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60화.
처음에는 이것저것 가져다주고 했으나, 그렇게 협조를 하건 안 하건 도무지 이들의 조사란 것은 끝이 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서울까지 조규만의 입김이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맥스스쿨도 똑같이 조사를 받게 되었고.
신성 학원, S 아카데미, 맥스스쿨 세 곳에서 동시에 조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일주일간의 말도 안 되는 조사 흉내 내기 끝에 드디어 그들이 떠나면서 남긴 말은 이것뿐.
“별문제 없어 보입니다. 조규만 의원님께서 훌륭하신 분 그만 좀 괴롭히라고 하셨다더군요. 아무튼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훌륭한 분?
무슨 개소리인가. 우리에게 이런 의혹을 뒤집어씌우고 특별 세무 조사까지 나오게 만들 사람은 조규만밖에 없는데.
학원에 직접적인 원생수 감소 등의 타격은 없었으나, 그렇게 대놓고 쑤셔 대는 통에 이미 지방지와 주요 일간지에는 ‘세금 탈루 의혹’이라는 타이틀로 기사가 나간 뒤였다.
그리고 이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센 타격이 있었다.
-고생 많았겠네, 유현덕 선생.
뻔뻔한 조규만은 조사가 끝나자마자 전화로 연락을 해 왔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 감사를 표할 수밖에 없었고.
분했지만 그가 상전이었다. 국회의원과 싸운다는 생각은 하기 어려웠으니.
“감사합니다. 덕분에 별문제 없이 넘어갈 수 있었네요.”
-아냐, 아냐. 조금 먼저 알았으면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 연락하지 그랬나.
내가 그에게 연락을 할 수도 있었다. 그 방안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세무 조사 시작 후 사흘째 되는 날에는 몇 번이나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내가 학교에 강의를 무료로 넣고, 조규만의 원래 요구대로 비공식적인 후원금을 넣지 않은 이유가 그의 올가미를 피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 세무 조사를 피하거나 빨리 끝나게 하기 위해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면 그 즉시 끝을 낼 수도 있었으리라.
애초에 그로부터 시작된 일일 테니.
하지만 그랬다면 앞으로 두고두고 갚아야 할 빚이 생기는 셈.
어찌되었건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무의미한 대화를 그와 나눈 뒤 끊고 나서, 세무 조사 기간 동안 연락이 없던 김윤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유현덕 선생님, 지금 바로 이미도 원장님과 주현필 선생님까지 전부 뵙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 * *
“김윤지 원장님, 오늘 약속 어떻게 된 겁니까? 연락은 왜 받지 않으세요? 이 메시지 받으시면 바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약속 장소는 성공 대입학원 주변의 한 카페였다.
주현필과 나는 곧바로 준비하고 볼 수 있었지만, 이미도 원장은 서울에 있기 때문에 올 수가 없었다.
일단 전화로 뭔가 급한 상황이 생긴 것 같다고만 전달했다.
김윤지에게서 전화가 온 날은 마침 신성 학원과 S 아카데미의 세무 조사 직후였다.
이제 조금 한숨을 돌리려나 싶었고, 그녀의 연락이 뭔가 큰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급한 일일 수는 있어도 아마 조규만 관련한 일 정도겠지 싶었다.
하지만 조규만과 관련 있는 일이 지금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일 아니었는가.
“계속 받지 않아?”
“네, 이상해요. 아까 전화 받고 3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게 어떻게 된 건지…….”
“이상하네, 정말.”
성공 대입학원의 원장이니 학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겠지만, 그건 이미 도착하자마자 확인했다.
내가 카페로 들어와 있는 사이 주현필이 곧바로 학원 건물로 올라갔다 내려온 것.
“원장님 아까 내려가셨어요. 급한 일 있어서 강의 좀 부탁한다고 하시면서요.”
“언제쯤이죠? 나가신 게?”
“한 30분? 뭔가 좀 급해 보이셨어요.”
여기까지가 성공 학원에 올라갔다가 혼자 다시 내려온 주현필이 카페에서 멀뚱멀뚱 기다리던 나에게 말한 상황이었다.
“김윤지 원장이 우리 전부한테 무슨 중요한 것 말할 일이 있나, 그런데?”
이건 차에서도 그가 제기했던 의문이었다.
이제까지 사업 관련해서 김윤지의 역할이 크지는 않았다. 가장 컸던 것이 그나마 맥스스쿨과의 일.
그때도 그녀가 직접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과는 논의를 했던 적은 없었다.
나하고만 그렇게 했던 것인데.
이번에는 그녀가 우리 전부를 같이 불렀다.
“글쎄요. 이제까지는 그런 적이 없었잖아요.”
“내 말이 그거야. 너랑만 둘이 뭘 꾸민 적은 있었지만…….”
나하고만 그런 의논을 주고받았었지.
조금씩 마음이 불안해졌다.
그녀가 급한 일이 생길 만한 것이라면 범위가 너무 넓다.
하지만 그 일이 우리들 모두와 관련이 있다면, 그 범위는 한 점으로 좁혀진다.
‘조규만’.
그리고 주현필도 똑같은 결론에 도달한 모습이었다.
가만히 생각하다 그를 본 나를 그도 보고 있었으니.
“세무 조사에, 이번엔 또 무슨 일이려나, 그 할배가.”
말은 저렇게 해도 그도 긴장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뭐 별일이 있을까. 외삼촌과 외조카 사이인데.
하지만 그런 사이이기에 우리가 가장 방심할 수 있는 부분.
주현필이야 팔 한 번 부러진 것으로 끝이 났고, 이미도 원장은 당시 주현필과 맥스스쿨에서 와 있던 운전기사 겸 경호원이 근접 마크를 하고 있었으니 안전하다고 볼 수 있었다.
뭐, 나보다는 상대적으로라도 안전했던 건 사실이니.
하지만 김윤지는…….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한테 했던 것처럼 다루지는 않겠지. 그냥 급한 일이 따로 생겨서 못 온 걸 수도 있어.”
“글쎄요.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겠지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나는 조규만 의원실의 번호를 휴대폰에서 다시 찾고 있었다.
“그나저나 두 사람, 혹시 사귀거나 하는 사이야?”
갑자기 그가 왜 이런 걸 묻는 거지?
“아니요. 사귀다니요. 모태 솔로 놀리십니까.”
그런데 갑자기 주현필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분명 ‘모태 솔로’라는 단어에서 그랬던 것 같다.
“선생님, 혹시 모태 솔로세요?”
“한 대 맞을래?”
“아니요. 근데 그건 왜요?”
“아니, 조규만이 아직까지는 김윤지를 건드린 적이 없잖아. 우리랑 꽤 가깝게 지내는데도. 그런데 만약 이번 일이 조규만 때문에 벌어진 거라면 뭔가 변화가 있어서 그런가 싶어서.”
변화라. 특별히 변화랄 것도 없었는데.
말했다시피 사귀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고 싶은 감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 다르고 ‘어’다른 것은 구별해야 옳다.
아직 사귀는 건 아니었다.
아닌가?
그리고 뭔가 내 텅 비었던 머릿속을 ‘탕’하고 친 듯, 강한 충격이 온몸을 휘감았다.
“주현필 선생님. 조규만에게 당장 가 봐야겠어요.”
* * *
사실 김윤지는 일전에 유현덕에게 언급했던 비밀 장부를 정말로 건네려 그에게 연락한 것은 아니었다.
비밀 장부는 존재했다. 하지만 그건 그녀도 열 수 없는 금고 안에 들어 있고, 조규만이 국회의원이 되고 성공 대입학원을 그녀에게 넘겼음에도 가끔씩 실장이 와서 확인하곤 했다.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었달까.
그녀가 그 장부의 존재를 알고 있음에도 조규만이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은 아마 그녀가 완전하게 그의 편이라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상한 기류가 있었고, 사람 한 명을 그녀 모르게 붙여 놓은 상태였다.
붙여 놓은 그 사람이 멍청하게 전날 밤 걸린 것이 바로 김윤지를 움직이게 한 이유였고.
“외삼촌, 저를 이렇게 강제로 끌고 오셔서 뭘 어쩌겠다는 거죠?”
전부 다 돌발적인 상황이었을까.
사실 조규만이나 김윤지 모두 이런 날이 언젠가는 올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사람을 해하는 일까지 거침없이 지시하는 조규만, 그리고 그런 모습에 내심 반대 의사를 표현해 왔던 김윤지.
둘은 알고 있었다.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올지는 몰랐지만.
“에휴. 윤지야, 나는 그냥 궁금한 것이 있어서 부른 거야.”
“가지 않겠다는데 차에 강제로 태워서요?”
별일 아니라는 투의 그의 말에 김윤지가 매섭게 쏘아 대듯 대답했다.
“내가 급히 보자고 했는데도 너는 약속이 있다 하지 않았니. 그 약속은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유현덕과의 약속이었고.”
이 시점에서는 김윤지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가 유현덕에게 전화를 건 장소는 자신의 강의실.
그리고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건물을 나오면서도 누구에게도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당연하고.
“그건…….”
“그러니깐, 너는 누구 편이냐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고.”
“누구 편이냐고요?”
“그래. 내 편이니, 아니면 유현덕 편이니.”
자신보다 나이도 훨신 많은 사람이 무슨 이런 질문을 한단 말인가. 애도 아니고.
하지만 섣부르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무슨 질문이 그래요, 외삼촌? 저를 못 믿으세요?”
“믿고말고. 좋다. 그러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자.”
그녀는 아무래도 질문이 하나가 아니었나 보다고 생각했다.
만약 정말로 별일 아니라면 자신을 이렇게 끌고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왜 갑자기 유현덕뿐만 아니라 이미도와 주현필까지 보자고 한 게냐?”
“사업적인 문젠데요? 그나저나 그건 어떻게 아신 거예요?”
어떻게 알기는. 성공 대입학원은 원래 그의 것이었다. 지금 그녀가 쓰고 있는 원장 전용 강의실도 조규만이 쓰던 것이고.
도청 장치를 해 둔 것이었을까.
그녀는 도대체 자신의 외삼촌이라는 이 사람이 어느 정도나 치밀하고 위험한 사람일까 생각했다.
“알면 안 돼는 일이었니?”
그는 평소의 사랑하는 외조카를 바라보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김윤지가 자신의 외조카라는 사실보다도 그녀가 자신을 배신하려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유현덕이라는 애송이가 뜬금없이 지역 학원가를 흔들어 버릴 때, 그때 김윤지가 그를 만났었지.
그렇다면 그때부터였을까.
이 어린 조카에게 늙은 외삼촌을 배신하겠다는 생각이 싹튼 것이.
“아뇨. 그런데 기분은 좋지 않네요. 저를…….”
“널 못 믿어서 그렇다는 게냐? 허허. 아직도 상황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나 보구나. 쯧쯧.”
“무슨…….”
“곧 유현덕이 연락을 해 올 게다. 나는 이곳을 알려 줄 것이고.”
김윤지는 왜 굳이 이 장소를 알려 주겠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왜 이렇게 이 사람이 당당하게 저리 말하는지도.
“아마 주현필이랑 같이 오겠지? 맥스스쿨의 강재훈 대표가 이야기하더구나. 허허. 그 친구 대단한 녀석이라고. 아무튼, 나는 싸우려고 부르는 것이 아니야. 협상을 하려고 부르는 거지.”
“협상을 하려는데 왜 저를 이리 강제로 데리고 오신 건데요?”
지금의 조규만이라면 그냥 전화 한 통으로 유현덕과 협상 자리를 만들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이렇게 골치 아프고 복잡한 방법을 택했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김윤지의 머릿속에서 생각해 낼 수 있는 전부였고, 조규만은 그녀의 상상을 넘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조규만이 옆에 서 있던 그의 비서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가방에서 노트북 하나를 빼내 건네주었고.
그것을 받아 든 그는 천천히 묶여 있는 김윤지의 앞으로 다가왔다.
“김 비서, 이제 끈은 풀어 줘도 되겠어. 뭐, 여자아이인데 여기에서 어쩌지는 못하겠지.”
“네, 의원님.”
끈이 풀리고, 김윤지가 묶여 있던 손을 아파하며 살짝 만지고 있을 때, 조규만이 노트북을 열어 그녀의 앞에 놓았다.
화면에서는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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