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71화.
그렇게 한참을 김미연 부회장, 이재훈 전무와 대화를 나누고 드디어 자리 이동을 했다.
김미연 부회장과는 나중에 다시 보기로 하고 나와 이재훈 전무만 나왔다.
이 건물에 들어온 지 대충 1시간쯤 지났을까?
이재훈 전무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바로 아래층.
“여기가 우리가 준비 중인 사무실들입니다.”
사무실이 아니라 그냥 로비였다. 그리고 로비 양옆으로 길게 복도가 나 있는 모습.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는 곳인데 마치 무슨 회사 로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깔끔하게 꾸며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전무님, 유현덕 대표님.”
정면에 보이는 안내 데스크 뒤로 또 다시 미인 한 명이 서 있다가 우리에게 인사를 했다.
경직될 만한 대우였지만 이 건물에 들어오고 나서 몇 번 겪은 일이라 이제는 나름 익숙하게 나도 인사로 답했다.
오른쪽과 왼쪽 복도의 풍경이 왠지 달라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양옆을 두리번거리고 있자 이재훈 전무가 웃으며 말했다.
“온도 차이가 좀 날 겁니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서버 관리실과 관리 인력들, 그리고 사이트 운영을 위한 인력들이 일을 하는 공간이거든요. 서버가 굉장히 커서 열이 엄청납니다. 그리고 왼쪽은 촬영을 위한 강의실 세 개가 우선 있고, 강사 휴게실 하나, 기획팀과 홍보팀이 근무하는 곳 하나로 총 6개의 방이 순서대로 있습니다.”
기획팀과 홍보팀이라고?
맥스스쿨은 그런 팀들이 있기는 했다. 어떻게 일을 하는지 본 적은 없지만.
이미도 원장에게서 들었는데 확실히 지방 중소규모 학원의 운영 방식과는 차원이 다르게 전문적으로 운영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 S 아카데미는 그렇게 분업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이건 나의 부족한 경영 경험에 기인한 문제였는데,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리고 사업 내용이 다양하면 다양해질수록 관리가 어렵다는 생각에 최대한 단순화시킨 것이었다.
강사는 외부에서 초빙, 강의 촬영은 촬영용 강의실에서, 그리고 편집과 업로드는 사이트를 운영해 주는 업체로 사실상 외주를 잔뜩 준 구조였다.
그래서 S 아카데미는 사실상 온라인 학원이라기보다는 유명 강사를 초빙하여 강의를 중계해 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었고.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도 규모로 성장은 했지만.
어쨌든 교육 복지 사업이고 사실상 무료 강의가 많을 것이기에 홍보팀이나 기획팀까지 있으리라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강사 휴게실이라고?
하긴, 세 개의 촬영용 강의실에서 동시에 강사들의 강의를 촬영할 테니 대기하는 강사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겠지.
아무튼 엄청난 규모였다.
“어마어마하네요.”
내가 관심을 가진 곳은 역시나 왼쪽 복도에 있는 방들.
오른쪽은 컴퓨터 관련한 전문적인 영역이니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되질 않을 거다.
“여기에서 일단 시작을 하고, 추후 성과에 따라 확장 계획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제가 굳이 필요할 일이 없겠는걸요?”
솔직한 심경이었다.
내가 S 아카데미를 시작할 때보다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는 상태인데 굳이 나를 여기에 끌어들인 것이 이제는 다시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이 말에 이재훈 전무가 나를 보고는 씩 웃었다.
“하드웨어만 가지고는 컴퓨터가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죠. 유현덕 대표님께서 일단 도와주실 부분은 인기 강사들, 그 중에서도 스타급 말고 아직 빛을 못 보신 훌륭한 강사들을 초빙해 주시는 겁니다. 이건 저희가 당장 하기 어려운 부분이고요.”
강사들 초빙이라.
내가 해 온 일이기는 했지만, 이 부분은 사실 이미도 원장과 김윤지의 도움을 크게 받고 있다.
이미도 원장은 맥스스쿨로 교육방송 사업에 지원을 하고 있으니 이쪽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김윤지를 꼬드겨서 같이해 볼까?
신성 학원의 강사 풀, 그리고 성공 대입학원의 강사 풀은 사실 전국구 강사가 나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적어도 맥스스쿨 2진급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지금 S 아카데미와 계약한 강사들은 S 아카데미에서 계속 강의를 진행해야 될 거고, 그 말은 곧 한성은 아예 새로운 강사진을 꾸려야 한다는 의미였다.
“언제까지, 음, 언제까지 강사들 찾아 드리면 될까요?”
이들의 준비 상황이 생각보다 규모가 있고 조직화되어 있어 약간은 위축이 되었나?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
“여유를 조금 가지셔도 될 겁니다. 한 달이면 충분하겠죠? 국어, 영어, 수학 선생님들은 각 두 분씩, 그리고 사탐, 과탐 선생님들은 4개 과목 한 분씩 찾아봐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게 총 몇 명이냐, 그러면.
14명의 강사진을 꾸린다.
아주 크진 않더라도 갑자기 휙 구할 수 있는 인원이 아니다.
한 달이라고? 한 달이면 시장 조사 후 어느 학원에 어떤 강사에게 접촉을 해야 하는지 선별 작업만으로도 빠듯하다.
돈은 많아져서 좋은데, 이거 또 개고생 시작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달구지 돌아가는 소리, 윽.
제6강 엎치락뒤치락
“여, 이거 오랜만인데? 요즘 한창 돈 쓸어 담느라 바쁜지 연락도 없다만. 허허.”
오광필 할아버지를 다시 만난 건 거의 반년 만이었다.
맥스스쿨이 완전히 정리되고 S 아카데미는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사실상 지역 학원가는 평화를 되찾았다.
물론 조규만과의 싸움 이후에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어쨌든 맥스스쿨과의 온라인 시장 경쟁은 지역 내 학원들이 크게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때까지 어수선했던 것.
그리고 오광필 할아버지는 다시 미래 학원으로 들어가 별로 바깥 활동을 하지 않았었다.
“가끔 인사드리러 갔어야 하는데, 죄송해요.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다 말다. 김윤지 원장도 오랜만일세. 얼굴이 조금 핼쑥해졌는걸! 다이어트 하나?”
“에이, 김윤지 원장님이 다이어트 하실 필요가 뭐가 있어요. 지금도 뼈밖에 없는데.”
그리고 머리통에 날아온 그녀의 손바닥. 무슨 배구공 치듯이 치는 것 같다.
오광필 할아버지는 우리 둘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다.
“왜 그렇게 보셔요?”
“응? 아니. 둘이 이제야 조금 친해졌나 싶어서.”
과연 그 정도 생각만 했을까.
아무튼 오늘 내가 이들 둘을 만난 것은 업무적 차원. 한성 그룹 교육 사업에 참여할 강사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한성 그룹? 이젠 그쪽과도 뭔가를 하는 거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자꾸 일이 커지는 것 같은데, 일단 그쪽 사업은 교육 복지 쪽이라 그룹의 지원을 제외하면 수익이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뭐, 강사 알아보는 거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조금 시일이 빠듯하기는 하네. 그나저나 유 선생은 그러면 그걸 왜 하려는 거고?”
“저야 투자를 받았으니 조금 도와주려고 하는 거죠.”
“김윤지 원장은?”
“전…….”
하긴 나야 투자를 너무 좋은 조건에 받았으니 도우려는 것이었지만, 김윤지는 순전히 나를 돕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
오광필 할아버지도 그런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만나기 전까지는 이 일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일 테고.
“유현덕이 이걸 하려고 하니깐 도와주려고 하는 거고. 허허. 좋구먼. 그래서 얼마나 투자를 받았는데?”
“조금 많이 받았습니다, 할아버지. 하하.”
“많이가 얼마야?”
뭘 그리 자세히 알려고 하는지.
그래도 이 할아버지 정도면 내가 이 판에 뛰어들고 초반부터 계속 같은 편에 서 있었으니 괜찮겠지.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다.
그냥 자랑하는 것 같아 보일까 봐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일 뿐.
“40%에 천억이요.”
그리고 당연히 엄청나게 놀라는 반응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차분한 모습.
“지금 맥스스쿨 기준으로 40%면 얼마 정도 되지?”
“시총이 2천억 조금 넘습니다.”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김윤지가 대답을 대신 해 주었다.
검색 하나 안 하고 바로 나온 대답에 내가 오히려 놀랐다.
매일 검색하나?
그녀는 맥스스쿨에 지분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 텐데.
거기 지분은 오히려 내가 가지고 있었다.
웬만큼 이미도 원장에게 넘기고 지금 가지고 있는 건 2.5% 정도.
기업 공개 이후로 엄청 쪼그라들었지만 그래도 시총이 2천억이면 그중 2.5%에 달하는 금액이 내 지분 가치였다.
대충 50억 정도. 생각보다 크진 않구나.
하지만 내가 미친 거지. 50억이 큰돈이 아니라니.
“그러면 그렇게 무리해서 투자한 건 아니네.”
“맥스스쿨에 말씀이셔요? 그죠.”
당연히 맥스스쿨 이야기를 한 것이라 생각했다.
2.5%에 50억 정도.
방금 전 천억을 언급했으니 50억은 상당히 작은 액수다. 물론 상대적으로.
하지만 오광필 할아버지는 다른 부분을 보고 있었다.
“맥스스쿨 말고, S 아카데미 말이야. 한성에서 40%에 천억을 줬다며.”
“네? 네.”
“지금 유 대표가 가지고 있는 것이 60이야?”
“아뇨. 30입니다. 30은 조규만 의원이…….”
“뭐! 조규만? 아이쿠.”
갑자기 커진 목소리에 그의 옆에 앉아 있던 김윤지가 화들짝 놀라 들고 있던 컵을 떨어뜨렸다.
컵에 담겨 있던 것은 녹차. 다행히 어느 정도 식은 상태라서 화상을 입지는 않았다.
“괜찮아? 미안하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시고 하시던 이야기 계속하세요.”
하지만 그녀 또한 나만큼 오광필 할아버지의 반응이 흥미로운 것 같았다.
물론 조규만 이야기에 흥분한 반응 말고, 그 전에 한 말.
S 아카데미 지분 40%에 천억.
“음. 그러지. 맥스스쿨은 지금 시장에 유통 중인 비율이 50% 정도 되지? 그리고 유통이 아직 되지 않은 지분이 이미도 원장, 자네, 강재훈 전 대표, 그리고 그의 가족에게 나뉘어 있고. 참! 무슨 퓨처 금융투자였나? 거기도 하나 끼어 있었구먼.”
“그렇죠.”
“S 아카데미는 이제 한성 그룹이 40%, 자네와 조규만이 각각 30%씩이고.”
“네.”
‘무리한 투자가 아니다’라는 그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S 아카데미는 맥스스쿨보다 분명이 작은 규모.
그런데 40%에 천억이라면 맥스스쿨보다 시총 규모를 크게 봤다는 의미인데…….
“주식 안 해 봤구먼.”
“주식은 악입니다.”
주식 하다가 인생 종친 친구들 몇을 봤기에 하는 소리였다.
물론 지금 생애에서 봤다는 건 아니고. 지금은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친구 자체가 별로 없었다.
아무튼, 그러면 오광필 할아버지는 주식을 해 봤단 의미일까?
“허허. 이 사람 보게. 악이라고 규정을 하려면 뭔지 알고서나 해야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게 악이라고 어떻게 말 하냔 말이야.”
“음, 그러면 할아버지는 주식 해 보셨어요?”
“당연히 해 봤지. 쫄딱 망할 뻔도 했고.”
“그러면서 왜 주식을…….”
“주식은 악이란 표현에는 동의하네. 다만 자네 나이가 아직 젊으니 그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 두어야 할 필요가 있단 거지. 굳이 거기서 돈을 잃으라는 것이 아니라.”
뭐, 맞는 말이기는 했다. 알아야 욕을 하든 말든 할 수 있단 것.
게다가 그가 정곡을 찌른 부분이 있었다.
“가깝게 생각을 해 보면, 자네 맥스스쿨 지분 가지고 있지 않나. 거기에다 곧 S 아카데미도 기업 공개 들어갈 거고. 그게 다 주식시장에 올려서 투자를 받겠다는 의미인데,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찌 들어가려고. 이건 이제까지 유 대표가 해 온 것처럼 패기와 운만으로 싸울 수 있는 공간이 아니야.”
“그, 그건 그러네요.”
공개를 해서 투자를 받고 확장을 해서 돈을 벌겠단 생각만 했는데, 막상 이쪽 시장이 회사 주인을 바꿀 수 있는 구조란 걸 잊고 있던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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