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50화 (50/200)

[50] 50화.

“이제 진짜 부자 된 거예요? 호호.”

“아니에요. 부자는 무슨. 경영진 교체되면 주가는 보통 떨어집니다. 이번에는 어떨지 모르지만요.”

일반적으로 경영 분쟁이 있다면 주가가 떨어지지만, 이번은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강사진의 압도적인 지지가 나에게 있었던 것.

단순히 돈으로, 지분으로 밀어붙인 것이 아니었기에 시장에서는 오히려 호재로 볼 가능성도 적지 않았다.

“아무튼 축하해요. 이제 얼굴 보기도 힘든 위치에 올라갔네요.”

“아유, 아닙니다. 이게 무슨 그런 거라고요. 게다가 엄청 크게 도와주신 분께서. 하하.”

김윤지 원장은 사뭇 대단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단하긴 할 것이다. 맥스스쿨을 잡겠다고 하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정말로 그 거대 학원의 경영권을 가져왔으니.

하지만 나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만약 나에게 약간의 이점이 없었다면(약간이 아니고 엄청나게 큰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일은 계획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고.

행운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냥 얻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내가 여기에 쏟아 부은 시간, 노력, 그리고 운까지,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져 여기까지 온 거겠지.

그렇게 벼르고 벼르던 총회가 성공적으로, 계획대로 끝이 나고, 이미도 원장은 신성 학원 원장 겸 맥스스쿨 대표가 되었다.

원장이 아니라 왜 대표냐고?

나는 그냥 대주주로 남는 것을 택했다. 내가 대표 자리에 올라 봐야 S 아카데미 같은 외주 형태의 회사만 운영할 수 있지 학원 자체를 운영하기는 어렵다.

일단 나이가 너무 어리다. 나보다 훨씬 나이 많고 경험 많은 강사진들을 데리고 학원에서 큰 그림을 그리기에는 나에게 부족한 것이 많았다.

신성 학원, 성공 대입학원, 그리고 미래 학원까지. 내가 몸을 잠시나마 거쳤던 학원들에서 나는 원장 역할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들고 있는 주식 처분도 해야 했고.

“이거 다 떠넘기는 것 같은데?”

“떠넘기다니요, 원장님. 안정적으로 운영하시려면 지분 이 정도는 들고 계셔야 합니다. 혹시 또 알아요? 유미진 씨가 어디서 잔뜩 끌고와서 한판 벌어질지?”

“알겠어요. 시일은 조금 줘야 해. 이거 다 가져오기에는 현금이 충분하진 않아.”

“당연하죠.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S 아카데미에 수능 전문 강사진은 맥스로 이전 계약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고생 좀 해 주세요. 고마워요, 유현덕 선생님.”

“제가 감사하죠, 원장님.”

이로써 나는 아주 잠깐 동안 맥스스쿨의 대주주로써의 역할을 끝내고 다시 S 아카데미 대표로 돌아온 것이고.

그 후 약 두 달간 정리 작업에 정신이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도중, 김윤지 원장이 S 아카데미로 갑자기 찾아왔다.

맥스스쿨이 내 손에서 떠나고 난 뒤, 그녀를 따로 볼 일은 거의 없었다.

두어 번 서울에서 이미도 원장, 주현필, 그리고 오광필 할아버지와 함께 회식 비슷하게 만났던 것을 제외하고는.

그녀는 여느 때처럼 조심스레 내 강의실 문을 두드리고는 얼굴만 배꼼 들이밀었다.

“잘 지냈어요? 우리 잠깐 바람이나 쐬러 나가죠?”

조규만 성공 대입학원 대표, 아니 이제는 국회의원이지.

죽었다 과거로 회귀까지 한 나를 다시 한 번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갔던 사람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와는 현재 동업 관계고, 그냥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약간 오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김윤지 성공 대입학원 원장의 외삼촌.

나는 죽지 않았다.

범인이 잡히지 않았기에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당시 정황으로 보았을 때 나를 습격할 사람은 그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 만남에 앞서 나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여기에요, 유현덕 선생님.”

만나기로 한 장소에 먼저 김윤지 원장이 나와 있었다.

내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는 것을 굳이 말렸던 것은, 이 사람이 나를 보려는 이유를 모르는 상황에서 다른 감정이 개입되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진 사실 하나는 그녀가 외삼촌 조규만이 나를 공격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사건 뒤 나는 3개월 동안이나 병원에서 혼수상태로 누워 있었다.

죽는 것 자체는 두렵지 않았다. 뭐든지 처음이 제일 어렵고 무서운 법이니.

하지만 허무함이 두려웠다. 다시 그 흰 공간에서 눈을 떴을 때의 허무함.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다시 깨어나고 나서 우리가 만났을 때, 그때 그녀는 미안한 표정이 가득했다.

그리고 나는 그 일에 대해서 그녀에게 책임을 지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나도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녀에게 거짓말을 했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규만을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니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다시 보는 것은 아니려나.

시간이 지나 이제 그 원흉과 맞닥뜨릴 시간이 된 것일까. 그동안 나는 준비가 되었을까.

“일찍 나오셨네요, 원장님.”

웃고는 있지만 평소의 편한 웃음이 아니었다.

김윤지 원장도 알아챘을 것이고.

“네, 혹시나 두 분이 먼저 만나게 돼 버리면…….”

“괜찮아요. 저는 그분 따로 보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막상 이 자리에 그분만 있었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았을 거예요. 고맙습니다, 같이 있어 주셔서.”

왜 저렇게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평소처럼 흘러나오는 대로 말을 했던 것인데…….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며 나를 보더니, 황급히 시선을 테이블로 옮겼다.

그리고 잠시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가 내 등을 ‘탁’ 치는 것에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렸다.

“유현덕 선생! 드디어 얼굴을 보는구먼!”

조규만 의원이었다. 그는 상상했던 모습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뭐랄까. 에너지가 넘쳐흐른다고 해야 할까?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맥스스쿨 강재훈 대표도 이런 이미지는 아니었는데.

쉽지 않은 사람다웠다.

생각해 보면 신성 학원과 미래 학원이 성공 대입학원을 밀어낼 때도 숨통을 끊기 직전에 절묘한 수로 빠져나간 그였다.

이것저것 복잡한 사정이 있긴 했지만 그래도 앉은자리에서 당한 강재훈 대표보다 고단수일 수도.

엉겁결에 자리에서 일어나긴 했지만 먼저 앉기도 뭐하고 해서 그대로 서 있었다.

내 표정이 좋을 수는 없으리라.

그래도 그가 먼저 나를 찾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는데. 아니 내가 그를 찾는 것보다는 그가 나를 찾게 될 확률이 더 높기는 했겠구나.

“왜 아무런 말이 없어? 허허. 윤지도 오랜만이구나.”

“잘 지내셨던 것 같네요, 외삼촌.”

“잘 지내다마다. 골치 아플 일도 없고, 괜찮더라고, 이 일.”

그러면서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마 그는 비서겠지? 국회의원들의 스케줄을 관리해 주고 수행하는 비서.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유현덕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인사는 이걸로 충분했고, 오늘 내가 자네를 만나자고 했던 건 말이야…….”

그는 말을 멈추고 테이블에 놓여 있던 물을 한 컵 들이켰다.

“시에서 진행하려는 교육 사업을 지원해 달라 하려고 불렀네.”

“지원이요?”

먼저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 아닌가.

뻔뻔한 건지 아니면 무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는 자신이 나에게 한 일을 전혀 고려치 않았다.

“듣자 하니 요즘 꽤나 성공하고 있더구먼. 맥스스쿨의 운영진을 교체할 정도로 컸고. 나는 지금 우리 지역을 위해 약간의 투자를 부탁하는 걸세.”

“제가 그걸 지원해 드릴 거라고 생각하신 이유를 여쭤 봐도 될까요? 저를 거의 죽일 뻔하셨던 분을 제가 도와드릴 거라고 생각하고 부르신 건가요?”

“내가? 나는 그런 적이 없는데? 자네가 다쳤던 소식은 들었네. 안타깝게 생각했지. 하지만 내가 그랬단 증거는 없잖나?”

어이없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하는 조규만.

증거는 없었다. 그 당시에는 증거를 찾고 말고 할 상태가 아니었다. 일단 죽지 않게 3개월 동안 버틴 것이 놀라울 정도로.

경찰은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했다. 단순한 뻑치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목격자가 있거나 CCTV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내가 어이없어 하며 김윤지 원장 쪽을 보자 그녀는 다시 내 시선을 피했다. 그녀와는 이렇게 불편하게 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러면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내 죄가 있다면 하늘이 벌하시겠지. 아직까지 벌은 내리지 않으신 것 같고.”

“그러시다면 거절하겠습니다.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군요.”

“거절할 제안이 아니니깐 불렀던 거야. 곧 국가에서 대대적인 단속이 나갈 걸세. 자신 있는가?”

사교육 업체 단속이라. 기억을 돌려 보니 이맘때쯤 그런 것은 특별히 없었는데, 이건 내가 과거로 돌아오며 새로 생긴 일 같았다.

고작 해 봐야 11시 이후 학원 수업 금지, 아니면 세무 조사겠지.

11시 이후 학원 수업 금지의 경우에는 계속 진행해 온 신성 학원 실강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 수입원은 현재 실강이 아니라 S 아카데미 운영에서 나오는 것이었기에 큰 문제가 될 건 없고, 세무 조사는 세금을 꼬박꼬박 내고 있기에 괜찮았다.

그래도 불안한 것은, 이자가 내 상황을 모르고선 이렇게 던지지는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읽었는지 그는 한 가지를 더 던졌다.

“자네 회사를 단속하는 게 아니라 학교들을 단속한다는 말이야.”

“학교요?”

학교를 단속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리고 그게 내 사업에 방해가 될 일도 과연 있을까?

“교육방송을 통해 사교육 업체들의 전유물이던 온라인 교육 시장을 부수겠다는 거야. 수능시험 문제 연계율을 높여서 말이지.”

젠장, 이건 알고 있던 사실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법은 아직 제대로 찾지 못한 상태였고.

교육방송의 수장과 만날 자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막상 그럴 만한 끈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지역만큼은 경쟁력을 높이기를 원했지. 교육방송을 학교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지가 아니라, 말 그대로 S 아카데미나 맥스스쿨 온라인 강의를 공교육 내로 도입시키는 것을 말이야.”

“그런데 왜 굳이 저입니까?”

“응?”

“왜 굳이 김윤지 원장을 통해 저에게 연락을 하셔서 보자고 하셨는지 여쭙는 겁니다. 다른 학원이나 맥스스쿨에 직접 연락하셨어도 될 텐데요.”

“흠…….”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모습이었다.

이 사람이 원래 이렇게 머리를 쓰는 사람이었나? 머리보다는 몸이 먼저 나가는 성격 아니었나.

아니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국회의원이 되더니 조금은 달라진 것일까?

어찌되었건 물증 없는 일에 복수를 할 수도 없었다.

“내가 지금 지역구로 있는 우리 시는 학업 성취도가 낮은 편이야. 나는 교육 전문가임을 자처해서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고. 무엇인가를 보여 줘야 되지 않겠나.”

“저를 통해서 보여 주려고…….”

“복수를 하고 싶으면 나중에 기회가 올 걸세.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야. 나도 내키지는 않지만 일단은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할 시점이고. 다른 사람들 보다 자네가 적임자네. 죽다 살아서도 지금의 S 아카데미와 맥스스쿨을 만든 것을 보면 말이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원수와 무슨 협상을 하겠냐마는, 뭔가 이해가 가질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게 전부인가요? 제가 그러면 뭘 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정확히?”

“학교는 내가 몇 군데 알아봐 주겠네. 학교와 계약을 하고 아침 시간이나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온라인 강의를 틀어 주는 것으로.”

여기까지는 나에게만 유리한 내용들이다.

속내를 알아야 했다.

단순히 국회의원으로써 교육 전문가임을 인정받으려고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을 터.

잠시 다시 말을 멈추고 내 표정을 지긋이 쳐다보던 그는 이어서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면 S 아카데미와 맥스스쿨의 수입은 지금보다 훨씬 커지겠지. 늘어난 수입 중 일부만 나를 도와주면 되네. 물론 비공식이지.”

역시 다른 속내가 있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