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41화.
자신은 이제 2주 내로 25%의 지분 중 20%를 이미도 원장에게 넘길 것이다.
어느 정도 금액으로 내리면 될까.
구체적인 방안은 지원재 계획이니 그가 알아서 하겠지.
“내일부터 바로 민호 출근시켜도 되겠죠?”
“지분을 가졌으면 출근해야지. 그냥 돈만 가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야.”
“알겠어요. 통화 좀 하고 올게요.”
저 웃음도 한 달 이내로 아마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까.
그녀의 반응이 궁금하고, 어쩌면 두렵기까지 했으나, 뭐 별일 있으랴 생각했다.
그나저나 유현덕이라는 S 아카데미의 대표, 보면 볼수록 신통방통했다.
아직 20대가 꺾이지 않은 나이라는데 자신이 수십 년 간 이룬 것을 단 몇 년 만에 따라오다니.
지원재에게 보고받은 이야기로는 아직 1년이 다 되지 않은 상태라 정확한 수준은 모르지만, 일단 S 아카데미 연매출은 100억 가까이 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맥스스쿨과 겹치는 수능 시장을 구색만 갖춰 놓고 새로운 내신 시장을 뚫은 점은 학생부와 내신 성적이 점점 중요해지는 대학 입시 변화의 흐름을 잘 타고 있었다.
이 젊은이는 ‘시류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혹시 ‘시류를 만들고 있는 것’인가.
어쨌든 당초 지원재와 그가 계획하던 것이 기업 공개였고, 그 후 공개된 시장에서 이미도 원장에게 투자 참여 기회를 제공하여 어느 정도 챙겨 주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이 유현덕이라는 젊은 친구가 신성 학원으로 들어가며 상황이 달라졌다.
아직 S 아카데미의 규모는 맥스스쿨의 10분의 1 정도이지만, 시간만 충분히, 아마 5년 정도 주어진다면 맥스스쿨의 턱밑까지 쫓아올 성장세였다.
물론 그 전에 아마도 동업 관계가 되겠지만…….
“원재야, 이미도 올 때 유현덕이라는 그 친구도 같이 오려나?”
“네,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이미도 원장 최측근으로는 주현필이 유일했는데, 지금 상황에서는 유현덕도 거의 주현필과 같은 위치라고 봐야 합니다. 유현덕 대표가 이 근방 유명 강사들을 영입하는 데 꽤 큰돈을 투자하기는 했지만, S 아카데미가 매달 벌어들이는 매출은 훨씬 커졌습니다.”
“유현덕 돈도 필요하겠지. 혹시 안 오면 그 전에 얼굴 한 번 볼까 했는데, 그날 다 같이 보면 되겠네. 맥스 지분 20%를 100억 정도까지 떨궈 놔. 아마 지금 평가액의 절반 정도 되겠구먼. 어떻게 할 거야?”
“주중에 퓨처 투자금융에서 자금 회수 들어올 겁니다. 투자금이 원래 200억이었고, 지금 가치로 대략 300에서 400억 정도 될 겁니다. 현금으로 넘겨줘야 하니 저희는 시일을 미루면서 언론에 이 사실을 터뜨리고, 그러면 적당히 협상하며 100억 정도만 빼는 선으로 정리하면 될 겁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지금 당장 그 100억이 없고.”
“네, 맞습니다.”
무슨 돈놀이인가 싶겠지만, 원래 회사든 작은 동네 계든 결국 마찬가지다.
퓨처 투자금융은 중규모 업체에 투자와 대출을 주로 하는 회사. 약간 큰 규모의 대부업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상호 합의하에 대출금 규모, 또는 투자금 규모를 일시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가능했고, 그것을 써먹은 것이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먼.”
지원재는 강재훈 대표가 이렇게 비장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처음 본 것 같았다.
‘부디 유미진에게 들키지 않고 잘 정리가 되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고는 대표실 문을 잠시 쳐다보았다.
자신이 겪은 전생과는 반드시 다른 결과가 나와야 했다.
제5강 성공이냐 실패냐
누군가가 어디선가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모든 일이 다 제 뜻대로 되면 성공하지 못할 사람이 그 누가 있겠냐고.
“야, 서울 날씨 좋구먼!”
“좋기는 뭐가 좋아요, 회장님. 이거 완전히 뿌옇게 되서 기차 내리자마자 목이 아파 죽겠는데.”
오광필 할아버지가 서울역에서 내리자마자 소리를 내질렀고, 곧바로 뒤따라 내린 주현필이 저렇게 투정을 부린다.
그리고 나와 이미도 원장이 이어서 내렸다.
김윤지 원장은 학원에 일이 있어 함께 오지 못했고.
사실 투자 주체로만 보자면 이미도 원장과 나만 와도 될 일이지만 주현필은 이미도 원장의 그림자니 따라왔던 것.
그리고 오광필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도 가신다고요?”
“왜, 이놈아? 내가 가면 안 되냐?”
“아니, 안 되는 건 아니지만요. 할아버지는 투자자도 아니시잖아요.”
“지분 없다고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나도 네 회사에 강사 보내 줬잖아!”
“그건 할아버지가 학원연합도 참여해야 한다고 우기셔서 그랬던 거죠.”
“아무튼, 네 성공에는 내 역할이 분명히 크다는 것을 잊지 말거라, 에헴.”
이렇게 나랑 티격태격. 그러고는 우리 일정을 묻고 따라오셨다.
내 생각에는 그냥 적적해서 따라오지 않으셨을까. 어차피 미래 학원 수업은 그쪽 강사들이 다 하는 거고, 이 할아버지야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원장실에 앉아 있는 일뿐일 테니.
아무튼 서울의 날씨는 좋았으나, 공기는 좋지 않았다. 주현필 말처럼 목에 뻑뻑한 느낌이 드는 것이 얼른 다시 내려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자마자 떠나고 싶은 이 대도시여…….
“곧바로 가십니까, 원장님?”
“응? 나?”
“아니요. 회장님 말고요. 이미도 원장님. 제가 회장님께 원장님이라고 부른 적 있습니까.”
“나도 원장이야, 이 사람아! 어허.”
우리 학원 원장이 아니니깐 그냥 할아버지나 마찬가지지.
아무튼 뒤에서 저들 둘이 티격태격하며 걸어가는 걸 보니 조금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도 원장은 일을 마치고 식사하러 가자고 했고, 우리는 모두 그에 동의하고 지하철을 탔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일주일 전 지원재 실장이 전화로 오늘 약속을 잡았다.
필요한 금액은 총 100억 원. 정확한 숫자는 아니다.
하지만 어차피 아직 기업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은 회사의 지분을 주고받는 것은 주식시장에서 공개적으로 거래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건 양쪽의 가격 조건이 대충 맞으면 진행을 할 수 있다.
즉, 슈퍼에서 사과를 500원에 팔겠다고 하고, 내 주머니에 500원이 있고 사과를 사고 싶다면 거래가 성립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도 500원 짜리 동전이야 들고 다닐 수 있지만 몇십 억은 그럴 수 없기에 은행에 잘 모셔 둔 상태.
지원재의 연락을 받자마자 이미도 원장은 모두를 같은 자리에 불렀다.
“100억 원 말입니까? 그거 예정보다 너무 큰데요?”
처음 언급됐던 액수는 80억 원 정도.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이 그간 신성 학원으로 모아 온 자금과 건물 임대료를 전부 넣어서 50억 원을 마련했다.
그리고 내가 20억 정도 마련을 했고.
그 뒤로 약간 시간이 흐르긴 했으니 조금 더 넣을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100억은 조금 크기는 했다.
“100억에 맥스 지분 20%라고 하더라고요. 여기까지 오다 보니 맥스스쿨이 얼마나 큰 업체였는지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지금 가용 현금 총 동원해도 그건 못 만듭니다. 저희 많아 봐야 58억 정도에요. 유현덕 선생은 어때?”
“아, 잠시만요. 음…….”
아마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겠지.
나도 긴장이 됐다.
현재 시점으로 내가 가진 현금에 따라 이 시장 업계 1위를 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기에.
“25억에서 30억 정도 나올 것 같아요.”
최대한 짜낸 수치.
일반 학원도 수강생들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매주 현금의 양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온라인은 그 차이가 훨씬 심해진다.
“아니. 다음 주까지 얼마 나오는지 말고, 지금 통장에 들어 있는 현금.”
아, 하긴 지금 당장 얼마 있는지가 중요하겠구나.
괜히 머리 쓰면서 통장에 있는 금액에 다음 주까지 들어올 예상 금액을 계산하느라 머리가 아팠네.
“통장에는 23억 들어 있어요.”
“그러면 합쳐도 80억 조금 넘는 정도군요.”
“넘겨받는 지분 양을 조금 줄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원장님?”
그거는 내 생각에 좋지 않았다.
강재훈 대표의 보유 지분이 25%, 최근 가족에게 양도한 지분이 둘이 합쳐 20%다.
즉, 지금 100억 원어치 지분 20%를 전부 받는다고 하더라도 강재훈의 처와 아들이 가지는 지분과 동일한 수준.
거기에 5%는 강재훈 대표가 들고 있게 되니 25%로 경영권을 가져오기 어렵다.
즉, 이것보다 작게 받는다면 더욱 어려워진다는 의미.
그나마 강재훈 대표가 우리에게 우호적이기에 개인 보유 5%를 중립으로 놔둔다면 싸움을 해볼 수는 있겠지만, 그것도 전부 가정일 뿐.
결국 그는 우리에게 이 정도만 넘겨주고 나머지는 가족의 선택을 따를지도 모른다.
거기에다, 물론 이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된 회사라면 이 공식이 웬만큼 적용되겠지만, 아직 기업 공개가 이루어지지 않은 회사이기에 더 필요할 수도 있었다.
대부업체와 같은 퓨처 투자금융의 35%는 경영권과는 관계없이 움직인다고 했을 때, 적어도 강재훈이 넘겨주려는 20%는 전부 온전히 받아야 했다.
“대출을 받는 것은 어떤가요?”
“대출? 학원 담보로?”
“네, 단기로 받으면 갚기도 수월할 테고, 이자도 그리 크지 않을 겁니다.”
이 제안이 먹힐지는 몰랐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미도 원장은 대출을 극도로 꺼려했다.
사실 신성 학원 확장 당시에도 건물 자체를 들고 있어서 한 것이었지, 만약 대출해서 하자는 소릴 했다면 화를 냈을지도.
강재훈 대표에게 버림받은 후 대출 때문에 크게 데인 적이 혹시 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은 역시나.
“대출은 웬만하면 받지 않으려고 해요.”
내 제안을 끊어 버렸다.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돈을 빌리지 않고서는 나머지 15억 정도, 넉넉잡아 20억 정도 되는 돈을 구할 방법이 없다는 것.
전생의 나였다면 죽을 때까지 보지도 못했을 돈을 들고 있었으나, 세상은 어디든 상대적인 거라고 이것도 기업 관계에 있어서는 큰돈이 아니었다.
가만히 분위기만 보던 오광필 할아버지의 머리에서 독특한 의견이 튀어나온 것은 이때였다.
“저, 이미도 원장. 대출을 받으면 좋긴 하겠지만 그게 정 싫다면 말이야.”
역시나 이번에도 서두는 조금 길었고…….
이 할아버지에게서 이제껏 엄청 좋은 아이디어가 튀어나왔던 적이 없었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이게 유일한 길인 것 같았다.
“네, 말씀하세요.”
“지원재 실장이 말한 맥스스쿨 지배 구조. 그걸 보면 거기 강사들도 꽤 들고 있는 것 같던데…….”
맥스스쿨의 대표 강사들이 들고 있는 20%의 지분.
그리고 강재훈 대표가 맥스스쿨 가치를 의도적으로 떨구고 있는 점을 고려했을 때, 우리가 그들의 지분을 일정 금액 지불하고 양도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강재훈 대표가 넘기려는 금액보다 싸게.
“좋은 생각인 것 같은걸요, 할아버지? 계산 좀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좋다고 판단한 근거는 이것이었다.
강재훈 대표가 우리에게 20%의 지분을 100억에 넘기는 것은 그리 싼 것은 아니다.
물론 그야 최대한 싸게 떨구고 있으니 지금 가치보다 확실히 싼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막 공짜로 퍼 주는 파격적인 조건일 수는 없다는 의미이다.
굳이 회사 가치를 가시적으로나마 떨어뜨리는 이유는 우리에게 합당한 금액을 받고 넘겼다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것.
누구에게? 그의 현재 가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사들의 상황은 다르다. 이런 복잡한 가족 관계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지원재와 우리들뿐. 강사들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들의 입장에서 회사 가치가 갑작스레 절반으로 떨어지면 들고 있는 지분의 효용성도 그만큼 떨어졌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더욱 떨어지기 전에 헐값에라도 남에게 넘기고 싶어 할 것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