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45화.
아무튼 오랜만에 만났는데 또 일 이야기에 돈 이야기니 그녀의 표정이 썩 밝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도 지원재 실장의 연락, 그리고 내 생각을 이야기한 뒤 함께해 주기로 마음을 먹은 듯했다.
그래서 꾸민 일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어마어마한 총알과 함께 플랜 B를 준비해 놓자는 것.
일단 S 아카데미를 통해 받을 수 있는 대출 금액을 조회해 보았더니 70억 정도가 나왔다.
거기에 내가 들고 있는 현금 30억(물론 일이 잘 풀린다면 이미도 원장과 함께 맥스스쿨 지분 확보로 들어갈 돈이지만)을 합하니 100억이란 숫자가 나온 것이었고.
그리고 지금 이 플랜 B는 강재훈 대표의 아내가 모든 것을 알게 돼 계획을 무너뜨릴 경우를 대비한 것이기에 이미도 원장의 돈은 완전히 논외로 해야 했다.
물론 유미진이 돈만 밝히는 여성이라는 지원재 실장의 판단이 옳다면, 돈만 잔뜩 준다면야 이미도 원장도 참여할 수 있겠으나, 내 머리로는 그래도 그녀를 배재시키려 할 것 같았다.
그러면 총알이 100억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었다.
“저도 참여할게요.”
기다리던 대답이긴 했지만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다. 뭔가 내 욕심 때문에 일을 너무 벌이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고.
내가 준비하던 것은 맥스보다 기업 공개를 먼저 하는 것.
하지만 지원재 실장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로는 맥스도 기업 공개를 추진 중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늦게 시작한 우리는 기업 공개에 들어가는 시간이 더 소요된다.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고, 이걸 뒤집으려면 S 아카데미를 차근차근 성장시키면서 동시에 자본을 맥스 본진으로 투자해 기업 공개 때 총 자본금을 우리도 같이 늘려 버리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그걸 유미진이 눈치채지 못할까 하는 부분.
“만약 그쪽에서 유현덕 선생님 계획을 눈치챈다면 굳이 투자를 받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저라면 그렇게 하겠다는…….”
“그래서 미끼를 던질까 생각 중입니다.”
“미끼요?”
“네, 거기 아들이 한창 사업 참여할 생각에 들떠 있다고 하더군요.”
그 아들이 나보다 나이가 많다. 하지만 나이와 철이 드는 것은 다른 문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사업 참여 생각에 들떠 있다는 것과 미끼는 무슨 관계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김윤지 원장.
“좀 비싼 미끼이기는 하지만, 강재훈 대표가 딸 준다고 회사 가치를 무너뜨려 놓은 덕을 조금 보면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
절반으로 내려간 가치. 상황이 정리되면 곧 원상태로 복귀할 것이다.
그렇게 만들 수만 있다면야, 절반 가치로 투자한 금액은 곧 본전을 만들 수 있다.
거기에 기업 공개.
내가 경제학과 출신이 아니더라도 과거 맥스스쿨의 주가 총액이 대략 2조 원 대까지 올랐다는 것은 기억했다.
공교육에 몸담고 있었으면서 사교육 시장 일은 어떻게 아느냐고?
학교에 있다고 해서 돈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때는 안정성을 추구했다면(그래 봐야 기간제는 1년간의 안정이지만), 이번에는 돈을 추구하고 있는 것.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이미 올라 버릴 대로 오른 청룡열차는 절대 타면 안 되지만, 맥스스쿨은 아직 출발도 하지 않은 열차다.
“정리하면, 결국 유현덕 선생님은 이미도 원장님이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오히려 더 유리해지는 거네요?”
“그렇긴 합니다만, 그렇게 되면 더 피곤해지는 것도 사실이죠. 피곤한 건 싫습니다. 하하.”
너무 여유로운가? 내가 생각해도 도대체 무슨 깡으로 이렇게 큰돈을 대출받고 움직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어디까지 벌려고…….
작게 눈을 뜨고 나를 째려보는 김윤지 원장이었다.
“하나만 더 도와주세요, 원장님.”
기억하는가? 성공 대입학원은 맥스스쿨과 합병한 상태였다. 그리고 기존 성공 대입학원 대표 강사들 중 일부가 맥스스쿨 본원으로 들어가 있고.
이걸 어떻게 잘 써먹으면……. 흐흐.
* * *
“좋습니다. 100억에 15%요. 그런데 그렇게 하시려면 강재훈 대표님이 직접 오셔야 할 것 같은데…….”
“기다려요.”
이미도 원장과 오광필 할아버지는 뭐가 이리 쉽게 진행되냐는 식으로 나를 보고 있다.
예상보다 훨씬 쉬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까지는.
그리고 곧 들어오거나 연락을 줄 강재훈 대표의 상태에 따라 이게 정말로 쉽게 끝이 날 것인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줄다리기가 있을 것인지 알 수 있으리라.
그래도 이들의 불안감은 해소를 시켜야겠지.
“뭐야, 이 새끼야.”
헐, 이거 주현필의 반응이 생각보다 강했다.
하긴 나도 미친 거지. 그를 보고는 눈을 찡긋거렸으니.
이건 다른 의미가 아니라 ‘신호’라고요, ‘신호!’
그녀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고 잠시 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들어온 것은 중년? 아니 노년에 접어든 남자 하나와 지원재였고.
예상은 하고 있었으나, 그들의 모습은 예상보다 초췌했다. 이틀은 집에 못 들어간 모습.
유미진의 말처럼 판을 엎은 것이 강재훈 대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나저나 감격스러운 상봉을 기대했을 텐데, 일이 다 어그러져서 이거 어쩐다.
다행히도 이미도 원장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원래 그런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자, 대략적인 내용은 전화로 설명한 그대로에요. 나는 찬성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유미진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의기양양, 언제까지 저렇게 할 수 있을지.
뭐, 나야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거지만.
“이미도는 하나도 못 받는 건가?”
“장난해요? 그건 고려 대상도 아니었어요. 지금 저는 ‘투자 제의’를 고려하고 있는 거라고요.”
투자 제의라. 이건 투자 제의가 아니었다.
강재훈이나 지원재는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고.
회사에 100억의 투자, 그건 투자일 수 있었다. 제대로 된 가치만큼의 금액이라면.
하지만 지금 내가 제시한 100억은 원래 가치의 3분의 2 정도 금액.
가만히 있어도 50억은 오른다.
거기에 50억은 유미진과 그녀의 아들이 앞으로 할 사업에 대한 투자라.
번 돈으로 쓰는 거니 뭐라 하겠냐마는, 이건 분명 미끼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돈 빌려줄 테니 사업 벌여서 망해라’ 하고 던져놓은 미끼.
그리고 엄밀히 말하자면, ‘횡령’의 한 종류였다. 나도 엮여 있으니 이건 써먹지는 못할 올가미이지만.
“알아서 하시오. 내 말을 들을 상황도 아니구먼.”
강재훈 대표가 백기를 들었다.
아니 이미 백기를 들고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그에게 일이 이렇게까지 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최적의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가 경영의 귀재라거나 투자, 합병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번 플랜 B는 지원재의 계획이었다.
아니 계획이라는 단어는 너무 평가절하다. 이건 그의 작품이었다.
지원재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그가 희미하게 미소 짓는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제6강 분노의 싸대기
내가 빌린 돈은 현금 30억 제외한 120억.
그중 김윤지 원장이 50억을 빌려줬고, 나머지 70억은 은행 대출? 이거 지르고 나니 어마어마한 금액이 실감이 날까?
아니다. 첫 이자 내는 날까지는 전혀 실감나지 않았다. S 아카데미를 통해, 그리고 신성 학원에서 들어오는 돈이 꽤 되긴 했으니.
하지만 진짜 저거 갚느라 몇 달을 소모했는지. 이자는 또 왜 그리 비싼지 눈물이 다 나올 정도였다.
“우리 쏙 빼고 좋은 거 다 차지하려니깐 배탈이 난 겨. 허허.”
날이 갈수록 쉴 타이밍을 못 잡고 점점 초췌해지는 내 모습을 보며 오광필 할아버지가 웃으면서 말했다.
맞는 말이니 뭐, 딱히 반박하기도 그렇고.
“아주 큰 사기꾼이 될 녀석이에요.”
주현필의 말이었다.
그는 진짜, 나 덕에 그나마 완전 무산된 게 아니라는 점에 감사해야 할 것 아닌가.
S 아카데미가 맥스스쿨에 투자를 한 모양새를 갖추면, S 아카데미 동업자인 이미도 원장도 간접적으로 맥스스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걸 알면서 저리 비꼬는지. 돈은 내가 다 쓰면서 남 좋은 일 하는 건데.
진짜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아니기는 했다. 이미도 원장이 내 사업에 크게 이래라 저래라 관여하는 성격도 아니었을 뿐더러, S 아카데미 지분은 전부 내 것. 수익도 내 것. 다 내 것.
하지만 뭔가 많이 떨어지면 양심상 그걸 전부 나 혼자 꿀꺽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이미도 원장이 조금 안됐다.
아버지를 보는 것은 처음일 텐데 그렇게 좋지 못한 꼴로 보게 되다니.
그날 이후, 맥스스쿨의 공식적인 대표는 강재훈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유미진이 상당 부분 개입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면 강재훈의 오른팔이었던 지원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여기에서 유미진의 덜떨어진 사업 능력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그녀가 나에게 강재훈 소유 지분 중 15%를 넘긴다는 것의 의미를 알았다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
강재훈이 대표직을 유지하긴 하나, 자신이 들고 있던 10%의 지분 중 5%를 추가적으로 유미진에게 넘겼다.
세금을 엄청 맞기는 했겠지만 그건 뭐 세무사가 알아서 다 빼 줬을 테니 걱정할 것이 아니고.
이 말은 곧 유미진의 지분이 15%, 그녀의 아들이 10%, 강재훈이 5%를 가지고 있게 됐다는 것.
내가 가져온 지분이 15%, 강사들의 지분이 20%였다. 나머지 35%는 퓨처 금융투자 소유고.
그리고 중요한 작전이 아직 하나 더 남아있었다.
“살살 하게, 유 대표. 너무 세게 나가지 마.”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강재훈 대표님.”
강재훈 대표는 알고 있었다. 숨겨둔 딸에게 적당한 수준으로 경영권을 넘기려 했던 것이 결국 엉뚱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걸.
그의 의도대로 이미도 원장이 맥스스쿨 경영권을 가지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아내 유미진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건 단순한 숫자계산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닐지라도 그들의 싸움이 나한테는 절호의 기회가 된 것은 분명했다.
그나마 강재훈 대표가 머리를 써 보려고 했던 것이, 아내 유미진에게 지원재를 그대로 자신의 곁에 두도록 부탁했던 일이었다.
아마 지원재가 옆에 있었다면 나와 그가 부딪힐 수도 있었을 터.
하지만 그녀는 그녀대로 지원재의 비상한 머리가 강재훈 옆에 있는 것이 불안했을 것이고, 결국 그는 맥스스쿨에서 나와야 했다.
사실 갑작스레 나에게 온 이 어이없는 기회는 지원재의 머리에서 나온 일이기에, 아마도 회사에서 잘리면서 그처럼 밝은 표정으로 나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고생하셨어요, 지원재 실장님.”
“아닙니다. 잘 움직여 주신 덕에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오게 되었네요.”
“다 실장님 계획 덕인데요, 뭐. 이제 뭐 하실 겁니까?”
맥스스쿨에서 퇴사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건 강재훈 대표에게서 들은 내용이었다) 나는 시간에 맞춰 맥스스쿨 본원 입구까지 가서 그를 기다렸다.
어찌되었건 지금 이만큼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것은 지원재의 계획 때문이었다.
“글쎄요. 일 알아 봐야죠. 하하.”
“괜찮으시다면 함께 하는 건 어떠신가요? 저희 S 아카데미에서 말이죠.”
이렇게 제안은 하고 있으나, 사실 미리 이야기가 다 됐던 부분이었다.
치사할 정도로 인물 좋고 머리까지 갖춘 인재라 조금 부럽기는 했지만, 그가 내 옆에 있어 준다면 주현필과는 다른 의미로 든든할 것 같았다.
“말씀드린 부분은 잘 준비되고 있겠죠?”
이게 중요한 내용.
“당연하죠. 뭐, 그 부분은 저보다 더 적합한 인물이 있으시기에 그쪽에 부탁을 드린 상태입니다. 종종 잘되고 있는 것 같다고 연락도 받고 있고요.”
“믿을 수 있는 사람입니까?”
김윤지, 그녀를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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