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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56화 (56/200)

[56] 56화.

“여기요. 너무 많이 드시는 것 아니에요, 원장님?”

“거, 참. 언제까지 원장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지. 원장보고 원장이라 부르지 그러면 뭐라고 부르냔 말이다.

그러면 혹시, 누나?

누나라니…….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누나는 맞지만 그건 좀 그렇지 않은가. 아닌가?

“그럼 뭐라고 불러요. 누나?”

“음……. 그것도 이상하네요. 그렇게 불려 본 적이 없는데.”

“윤지 씨? 윤지 양? 양은 아닌 것 같군요.”

“아악! 진짜. 그것도 오글거리네. 그냥 누나라고 불러요. 나도 반말하게. 하하.”

방금 그녀가 ‘하하’ 하면서 웃었다.

확실히 술에 취하긴 한 것 같아 보였다. 그것도 많이.

“알겠어요, 누나. 으윽.”

그런데, 나도 이게 어색하기는 엄청 어색했다.

누나는 확실히 누나가 맞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지금 20대 중반의 나와 전생의 30대 중반의 내가 공존해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전생의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사라지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 현덕아! 하하.”

그녀가 이렇게 호탕하게 웃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그만큼 술에 취했거나, 아니면 이렇게 살고 싶지만 숨기고 살았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서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니 뭔가 마음이 짠했다.

20대 후반이라. 누구나 이쯤이면 대학을 졸업하고 한창 직장 생활을 할 시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 그녀의 삶은 그 평범한 삶과는 다르다.

가진 것은 많지만 막상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다들 가지는 경험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은…….

그리고 분위기가 일순간 바뀐 것은 그때였다.

“현덕아, 너는 누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글쎄. 그녀는 미녀였다.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 조금 오묘한, 내가 겪어보지 못했던 기류가 흐르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런 관계가 더 발전하거나 겉으로 드러난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녀가 지금 나에게 자신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고 있었다.

이게 참 곤란한 것이, 대답을 해도 문제고 그렇다고 생각만 오래 하고 있어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어쨌든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라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그녀가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말했다.

“아무 감정이 없는 거였니?”

“아, 아닙니다. 저……. 갑자기 물어보셔서 어떻게 대답을 드려야 할지가…….”

“아냐. 됐어, 그러면.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거야.”

이렇게 말하고는 다시 씩 미소를 짓는 그녀.

미소는 미소인데 밝은 미소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지만 가슴이 아려 왔다.

“당장 대답해 달란 건 아냐, 물론. 선물을 하나 주려고 하는데 주기 전에 물어보고 싶었어.”

“선물이요?”

이런 멍청한 자식아!

이 와중에 마치 선물에 관심이 팔린 것처럼 들리는 말을 하면 어떡하나?

“응. 선물 하나 줄 거야. 호호.”

다행히 크게 개의치 않는 것 같아 보였다.

아니면 술에 취해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고.

그나저나 무슨 선물을 주려고 하는지…….

“너, 우리 외삼촌 아직 싫어하지?”

“좋아하진 않죠.”

“그러면 왜 같이 그 사업 해 보자고 한 거야?”

학교에 엄청 싼 가격에 강의를 넣는 사업.

그 사업 자체로는 수지가 맞지 않을 것이다.

사업가라면 모름지기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때 참여해야 하는 법.

내가 사업에 대해 뭘 엄청 잘 안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이번 사업도 마찬가지였고.

“사업은 사업이고, 감정은 감정이죠. 물론 불안하긴 해요. 이번에는 여섯 달 누워 있게 될 수도 있고. 하하.”

나도 모르게 그때 맞은 머리로 손이 갔다.

습격을 받았을 때 아픈 기억은 없었다. 충격을 받기도 전에 정신을 잃었으니.

김윤지 원장이 눈을 동그랗게 억지로 뜨는 것 같았다.

아마 그녀도 엄청 피곤하겠지.

내일 일어나서 이불 킥 할 수도 있고.

“그래도 조건이 나쁘지는 않습니다. 누나가 주실 선물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하나 말씀 드릴게요.”

뭘 말한다는 것인가.

내가 말해 놓고 나도 그 이유를 몰랐다.

그냥 잘해 주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이었을까?

“이번 사업에서 저는 무료로 강의를 풀 겁니다.”

“무료로?”

어쩌면 조규만과 같은 편에 서 있는 사람에게 내 필살기를 까발린 것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이 자리가 끝나고 곧바로 내일 조규만에게 달려가 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고.

하지만, 정말 나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만큼은 이것저것 재지 않고 솔직하게 다 털어놓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를.

“네. 무료로 풀 겁니다. 조규만 의원님 제안대로 협의된 학교에 한해서요.”

“강의를 만들려면 돈이 들잖아?”

“그 정도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잖아요?”

동일한 강의를 두 세트 만들어 풀게 될 것이다.

아침 시간, 야자 시간.

그리고 매일매일 진행될 예정이니 한 달에 25편으로.

이미 강의는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25편씩 두 달 치.

그리고 앞으로 한 달 동안 두 달 치를 더 만들 예정이다.

맥스스쿨 출신 강사 한 명, 그리고 맥스스쿨 본원 주변에 있는 다른 대형 학원 출신 강사 한 명.

이들에게 두 달간 강의 촬영비로 지불될 돈은 각 3억씩.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비싸기는 하다만…….

어차피 학교에서 돈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너 다섯 군데 계약으로는 두 달 동안 천만 원 남짓한 금액.

방학 기간 빼고 넉 달을 한다고 하더라도 2천만 원 정도다.

그걸 받고 조규만 의원에게 후원금으로 줄 바에야 차라리 무료로 풀고 후원금은 따로 충분히 주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

“뇌물이 될 여지가 있어서 그렇구나?”

“맞아요. 그것 때문에 처음에 뺐던 거고요. 물론 기분도 썩 좋지 않기는 했지만요.”

“그런데 그 정도로는 외삼촌과 싸우지는 못할 텐데.”

“싸우려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하하. 제가 뭐라고 국회의원과 싸우겠습니까. 그냥 다치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내 말을 들은 김윤지가 잠시 생각에 빠진 듯했다.

앞에 놓여 있는 빈 술잔을 가만히 바라보고 대략 5분 정도 멈춰 있었고.

정말 5분 정도다.

그녀가 그 5분이 지나갈 때쯤 나에게 말을 꺼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눈을 뜨고 잠에 들었다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너, 복수를 하고는 싶은 거야?”

“복수해서 뭣 합니까?”

곧바로 튀어나온 내 대답에 약간은 놀란 것처럼 보였다.

나도 그리 빨리 대답해서 놀랐다.

그런데 이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복수를 해서 과연 뭐 할까.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내가 조규만을 완전히 무너뜨린들 다른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리란 법이 없잖은가.

복수도 복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사업성이었다.

이게 사업성이 과연 있을까, 그리고 있다면 얼마나 될까 하는 부분.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쁜 사람이에요, 조규만 의원님은.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가 그분을 없앨 수도 없는 일이잖습니까. 복수 해 봐야 무너지게 만드는 것뿐일 테고, 그러면 나중에 어디에서 무슨 짓을 저에게 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단순히 겁이 많은 것일 수도 있다.

완전히 없애지 못한다면 다시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제가 피해 받지 않는 선에서 관계를 유지할 겁니다. 혹 상황이 안 좋아지면 발을 빼면 되고요.”

김윤지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죽이려 한 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나를 보고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말을 이어 갔다.

“알겠어. 음……. 그러면 내가 준비한 선물이 굳이 필요가 없겠는 걸?”

“뭔데요, 그게?”

“외삼촌 비밀 장부. 흐흐.”

비밀 장부라…….

내가 돌아온 과거는 현실이 아니라 드라마인가, 이거.

비밀 장부.

거대 재력가나 정치인들이 등장인물인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소재다.

일단 돈을 주고받은 것이 있어야 비밀 장부든 그냥 장부든 존재할 텐데, 다행히 S 아카데미는 그럴 만한 여지가 애초에 없었다.

우리가 돈을 줄 사람도 없었거니와 돈을 받을 일도 없었던 것.

그래서 그 단어를 들었을 때 놀랐고.

“비밀 장부라면…….”

“외삼촌 국회의원 준비 중일 때부터 선거 당선 시기까지의 장부.”

“그걸 저에게 주신다고요?”

“아뇨, 필요 없으신 것 같아서 안 주려고. 흐흐.”

이 사람, 취했구나.

그나저나 그런 장부가 존재한다면, 그리고 만약 우리가 그걸 확보할 수만 있다면 조규만 의원의 숨통을 쥐고 있을 수 있었다.

가능할까…….

“필요합니다, 누나. 있으면 좋죠!”

내 목소리에서 절실함이 느껴졌던 것일까.

김윤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생각을 하느라 갸웃거린 건지, 아니면 그냥 술에 취해서 머리를 흔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잠시 뒤.

“일단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될 듯. 그건 그렇고, 그게 선물의 전부는 아니었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의자를 끌어 나에게 다가왔다.

갑자기 가까워진 거리에 민망하여 테이블로 시선을 돌렸지만, 그녀의 몸에서 나는 향수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테이블 위에는 빈 술병이 다섯 병이 있었다.

“외삼촌에게 좋지 않은 감정 있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

“네? 무슨…….”

테이블로 가 있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가자 키가 약간 작은 그녀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시선이 가면 안 될 곳으로 자꾸 넘어가는 것 같은…….

“읍…….”

* *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상태.

물론 밤새 먹은 술기운에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뭔가 일이 생겼던 것 같은데…….

“유 선생! 왜 그렇게 멍 때리고 있어?”

주현필이었다.

신성 학원 담당은 그였지만, 나는 같은 건물에 상주하는 S 아카데미 대표였기에 출근을 하면 으레 서로의 강의실을 찾아 인사를 해 왔다.

술기운에 일어나기가 힘들긴 했지만, 또 막상 계속 누워 있기도 답답해서 먼저 출근을 했던 것인데.

“오셨어요, 주현필 선생님?”

“아무것도 안 하면서 그리 멍 때리고 있으면 어떡해? 아직 젊은 사람이.”

저렇게 나이든 사람처럼 말은 하지만, 사실 그도 30대였다.

본인도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면서.

물론 하는 행동이나 외모를 보면 실제 나이보다 더 늙어 보이기는 했다.

이미도 원장과 같이 있을 때면(같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지만) 미녀와 야수가 생각나는 비주얼.

“그냥요. 하하. 어제 한잔했더니 정신이 없네요.”

“한잔? 술 먹었어? 이야, 유현덕 술 잘 안 먹는데. 누구랑 마신 거야?”

“네? 아, 그냥 뭐. 혼자 마셨어요.”

내가 주현필의 오지랖 넓은 성격을 딱 봤을 때, 김윤지 원장과 같이 먹었다고 하면 분명 오해를 할 것이다.

잠깐, 오해가 맞기는 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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