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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42화 (42/200)

[42] 42화.

내가 또다시 종이에 뭔가를 끄적거리자 다른 이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전생부터 이어져 온 그냥 습관.

상황을 정리하고 머릿속에 구조화시키는데 도움이 되기에 그렇게 해 왔던 것인데, 이들의 입장에서는 내가 이렇게 하고 나서 항상 뭔가 아이디어가 튀어나왔기에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원재 실장님께 연락 좀 부탁드려요. 20% 지분이 정확히 어떤 강사들에게 각각 몇 프로씩 가 있는 건지 알고 나서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은 이랬다.

80억으로 20%를 강재훈 대표에게 살 방법은 없다.

회사 대표가 시세보다 싼값에 지분을 넘기는 순간 그 회사의 다른 투자자들은 떠날 것이기 때문. 그러면 결국 빈껍데기만 남게 될 것이고.

방법은 결국 하나였다.

강사들의 지분을 우리의 우호 지분으로 만든다.

강재훈 대표가 제안한 지분 중 16%를 우리가 가진다.

대충 첫 제안의 80% 정도이니 100억의 80%면 80억.

지금 가지고 있는 현금으로 가능하다.

그리고 어차피 지원재 실장의 도움을 받는 것, 조금 더 받는 것이다.

바로 강사들을 우리 쪽으로 기울도록 만들면 된다.

유동적이지만 일단 20%의 지분을 들고 있는 강사들이 특정 시점만이라도 우리 편이 되어 준다면…….

“계속 우리 편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강재훈 대표님으로부터는 16%만 받으면 가족 지분 20% 대 우리 지분 16%입니다. 거기에 강사 지분 5%만 확보하면?”

“일단은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지. 그래도 너무 도박인 걸, 이거?”

“5%라면 강재훈 대표님도 추가적으로 약간은 도와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이로써 우리 대응의 결론은 났다.

“지금 연락하겠습니다.”

* * *

맥스스쿨 건물 앞.

단과 학원으로 시작해 재수 종합학원 10개 반까지 운영하며, 온라인 교육 사업을 제일 먼저 시작한 국내 최대 학원의 규모는 거대했다.

신성 학원도 재수 종합반을 개설했지만 현재 5개 반 수준. 건물 하나를 통째로 학원으로 운영하는 이들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을 상대로 엄청나게 아슬아슬한 도박을 벌이려는 것이고.

“자, 들어가 볼까요?”

“이거, 다리가 후들거리는구먼. 오랜만에 느껴 보는 긴장감이야.”

“언제 이런 긴장감 느껴 보기는 하셨나요?”

“자꾸 딴지야? 내 나이가 몇인데! 전쟁 겪어 봤어?”

또 전쟁 이야기.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렇게 느끼는 것은 나만이 아니었고.

오광필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길어지면 안 된다는 부분에 동의한 주현필과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거대한 로비로 들어가니 깔끔하게 생긴 안내원이 우리를 맞이했다.

“이미도 원장님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강재훈 대표님 뵈러 왔습니다.”

“연락 받았습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 들어가는 모습이, 이렇게 말하면 안 되겠지만, 마치 처음 받는 비싼 서비스에 어색해하는 시골 사람들처럼 보였다.

대표실은 13층 건물의 꼭대기에 있었다.

우리 넷에 안내원까지, 총 다섯 명이 탔는데도 널찍한 엘리베이터를 타고선 올라갔다.

안내원은 먼저 카드를 번호 아래 찍고 난 뒤 13층을 눌렀다.

아마 그렇게 해야 대표실로 갈 수 있는 건가?

띵.

13층에 도착했다는 알림이 들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무슨 꿍꿍이야, 이것들이?”

우리 앞에 웬 중년의 여성 한 명이 뒤에 덩치 큰 정장 차림의 남자들 앞에 서 있었다.

이건 또 무슨 난장판인지…….

강재훈 대표의 사무실이 있는 층, 엘리베이터 문 밖으로 복도가 보였다.

이자들은 누구기에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인가. 갑작스러운 전개에 다들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모습은 강재훈 대표 사무실의 누군가가 안내를 해 주거나, 아니면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안내원이 사무실까지 안내해 주는 모습이었는데.

이미도 원장이 그나마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저희는 강재훈 대표님을 뵈러…….”

하지만 말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앞에 서 있는 여성이 바로 옆에 있는 검은 정장의 사내를 보고는 “유 부장님, 여기 이 분들 다들 저쪽으로 모시세요.”라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맞다. 명령이었다.

유 부장이란 검은 정장의 사내는 제일 앞에 있던 이미도 원장에게 다가섰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주현필이 그들 사이를 막아섰다.

아직 놀란 것 외에는 어떤 상황인지 몰라 긴장감도 제대로 생기지 않았을 때, 검은 정장 사내가 주현필에게 팔을 뻗었다.

때리려는 건 분명 아니었고 밀쳐 내려고 했던 것 같았으나, 그 다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주현필입니다.”

인사하며 정장 사내의 뻗은 손을 붙잡은 그.

이미도 원장을 제외하고 나와 오광필 할아버지의 표정은 썩은 표정이었으리라.

이게 뭐하는 거지?

그리고 유 부장이란 사람이 황급히 잡힌 손을 빼내려 했다.

잠시 동안의 정적.

손은 빠지지 않았다. 아니, 거의 움직이지도 않았던 것 같다.

“왜 악수를 거부하십니까. 제 소개를 드렸으니 선생님께서도 소개를 해 주시면 좋겠는데…….”

상상해 봐라.

인상 나쁜 주현필이 얼굴에 그 특유의 웃음을 머금고 악수를 하는 모습, 그리고 상대방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으로 잡힌 손을 빼지 못하고 엉거주춤한 모습을.

상당히 괴이했다.

“너, 뭐야. 이 새끼…….”

“이런, 이런. 입이 조금 거칠군요. 하하.”

저 ‘하하’라는 웃음소리를 이렇게 어색하게 내는 것도 능력이리라.

하지만 안심할 상황은 아닌 것이, 이 유 부장 뒤로 정장 사내들이 다섯 명이나 더 있다.

그리고 마치 내가 무슨 눈으로 사람을 조종하듯, 뒤에 서 있는 사내들에게 시선이 돌아가자마자 유 부장이 소리쳤다.

“야, 뭐해! 보고만 있을 거야?”

그제야 주현필이 잡았던 손을 놓고는 이미도 원장을 등지고 앞을 가로막고 섰다.

“그만하시죠. 강재훈 대표님은 어디 계십니까, 사모님?”

사모님? 잠깐만, 사모님이라면…….

강재훈 대표의 부인을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지금 이 상황은 그녀가 우리 계획을 알아채고 막으려는 것이었다.

그럴 만한 정당성도 있었고.

그런데 도대체 이 여자의 힘이 어느 정도이기에, 무슨 일을 하는 여자이기에 한눈에 봐도 거리에서 시비 붙기 싫은 비주얼의 아저씨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건지.

조폭인가. 만약 조폭이라면 손아귀 힘만으로 저렇게 간단히 기선을 제압한 주현필은 뭐지?

“남편은 잘 있어요. 오랜만이네, 주현필 선생. 남편 옆에 항상 붙어 다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더니만, 부인인 나에게 수십 년 동안이나 숨겨 둔 딸 옆에 있었군요.”

“안녕하셨습니까, 사모님. 이미 여기까지 오셨으니 대표님께 어느 정도 사정은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대표님은 어디 계신지요? 뵙고 같이 대화를 나누시는 것이…….”

“대화 나눌 내용 없습니다. 그리고 뜻대로 되지도 않을 거고요. 어떻게 그 모든 것을 날로 먹으려고 하지? 딸이라고?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역시나 모든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연들이 겹겹이 얽혀 있는 상황.

그녀가 옆에 서서 머뭇거리는 사내를 툭 치고는 우리 쪽을 가리켰다.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만…….”

이번에는 두 명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또 다시 신기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다. 이거 회귀는 내가 했는데 영웅은 따로 있었던 것인가.

앞서 접근한 사내가 주현필의 리치 밖에서 잠시 자세를 잡고 주먹을 내지르려는 순간, 어느새 주현필이 먼저 다가가 그의 코를 때렸다.

음, 우리 편이니 조금 더 멋있게 ‘가격했다’라고 하고 싶지만, 그의 동작은 힘이 실려 있기보다는 말 그대로 ‘때렸다’라는 표현이 더 적절했다.

근데 그렇게 힘도 실리지 않은 ‘때리기’에 180cm가 넘는 건장한 사내가 곧바로 코를 부여잡고 뒤로 물러섰고.

우와, 하고 바라보고 있는 순간 세 번째 사내가 주현필의 머리를 치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주먹이 아니라 무슨 각목 같은 것으로.

나름 반대쪽으로 몸을 빼면서 충격을 줄이기는 했지만, 타격은 있을 것 같았다.

나도 나서야 하나.

생각해 보면 적진인데 우리 팀 구성원이 진짜 최악이군. 60대 노인, 30대 여성, 20대 약골까지…….

주현필 하나만 멀쩡했다.

그게 정상 아닌가. 다들 학원에서 일하는 건데. 무슨 뒷골목에서 힘으로 먹고사는 사람들도 아니고.

아무튼 튕겨 나간 주현필이 건너편 벽에 몸을 부딪치고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았다.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자세.

어디서 봤나 했더니만, 영화에서 본 것이었나? 무협 영화나 무슨 무술 영화 같은…….

도대체 뭘 하던 사람이지?

“그만! 그만하세요.”

이미도 원장이 소리를 지르자 모두의 움직임이 멈췄다.

모두라고는 해 봐야 주현필과 상대편 덩치들만 격렬하게 싸우던 것이기는 하지만.

“저희가 발 빼길 원하시는 건가요? 그냥 좋게 말씀하셔도 될 일을 굳이 이런 거친 방법을 쓰시는 이유가 뭐죠?”

“나도 최근에야 알았거든, 그 사람한테 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지 알아보고 있는데 학원이 휘청거리는 거야. 별 이유도 없이. 알고 보니 그 딸한테 학원을 통째로 넘겨주려고 꾸민 일이더라고.”

이유 하나 알고 싶다는데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있는 건지.

“그래서 원하시는 게 뭔데요? 강재훈 대표님은 괜찮으신가요?”

걱정은 될 거다. 자신과 모친을 버린 아버지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다 성장한 후,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떻게 찾아내어 이것저것 도움을 주려고 했지 않은가.

“원하는 것? 네가 사라졌으면 좋겠어. 어디라고 여길 나타나!”

그나저나 갑작스런 긴장의 여파인지 다리가 아파 왔다.

이 상황에서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도 없고, 참.

체력이 중요하다 생각해서 학교까지 뛰어다니던 나였지만, 대학 들어오고 학원일 하면서부터는 운동할 시간이 통 나질 않았다.

이것저것 다 바꿔 보고 싶었는데 결국 삶이란 것이 뜻대로 되는 일이 있는가. 이 정도 돈을 벌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지.

오광필 할아버지의 상태는 더 좋지 않았다.

“저기, 요?”

순식간에 나에게 쏠린 여러 사람의 시선.

실수인가. 근데 어쩌라고.

계속 서서 이렇게 결론 나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도 없잖은가.

“서서 말고 앉아서 이야기하면 안 될까요? 강재훈 대표님도 같이…….”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겠지?

뜬금없이 강재훈 대표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만나게 하고 싶지가 않아. 너는 누구야?”

나는 이 자리에 낄 사람이 아니긴 했다.

“협력업체 대표입니다.”

주현필이 대신 대답했다.

그리고…….

“사업 이야기라면 같이 해도 되겠지만 가족 문제, 과거 문제라면 대표님, 사모님, 이미도 원장님, 세 분이서 하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별로 당신들이랑 말 섞고 싶지가 않았어. 그래도, 주현필 당신 보니 순순히 물러나진 않겠군요.”

“이미도 원장님께서 물러나신다면 물러납니다. 다만 대표님은 어디 계신지, 안전한지 확인만 부탁드립니다.”

그녀의 표정이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어이가 없네. 아직도 모르겠어요? 내가 어떻게 알고 여기에 와 있는지?”

무슨…….

“강재훈이 당신들 뒤통수 친 거라고. 백억이 기준이었는데 돈을 그만큼 못 가져온다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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