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59화.
제3강 뜻대로 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
“찾으셨어요, 외삼촌?”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는 전화.
학원 강의가 있다고 해도 외삼촌 조규만은 무시하고 넘어오라고 했다.
그냥 버텨 볼까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급히 찾는 걸 보면 아마 유현덕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었다.
같은 교과 선생님 한 분께 강의를 부탁하고 학원을 나섰지만, 발걸음은 무거웠다.
아무리 자신의 외삼촌이라지만 이제껏 봐 온 그의 모습은 야망을 위해 가족 따위는 내팽개칠 수도 있는 사람이었기에.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가족을 택할지도 모르고.
하지만 유현덕은 거의 죽을 뻔했다.
돈을 더 벌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위로 올라가려는 건방진 생각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죽이려고 했다.
물론 물증은 없었지만.
“너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냐?”
평소의 목소리와는 확실히 달랐다.
전화는 그가 직접 하지 않아서 몰랐지만 확실히.
자신의 일을 해 주거나 가족 행사로 볼 때는 이렇지는 않았는데.
이건 질책하는 말투였다.
유현덕이 무료로 강의를 푸는 계약을 알게 된 것이 분명했다.
하긴 정확한 계약 날짜를 들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맘때쯤이 아닐까 그녀도 예상은 하고 있었고.
“무슨 말씀이세요?”
하지만 곧바로 아는 내색을 한다면 숨긴 것이 바로 드러날 것이었기에 모르는 척을 해야 했다.
“너도 몰랐던 게야?”
“뭘요, 외삼촌?”
“이거, 이거. 둘이 좀 친하게 지내나 해서 기대했더니만. 너네 둘 지금 무슨 사이야?”
글쎄. 김윤지도 유현덕과 자신이 어떤 관계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무슨 관계일까. 연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그냥 단순한 사업 관계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랑과 우정 사이? 그것도 아닐지도.
“무슨 사이기는요. 그냥 유현덕 선생은 S 아카데미 대표고 저는 성공 대입학원 원장이죠.”
“마음이 없는 게냐? 그것도 아닌 것 같은데.”
부모님이 물어보신 것도 아니고 외삼촌이 이런 문제를 들먹일 때는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물론 부모와 마찬가지라고 생각은 했다. 같이 일하고 같이 지낸 시간이 길다 보니.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연애 문제는 완전히 개인적인 부분 아닌가.
“째려보지 마. 어쨌든 학원은 내가 너에게 넘겨준 거니깐 너도 나 좋은 일 좀 해야지. 서로 만나는 사이도 아니라면 말이다.”
“그런데 뭘 몰랐냐고 물어보신 거예요?”
“유현덕이가 학교랑 계약하는 건 알고 있지?”
“네, 그건 들어서 알고 있잖아요.”
조규만에게도 듣고 유현덕에게도 들은 이야기였다.
“공짜로 강의를 풀겠다고 했단다.”
역시나 그 문제 때문에 화가 나서 부른 것이었다.
“공짜로 하든 돈을 받든 외삼촌 입장에서 차이는 없잖아요?”
그리고 이 부분을 외삼촌이 추궁하게 되면 할 대답도 생각해 두었었고.
실제로 조규만이 순수하게 공교육을 위해서 유현덕과 손을 잡으려는 것이었다면, 유현덕이 학교에 무료 봉사를 하건 말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기에 심기가 불편해진 것이었고.
“그게 다르지가 않아. 너한테도 전에 말했듯이 유현덕이 내 계획을 잘 따라 줄 필요가 있어.”
“저에게 말씀해 주신 적 없으셔요. 외삼촌은 뭘 원하고 유현덕 선생님께 협력을 구하신 건데요?”
그녀의 외삼촌 심중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아니, 지금 함께 일한다는 여기 이 비서는 알고 있으려나.
딱 보아하니 자신이 예전에 조규만과 같은 학원에 있을 때의 모습 같았으니.
“너는 유현덕에게 마음이 있는 거냐?”
그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은 채로 다른 질문을 던졌다.
시의 적절한 질문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만약 유현덕을 다시 한 번 무너뜨리려 한다면 자신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렇다고 한다면 조규만이 여기에서 멈출 것인지.
자신과 만나는 사이라면 그도 지난번처럼 위험한 짓은 안 하지 않을까.
그녀는 잠시 시간을 가졌다.
조규만도 지금 당장 추궁을 해 봐야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을 것을 알았는지 기다렸다.
“아니요. 그런 사이 아닙니다, 외삼촌.”
이게 최선의 답이 되기를 바라며 그녀는 말했다.
“아주 마음이 없지는 않나 보구나.”
“마음 없어요.”
“그렇게 말을 한다면야. 이번 일은 너는 정말로 알고 있던 건 아니었고?”
“아니라니깐요.”
조규만이 이제야 조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말이 흐뭇한 미소지 이게 사실 남이 본다면 엄청나게 음흉한 남자라고 생각할 만한 모습이었다.
김윤지는 그리 생각했다.
“차라리 잘됐구나, 그러면. 유현덕이랑은 가끔 보는 거냐?”
“일 때문에 보는 거고 달리 볼일은 없어요.”
“그러면 부탁 하나만 하자. 그 녀석이 무료로 강의를 풀겠다는 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한 건지 알아봐라.”
“그거면 되나요, 외삼촌?”
약간은 저항할 줄 알았고, 만약 그랬다면 다음 카드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쉽게 수긍하는 것 같아 보이는 김윤지의 모습을 보며, 조규만의 마음에는 사라지려 했던 의심이 다시 솟아났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 했고, 반대로 예상보다 너무 쉬운 수긍은 솔직하지 못한 대답이리라.
“허허. 그래. 그거면 된다. 유현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혹시 나에게 복수라도 하려고 준비하는 거라면 안 되지 않겠느냐.”
“알겠어요. 조만간 한 번 따로 자리 잡아 만나 봐야겠네요. 저도 궁금하기도 하고요.”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하려 했으나, 오히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어색한 대답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녀는 조규만이 눈치채지 못했기를 바라며 사무실을 나왔다.
* * *
“김 비서. 어떻게 생각해?”
얼굴에 한 손을 괴고 조규만이 물었다.
나름 고심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려 했으나, 김현진에게는 그저 척으로 보일 뿐이었다.
그래도 그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저는 소리로만 들어서 제대로는 모르겠습니다만, 외조카 분께서 일부러 마음이 없는 척하시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그리고 맥스스쿨이 교육방송과 계약했단 건 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조규만은 다시 아무 말도 없이 창문만을 바라보았다.
“무료로 강의를 풀었다고 했을 때, 그 녀석은 이미 알고 있었어. 하나도 놀라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았거든. 그럼 그 부분도 이미 알고 있었을 거야. 며칠 전 둘이 만났다는 것은 확실한 거지?”
“네. 그 부분이라면 확실합니다. 12시 30분쯤 만나서 3시 조금 넘어서 헤어졌습니다.”
“알겠어. 그럼 일단 윤지도 유현덕에게 넘어갔다고 봐야 하겠구먼.”
예상치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단지 적당한 관계만 유지하면서 자신에게 정보를 가져다주기를 바랐는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마음을 준 것 같았다.
조규만은 만약 유현덕이 김윤지의 마음을 알고 있다면 김윤지가 이용당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오히려 싸움에서 위험해진다.
물론 유현덕은 거기까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조규만은 다분히 조규만스러운 사고방식으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경계했기에 그것까지 고려했던 것이었고.
“일단 계속 사람 붙여 놔. 그리고 무료 계약 건은?”
“그건 저희 쪽에서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일단 표면적으로 지역 공교육 발전을 위한 사업이었으니 무료로 강의를 푼다는 건 아주 훌륭한 제안이니까요.”
“그렇겠지. 그 녀석은 그걸 노렸을 테고. 김 실장, 우리가 유현덕에게서 받을 후원금은…….”
“그렇잖아도 방금 연락이 왔습니다. 5억 선에서 가능할 것 같다고 합니다.”
후원금 5억.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절묘한 금액이다.
그리고 이는 아마 혼자 판단한 것이 아닐 테고. 주현필이나 이미도 원장이 어느 정도 도와주고 있겠지.
이제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평범한 정치인이었다면 여기에서 멈출 것이다. 원하는 후원금을 받아 냈고, 지역 공교육 발전을 위해 사교육 업체에게서 훌륭한 조건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자신이 의원으로써 일을 한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해 유현덕을 끌어들인 것은 아니었다.
이번 판에서 유현덕을 잡으면 그가 대표인 S 아카데미, 그리고 대주주인 맥스스쿨까지 통째로 협상 테이블에 올려 버릴 수가 있다.
“국세청 장진욱 차장 연결해 줘. 이제 조금 흔들어 봐야지. 시기는 언제가 적절할까.”
“다음 달부터 S 아카데미의 강의가 학교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그때가 어떨지요.”
“시작하자마자 흔든다. 하하. 역시 김 비서가 나보다 더 악랄한 걸.”
지지 않는 싸움이었다.
원래 이길 수밖에 없는 판을 만들려고 했으나, 그건 유현덕의 무료 강의 공개에 무산된 것.
지역 발전을 위해 학원 강의를 싼 가격에 공급하면서 약간의 후원금을 받은 정치인과, 공교육에 진입하기 위해 국회의원에게 검은 돈을 갖다 바친 사업가.
동시에 기사가 뜬다면 이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 검은 돈은 사라진 상태고, 맨 처음 괴롭히기 위해 생각했던 세무 조사만이 남았다.
유현덕이 만약 살아남는다면 지역 공교육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조규만 지역구 의원이 되고, 죽는다면 국회의원으로서의 청렴성에는 살짝 타격을 받겠지만 성공 대입학원의 자금을 이용해 S 아카데미와 맥스스쿨을 먹어 치운다.
그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혹시 두 가지 모두 실패한다 하더라도, 이제는 카드 한 장이 더 생긴 것 같았고.
“둘이 낌새가 있으면 바로 연락 주도록.”
“알겠습니다, 의원님.”
* * *
“세금 탈루 의혹으로 특별 세무 조사 나왔습니다. 오늘부터 일주일 간 진행될 예정이니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역시나 일은 터졌다.
조규만은 쉽게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겪어 보니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세무 조사가 나올 수도 있음에 S 아카데미와 맥스스쿨은 장부를 따로 정리해 두고 미리 한곳에 모아 두었다.
조사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세금을 따로 빼돌리거나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문제는 원생들과 학부모들이 동요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려는 현실로 닥쳐왔다.
“무슨 일이에요, 선생님?”
“자자, 얼른 들어가자. 원생들은 강의실로 들어가고. 유현덕 선생, 수업 진행할 수 있겠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부원장님. 학부모님들께는 제가 따로 연락드릴게요.”
“오케이!”
강의를 한두 시간 넘기는 건 큰 문제는 아니다. 주현필이라는 든든한 백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 세무 조사를 위해 나온 인원이 열 명 가까이 된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학원 강의에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조심 움직이지 않는다는 부분이었다.
“장부는 이게 전부입니까?”
“네, 그게 전부입니다. 다른 것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
“아니요. 저희가 직접 찾아보겠습니다. 대표님은 그냥 앉아 계셔요.”
이렇게 말하면서 이 강의실, 저 강의실을 들락거리는데 어떻게 수업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을까.
“수업을 방해하시면 안 되지 않습니까? 정말 이러시기 에요?”
주현필이 큰 소리로 항의를 해 봤으나, 이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탈세 의혹 신고가 들어와서 온 겁니다. 협조해 주셔야 합니다.”
협조는 개뿔.
미리 장부 전부 모아 두고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협조지 여기저기 탈탈 털어 대며 먼지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들쑤시는 것에 어떻게 협조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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