겠습니다. 혹여 마음이 바뀌신다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이만.”

김현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고 방 안에는 김윤지 혼자 남게 되었다.

그녀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김현진이 한 말,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라는 말은 긍정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그 전에 한 이야기.

조규만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것은 생각할 시간을 가지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물론 독심술사는 아니기에 생각을 읽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김현진이 정말로 그녀의 제의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더라면, 그는 대화를 그런 식으로 끝내고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나가 버리거나, 또는 조규만에게 말하겠다는 엄포를 놓고 나갔겠지.

전화기를 들었다.

그녀는 이제야 유현덕에게 조금 불편했던 감정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이 뜻대로 잘 진행이 된다면…….

* * *

정신이 없다.

학원에서 강의를 준비하고 원생을 끌어모을 수 있는 계획들을 만드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몸으로 벅찼는데, 이제는 S 아카데미 운영 및 기업 공개 준비와 더불어 한성 그룹 사업도 지원해야 하니…….

참, 한성 그룹에서 진행하고 있는 교육 복지 사업.

그것의 정식 명칭이 정해졌다.

한성 에듀.

영어로 Han Sung Edu. 라고 하는데, 그룹명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에는 내가 반대하기는 했지만, 이 사업의 목적이 결국 그룹 이미지 재고이었기에 그것으로 결정 났다.

나는 S 아카데미의 S자를 어디엔가 집어넣고 싶었는데.

뭐,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하리.

성공만 하면 되는 거지.

한성 에듀가 론칭을 하자마자 곧바로 기업 공개 준비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확실히 쩐이 있으면 확장력이 다르구나라는 것은 느꼈다.

이러니 돈이 좀 되는 곳에 대기업이 발을 들이밀면 기존 업체들은 다 죽어 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만약 우리가 그들과 붙었더라면, 상상하기도 싫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었겠지.

뭘 해도 안 되는 상황일까?

-축하드려요, 유 대표님. 오늘 직접 가 봤어야 했는데 그룹에 바쁜 일이 하나 생겨서요.

기업 공개일 김미연 부회장이 직접 전화로 이렇게 나에게 말했다.

여기까지는 의례적인 인사치레라고 볼 수 있겠지.

“아닙니다, 부회장님. 그간 도와주셔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돕다니요. 호호. 지원재 실장님이 아주 일처리에 능하시던데요? 인재는 인재를 알아본다고 했나? 왜 그런 말도 있잖아요.

지원재 실장?

맞다.

지원재는 한국에 들어와 S 아카데미의 공식적인 행정실장직을 맡고 있었다.

행정실장이 뭘 하는 직책이냐고 궁금하겠지?

일반적으로 업무실장, 행정실장은 학원에서 강의를 제외하고 모든 행정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

원생 관리부터 수입 지출 내역 관리, 그리고 자잘하게는 공과금 납부까지 전부.

하지만 지원재 만한 사람을 그 정도 일에만 쓸 수는 없잖은가.

게다가 그 일을 해 주시는 분은 따로 구해 놓았던 상황이었다.

내가 지원재를 행정실장으로 스카우트한 것은 기업 공개 준비 목적이 컸다.

맥스스쿨 강재훈 대표가 기업 공개 후 한순간에 학원 운영권을 나와 이미도 원장에게 빼앗긴 전례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방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내 보유 지분이 30%밖에 되지 않기에 40%를 가지고 있는 한성 그룹과의 긴밀한 조율도 필요했고.

그런 일은 나보다는 지원재가 능숙하게 잘 처리할 것이었다.

뭐, 사실 내가 그런 일처리를 못한다기보다는 한성 그룹에 조규만 까지 끼어들어 있는 상황이기에 머리를 맞댈 사람이 필요했던 것.

“원래 그분이 일을 좀 잘하십니다. 그래서 미국에서 스우트를……. 하하. 강재훈 대표님도 추천하셨다면서요.”

-아무튼 고생했네요. 이제 S 아카데미는 큰 강을 하나 건넜으니 한성 에듀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힘 좀 더 써 주셔요.

“아무렴요.”

한성 에듀는 서비스 론칭 일주일 만에 기존 맥스스쿨과 S 아카데미가 양분하던 시장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매출액이 따로 없고 나가는 돈만 있다 보니 손해만 보는 사업이지만, 그래도 일일 방문객 수와 시간당 동시 접속자 수는 S 아카데미 수준이 나왔다.

맥스스쿨은 그보다 조금 높은 정도.

그리하여 사실상 국내 온라인 교육 시장은 맥스스쿨을 필두로 교육방송과 S 아카데미, 그리고 한성 에듀까지 4파전 양상으로 돌아가고 있었고.

이렇게 하면 사교육 업체인 맥스스쿨이나 S 아카데미의 매출이 큰 타격을 입을 것 같겠지만, 실상은 영향이 미미했다.

소비자의 심리란 원래 복잡 미묘한 것이다.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이 당연히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옳으나, 막상 우리는 값이 좀 나가면서 좋다고 소문난 물건을 산다.

학교 교육과 사교육의 관계도 마찬가지.

학교에서 사교육에 비해 질이 떨어지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당장 학교 교사들과 학원 강사들의 면면, 그리고 그들의 수업을 비교하면 밖에서 느끼는 것 보다 훨씬 그 차이가 적다.

하지만 우리는 다들 학원으로 아이들을 보내지.

왜 그럴까?

이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의 결과이다.

학교는 누구나 다들 가는 곳이고, 다들 졸업하는 곳.

따라서 그 안에서만 있다 보면 남들보다 우수하게 자라날 수 없을 것이라는 학부모들의 불안 심리.

그것을 자극하여 최대의 매출을 올리기 위해 갖은 수를 쓰는 사교육.

이것이 바로 공교육과 사교육의 관계였다.

똑똑.

내가 멍 때리고 있는 걸 누가 알고 문을 두드린 거지?

하긴 근데 여기 문을 두드릴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신성 학원 내에 위치한 내 강의실에 신성 학원 소속 강사들이 문을 여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깐.

주현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들어오세요.”

“유 대표님.”

“지원재 실장님이셨군요.”

다시 실장으로 돌아간 우리의 지원재 실장.

계약서를 쓰기 전까지 잠시 동안 형 동생 하며 지냈으나, 계약서를 쓰고 나서도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S 아카데미의 규모는 이제 예전 신성 학원이나 성공 대입학원보다 훨씬 거대했다.

그리고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깔끔한 관계 정립이 필요하고.

이러면 무슨 거대 학원처럼 커진 것 같겠지?

전혀 그렇지는 않다.

아직도 S 아카데미는 소규모 인원으로 운영 중.

대표이사 유현덕.

행정실장 지원재.

관리실장 윤 형.

아, 이 윤 형이란 사람은 처음 S 아카데미 론칭 때 강의실에 영상 촬영 장비 설치해 주러 왔다가 채용했던 그 형이다.

몇 년 만에 이분 이름을 떠올린 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카운터 담당 조미희 씨.

응? 네 명? 이게 전부일까?

거의 전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반은 외주인 상태로 운영 중인 사이트 관리 업체 규모가 조금 있는 편이고, 이쪽은 내가 아는 것이 별로 없어 그쪽에 일임한 상태였다.

전에는 가끔씩 사이트 현황 물어보느라 연락도 하고 그랬는데, 지원재 실장이 들어온 뒤로는 그가 전적으로 일처리를 하고 있어 관심이 별로 가지 않는 부서라고 해야겠지?

거기에 초창기부터 계속 강의를 만들고 올려 온 유환 선생님을 비롯한 강사들 15명까지.

강사 리스트는 거의 매 달 바뀌기 때문에 S 아카데미에 소속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러면 정말 주요 업무를 담당하는 건 네 명이 전부.

네 명이 운영하는 회사가 기업 공개가 가능할까?

불가능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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