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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49화 (49/200)

[49] 49화.

너무 큰 덩어리로 움직이다 보면 시장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

예컨대, 내 전생에서 교육과정은 수능의 비중을 계속 축소하는 방향으로 변화했으니, 수능과 내신을 합쳐서 운영하다 보면 결국 내신 시장에서 오르는 수익을 떨어지는 수능 시장에 보전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

그렇다면 주현필의 의견이 조금 더 합리적인 생각이긴 하다만, 맥스스쿨의 경영권 분쟁이 계속해서 일어날 소지가 있다는 점이 결정을 망설이게 하는 것.

유미진은 그렇다 쳐도 강재훈 대표는 자신의 학원을 되찾으려 할 것이 분명했다.

김윤지 원장은 어찌되건 우리가 손해 볼 상황은 아니니 내 판단에 맡긴다고 했고, 오광필 할아버지는 그냥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내일이 주주총회인데 결정은 내려서 가야 하지 않겠어요? 지난번에 협의된 강사들도 기다리고 있을 거고.”

“아! 강사들이 있었네요, 참. 그분들 입장에서는 어떤 방향이 더 유리할까요?”

“글쎄요. 강사들이야 뭐 자신들 주식 가치 오르는 쪽을 선호하지 않을까 싶기는 해요. 운영 부분은 유미진 씨가 꽉 잡고 있어서 강재훈 대표 시절보다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그냥 막 잘 해내라는 주의라나 뭐라나?”

유미진다운 방침이었다. 로드맵이 없는 상황에서 오너가 수익만을 추구할 경우 실무진은 방향을 못 잡을 수밖에 없겠지.

생각하자, 현덕아. 생각하자.

이번 결정이 아마도 앞으로 올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둘 다 이기는 결정이라 하더라도 최대한 장기적으로.

장기적으로?

“맥스 경영권만 가져오겠습니다. 합병을 하면 수능 강의 규모가 너무 커지니까요. 그리고…….”

“옳지. 이래야 유현덕답지! 허허.”

오광필 할아버지의 너털웃음. 강단 있게 결정하고 밀어붙이는 모습 이면에는 엄청난 내적 갈등이 수반된다는 것을 아시려나.

“그리고 S 아카데미는 내신 강의 중심, 맥스스쿨은 수능 강의 중심 학원으로 재편합니다. 따라서 S 아카데미에서 수능 강의만을 담당하시던 선생님들은 맥스로 이전 계약 진행할 거고요. 추가적으로 하나 더 조심스럽게 제안을 해 봅니다만…….”

여기까지는 둘 중 하나의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그리고 1 더하기 1 이 2가 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돼지.

추가적인 제안이라는 말에 다들 눈이 동그래졌다. 아마 다들 이 녀석은 어디까지 일을 벌이려는 걸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얼굴에 티가 다 났다.

“공무원 시험 과목을 개설할까 합니다. 물론 이건 본진인 S 아카데미에서 시작해야겠지요. 사이트는 나누더라도 요.”

나는 지금 하나의 학원에서 갑작스레 세 개의 학원을 운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그 하나의 학원마저도 사실 학원이라고 부를 수는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로써 적어도 고등학교 내신, 수능시험 대비 강사 수급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이 되겠지.

* * *

2005년 3월. 맥스스쿨 주주총회의 모습은 의외로 차분했다.

“강재훈 대표님,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굳은 표정의 강재훈 대표는 나의 인사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불가피한 상황이란 걸 본인도 자각하고 있었겠지만 충격은 컸을 것이다.

이 자리에는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김윤지 원장까지 다들 함께 참석했다. 거기에 지원재 실장도 조용히 뒤편에 앉아 있었고.

총회 시작 직전 만나 잠시 대화를 나눴다. 일단은 계획대로 잘되기를 바란다는 격려의 말.

‘회사 수입 및 운영에 관한 안’으로 시작된 총회는 곧이어 경영진 교체를 주장하는 기존 맥스스쿨 강사들의 목소리로 채워졌다.

개인으로 참석한 소액주주들은 의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에 발언만 몇 분이 했고.

발언은 대개 회사의 운영을 성실히 해 달라, 그리고 주식 가지고 장난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강재훈 대표가 경영자였고, 최대 주주는 유미진이었다. 물론 그녀의 아들 지분까지 포함해서.

그리고 이어진 ‘경영진 교체에 관한 안’.

안건은 갑작스레 마음대로 제출할 수가 없기에 이미 강재훈 대표나 유미진은 알고 들어온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자리를 지킨 것은 서로 다른 이유에서겠지.

이런 걸 동상이몽이라고 하겠지?

강재훈 대표는 아마도 내가 가진 7.5%의 주식으로는 그와 유미진, 그리고 아들 강민호가 가진 주식 15%를 넘지 못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또는, 그도 유미진이 전면에 나선 후 기존 강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찮은 것을 느꼈을 테니 불안감은 있겠지만, 우리가 그들의 지분을 충분히 확보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그는 유미진이 써 준 위임장의 존재를 몰랐다. 지는 것이 확실했다면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것.

유미진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 이곳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강재훈 대표보다는 맥스스쿨에 대한 집착이 작을 수밖에 없었다. 직접 여기까지 일궈 온 회사가 아니니.

거기에 사업 감각이 떨어지는 편이라 강재훈 대표가 내심 불안하게 느꼈던 강사들의 동요를 과소평가했을 것이고.

느긋하게 보다가 ‘헉’ 하고서는 또 ‘그래도 주식은 내가 들고 있잖아, 돈 있으니 됐어.’라고 생각할지도.

본격적인 표 싸움이 있기 직전, 나는 조용히 강재훈 대표의 앞으로 가 유미진이 나에게 써 준 위임장을 보여 주며 말했다.

“맥스스쿨은 이미도 원장님 지휘하에 운영될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강재훈 대표님.”

원래 그가 하려고 했던 일이 숨겨 둔 딸인 이미도 원장에게 맥스스쿨을 거의 넘겨주려 했던 것 아닌가. 물론 주인은 엉뚱한 녀석이 되었지만 결국 같은 편이니 다 잘된 거지, 뭐.

하지만 표정을 보아하니 주는 것과 빼앗기는 것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곧 발언권을 신청한 후 연단에 올라가 이 연극의 마무리를 위한 연설을 시작했다.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어쨌든 소액주주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총액으로 치자면 그들이 가지는 지분은 회사 전체의 절반이나 된다.

대략 5분간의 길지 않은 연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의외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지금이 2005년 3월이고 내가 신성 학원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것이 2000년 11월이었으니, 대략 4년 전 나는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 앞에서 면접을 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가 그들 둘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명확한 로드맵, 자신감, 그리고 시류를 읽고 그것을 남들에게 이해시킴으로 맥스스쿨의 투자자들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이 내가 연단에 서서 한 일이었다.

“S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저는 맥스스쿨 운영에 일체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을 것이며, 경영에 관한 모든 권한은 신성 학원을 500% 이상 성장시킨 이미도 원장이 전문 경영인의 자격으로 행사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내려오는 동안 총회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강재훈 대표는 결판이 났음을 알고 있었다. 절망과 허무함으로 가득 찬 표정을 짓고 있는 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내 자리로 내려가 표결을 기다렸다.

반응과 결과는 종종 다를 수가 있다. 그렇기에 끝까지 긴장감을 놓지 말아야 하겠지만, 이번 건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도 다리는 후들거렸다.

“그러면 맥스스쿨 경영진 교체에 관한 안의 표결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 *

봄비라고 부르기에도 늦은 비가 추적추적 내리면서 송홧가루가 모든 것을 덮는 계절이 지나고, 공기도 조금씩 맑아졌다.

이 공기를 마음껏 즐길 여유 같은 것은 나에게 없었지만, 그래도 계절이 지나는 것을 몸으로나마 느낄 수 있으니 다행이려나?

“날 참 좋죠?”

“네? 아, 네. 많이 따뜻해졌어요.”

“따뜻하다 못해 덥네요, 이제는.”

졸업 후 처음으로 찾아온 대학교 교정.

1년도 채 되지 않았기에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여기에서 보낸 시간만 하더라도 총 8년 반이나 되었고.

전생에서 마지막으로 봤던 교정의 모습은 어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그만큼 지금에 모든 노력을 쏟아 붓느라 여유가 없었을까. 가끔씩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한가로이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무슨 생각을 그리 또 골똘히 하고 있어요? 또 일 생각?”

아차, 혼자 있는 것이 아니었구나. 대화까지 하면서도 이러다니.

고개를 돌려보니 김윤지 원장이 나를 빤히 보고 있었다.

처음 이미도 원장을 봤을 때의 느꼈던 커리어 우먼 느낌. 여기에도 큰 매력이 있었는데, 김윤지 원장의 경우 그것과는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이미도 원장에게 느꼈던 그런 ‘동경심’과는 다른 어떤 것.

그런 것도 없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친한 사이는 되지 않았겠지. 나를 죽일 뻔했던 사람의 외조카인데.

“아뇨. 그냥 언제쯤 쉴 수 있으려나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멍하니 있다고 말하기가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우리는 별 대화 없이 걷기 시작했다.

덥지만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속이 다 풀리는 기분.

너무 달렸구나, 그동안.

한 번 살았던 삶을 다시 산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훨씬 나은 삶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리라.

하지만 너무 달려오기는 했다.

무엇을 위해서?

글쎄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도 찾을 수가 없다.

더 나은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단순히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면 뭐가 달라질까.

이전보다 훨씬 만족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되돌아보면 그 생각 자체가 허상이었다.

고생은 똑같이 하고 있었다.

“말이 별로 없어요, 유 선생님은.”

“네? 아, 아닙니다. 말 엄청 많습니다.”

“그래요? 호호.”

분명 말은 많이 하는데, 그 내용이 거의 일 이야기 뿐 이니. 그녀의 말이 옳았다.

“일하지 않을 때는 뭐 하고 지내요?”

책? 전생에서는 책을 많이 읽었다. 원체 책을 좋아하는지라 스트레스가 쌓이면 그냥 조용히 침대에 누워 책을 읽어 댔다.

영어 교사였으니 영어와 관련된 것만 읽는다고 오해하지는 말자. 직업이 영어 교사였던 것이고, 영어는 내가 좋아하긴 하지만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지 그 자체를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딱히 싫어했던 것도 아니지만.

“일하지 않을 때가 없는 것 같아요. 하하.”

멋쩍게 웃는 나를 보고 김윤지 원장도 웃었다.

책벌레에서 일벌레가 된 건가.

쉼 없이 달려온 몇 년간을 되돌아보면 정말 많은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동시에 어떤 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내가 채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커피나 한 잔 사 줘요. 여기까지 와서 일 이야기만 하고 들어가네. 참, 이거 말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그러고 머뭇거리는 그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했는데 정말로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말이 듣게 됐다.

“말씀하세요.”

“저, 외삼촌이 보고 싶으시데요.”

외삼촌?

조규만 대표, 아니 의원이 나를?

* * *

“이로써 유현덕 대주주님께서 발의한 ‘경영진 교체에 관한 건’은 가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총회 진행자의 선언이 있기 전 이미 분위기는 우리 쪽으로 넘어와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고생했네. 축하해, 유현덕 선생.”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그간 고생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해.”

“네, 부원장님.”

내가 이미도 오광필 할아버지, 주현필, 그리고 이미도 원장에게 차례로 축하 인사를 받는 동안 강재훈 대표와 유미진은 자리에서 조용히 떠났다.

그 모습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표정이 좋지는 않았으리라.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강재훈 대표는 물론이고, 자신의 무지가 남편의 대표직을 날려 버린 것을 깨달은 유미진도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총회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만큼 표결은 압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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