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51화.
제1강 이것은 올가미
한 번 살아 본 삶을 다시 살면서 어찌 보면 나보다 더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로 성공하고 있지만, 적어도 내 자신에게 부끄러울 짓은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그런 의미에서 조규만 의원의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문제였다.
“하지 않겠습니다. 뇌물을 원하시는 것 아닙니까?”
“왜 굳이 그렇게 표현을 하나. 정치인이라면 다들 후원금 정도는 받고 다니는데. 이건 자네에게도 충분히 이익이 돌아가는 후원금이라고.”
전생에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전부 나 같기만 하다면 좋겠다고.
내가 정말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남에게 피해 주기 싫어하고 피해 입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세상은 나에게 자꾸 피해를 준다.
그리고 사실 나 자신도 인식하지는 못하지만 의도치 않게 남에게 피해를 주고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혹시라도 그랬다면, 그들이 나에게 주는 피해는 그것에 대한 인과응보로써 받고 있는 것인지도.
아무튼, 이런 일은 질색이었다.
“혹시라도 불법적인 부분이 있을까 걱정되는 거라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일반인들은 잘 모르는 부분이지만 법은 의외로 허술해서 아무런 문제없을 걸세.”
“그런 것을 떠나서 관심 없습니다.”
이자는 철저하게 속물이다.
그렇기에 더욱 경계해야 할 인물이었고.
이번 일을 내가 덥석 받았다면 아마 회사의 성장에는 크게 도움이 되었겠지.
하지만 해도 될 일이 있고, 해서는 안 될 일이 있다.
국가나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교육 사업에 우리가 참여를 하는 것이라면 가능하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결국 ‘교육’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부정한 돈이 결부되어 있다면…….
내가 S 아카데미를 이 사업에 참여시키고 난 뒤 얻게 되는 새로운 수익은 더 나은 강의를 만드는 데 사용되거나, 또는 조금 더 강의료를 싸게 책정하기 위해 쓰여야 한다.
하지만 그 수익이 이 사업에 참여하도록 도와준 정치인에게 돌아간다면 이는 뇌물이 된다. 부정한 대가를 바라고 어떤 일을 해 주고, 그 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일인 것이다.
결국 학생들에게 돌아가야 하는 이익은 이 정치인의 개인적인 욕심에 먹혀 버릴 것이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듣고 있기도 거북했다.
“김윤지 원장님,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이거, 성미가 급한 사람이구먼. 지금 나가는 것은 자네 자유이겠지만 앞으로 자네의 앞날이 이제까지처럼 자유롭지는 않게 될지도 몰라.”
“협박이십니까?”
“아니, 나는 그럴 가능성을 말하고 있는 거라네.”
협박이었다.
‘너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 자신을 돕고 이득을 취하거나, 아니면 돕지 않고 후폭풍을 감당하거나.’라고 말하는 협박.
하지만 다시 듣지 않으리라.
부정한 방법을 써서 축재를 한들, 그건 남의 피눈물 위에 쌓아올린 작은 성일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쌓은 성은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진다.
‘조규만, 당신의 성도 무너지는 날이 올 것이고.’
“미안해요, 유현덕 선생님.”
김윤지 원장이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 채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 *
“그래서 대책을 세워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곧바로 신성 학원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주현필과 함께 이미도 원장에게 화상 통화로 전화를 걸었고.
이미도 원장이 맥스스쿨을 운영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가 있는 상황이라 이런 방식으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 안에는 주현필과 나, 그리고 모니터 한 대에 이미도 원장의 얼굴까지, 셋이 있었다.
-대책은 보통 유현덕 선생이 세웠잖아요? 호호.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이미도 원장은 의외로 여유로웠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주현필도 크게 걱정하진 않는 것 같았고.
“저도 갑자기 들은 이야기라 원장님과 부원장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여쭤봐야 할 것 같아서 연락을 드린 거죠.”
“생각을 해 봐, 한 번. 조규만이 국회의원 되더니만 신사적인 척하고 그렇게 제안을 한 것 같네. 제안의 형태를 갖춘 협박.”
“그나저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손해를 끼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가요? 국회의원이 뭘 할 수 있는지는…….”
갑자기 떠오른 전생의 학교생활.
국회의원이 악의를 가지고 문제도 없는 학교에 폭탄을 던지는 방법은 간단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국정감사 기간 동안에 교육부에 자료 요청을 하는 것.
1,2년 치 자료라면 크게 무리가 없다. 하지만 보통 오는 것은 5년 치.
5년 수치를 평소 통계를 내는 경우는 있지도 않을뿐더러, 수업과 기본적인 행정 업무 처리 외에 추가적으로 5년 전 자료를 뒤적이며 찾아내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럴 때마다 욕을 하며 창고를 뒤적이곤 했었지.
하지만 그건 학교의 경우였고, 지금 나는 학원이다.
정부의 통제를 크게 받지 않는 사교육 시장.
-몇 가지 있을 수가 있겠죠. 일단 밤 몇 시 이후에는 수업을 못하게 한다던가, 직접 파고들자면 세무 조사를 나오는 방법도 있고요.
아! 세무 조사라니.
세금은 거의 빼지도 못하고 다 내왔다.
몇 년 전, S 아카데미를 설립할 자금이 됐던 땅 투자에서 나는 60억을 벌어 놓고 절반인 30억을 세금으로 낼 정도였다.
하긴 그건 깨끗했던 것이 아니라 멍청했던 것이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학교에서의 자료 집계 요구와 비슷한 것이 학원에서는 세무 조사가 아닐까?
조사한다고 며칠간 학원에 국세청 직원들이 박스를 들고 들락날락거리는 모습이 상상됐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강사들은 강의 도중 들락날락거리고,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는 무너져 버리는.
학부모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그만 두는 원생들이 늘어나는 모습.
“뭐야, 혼자 뭘 그리 생각해?”
“아, 아닙니다. 그럼 역시 세무 조사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 원장님께서는 특별히 더 떠오르시는 건 없으신 거죠?”
-네. 조규만 의원은 예상하기 어려워요. 사실 유현덕 선생님 사고 났던 것만 하더라도…….
하긴, 학원 간의 이권 다툼에 실질적인 폭력을 동원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이 사람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몸이 살짝 떨려 왔다.
-아무튼 그러면 세무 조사 준비는 미리 조금 해 두면 좋을 것 같네요. 그리고 학교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네. 교육방송 수능 연계율이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그렇잖아도 원래 생각했던 건 교육방송에 수능 강의 강사를 우리 쪽에서 몇 분 추천해서 서로 긍정적인 관계를 만들고 싶었는데, 막상 그럴 여지가 없더라고요. 그쪽에 아는 분이 계시는 것도 아니라서.”
-교육방송이요? 교육방송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음……. 유현덕 선생님, 혹시 이번 주말 시간 되나요?
주말에?
이미도 원장이 따로 주말에 시간 있냐고 물어본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보통은 주말에 만날 때도 업무 차 만난 것이기에 몇 시까지 어디로 오라고 했었는데.
“주말이요? 네, 시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주현필 선생님과 함께 서울 좀 올라오셔요. 만나고 싶어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네? 저를요?”
-호호. 둘 다요.
주현필은 보니 그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 같아 보였다. 보통은 이런 상황에서 그는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나저나 누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걸까?
돈 빌려 달라는 건가, 설마?
그런 일에 이미도 원장이 나를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리 유명인은 아니었다.
젊은 나이에 자수성가 한 대표적 케이스로 언론에 회자되고 있기는 하다만, 그건 전부 뭔가 일이 있을 때 잠깐 반짝이는 정도였다.
S 아카데미 론칭과 맥스스쿨 주주총회 때 잠깐 신문에 떴던 정도.
누가 나를 만나고 싶어 할까.
-나와 보면 알아요. 뭐, 얼굴 봐도 누군지는 모를 수도 있겠지만요.
다시 주현필을 봤지만 그는 어께를 으쓱할 뿐이었다.
* * *
“외삼촌, 너무하신 것 아니에요? 적어도 사과 정도는 하고 시작할 수도 있으셨잖아요.”
김윤지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조규만에게 못했던 말들을 쏟아부었다.
조규만이 성공 대입학원 대표로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그의 결정에 반대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유현덕을 기습했던 건 그녀 모르게 진행했던 일이고, 아직도 그녀조차 심증만 갖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규만이 자기 입으로 ‘내가 유현덕 손 좀 보라고 했어.’라고 말할 리는 없었기에.
그 외에 학원 경영에 있어 필요했던 검은 돈이라든지, 아니면 담합 부분까지도 그녀는 그의 결정을 능숙하게 수행하는 역할뿐이었다.
성공 대입학원 원장실, 과거 한때 조규만이 강사들을 불러 놓고 폭언을 일삼던 그 공간은 김윤지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가 외삼촌인 조규만을 밀어낸 것이 아니었기에 이곳에 그가 들어오면 상석은 조규만의 차지였다.
낮은 자리에서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을 몰아치기는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녀는 해야만 했다.
그녀가 알기로 그녀의 외삼촌은 절대 깨끗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같은 배를 타기로 한 이상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과연 그게 가능할지는 그녀도 확신하지 못했지만.
유현덕이 거의 죽을 뻔했던 그 사건을 생각한다면 이번에도 그가 어디까지 갈지 모르는 일이었고.
그건 막고 싶었다.
“잘못한 것이 있어야 사과를 하지. 윤지야, 사과를 하는 순간 그것 자체가 증거가 되는 거야. 아무튼 그 녀석 생각했던 것 보다 배포가 작더구나. 쯧쯧.”
자신이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녀도 분명 유현덕의 사고에는 외삼촌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맥스스쿨과의 합병 이후 국회의원에 도전해 성공했던 그가, 잊어버릴 만하니 다시 나타나 새로운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왠지 불안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거기까지 가실 건가요?”
“거기까지가 어딘데? 그리고 ‘이번에도’라니. 설마 나를 의심하고 있던 건 아니지?”
이제는 표정까지 ‘나는 모르는 일이오.’ 하면서 그녀를 쳐다본다.
이런 외삼촌이 무섭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가족이었다.
“걱정 말거라. 그때야 상황이 그랬지만 지금 그 녀석은 내 상대가 되지 않아. 그냥 엄포만 놓은 거니 연락이 오길 기다려 보려고 한다.”
모든 일이 벌어지기 전, 그러니깐 그녀가 유현덕을 알기 전 강사들을 무릎 꿇려 놓고 윽박지르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지금의 모습은 글쎄, 사람이 달라졌다고 하기는 어려웠다. 방법만 바뀌었을 뿐, 협박하는 건 그대로였으니.
곧바로 유현덕에게 전화를 해도 될까. 아니면 조금 시간을 두어야 할까.
그리고 외삼촌 조규만의 제안에 대해 자신은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 건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나저나, 너는 그 녀석이랑 무슨 관계냐, 도대체? 관심은 있는 것 같던데.”
“그런 거 아니에요, 외삼촌. 전혀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녀는 자신이 유현덕에게 정말로 아무런 감정이 없는 건지 생각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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