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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46화 (46/200)

[46] 46화.

믿어야지 뭐 어쩌겠는가. 이 일에는 그녀가 적임자인데. 위치상으로나 능력으로나.

“믿어야죠.”

그래도 자신감 있게 웃어 보이는 내 표정에 그도 안심이 됐나 보다.

“저는 잠시 쉴 시간을 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그건 괜찮으실까요?”

“물론입니다. 푹 쉬시고 회복되시면 연락 주셔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저희는 지원재 실장님 능력이 필요해요. 어디서 쉬시려고요?”

“미국에 좀 다녀오려고요.”

“오! 미쿡이요? 부럽습니다.”

입술에 침도 안 묻히고 술술 나오는……. 거짓말이 아니니 굳이 침을 바를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그나저나 미국이라니. 정말 부러웠다. 나도 한 번 이 나라를 떠 봐야 하는데. 언제쯤이 될까.

* * *

“어떻게 됐습니까?”

너무 기대가 넘쳐흐르는 목소리와 표정이었을까?

“며칠 동안 타지에 있다 온 사람한테 이러기에요?”

그녀는 살짝 삐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난 또 거기에다 대고 멍청하게…….

“아! 고생하셨어요! 어떻게 됐어요?”

그렇게 말하는 우를 범하였다.

그녀가 바랐던 게 이게 아니었나?

“아, 진짜 너무하시네. ‘일 잘 끝냈다’는 말이 듣고 싶은 거죠? 자, 일 잘 끝내고 왔습니다. 흥.”

“잘됐네요! 하하. 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헤벌쭉 웃음 짓는 내 얼굴을 보더니만 그녀도 어이가 없는지 웃고 만다.

우리가 계획한 것, 애초에 지분 숫자를 그리 강조했기에 다들 알겠지만, 그건 바로 맥스스쿨의 강사 지분을 확보하여 경영권을 가져오는 것이었다.

김윤지 원장은 맥스스쿨 지방 본원인 성공 대입학원 원장.

게다가 일전에 지원재가 성공 대입학원 강사들과 맥스스쿨 강사들을 교체해 두어 서울 본원에서 우리에게 힘을 실어 줄 강사들이 많았다.

물론 그들이 기존 1타 강사들만큼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는 못했지만, 강재훈 대표가 실질적으로 실각하며 온 불안감에 다들 어수선한 틈을 타 그녀가 접근한 것이었다.

“응?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세요?”

“네? 아니에요. 저는 이미도 원장님 뵙고 가 보겠습니다.”

무슨 만나자마자 간다는 건지.

그녀와 내가 본 지 5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그럼 안 가면 무슨 얘기하게요?”

아, 그런데 이게 문제다. 일 이야기 말고는 그녀와 해 본 적이 없는데.

내 표정에 내 생각이 그대로 드러났는지 그녀는 찡긋 한 번 웃고 그대로 떠나 버렸다.

어쨌든 일은 잘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았다.

* * *

빚더미에 앉은 지 두 달.

전생이 이만한 빚이라면 죽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겠지만, 지금은 괜찮다.

빚과 동시에 국내 최대 온라인 교육업체 맥스스쿨의 지분을 15%나 가지게 되었으니.

물론 여기에서 5%는 김윤지 원장 몫이다. 온전히 내 것은 10%.

낸 돈으로는 100억 원, 그리고 지금 당장 되팔아도 130억 정도는 받을 수 있는 양이다.

문제는 이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자라는 것이 정말 다리 후들거리게 만들기는 하는 것 같다.

급히 자금을 융통하느라 총 70억 원을 연 10%의 이율로 대출을 했기 때문에 매년 약 7억 원 정도를 이자로 내야 한다.

미친, 이자로만 7억 원이라니. 거기에 세금은 또 어쩔 건가…….

아, 세금 내는 날이 다가오면 두려워진다..

그래도 일단 S 아카데미는 완전히 시장에 연착륙 한 상태. 지금은 안정적으로 순이익 월 20억 이상씩 뽑아 주고 있다.

이게 말이 20억이지 년으로 치면 총매출액 500억 가까이 된다는 말. 이자 7억은 충분히 감수할 만 한 비용이다.

마지막 필살기로는 맥스스쿨 기업 공개가 남아 있다.

지금 한창 맥스는 기업 공개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는 상황.

유미진은 기업 공개 후 엄청나게 오를 주식에 눈이 팔려 있겠지만, 막상 기업 공개 직후 이사회에서 표결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런 것이 바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누가 가져간다나 뭐라나 하는 속담이 딱 맞는 경우겠지. 흐흐.

그렇게 행복한 생각으로 힘든 대학 졸업반과 학원 강사의 생활을 견디고 있던 중, 준서에게서 연락이 왔다.

우린 자주 가던 술집이 아니라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비싼 술집으로 갔고.

“얼굴 보기가 무슨 연예인 보는 것만큼 힘드냐, 너는.”

“다 바쁘니깐 그렇지, 뭐. 요즘도 할 만해? 학원일?”

물어보기는 예의상 물어보지만 표정 보니 얼굴이 반쪽이 다 되었다.

“죽을 것 같아. 허허. 왜 선배들 일하기 시작하면 폭삭 늙어서 오는지 알 것 같네, 이제.”

“힘든 만큼 돈을 벌잖아, 그래도.”

“그건 그래. 벌어 놓은 것도 이제 곧 다 쏟아부을라고.”

“응? 어디에 쏟아부어?”

세상에. 나는 그보다 훨씬 많이 벌면서도 제대로 쏟아부을 곳 하나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준서는 어디에다가 몇억이나 되는 돈을 부으려고 하지?

하지만 그의 대답을 듣고 역시 내가 아는 준서는 전생이나 지금이나 같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가려고. 얼마 전에 지원재 실장님한테 연락 왔어. 아, 이제 원재 형이라고 하랬지, 참. 아무튼, 미국 가려고 준비 중인데 같이 가겠냐고.”

“그래서? 가려고?”

“당연히 가야지. 돈도 어느 정도 모았겠다, 군대 가기 전에 가야지.”

내가 몇 년간 자리 나지 않는 학교에서 끙끙거리고 있을 때, 그는 사교육 시장에서 지금의 나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번 생애에서는 조금 빠르게 학원으로 들어왔으니 분명 달라지는 것들이 많지 않을까.

나와 같은 조건이었다면야 모르겠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미래를 위한 투자.

나에게 여유가 조금이나마 있었다면 나도 미국에 한 번 나갔다 오고 싶었겠지.

“너는 군대 언제 가?”

“자식아, 자꾸 맨날 군대 물어보기냐. 하하. 모르겠어. 가긴 가야지. 너야말로 군대 안 가고 미국 가는 녀석이.”

“원래 군 입대를 해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어. 학원 생활을 하면서 돈이 들어오는 건 좋은데, 이걸 과연 평생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 그래도 너 성공하는 모습 보다 보면 부럽기도 하고 따라가고 싶기도 했는데, 할 일들이 많잖아, 세상에는. 일보다도.”

“그렇지.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적고, 돈도 없지, 보통은.”

준서에게 한 말이었으나, 막상 뱉어 놓고 보니 나에게 하는 혼잣말같이 들렸다.

이제는 돈은 많이 있는데, 돈이 과연 전부일까. 쓸 시간이 없어 쓰지도 못하는 돈은 결국 집에 걸어 놓는 초등학교 때 받은 상장과 같은 것은 아닐는지.

그나저나 자꾸 군대 이야기를 꺼내, 이 자식이.

“그래서, 언제 가는 거야?”

“일단 부모님께 지금까지 번 것 드리고 나서. 아마 세 달 정도 걸릴 것 같아. 미국은 수속 밟는 것이 조금 걸린다고 하더라고.”

“먼저 가서 적응 잘하고 있어. 나도 가면 네가 안내해 줘야 하니깐.”

“응, 알겠어. 일주일에 1억이야.”

“뭐가 일주일에 1억이야?”

“가이드비.”

“날강도네.”

* * *

맥스스쿨이라는 거대한 폭풍을 무사히 지나가고, 다행히 후폭풍은 없었다.

아, 굳이 후폭풍이라고 할 만한 것이 하나 있었다 치면, 그건 주현필의 분노의 싸대기를 맞은 일이겠지.

이건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 김윤지 원장과 준서를 만나기 전 일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맥스스쿨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야, 이 새끼야!”

다들 별 탈 없이 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갑자기 맨 앞에서 걸어가던 주현필이 뒤로 돌더니 내 뺨을 후려쳤다.

하지만 나도 왠지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해서인지 크게 놀라지는 않았고.

무림 고수 주현필의 손바닥 휘두름은 역시나 강력했다.

얼굴이 돌아가는 것은 물론이고 입에 물고 있던 사탕까지 건물 화단으로 날아가 버렸다.

“어허! 그만하게. 이거 꼴사납게 여기서 왜 그래?”

오광필 할아버지가 서둘러 나와 주현필 사이로 끼어들었다.

오히려 그의 갑작스런 싸대기보다 놀랐던 건 이미도 원장의 반응이었다. 그녀가 막아서리라 생각을 했는데 싸늘하게 지켜보고만 있는 그 눈빛. 잠시였지만 분명 싸늘했다.

이런 중차대한 일을 논의도 없이 진행했던 것에 대한 질책이었을까.

“너, 아주 혼자 잘났더구나? 돈도 벌고 회사도 자리 잡고 있겠다, 이제 그냥 아주 독립해 버리지? 왜 굳이 우리랑 같이 일하는 건데?”

“죄송합니다.”

달리 뭐라 할 말이 있겠는가. ‘유구무언’이란 말이 이럴 때 쓰는 건가. 입은 있으나 할 말은 없는…….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네가 다 처리한 건데. 그만해, 주현필 부원장. 됐어, 이제.”

“회장님은 조금 가만히 계셔요.”

“유현덕 선생님.”

가만히 지켜보던 이미도 원장이 말했다.

“네, 원장님. 죄송합니다.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죄송할 건 없어요. 강사도 프리랜서라고 했던 건 나였으니깐. 그래도 이번 일은 조금 당황스럽네요.”

당황스러울 만하지. 화도 아마 꽤나 났을 것 같다.

그녀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기억은 없다만, 평소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라……. 화가 났을 수도, 아니면 적어도 엄청나게 서운했으리라.

내 입장에서는 누가 나를 키운 것이 아니라 나 혼자서 죽었다 살아나며 큰 거라고 생각이 들지만, 그녀나 주현필은 나에게 큰누나, 큰형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맞다. 유현덕 선생도 잘못했어. 그래도 사과했고 잘 해결됐으니 이만 덮어 두게. 여기에서 이러는 것도 보기 좋지 않아.”

“아니에요, 할아버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만, 미리 말씀드릴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유 선생님 잘못은 아니에요. 150억은 대출한 건가요?”

“네. 전부 대출한 건 아니고 김윤지 원장이 50억, 그리고 제가 현금 30억에 대출 70억 받아두었습니다.”

“그 계획은 유현덕 선생님 혼자 생각한 거구요.”

“아, 그건…….”

지원재 실장을 언급하는 것이 좋을라나.

그 사람도 이제 맥스스쿨에 자리가 없을 수도 있었다. 나는 내 선에서 S 아카데미로 영입하려고 했던 거지만, 사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활약할 자리는 마땅치 않았다.

보통은 맥스스쿨처럼 학원을 기반 삼아 온라인 유료 강의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우리는 전혀 그런 구조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S 아카데미 혼자서 독립하기 조금 어려운 체제랄까?

강사 수급이 원활해야 강의를 올리고 유료 결제로 수입을 올리는데, 지금은 강사를 전원 빌리는 계약 형식이다 보니.

여기에 연결된 학원만 하더라도 신성 학원, 성공 대입학원, 학원연합 내의 몇 개 학원, 그리고 맥스스쿨 주변에 있는 대형 학원들까지, 너무 많았다.

그리고 나도 그 한계를 잘 알고 있었고.

“됐어요.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건지는 모르지만 다행인 건 사실이었으니깐. 그건 그렇고, 유현덕 선생님은 독립을 원하시나요?”

독립이라.

S 아카데미는 신성 학원과 법적으로는 별개의 업체지만 실질적으로 한 몸이라고 봐야 했다.

촬영을 위한 강의실, 새로 만든 편집실이 신성 학원 건물에 있었고, 그 건물의 소유주는 주현필.

돈이 모였으니 내가 건물 사서 옮기는 건 일도 아니겠지만, 강사 수급 부분은 삐걱댈 수 있었다.

S 아카데미가 정해진 날짜에 정산 금액을 강사들에게 입금한다는 그 신뢰는 사실 이 회사가 아니라 신성 학원과 성공 대입학원, 그리고 학원연합이 가지고 있던 신용에 기반을 둔 것이니.

그리고 지금 그 신용 부분이 사라진다면 기껏 쌓아 둔 기반이 흔들릴 수도 있겠지.

중요한 것은 이미도 원장이 나보고 독립을 하라는 의미인지, 아니면 단순히 내 의사를 묻는 건지였다.

“언젠가는 독립을 해야겠죠.”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고,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니. 하지만 인간관계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금은 원장님과 부원장님, 그리고 할아버지와 김윤지 원장님까지 함께 가고 싶습니다.”

“말은 항상 번지르르하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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