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66화.
일단 올라가서 주현필에게는 둘째 치고 그녀에게는 지금 상황을 이야기해 두어야겠다.
한참을 자책하고 있었으니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알려 줘야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그리고 어차피 돈도 많이 생긴 것, 그녀에게 경호를 붙여 놓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규만에게 이런 식으로 끌려가지만 않았더라도 지금 이 상황이 이렇게 오지는 않았을 텐데.
그리고 전화도 빨리 해야 했다.
주머니에 있던 지갑을 꺼내 명함 하나를 꺼내 들었다.
‘한성 그룹 이재훈 전무’.
하지만 지금 당장은 김윤지와 같이 있어야겠지?
언제쯤 연락하면 좋을까 생각했다.
일단 그리고 김윤지에게 말을 해야 했고.
* * *
“원장님, 괜찮아요.”
“미안해요. 나 때문에 일이 이렇게…….”
“괜찮다니까요, 정말로. 저 멀쩡해요. 그건 그렇고 그런 일까지 기억하지 못해서 제가 죄송하죠.”
계속 달래느라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주현필은 자신의 강의를 하러 나갔고, 강의실 안에는 나와 김윤지 둘뿐이었다.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경호업체에 전화를 걸어 그녀의 경호를 의뢰했다.
세 명의 경호원들이 학원부터 집까지 24시간 교대로 근무할 예정으로, 비용이 월 천만 원이 조금 안 됐다.
큰돈은 아니었다.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라 김윤지가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
아마 그 영상 때문이었겠지. 여자로써의 수치심도 클 테고.
확실히 그녀와 나 사이에 일이 많이 꼬인 건 사실이었다.
“돈은 걱정하지 마세요. 손해도 아니에요 그건. 어차피 뭐 공짜로 지분 넘긴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그걸 어떻게 번 건데…….”
“내가 비밀 하나 원장님께만 털어놓을게요. 흐흐. 그런데 약속을 해 주셔야 합니다.”
“비밀이요?”
어차피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 좋겠지. 계속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 주려면 말이다.
“네. 제가 주현필 선생님이나 이미도 원장님께 이 일을 먼저 말씀드리기 전까지는 원장님만 알고 계시는 거로요.”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뭐, 긍정의 의미겠지?
표정을 보아하니 이 와중에 무슨 비밀을 이야기하겠다는 건지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의아하겠지.
“조규만이, 미안해요, 그냥 의원님 뺄게요. 아무튼 그 사람이 제 회사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을 거예요.”
이 말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아니, 그녀는 애초에 조규만이 나에게 요구한 고문 자리의 의미를 알까?
사실 고문은 조언을 해 주는 입장뿐이지 별다른 힘은 없다. 그게 일반적인 고문의 역할이고.
하지만 만약 그 고문이 실질적으로 회사 운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분을 들고 있다면, 그것도 꽤나 많은 양을 들고 있다면 상황이 다르다.
주식회사에서 지분은 그만큼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30%면 사실상 이사급의 영향력을 가지는 것이다.
그것도 내 밑에 있는 이사가 아니라 힘은 더 큰 것이고.
“그게 비밀이에요?”
“아뇨. 비밀은 이제 말씀드릴 내용입니다. 저 오늘부로 S 아카데미 최대 주주 아닙니다.”
“네?”
힘없이 떠져 있던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살짝 걱정의 모습이 비치는 것 같았다.
조규만이 30%나 가져갔으니 설마 그가 최대 주주가 된 것이 아닐까 걱정되었겠지.
아니, 걱정하지는 않았으려나?
아무튼 조금 더 확실하게!
“조규만도 아니에요. 최대 주주는 한성 그룹입니다. 하하.”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런 변화가 없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겠지, 당연히.
맥스스쿨도 아니고, 조규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육방송이 사기업에 투자할 수도 없다.
그리고 뜬금없이 튀어나온 우리나라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재벌 그룹.
“한성 그룹…….”
“네. 그쪽은 조규만 의원이 뭔가 꼼수를 쓸 걸 알고 있던 것 같아요. 괜찮은 조건에 미리 그쪽에 40% 지분 넘겼습니다. 지금 구도는 한성 그룹이 40%, 저와 조규만이 각각 30%씩 가지고 있는 상황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이걸 보여 주면 좋아하려나. 아마 재수 없게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냥 말로 할 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나는 이렇게 하려고 서랍에서 그것을 꺼내 놓은 상황이었다.
나는 앞에 놓여 있던 통장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제 통장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예상과 다르게 그걸 열어 보지도 않고 나에게 다시 주었다.
“이걸 왜 저에게 보여 주셔요?”
“네?”
예상치 못한 반응.
하긴, 우린 아직 사귀거나 만나는 사이도 아닌데. 너무 오버를 했던 건가, 내가?
“유현덕 선생님 통장을 왜 저에게…….”
“아, 안심시켜 드리려고 했는데요?”
그리고 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민망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돈 자랑을 하려고 한 건가.
“저, 직접 결론만 말씀드리자면 한성에서 굉장히 좋은 조건을 제시해서요. 운영권은 그대로 제가 가지는 것으로 하고 기업 공개를 서둘러서…….”
“그러니깐, 돈을 많이 준다고 해서 지분을 넘겼다는 말씀이시죠?”
김윤지가 기운이 조금 돌아온 듯했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닌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데…….”
그리고 얼버무리는 나에게 그녀가 일침을 날렸다.
“유현덕 선생님께 제가 이래라 저래라 할 입장은 못 되요. 그러니 불편해하지 마셔요. 다만, 이런 모습은 이제까지 제가 봐 온 유현덕 선생님의 모습이 아니네요.”
이제까지 그녀가 봐 온 내 모습이라니.
나는 한결같이 일하고 달려왔는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돈을 추구하는 것?
그것 때문인가.
차라리 이것저것 뜸들이지 말고 털어놓으려 했던 모든 것을 털어놓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걱정을 덜어 주려고 꺼낸 이야기인데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듯싶었다.
“시가의 다섯 배 조건으로 40% 한성이 갖습니다. 그리고 제 지분을 10% 이상으로 유지해서 항상 한성과 합치면 과반을 갖고 있도록 약속했고요. S 아카데미의 경영권 및 운영 권한은 전적으로 보장해 주기로 했기 때문에 조규만에게 30%를 넘기고 고문직을 준다고 하더라도 마음대로 절대 하지 못합니다. 저 혼자라면 모르지만 한성 그룹이 40%를 가지고 전적으로 상호 지원하기로 되어 있거든요.”
“그쪽에서는 뭘 원하는 거죠, 그러면?”
나도 그 의도가 궁금했었지.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답은 이미 받은 상태였다.
“이미지입니다. 사회에 공헌하는 대기업의 이미지요.”
그녀는 내 마지막 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냥 나를 쳐다보았다.
질책하거나 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오히려 측은함이 깃든, 그런 눈빛.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엄청 기운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뭐랄까, 길을 잘못 든 막내 동생을 바라보는 누나의 모습이랄까.
“후우, 오늘만 해도 그래요. 목적을 위해 달리는 유현덕 선생님이라면 오늘 저를 무시하고 지나치셨어야 해요.”
손해가 있기는 하지.
기업 공개를 한다면 60%를 가져가는 것과 30%를 가져가는 것의 수익 차이는 엄청날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 조규만과의 계약으로 인해 천억을 벌 수 있는 상황에서 500억만을 버는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래도 그건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김윤지를 그놈에게서 구해 냈기 때문에.
그리고 며칠 전 한성 그룹과의 계약으로 S 아카데미는 온전히 내가 운영할 수 있고.
앞으로 좋은 일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 좋은 방법이 과연 있었을까.
내가 한 일에 대해 금전적으로 약간 손해를 입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는데.
오히려 그녀가 나의 행동에 아쉬움이 있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오늘 원장님을 구한 건 제 마음이었는데요.”
“고맙게 생각해요. 정말로. 하지만…….”
기분이 나도 썩 좋지 않았다.
나와 그녀의 관계가 도대체 뭐라고.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건 아니지 않은가.
굳이 조규만이 말한 그 동영상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수년 간 함께 일을 해 왔다.
동료를 구하는 것, 또는 여인을 구하는 것인데 왜 이리 민감하게 반응을 할까.
“하지만 나는 선생님의 앞길을 막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장애물 같은…….”
이게 그녀의 심정을 힘들게 만들던 건가?
나에게 걸림돌이 되었다고 느껴서?
“그런 말씀하지 마십쇼.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고, 제가 옳다고 생각해서 한 계약입니다. 원장님, 저보고 전에 물어보셨죠? 어떻게 생각하시냐고요. 원장님이야말로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나도 화가 난 걸까. 목소리가 나도 모르게 절로 올라갔다.
그녀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불편한 시간, 불편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토할 것만 같은 어지러움.
“원장님, 저는 S 아카데미가 완전히 날아갔다고 하더라도 저와 함께 하는 사람이 다치지만 않을 수 있다면 또다시 오늘처럼 그렇게 할 겁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원장님께서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 테이블을 보고 말을 했다.
S 아카데미라…….
내 인생의 목적이 이것은 아니었다.
그간 노력해 온 성과가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너무도 괴롭겠지만, 그래도 함께해 온 사람의 인생을 구하지 않았는가.
어쩌면 이러라고 그간 내 능력 이상으로 성공해 온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 생각하려고 하는데.
한참을 그렇게 쏟아 내고 나서, 뭔가 공기가 순간 달라진 것 같았다.
강의실 내부를 감싼 정적.
고개를 들고 싶었으나 차마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질 않는데 어쩌겠는가.
그렇게 테이블 위만 쳐다보고 있던 것이 거의 1분 가까이 되었을까.
“유현덕 선생님.”
굉장히 가까운 곳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네?”
‘네?’라니. 나도 참…….
그리고 고개를 들자 그녀의 얼굴이 지근거리에 있었다.
거의 시야의 절반이 꽉 찬 것 같은 거리였다.
그녀가 점점 다가왔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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