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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73화 (73/200)

[73] 73화.

-과별로 협약 체결은 영어와 수학만입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SAT 과목이 그 두 과목이죠.”

-역시 유 대표님이시군요.

‘그 정도는 기본 아니에요? 나도 영어 전공인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뭐 굳이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었고.

영어 교육이든 영문학이든 언어만 배우는 건 아니다.

해당 언어권의 대표 국가 문화까지 폭넓게 배우는 과정.

우리나라의 수능시험과 비교되는 SAT는 대략적이지만 들어 본 적이 있었다.

1년에 네 번의 시험.

학생들은 보통 11학년부터 이 시험을 볼 수 있다.

두 번을 보고 더 높은 점수로 대입 원서를 낼 때 쓴다고 알고는 있는데.

재미있는 건 단순히 횟수만 여러 번 볼 수 있단 게 아니었다.

과목이 영어와 수학, 두 개밖에 없다.

응? 겁나 편하게 들리지? 수능시험으로 국어와 수학만 본다니.

우리는 탐구 과목 둘에서 넷까지, 국영수에 많으면 일곱 과목인데.

나도 처음 조별 과제로 이걸 찾아보고는 그리 생각했으니. 미국으로 대학갈까? 생각하고는 잠시 찾아본 예상 문제들.

굳이 예상 문제랄 것도 없었다.

단어 시험……. 정말로 단어 시험이다.

그런데…….

살면서 처음 보는 모양의 단어들.

자, 이건 좀 문제가 됐다.

아무리 내가 공부에 모든 힘을 쏟지 않는 베짱이라 하더라도, 그래도 영어 교육 전공에 그걸 두 번이나 거치고 학교와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친 것이 10년이 넘는다.

그런데 정말 거기 나온 대부분의 단어들이 처음 보는 단어였다.

아무튼, 난이도가 우리말 단어 시험 정도로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 두 과와 협약을 체결한 것은…….

혹 교수를 전면에 내세우되 실제 강의는 테마별로 나누어서 학생들과 대학원생들로 진행을 하려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학과 전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역시나.

조금 신기한 건 그가 생각하는 방식이나 내 생각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경향이 있단 사실이었다.

지난번 맥스스쿨 경영권 문제도 그랬고.

학과 자체에 일정 금액을 장학금 형식으로 지원하고 한성 주도의 비영리 교육 복지사업에 근로봉사 형식으로 참여하는 방식.

이렇게 하면 확실히 향후 강사 수급에 전혀 문제가 없게 된다.

한 사람이 그만두더라도 곧바로 그 학과의 다른 참여자를 구하면 되니깐.

비영리사업이라 가능한 것이리라.

만약 S 아카데미나 맥스스쿨 주도의 학원 사업이었다면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겠지.

“대단하시네요, 실장님이야말로…….”

-이제 실장 아닙니다. 하하. 그냥 이름으로 불러 주시죠, 대표님.

“이름요? 저보다 나이도 많으신데…….”

-반말 말고요.

음. 반말은 안 된다는 거군, 역시.

“아, 어렵네요. 하하. 원재 형?”

-그냥 지원재 씨 정도 생각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군요. 참, 준서는 대학원 과정 잘 밟고 있는 중입니다만, 조만간 한국에 돌아가 유 대표님 돕기로 했습니다. 괜찮으시죠?

괜찮고 말고 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지금 준서는 내 유일한 친구인데.

물론 주위에 이미도 원장, 주현필, 김윤지와 같은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다들 어쨌든 사업 관계로 모인 사람들이다.

준서만 옆에 있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겠지.

그런데 원래 날 도와주러 미국에 간 거였나?

그냥 조금 더 공부하고 학벌 세척도 좀 하려는 것 같았는데.

“벌써요? 아직 졸업은…….”

-입학 서류 있고 기간 좀 보냈으니 그 부분은 괜찮습니다. 막상 한국에서 해외 대학, 대학원 타이틀 걸고 강사일 하는 사람 중에 풀코스 뛰고 졸업장 들고 있는 사람은 드물어요.

“저야 옆에 있으면 든든하죠.”

-그리고 저도 겸사겸사 잠시 들어갈 예정입니다. 다음 달 예정입니다.

아싸.

그렇지 않아도 부탁하려 했던 부분이었다.

내가 밀고 들어갈 때는 목표만 딱 잡고 쳐 버리면 되는 건데, 막상 방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모르는 것들도 많았고.

기업 공개에 앞서 맥스스쿨의 강재훈 대표가 당했던 일을 내가 그대로 당하지 않으려면, 지원재가 절실히 필요했다.

적어도 S 아카데미의 기업 공개 실시 전후로 1년 이상은.

“얼마나 계시려고요?”

-빨리 돌아갈까요? 뭐, 그래도 됩니다만,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타이밍 맞춰 연락드린 건데요.

이자도 생각보다 능글맞은 사람이려나.

내가 그에게 ‘와 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기를 바라는 것인가.

까짓 거. 많은 도움을 나에게 이제껏 주었던 사람이니.

“아뇨. 그런 의미 아닙니다. 사실 기업 공개 추진에 있어 지원재 실장님 도움이 필요해서요.”

자존심은 자존심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부리는 것이다.

만약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황인데 자존심이 세다고 생각된다면 그것 자체가 오만이고 고집.

주제 파악 못하고 아집만 있는 것과 똑같다.

돈으로 치자면 내가 가진 것은 엄청나지만, 아직 이런 분야의 일에 있어 경험은 전무했다.

‘패기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했던 오광필 할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도움을 받을 때는 자존심 같은 것 생각하지 말고 확실하게 받아야 한다는 결론.

“준서도 같이 오면 큰 힘이 되겠지만, 일단 급한 건 실장님이 빨리 와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급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조언이 많이 필요합니다. 옆에 계셔 주세요.”

내 사람이 되어 달라는 말.

아니면 내가 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 달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이 제안에 대한 그의 반응은 다행히 긍정적이었다.

주현필과 이미도 원장에 이어 나와 함께 하는 사람이 생긴 기분.

-허허. 그러면 제가 유현덕 대표님과 함께해도 되겠습니까? 이건 대표님께서 부탁하실 일이 아니라 제가 부탁드려야 맞는 거죠.

“네. 제가 부탁드립니다. 기업 공개…….”

-어차피 한 달은 걸릴 테니 하나만 말씀드리죠. 이미 알고 계실지도 모르겠고, 아니면 주변에 다른 분들께서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지만, 한성 그룹에서 투자한 돈, 그것 큰 금액 아닙니다.

“큰 금액이 아니라면……. 그거 천억인데요?”

오광필 할아버지가 방금 전에 했던 것과 같은 내용이었다.

40%에 천억은 큰 금액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이어진 지원재의 설명은 엄청나게 장황하여 내가 전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S 아카데미 현 매출액 규모로는 기업 공개 후 적어도 지금 당장보다 세 배 이상 뜰 겁니다. 맥스스쿨이 네 배였으니까요. 거기에 지분 구조에 한성이 40%로 최대 주주라는 것이 드러난다면 안정성도 인정받게 되어 다시 두 배 이상 뜹니다. 이건 적게 잡아도 그렇다는 것이고요. 자, 그러면 아무 일도 없더라도 지금 가치보다 여섯 배가 높죠. 한성은 그것만으로 본전 이상 따고 가는 겁니다. 거기에 유 대표님이 한성과 함께 준비 중인 교육 복지 사업, 그것이 가시화되고 론칭에 가까우면 시장은 다시 움직일 겁니다. 어디까지 올라갈지 모르죠.

세 배는 아마도 맥스스쿨의 전례가 네 배 상승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한성 그룹의 브랜드 파워는 우리에게 득이 되면 득이 되었지 실은 절대로 아닐 테고.

-하지만 그것만으로 한성이 다섯 배의 돈을 주고 투자를 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아마?”

-한성에서 시작하는 교육 사업도 곧바로 기업 공개 준비할 겁니다.

시너지.

이제야 내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였다.

* * *

주식 시장.

나는 잘은 모르지.

그냥 국가에서 인정하고 관리하는 합법적인 도박판이란 것 정도.

하지만 원래 도박이란 것이, 따는 사람은 거의 없는데 잃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 보니 이쪽도 다르지 않다.

그간 학원 강의와 경영 수준(사실 경영이라고 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지만)에서 머물렀던 나에게 기업 공개는 새로운 판이 열리는 것이리라.

어떤 결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하긴, 이미 맥스스쿨에서 한 번 겪은 일이니 조금은 익숙하려나?

“무슨 생각을 그리 또 하고 있어?”

혼자 지금의 상황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옆에서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름다운가? 객관적으로 보자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당장은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다.

“네? 하하. 사업 생각이죠, 뭐.”

“맨날 사업 생각만 하고, 도대체 쉴 때가 있기는 한 거야?”

“쉴 때는 저도 화끈하게 쉽니다. 12시간 스트레이트 취침.”

12시간이 아니라 거의 24시간을 잔 적도 있지만 그건 말하지 않으련다.

왠지 엄청 한량같이 들릴 것 같아서.

매주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정말 강의가 없을 때는 뻗어서 그리 자 본 적도 많다.

몸이 상하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 어쩌겠는가.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고, 그만큼 나에게 성과를 가져다주는 일인데.

뼈 빠지게 일하고 아무것도 더 얻지 못하면 의욕은 그만큼 떨어진다.

물론 내가 앞으로 뉴스에 나올 공기업 성과 연봉제, 또는 공무원의 성과급 같은 것에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다만, 그래도 사기업에서는 어느 정도 선에서 이런 경쟁이 허용이 되어야 성공할 수 있으리라.

‘어느 정도 선’인지가 중요하겠지만.

“누나는요? 뭐 하고 있는데요?”

“보면 모르냐?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들 명단 작성 중이잖아.”

“오. 많아요? 어때요, 요즘 성공 대입학원은?”

“많아. 확실히 정책이 매년 바뀌니깐 수강생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어. 우리 지역은 신규 학원이 진입하기 쉬운 곳도 아니니깐.”

하지만 이렇게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왜일까?

아무래도 지난 번 조규만과의 일 때문일까.

나에게 미안한 것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뭐, 그런 마음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달라지는 것은 없으니.

나도 그녀에게 그렇게 나쁘지 않은 상황임을 충분히 설명했고.

그런데 최근 그녀에게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어두움, 아니 뭔가 불편함이랄까?

이건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무엇 때문인지.

내가 모르는 무엇인가가 더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혹시 그냥 긴장인가?

그리고 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칠 무렵, 그녀가 갑자기 표정을 바꾸며 나에게 말을 했다.

“현덕아, 너 정말로 외삼촌에게 아무런 감정 없는 거야?”

아무런 감정이 없기는.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워서 그런 거다, 이 사람아.

“왜 자꾸 물어봐요, 누나. 별 신경 안 쓰인다니까요, 이제는. 나쁜 감정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그냥 감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거짓말은 아니지.

최대한 신경을 안 쓰려고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복수하고 싶거나, 아니면 한 방 먹이고 싶거나 하지 않아?”

“하고 싶죠. 그런데 위험하잖아요. 굳이 위험 감수하면서 그 사람이랑 부딪치고 싶진 않아요. 누나가 위험해질 수도 있고.”

“그래……. 그렇구나.”

잠시 활력이 생긴 듯했던 그녀의 얼굴도 다시 어두워졌다.

잠깐, 이게 어두운 것이 맞는 건가? 심각해졌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으려나?

뭔가 더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녀의 표정이 ‘말 걸지 마’ 하는 표정이라 어렵네.

혹시…….

* * *

“저를 왜 따로 찾으셨습니까, 원장님?”

“일단 앉으시죠. 짧은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김윤지는 예전 조규만이 사용하던 사무실에 오랜만에 들어왔다.

썩 내키지 않는 공간이지만 그래도 손님을 받을 때는 강의실보다 여기가 낫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앞에 서 있던 손님은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고.

“일단 앉겠습니다만, 3시까지 의원실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전에 끝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냥 조금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답변만 드리고 그러면 가도록 하겠습니다. 의원님께 말씀드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저도 조금 불편합니다.”

조규만 의원의 비서 김현진.

그는 현재 공식적으로 S 아카데미의 지분 30%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것은 공식적인 내용이고, 내면을 들여다보면 조규만이 잠시 맡겨 둔 비자금이 그 지분 확보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차명 계좌 소유주라고 할까?

김윤지는 외삼촌 조규만이 자신을 미끼로 유현덕에게서 S 아카데미 지분을 넘겨받는 것을 보고 치가 떨렸다.

그때의 그 기분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이 희석되었지만, 기억과 분노는 생생했다.

어쩌면 유현덕이 조규만에게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인식보다 그녀가 그에게 가지는 분노가 훨씬 클지도 몰랐다.

“오래 걸리는 건 아닙니다. 커피 드릴까요?”

“따뜻한 물이면 괜찮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물을 건네받은 김현진은 김윤지가 무엇 때문에 자신에게 연락을 했는지 왠지 알 것 같았다.

보통 같았으면 조규만의 지시만 들으면 되는 일이기에 굳이 그녀의 요청에 응하지 않아도 관계없겠지만 그녀가 전화로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

‘저도 외삼촌 밑에서 일을 한 것이 한두 해가 아니에요. 그리고 지금 이 모습이 되었고요.’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자신의 야망을 어느 정도 실현시켜 줄 사람이라 생각하고 적을 옮긴 것인데, 그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었다.

좋게 표현하면 강함이겠지만, 나쁘게 표현하면 가차 없고 매정한 사람.

지금 당장은 자신이 그의 비자금 관리까지 할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으나, 혈육이 김윤지 원장까지 저열하게 처리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그리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리라.

김윤지도 겁이 나긴 했다.

겁이 나서 전화를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 것이 며칠째.

그리고 마음을 먹고 김현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당당하고 자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부터가 고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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