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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53화 (53/200)

[53] 53화.

“아닙니다. 하하.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쪽이 항상 옳고 다른 쪽은 그르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상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여 연락을 드렸던 것이고요.”

“상생이요?”

“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지금은 사교육비 문제로 교육 관련 모든 정책들이 공교육 강화로 집중되고 있지만 결과는 모르는 일이죠. 이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니까요. 혹시 운이 엄청나게 좋아서 우리가 사교육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교육에 있어서 독점은 좋을 수가 없거든요. 수능 연계율로 억지로 끌어올린 공교육은 결국 학생들의 교육 약화로 이어집니다.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 헷갈렸다.

상생이라니.

나도 항상 공교육과 사교육이 대척점에 놓여 있는 상황이 불편하긴 했다. 전생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게 해결 방안이란 것이 아예 없는 수준이라, 서로 적절한 수준의 경쟁을 하는 수밖에 없을 텐데.

“아예 저희 쪽에서 기존 사교육 시장에 몸담고 있는 선생님들과 학교에 계신 선생님들의 경쟁의 장을 마련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육방송에서 사교육과 공교육의 경쟁?

확실히 내가 알던 전생의 상황과는 달랐다.

그때는 교육방송이 인터넷 수능 강의 시장에 진출하면서 전적으로 현직 고등학교 교사들만을 초빙해 강의를 만들었다.

물론 추후에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현직을 초빙하는 것이 옳으냐는 문제가 제기되며 사교육 강사들도 진출하게 되었고, 2010년 이후에는 사실상 사교육 강사들의 등용문이 되어 버리기는 했지만.

뭔가 더 빨라지는 것일까?

내가 했던 결정들 때문에?

“경쟁이라는 말씀은……. 그러면 혹시 저희 쪽 강사들로 강의를 만들어 보신다는 말씀이신가요?”

“하하. 이건 그냥 아직 구상안일 뿐입니다. 아직 결정되지는 않았어요. 단지 이 자리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유현덕 선생님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내 의견이라.

나쁠 것은 전혀 없었다.

교육방송은 수능시험과 연계를 시키도록 되어 있기에 굳이 예상 문제를 찍어 줄 필요가 없다.

그리고 한 번 교육방송에 진출했던 강사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교육방송 수능 강의 강사’라는 타이틀로 몸값을 올릴 수 있었고.

하지만, 뭔가 꺼림칙한 것이 있었다.

S 아카데미를 이용하겠다는 것이 조규만이 제안했던 것과 유사하다는 점.

그리고 만약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아직 제안까지는 아니었지만) 조규만과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쪽 제안을 받지 않을 것이기는 했지만, 그가 나에게 말했던 대로 교육방송 외의 학원 강의를 학교에 도입을 할 경우에는 어쨌든 그쪽과도 경쟁이 붙을 것이다.

누가 그 경쟁 상대가 될지는 모르지만.

“나쁘진 않은 것 같습니다만…….”

대답을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답답한 성격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단지 고려할 사항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이미도 원장은 내 의사를 정확히 캐치한 것으로 보였다.

곧바로 그녀가 이렇게 말했으니.

“제가 말씀드렸죠? 호호. 이런 부분은 바로 의견을 드리기가 어려워요.”

“바로 의견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하. 워낙 수 싸움을 성공적으로 해 온 분이시라 이번에도 혹시 의견을 바로 들을 수 있을까 했거든요.”

“아,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아무것도 정해진 부분이 없습니다. 하나의 구상으로써 사교육 종사자 분들은 어찌 생각하시는지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냥 궁금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는 말은 거짓이리라.

그는 나에게 요구 아닌 요구를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조규만과 비슷한 것을.

하지만 내용이 달라 확인하고픈 것이 있었다.

“사장님, 혹시 조규만 국회의원을 아십니까?”

그리고 혹시 했던 생각은 역시로 바뀌었다.

“조규만 의원님이요? 하하. 잘 알다마다요. 그분께서 움직이시는 바람에 제가 이런 구상까지 했는걸요. 원래 이 자리는 이런 이야기만 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교육방송에서 인터넷 강의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노하우를 조금 알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미도 원장이 부언했다.

그랬겠지.

확실히 윤주환 사장의 제안은 조규만의 것과 완전히 반대쪽에 놓여 있었다.

조규만은 사교육 시장을 공교육에 진입시키려 한 것이고, 윤주환 사장은 시장 경쟁에서 조금 불리하니 아예 사교육 방식을 공교육의 일부분인 교육방송에 적용시키려 한 것이었다.

“전국적으로 실시될 예정이던 교육방송의 수능시험 대비 인터넷 강의도 조규만 의원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조금 엎어졌습니다. 그의 지역구를 필두로 광역시 급 지역들에서는 자체적으로 사교육 업체들과 제휴하여 제작한 저렴하고 질 좋은 강의로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했고요. 그래서 우리도 아예 이참에 이왕이면 국내 최대 교육업체인 맥스스쿨과 S 아카데미 강사진을 통해서 경쟁할까 하는 것입니다.”

양날의 검이었다.

* * *

윤주환 사장과의 식사 자리 이후, 나와 주현필은 곧바로 이미도 원장의 사무실로 갔다. 방금 들은 내용에 대한 대책을 논의해야 했던 것이다.

뭐, 사실 그리 급한 일은 아닌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일주일 동안 서로 대척점에 있는 조규만 의원과 윤주환 사장을 만나게 되었으니, 우리 입장도 빨리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으리라.

“너무 인기가 많으시군, 유 선생은.”

달콤한 믹스 커피를 홀짝이던 주현필이 말했다.

막상 사무실에 들어오고 나서 나도 그렇고 이미도 원장도 그렇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기에 답답했겠지.

나는 단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미도 원장은 내 의견을 먼저 들어보려 하는 것 같았고.

“아닙니다, 주현필 선생님. 그나저나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셔요?”

“나? 뭘 어떻게 생각해?”

“조규만 의원 제안과 방금 전 윤주환 사장님 제안이요.”

딱히 그의 입장이 알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냥 내 생각 정리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 물어본 것.

그런데 의외로 깔끔한 대답이 나왔다.

“모르지 뭐. 그래도 조규만이랑은 같이 일하기 싫지. 내 팔을 아작 낼 뻔했는걸. 너는 머리가 아작 날 뻔했고.”

그렇지. 까딱하다가는 지금까지 병원에서 누워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주현필 선생님은 윤주환 사장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

잠자코 듣고 있던 이미도 원장이 말했다.

“그건 아닙니다, 원장님. 그 사람 속내를 알 수가 없어요. 개인적으로는 조규만 의원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 같았습니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했다.

무식하지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자와 싸우거나, 혹은 속내를 아예 알 수 없는 고단수와 싸우거나, 둘 중 하나리라.

조규만과 우리 사이에 어떤 과거도 없었다면 아마 그와 손을 잡았겠지만…….

그나저나 나에게 이익이 될 제안은 어느 쪽일까.

조규만의 제안을 받는다면 교육방송과 대치하는 국면이 만들어진다.

썩 좋진 않지만 반대로 우리가 이제까지처럼 잘해 내기만 한다면 교육방송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나아가서는 아마 미국 수능시험 격인 SAT와 TOEIC 등의 굵직한 시험 주관사인 ETS, 또는 대표적 사교육 업체인 Kaplan처럼 클 수도 있을 테고.

이 부분에서는 확실히 구미가 당겼다.

하지만 그 주인이 아마 내가 아니라 조규만이 되겠지.

윽, 그건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반대로 교육방송과 손을 잡는다면 양심의 가책은 조금 덜 수 있으려나.

공공 기관과 같은 곳이기에 그쪽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지원한다면 분명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 전생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결국 교육방송의 인터넷 강의 시장 진출은 수능 연계라는 반칙을 써서 시장경제를 뒤흔들어 놓게 된다.

아니, 애초부터 교육방송 교재에 나온 지문 중 일부를 수능시험에 출제하는 방법으로 사교육과 경쟁하겠다는 발상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더 우수한 강의로 사교육을 이기겠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책에서 시험문제 나와요.’ 하는 생각 말이다.

아무튼 이래저래 고민이 많이 됐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 이미도 원장이 드디어 포문을 열었다.

“일단 다른 문제 다 떠나서, 우리에게 사업적으로 이익이 되는 쪽이 어딜까만 생각하는 것이 어떨까요? 조규만 의원과 같이 손잡는 건 생각도 해 본 적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사업가니까요.”

사업적으로만 판단한다.

맞는 말이다.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때는 덜 중요한 곁가지들을 최대한 쳐 내는 것이 방법이었다.

그리고 일단 그녀의 생각에 나나 주현필의 동조를 하니, 생각의 흐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사업적으로만 보면 교육방송과 손을 잡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큽니다. 어쨌든 거기는 공교육 안에 들어가 있는 조직이에요. 그쪽이 성장하면 사교육 시장은 자연스레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현필의 의견이었다. 그리고 나도 이에 어느 정도는 동의했다.

다만, 사교육 시장은 의외로 빨리 적응한다.

교육방송이 인터넷 강의를 론칭하면 단기적으로 S 아카데미나 맥스스쿨의 매출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지금 1타 강사들 몸값이 어느 정도죠, 이미도 원장님?”

“우리 쪽 강사들 말씀이세요? 현재 비율로 평균 7대 3이에요. 아무래도 1타들이라 계약금도 따로 지급하고요.”

“그렇군요. S 아카데미보다는 강사에게 조건이 좋네요. 그러면 교육 중인 강사들은요?”

교육 중인 강사들이란 1타 급은 안 되기에 온라인 강의에 투입되지는 못하지만 실강과 원생 관리 위주로 일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다.

S 아카데미에는 애초에 강사들을 타 학원에서 빌려오는 구조였기에 이런 제도가 없었다.

하지만 맥스스쿨의 경우 전속 강사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그들의 거취에 따라 원생이 움직이기 때문에 계약 조건이 그들에게 유리한 상태.

다만 좋은 계약 조건이라 하더라도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에 종종 독립해서 나가는 강사들이 생겼다.

그런 강사들 자리를 곧바로 대신하도록 강사들을 교육하고 있었고.

“그쪽은 조건이 썩 좋지는 못하죠.”

“아뇨, 조건 말고요. 바로 1타 수준으로 밀어 올릴 수 있을 정도 능력이 되나요?”

내가 남의 능력에 대해 왈가왈부하다니…….

하지만 그걸 알아야 했다.

윤주환 사장의 제안이든 조규만의 제안이든 어느 한쪽을 수락하고 성공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현재 1군보다도 2군을 올려 인지도를 쌓게 하는 것이 우리 입장에서 가장 좋은 대응이니.

능력에 따른 합당한 대우는 당연히 받아야 하겠지만, 능력을 담을 수 없을 때는 내보내는 것도 방편이다

자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경우 더 좋은 조건으로 이적하거나 독립을 돕는 방향으로.

“가능해요. 1타 선생님들에게 밀려서 빛을 못 보고는 있지만, 기회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충분히 능력 발휘하실 분들 많습니다.”

원하는 대답이다.

그리고 내 의중을 파악한 주현필이 무릎을 탁 쳤다.

“좋은데? 역시?”

“‘역시’요?”

“젊어서 그런가 반짝반짝 돌아간다고 머리가.”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었다.

지금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이 파악한 것은 아마 2진 강사들을 교육방송에 보내 인지도를 올리는 것뿐이다.

아니, 이미도 원장은 혹시 예상을 하고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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