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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72화 (72/200)

[72] 72화.

주식이 나보다 더 많으면, 언제라도 주총 열어서 경영진 뒤집을 수 있는 건가?

생각해 보니 나도 이런 방법으로 맥스스쿨 강재훈 대표를 밀어냈었으니.

그런데 그때는 이렇게 치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건 어찌 보면 완전히 천운이 따라 준 결과랄까.

지원재 실장이 그런 부분은 빠삭한데.

“어휴. 아직도 이해를 못 하는구먼. 한성이 S 아카데미 지분 40%를 천억에 샀다는 의미는 곧 기업 공개 후 40%를 천억 이상으로 팔 자신이 있다는 의미이네. 내 예전에 주식 할 때 겪어보지 않았나. 작은 회사에 대기업이 지분 확보하면서 들어오면 주가가 그만큼 폭등해. 그자들은 선심을 써 주는 사람들이 아니거든. 두고 봐. 아마 무슨 짓을 해서라도 40%를 천억 이상으로 불려서 팔거나 할 테니. 조심하라고 하는 말일세.”

평소 내가 알던 오광필 할아버지의 모습이 아니었다.

뭔가, 유식해 보였다.

동네 할아버지 같은 사람인데.

조금 멋져 보이는.

하지만 그래 봐야 내가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다 쓸데없으리라.

지원재가 필요했다. 그자라면 이런 부분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텐데. 나도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고.

그런데 미국에 있는 사람에게 허구한 날 전화를 해서 조언을 받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던 와중에 김윤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이런 부분은 잘 모르겠지?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조금 뜬금없긴 했다.

“아무튼 강사들 수급은 저도 한 번 알아볼게요. 예전에 맥스스쿨에서 넘어오신 분들도 계시니 그분들 정도라면 그쪽에서 쓸 만하지 않을까요?”

“네?”

“예? 이 이야기 하던 것 아니었어요?”

그녀는 도대체 무슨 생각에 혼자 잠겨 있었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오광필 할아버지가 그녀에게 녹차를 쏟은 뒤로 계속 아무 말도 없었네.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봤으나, 독심술사가 아닌 한 내가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는 없으리라.

오광필도 바로 옆에서 그녀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이게 뭔가’ 하는 내 표정과는 조금 다르게 약간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러게, 오늘 그녀의 모습은 이제까지와 달랐다.

뭐, 워낙 중간 중간 다른 모습을 봤으니 놀랄 만한 일도 아니지만 이제는.

“아, 아닙니다. 하하. 그 이야기하던 것 맞았어요.”

이렇게 말을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녀를 콕 집어서 주식 이야기를 하던 것은 아니었으니깐.

“무슨 고민이 있는 건 아니지?”

“고민이요? 아니에요, 회장님.”

“고민 있는데 털어놓을 사람 없으면 나한테 와. 내가 그런 고민 상담 정말 잘 들어 준다네.”

이 노인네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말의 내용만 보자면 딱 여자 꾀는 말인데 외모는 할아버지니 굉장히 이질감이 있었다.

무섭다고나 할까?

“허허. 장난이야, 이 사람아.”

나도 모르게 혐오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혐오까지는 아닌데.

띠리리릭. 띠리리릭.

그때 그런 어색한 분위기를 깨듯, 책상에 올려 두었던 내 전화가 울렸다.

갑작스런 소리에 오광필 할아버지와 김윤지 모두 내 전화기를 봤고, 액정에는 1번으로 시작하는 미국 국번이 떠 있었다.

“엇? 여보세요?”

-유현덕 대표님, 안녕하셨어요? 지원재입니다.

오랜만에 듣는 지원재의 목소리였다.

* * *

한 남자와 한 여자.

외모에서 드러나는 나이의 차이는 방 안에 둘만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어울리지 않는 요소였다.

분위기.

글쎄, 뭐라고 말해야 할까.

누구라도 이 모습을 본다면 분위기가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기 어려우리라.

사업의 영역은 항상 그랬다.

서로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원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한 대가를 치밀하게 계산하고 던지는 판.

그것이 바로 사업이다.

“한성 그룹은 그럼 정말로 유현덕 대표를 밀어줄 생각인가?”

나이는 분명 남자 쪽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말투에 있어 왠지 모를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이 젊은 여자는 아마도 나이를 뒤집을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고.

현대 사회의 힘의 원천은 돈과 권력.

이 둘을 객관적으로 비교하여 누가 강하고 약한지 판단하는 것은 간단하진 않지만, 그래도 초선 국회의원의 입장에서 수십 년 간 국가 경제의 중추로 서 있던 재벌의 힘은 쉽게 볼 수 없는 상대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 재벌을 대표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 크고 있는 새싹 수준일 테니.

“배팅을 그쪽에다 한 상태니 일단은 밀어줄 수밖에요.”

“일단은?”

“호호. 너무 한 글자 한 글자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마셔요, 조규만 의원님. 그나저나 저야말로 의원님께서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으신지가 궁금한걸요?”

나이 있는 남자는 조규만이었다.

끝없이 거대한 권력과 돈에 대한 욕심.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앉아 있는 김미연도 그 욕심을 느끼고 있었다.

원래 욕심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은 주변 분위기조차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역시나 그녀는 재벌가 딸이었다.

그것도 착실히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는 중이고.

자신에게도 비슷한 종류의 분위기가 흘러나오리라.

앞에 앉은 조규만 의원이나 자신과는 다른 부류의 유현덕이나 이재훈 대표는 못 느꼈겠지만.

“숟가락을 먼저 얹은 건 내 쪽이오.”

“아니죠. 저희가 먼저 유현덕 대표와 접촉한 이후에 의원님께서 끼어들어 오신 겁니다. 순서는 지키셔야죠.”

조규만은 화가 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상대인지라 조심스럽게 화를 삭였다.

예전 성공 대입학원 원장일 때만 하더라도 자신은 성 안의 왕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큰물에 있다 보니 강적들이 많았다.

일단 잠시 한숨을 내쉰 그는 앞에 놓여 있는 물 잔을 들고 한 번에 들이켰다.

“찬물이 아니라 조금 따뜻한 걸로 준비하라고 할까요? 찬 것 그렇게 급히 드시면 탈나십니다.”

“후우. 한성이야말로 무슨 의도를 가지고 S 아카데미에 빨대를 꽂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빨대라니요, 의원님. 저희는 유현덕 대표와 S 아카데미의 잠재 가치를 본 겁니다. 말씀드렸던 교육 복지 사업에 있어서 정말 순수하게 사회 환원만을 생각하고 진행한 것이 아닌 건 사실입니다. 기업에서 그 정도 금액을 투자한 것은 그 이상의 그룹 계열사 이미지 홍보 가치가 있다고 판단을 했던 이유였고요. 하지만 의원님께서 지금 S 아카데미를 보유하신 지분과 고문직으로 흔들어 버리시면 저희 입장에서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시세 차익으로 만족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조규만은 그녀의 말이 표면상으로는 부탁이었으나 사실상 강요와 마찬가지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걸로 물러선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답지 못했다.

시세 차익?

시세 차익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온라인 교육 업체를 운영하는 곳은 단 두 곳뿐이다.

맥스스쿨과 S 아카데미.

그리고 둘의 운영진, 지분 구조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결국 독점기업이나 마찬가지이기에, 그 둘의 연결고리인 유현덕을 통제하에 두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한성 그룹이 이 판에 들어오면서 어그러진 그의 계획.

“그럼 한성은 결국 물러날 생각이 없다는 것이구려.”

“누가 물러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조규만은 마지막 수를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 자신도 되돌아갈 곳이 있을까 싶은 수.

권력과 돈, 그 둘을 모두 가지기 원했다.

하지만 그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자신은 과연 무엇을 선택할지 아직 판단이 서질 않았다.

마지막 수.

그것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앞에 앉아 있는 김미연이란 재벌 집 딸은 가진 돈의 액수만큼이나 강단이 있어 보였다.

‘결국 이 방법밖에 없으려나.’

선택에 있어 고민하는 시간을 오래 갖는 것은 전혀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 * *

“무슨 일이셔요? 오랜만에 듣네요, 정말로.”

-하하. 그간 조금 바빴습니다. S 아카데미와 맥스스쿨 운영은 어떻게, 잘하고 계시나요?

목소리는 좋아 보였다.

원래 그에 대해서 인정을 한 번 하고 넘어가서인지 뭘 해도 나쁘게 보일 사람은 아닌 것 같긴 했지만.

미국 물을 조금 먹더니만 혀에 버터를 바른 것 같기도 했다.

“흐흐. 잘 돌아가고 있죠, 뭐. 그나저나 이쪽 일에 신경을 끄신 건 아닌 것 같던데요?”

-네, 최근에 웬 예상치 못한 연락을 받아서요. 생각해 보니 좋은 기회가 될 듯하여 지금 준비 중입니다.

“기회일지 아니면 도박일지는 모르겠습니다. 뭐, 어쨌든 돈은 많이 받았으니까요, 덕분에. 하하. 얼핏 듣자 하니 실장님도 미국에서 이 사업에 참여하시는 것 같은데, 맞나요?”

김미연 부회장이 그에게서 받은 제안.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맥스스쿨의 2인자에서 이제는 한성 그룹 부회장이 직접 신경을 쓰는 사업의 참여자.

단순한 참여만은 아니겠지.

-그러려고 하고 있습니다만,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한성 그룹과 이야기가 조금 진행된 것 같군요.

“물론이죠. 돈이 크게 걸려 있는데 그냥 싫다고 거절하기도 그렇고, 거기에 조규만 의원과의 문제도 조금 엮였더라고요.”

조규만 이야기는 모르겠지.

하지만 그것조차 예상 밖이었다, 이 사람은.

-이야기 전해 들었습니다. 주현필 부원장님이 최근에 연락을 한 번 주셨더군요. 유 대표님이 제대로 하신 건지 판단이 안 선다고 말씀하시면서요.

주현필, 역시.

그래도 이 사람은 나를 걱정해서 그렇게 한 거겠지.

그나저나 내 방법을 지원재는 어찌 생각했을까?

-제 생각에는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뭐, 제가 걱정할 일을 만드시는 분은 아니시니까요.

나쁘지 않았다…….

하긴, 딱히 최선의 방법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쨌든 몇 달 내로 우리는 기업 공개를 진행할 예정이고, 내가 가진 지분이 크면 클수록 기업 공개의 효과도 클 것인데.

조규만이 가져간 40%는 20%가 되겠지만, 내 지분도 30%가 15%가 된다.

한성 그룹이 가져간 지분은 다른 사업도 걸려 있는 부분이니 그렇다고 쳐도, 조규만의 20%는 두고두고 부담이 되긴 할 것이다.

“다른 방법이 딱히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꼬이면 어디까지 갈지 모르거든요.”

-그러셨겠죠. 아무튼, 오늘 연락을 드린 건 궁금하실 만한 사항들이 있으실 것 같아서입니다.

“다 궁금하죠. 하하. 미국에 쉬러 가신 줄 알았더니만 서버를 운영할 업체 리스트를 만들어 놓으시고. 준서도 궁금하네요, 그러고 보니.”

-준서 군이 완전히 서운해하겠는걸요, 이거. 하하. 그간 사정을 먼저 말씀드리자면, 업체 선정은 이미 끝난 상태입니다. 이쪽은 우리처럼 이것저것 복잡한 정치적 고려가 적어서요. 사실 유현덕 대표님께서 직접 이쪽으로 넘어오셔서 진행을 하시면 어떨까 했는데, 한성 그룹이 결국 대신 써먹게 될 것 같네요.

내가 직접 미국엘 간다. 어릴 적부터 상상은 가끔 해 봤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미국. 어떨까, 기분이?

그리고 미국 시장 진출이다.

교육업체가 이렇게 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던 것이, 질 좋은 강사가 꾸준히 수급되고 강의가 만들어져야 하는데 미국이란 곳은 아무래도 너무 멀고 낯설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시장 자체의 잠재성은 알지만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았던 것.

지원재가 말한 서버 운영 업체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으리라.

문제는 역시 강사인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맥스스쿨 소속도 아니신데……. 강사는 그러면 어떻게 하시나요?”

-한성 그룹이 지원에 먼저 나서면서 그 일도 수월하게 풀리고 있습니다. 방금 첫 가계약을 끝내고 왔어요. UCLA에 들렀다 돌아가는 중입니다.

UCLA……. 우리에게는 우클라라는 희한한 발음으로 불리는 옷 상표이지만 미국 내의 인문대학 상위권 순위에 항상 들어가는 명문 대학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캘리포니아에 있는 몇 개의 주립 대학 분교 중 하나이지만, 캘리포니아의 면적이 우리나라 남북한 합친 크기이기에 우리로 따지면 지방 국립대 수준.

이러면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

미국 전역에서도 인문대학 쪽은 최상위권으로 인정받는 곳이다.

“대학교 학생들을 섭외하신 건가요?”

조금 걱정되는 부분.

물론 내가 교육 복지를 위해 이 시장에 진입한다면 일단 강사는 대학생을 초빙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렵고, 사이트를 오픈하고 나서 초반 기세가 중요한데 그걸 놓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허허. 그럴 리가요. 전에 이거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맞다. 나눈 적이 있었지.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아직 먼 훗날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벌써 그렇게 된 걸까.

-일단 영문학과와 협약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수학과는 내일 UC버클리로 가서 논의할 예정이고요.

영문학과 자체와 협약을?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내 생각은 잘하면 부교수 급이나 한국에서 유학 간 박사과정 대학원생 정도가 아닐까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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