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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52화 (52/200)

[52] 52화.

“어느 쪽 자리에 앉으시겠어요? 창가?”

“응.”

이미도 원장과의 약속이 있던 주말, 나와 주현필은 둘이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둘이서.

지난 번까지는 그래도 오광필 할아버지나 이미도 원장과 함께 갔던 것이라 둘이서만 있을 일이 없었는데, 엄청 어색했다.

진짜 주현필 이 사람은 몇 년을 같은 편으로 지내도 익숙해지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정말 가면서 한 말이라고는 앞서 언급된 “어느 쪽 자리에 앉으시겠어요? 창가?” 이게 전부였으니.

그마저도 그의 대답은 “응.”이 전부였다.

그렇게 1시간 반 정도를 기차와 지하철을 타고 간 곳은 맥스스쿨 주변에 있는 고급 일식집.

아침도 먹지 않고 출발한 터라 배가 많이 고팠다.

그리고 약속 장소가 내가 좋아하는 일식집이어서 더욱 기대를 하고 도착해 이미도 원장에게 연락을 했다.

“원장님, 저희 도착했습니다. 들어가면 될까요?”

-네, 바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가장 안쪽에 있는 방으로 들어오세요.

내부의 모습은 고급스러웠다.

넓지는 않지만 일식집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그런 카운터에 들어가자, 곧바로 안내원이 예약 여부, 그리고 예약자의 이름을 정중하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이미도 원장이 전화로 말했던 것처럼 우리를 맨 안쪽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좋은 시간 되십쇼.”

“네, 감사합니다.”

문이 열리고 방 내부가 보였을 때, 그곳에는 이미도 원장과 함께 처음 보지만 매우 낯익은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나이는 40대 중반?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고, 외모로 이런 평가를 내리기는 그렇지만 뭔가 굉장히 높은 사람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오셨네요, 주현필 부원장님, 그리고 유현덕 선생님.”

“안녕하셨습니까, 원장님.”

주현필이 먼저 인사를 하며 들어갔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쳤지만 누군지 정확히 모르는 상황이라 살짝 목례만 하면서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섰다.

“이거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젊은 분이시군요.”

“호호. 신문 보셨다면서요, 사장님. 거짓말 탄로 나셨어요.”

사장님?

이미도 원장이 ‘사장님’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있었나?

“신문에는 사진이 조그맣게 나오지 않습니까. 하하.”

“주현필 부원장님, 유 선생님, 인사드리세요. 누구신지는…….”

“하하. 아닙니다. 제가 뵙기를 청한 거니 먼저 소개를 드리죠. 안녕하세요, 교육방송공사 윤주환입니다.”

맞다. 가끔씩 TV에서 봤던 얼굴.

이 사람은 교육방송공사 사장이었다.

* * *

“준서야, 학교는 다닐 만해?”

“네, 형. 재밌던걸요? 교환 학생도 못 가서 조금 아쉬웠는데 석사 학위 따러 오다니. 하하. 아직도 꿈만 같아요.”

미국에 온 지 4달.

한국에서 출국 전에 미리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 한 곳의 교육 관련 석사 학위 과정을 등록해 두었다.

이제 학교에서 수업을 들은 지 한 달이 지났고.

집은 함께 온 지원재가 구했다.

국내 최대 온라인 교육업체의 업무실장이 번 돈은 생각보다 컸다.

고작 해 봐야 업무실장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그는 어쨌든 그 거대 업체의 2인자였다.

해외 유학을 생각할 때 의외로 큰 문제는 집과 생활인데 준서의 입장에서는 이걸 전부 처리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 큰 덕을 본 셈이었다.

해야 할 것은 공부뿐.

“공부만 빡세게 해. 네가 할 일은 그거야.”

준서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극진히 자신에게 호의를 베푸는지 궁금했다.

정말로 궁금해서 한 번 물어보기까지 했고.

그의 대답은 이랬다.

“그냥, 난 동생이 없어. 학원에서도 다들 나보다 나이 많은 강사들뿐이고. 네가 동생 같아서 그래.”

완전히 이해가 되는 대답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신은 도움을 받는 입장이기에 감사히 받자고 생각했다.

“알겠어요, 형. 내일도 실리콘 벨리에 가셔요?”

“내일은 그냥 좀 쉬려고. 매일 나갔더니 힘들다, 나도.”

“형도 좀 쉬면서 하셔야죠. 여기에서 거기까지 차로 두 시간 거리인데 매일 다녀오셨잖아요.”

“응. 하루만 쉬고 낼모레부터 다시 나가봐야지. 하하.”

지원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샌프란시스코 인근에 있는 실리콘 벨리로 차를 끌고 나갔다.

그가 알아보던 것은 큰 서버를 가지고 있는 회사.

전화와 이메일로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는 일이기는 했지만 그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관계자를 만나 봐야 했다.

이게 한국에서부터 가진 습관이었는데, 의외로 견실한 업체와 허울만 좋은 업체를 구분하기 위한 확실한 방법이었다.

신입이었던 그의 제안에 따라 맥스스쿨 온라인 사이트를 처음 만들 때만 하더라도 온라인으로 강의를 판다는 것은 생소한 개념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1996년에 있었던 금융 위기의 여파로 멀쩡하게 생존한 IT 벤처 기업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그나마 살아 있던 기업들도 다들 사업을 축소한 상황이라, 직접 가서 확인하면 오피스텔 한구석에 냉각장치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서버를 돌리거나 하기 일쑤였다.

강의는 동영상이기에 용량이 상당하다.

한 강사가 올리는 강의 개수는 적어도 100개 이상.

화질도 어느 정도 유지를 해 줘야 하기 때문에 서버의 용량도 중요할뿐더러, 속도 유지와 안정성까지 다 완벽해야 했다.

지금 그가 미국까지 와서 실리콘 벨리를 들락거리는 것도 새로운 사업을 함께 할 업체를 미리 선정하기 위해서였다.

“조금만 기다려. 유현덕 대표도 곧 미국으로 올 거야.”

“네, 형. 현덕이랑 같이 일하면 정말 좋겠네요.”

‘같이 일하게 되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

지원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말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의 구상으로는 준서가 석사 학위를 받고 간판으로 내걸 학벌이 만들어 지면 한국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유현덕은 아마도 미국으로 진출하고.

서로 위치를 바꿔 가며 하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생각했다.

준서는 이제 위험할 일은 크게 없겠지만, 유현덕은 달랐다.

본인이 의도한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국에는 그에게 있어서 강하고 위험한 적들이 많았다.

이쪽에서 조금 더 힘을 키워서 가는 것이 안전하리라 생각하는 그였다.

“군대도 가야지, 곧. 하하.”

* * *

“안녕하십니까. 유현덕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절로 몸이 90도까지 숙여졌다.

교육방송 사장은 일개 학원 원장이나 대표와는 달랐다.

물론 맥스스쿨 정도 되는 거대 기업은 다르긴 했고, 자신이 그 거대 기업을 잡은 사람이기는 했다.

그래도 연륜과 경험, 그리고 이미 이쪽 분야의 정점에 오른 사람에게서 오는 아우라는 굉장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는 오히려 나에게 거의 비슷한 각도까지 숙여 인사했다.

더 어려웠다, 그런 모습이.

“어이쿠, 너무 인사를. 하하. 어려워하지 마십쇼. 제가 뵙고 싶어서 만든 자리입니다. 이리로 앉으시죠.”

“호호. 어서 앉으세요, 유 선생님. 사장님이 더 불편해하셔요.”

“아, 네. 하하.”

멋쩍게 웃고는 자리로 가서 앉으려는데 자리가 애매했다.

윤주환 사장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고 있었고, 주현필은 이미 이미도 원장의 옆자리로 가고 있었다.

그러면 내 자리는…….

“이쪽으로요, 하하.”

호탕하게 웃으면서 다시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키는 그를 보면서, 도대체 이 자리는 무슨 자리인가 얼떨떨한 기분이 들었다.

조심스레 그의 옆 빈자리에 가서 앉았는데 자리가 영 불편했다.

교육방송의 사장이라.

물론 교육업 종사자가 아닌 사람이 앉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래도 일반적인 학교 교장 선생님이나 교육감과는 달랐다.

사실 민선으로 넘어간 교육감의 권한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그들이 교육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정치인’의 이미지였다면, 교육방송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도 학교 교육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교양 교육, 평생 교육까지 담당하는 기관이었고, 이 사람은 그 기관의 장이었다.

“다시, 반갑습니다. 윤주환입니다.”

이렇게 다시 인사를 건네며 이번에는 손을 내밀었다.

정중하게 그 손을 잡고 악수를 하고는 그가 나의 등을 탁 치며 웃었다.

“불편하게 있으시면 저도 불편해집니다.”

“네. 죄송합니다. 너무 높은 분을 뵙게 되서…….”

“높다니요. 허허. 저는 그냥 방송국 하나 운영하라고 지명 받은 것뿐인걸요. 제가 보기에는 아직 30대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이 정도 이뤄 낸 유현덕 대표가 훨씬 대단해 보입니다. 제가 그 나이 때는 아무 것도 해낸 것이 없었거든요.”

“아닙니다. 운이 굉장히 좋았을 뿐입니다. 거기에 여기 계신 이미도 원장님과 주현필 부원장님 도움이 컸고요. 은인들이십니다.”

“사장님, 인사 언제까지 하실 거예요. 식사부터 하시죠. 호호.”

다행히도 이미도 원장이 흐름을 끊고는 다음 단계로 넘어가 주었다.

나도 그제야 상에 차려진 회와 반찬들이 눈에 들어왔다.

회는 정말 전생부터 내가 좋아하던 음식.

편한 자리가 아닌 것이 정말 뼈저리게 슬펐지만, 그래도 적당히 맛을 볼 수는 있었다.

이거 도미인가?

그리고 식사가 끝날 무렵, 입을 닦던 윤주환 사장이 나에게 일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오늘 뵙자고 한 것은 앞으로 저희와 맥스스쿨, 아니면 S 아카데미가 조금 충돌할 일이 생길 듯해서 미리 말씀드리려고 자리를 부탁드렸습니다.”

“충돌이라시면, 혹시 학교 강의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의 얼굴에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느냐는 표정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

시종일관 밝은 표정, 아마 전형적인 친절하고 유능한 공무원 인상이라 다른 감정을 느낄 수가 없었는데 여기에서 잠시 그도 사람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하하. 이거 어떻게 벌써 알고 계십니까. 아직 어떤 발표도 나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저희는 그런 소식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작은 소식이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귀담아 두는 편입니다.”

“역시, 그렇게 하시니 공교육이 자꾸만 사교육에 밀린다는 뉴스가 나오는 것 아닙니까. 아무튼 대단하시네요. 네, 그 부분에 관해서 대화를 나눠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이 문제에 대하여 그가 우리와 나눌 대화가 무엇이 있을까 하는 부분이었다.

교육방송이 학원가의 눈치를 일일이 살피고 움직이지는 않을 텐데.

혹시 조규만과 비슷하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전혀 그런 이미지로는 보이지 않는데.

만약 그런 이유로 보자고 한 것이라면 이미도 원장 선에서 끊었으리라.

그리고 그녀의 표정으로 봐서 그녀는 이미 대부분의 상황을 듣고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어떤 대화를 하고 싶으셨던 건지…….”

뭔지 알아야 대책을 세우건 전생의 기억을 써먹던 할 수 있겠지.

그나저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한 번 겪었던 전생과는 다른 방향으로 사건들이 진행되는 것 같았다.

너무 바뀌면 이점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미 들으셨다면 나름의 준비는 하고 계시겠지만, 이 정책은 사교육 시장을 크게 흔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작은 곳들은 문을 닫고, 큰 곳들은 규모가 작아지겠죠. 학원에서 해 주던 일을 국가에서 해 주겠다는 것이니까요.”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 것이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그의 말대로 기존 사교육 시장을 흔들 파괴력은 충분했다.

다만, 학원도 수능 연계율이 높아진 교육방송 교재를 사용해 수업하는 방식으로 적응한다.

우리가 한발 앞서서 적응하고 이익을 올릴 수 있다는 의미인데, 위험 부담은 분명히 존재하긴 했다. 조규만이 어떻게 우리에게 해를 입히려 나올지도 몰랐고.

아무튼 미래를 대략적으로나마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정부에서는 이 정책이 처음 제안되고 시행될 때만 하더라도 장밋빛 미래만을 상상했겠지.

“시장에서 발을 뺄 생각은 없습니다.”

나는 혹시 내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한 번 떠보려 하는 것인가 싶어 오히려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말을 이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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