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38화.
“야, 너 들어와서 보니 대박인걸!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오랜만에 준서와의 만남.
전생과 같다면 나 대신 신성 학원에 있어야 할 녀석이 지금은 더 큰 맥스스쿨로 들어갔다.
맥스스쿨 본원이 있는 서울로 진출했다면야 대학이고 뭐고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겠지.
하지만 아직 학생이란 점을 감안한 것인지 맥스스쿨과 합병한 성공 대입학원으로 와서 지금은 강의를 하며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배울 것이 뭐 있으랴.
이런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이 녀석은 나처럼 한 번 살아본 인생을 다시 사는 것이 아닐 테니 아마 정신이 없겠지.
“아냐, 아직 한참 멀었지. 너는 강의 할 만해?”
“죽겠어.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 24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
학원 생활은 정말로 24시간이 부족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그렇지 않고 여유가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 아니라 뭔가 부족하단 의미.
처음 시작할 때의 강의 개수는 그렇게 많지 않을 수 있지만, 능력에 따라 입소문을 잘만 탄다면 강의 시간 자체가 늘어난다.
그때는 정말 주말이고 뭐고 전부 강의로 쏟아부어야 하고, 강의 하나를 진행하려면 준비하는 시간이 추가적으로 들어가기에 엄청나게 바빠지는 것.
하지만 강의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강사를 찾는 학생들이 많다는 의미이고, 그러면 벌게 되는 수입 또한 늘어난다. 그러니깐 버티고 하는 일.
만약 강의가 그대로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학원가에서 ‘현상유지’라는 것은 없다. 달리 말해, 오르거나 내리거나 둘 중 하나.
강의 개수가 그대로라면 위태위태하다는 의미가 된다. 시험 한 번, 아니면 한 학기 만에 원생이 반 토막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무튼 이 녀석, 24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는 걸 보니 나름 잘 적응하는 중인 듯.
사실 김윤지 원장을 통해 가끔씩 소식을 듣고는 했다.
“바쁘지 않아 봐라. 언제 그만두게 될까 걱정해야지 그때는.”
그렇다고 돈이 많이 들어온다는 이유 하나로 힘든 일이 힘들지 않은 일이 되지는 않는다.
준서는 그냥 내 말에 아무런 대꾸 없이 씩 웃으며 앞에 놓여 있는 커피만 홀짝거렸다.
“너, 지원재 실장님이랑은 연락 자주 해?”
오랜만에 보고 근황을 알고 싶었던 이유도 있지만, 오늘의 만남은 사실 지원재 업무실장에 대해 조금 알고 싶어서였다.
뭐, 이 친구가 강재훈 대표 측근인 지원재 실장에 대해 얼마나 아는 것이 있겠냐만, 그래도 알 수 있는 정보는 최대한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나보다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이 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테고, 그를 믿고 지금 이 계획을 진행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지원재 실장님? 응, 자주까지는 아니지. 워낙 바쁘신 분이니. 가끔 연락 주셔서 잘 배우고 있냐고 물어보시고는 금방 끊으셔.”
확실히 준서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인 듯.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일까. 준서나 나와 접점이 특별히 없는 사람인 것은 분명한데…….
“참, 우리 집으로 선물도 보내셨더라고. 나 맥스스쿨 계약서 쓴 날, 나한테 물어봤거든. 부모님은 사교육에 들어가는 것 찬성하시냐고…….”
“그래서? 찬성하기는 하셔?”
나도 이 부분은 잘 모른다. 사범대학의 끝은 공교육이다. 사교육은 정글 같은 곳이라 성과가 나올지, 아니면 망할지 아무도 모른다.
나도 아마 신성 학원 처음 들어가고 돈만 조금 벌 때 부모님께서 아셨다면 집으로 곧장 소환되었을 수도…….
다만 나는 확실한 성과가 있었다.
돈…….
물론 죽을 뻔했던 경험도 있긴 했지만.
신기한 것이, 원래 그런 경험을 하면 막 복수심에 불타고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러지가 않았다.
한 번 죽었다 다시 사는 인생이라서 그럴까? 아니면 결과적으로 죽지도 않았고 크게 다친 곳도 없었기 때문일까.
분명 조규만 짓일 텐데 그는 지금 국회의원을 해 보겠답시고 김윤지 원장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빠져 있는 상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그리고 썩 좋은 감정은 없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막 죽여 버리거나 해코지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질 않는다.
물론 그 나쁜 자가 엄청 잘살고 있다면 조금 짜증은 나겠지만…….
“음, 글쎄. 썩 좋아하지는 않으셨지. 나 대학 들어오고 학교 선생님 된다고 좋아하셨는데 학원에서 일한다고 하니 좋아하시겠냐?”
그나저나, 선물까지? 배려심이 많은 사람 같지는 않았는데…….
우리 학교가 막 정상급 학교는 아니라서 강사 채용시 이 정도로 공을 들일 필요는 없다. 그런데 왜 굳이 준서한테는 이렇게…….
“하긴……. 선물까지 보냈어, 그런데? 다른 신규 강사들한테도 보내 주는 거 아냐?”
“나야 모르지 뭐. 보낸다는 말도 없이 보냈던 것 같더라고. 나도 집에서 전화 받고 알았어.”
“희한하네, 그거.”
“준다는데 감사하지, 나야 뭐. 하하. 그나저나 너야말로 완전 대박이더만. S 아카데미? 그건 무슨 돈으로 시작한 거야? 대출이야?”
짜식. 대출이기는…….
대출은 독이다. 사업을 할 때 확장이 필요해서 대출을 받는 건, 언제라도 돈을 빌려준 사람에게 내 피와 같은 회사를 넘겨줄 수가 있다는 의미.
물론 어느 정도 확실한 아이템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안 받고 시작하는 게 좋지.
“대출? 대출 잘못 받다가는 큰일 난다, 야. 그냥 운이 좋았어. 신성 학원 들어가서 돈이 좀 생겼거든. 모아 놨는데 이미도 원장님이 아이디어를 주신 거지.”
“아무튼, 축하한다! 하하. 조금 더 크면 나중에 나도 거기서 촬영 좀…….”
“넌 맥스스쿨이잖아. 거기서 찍으면 돼. 그리고…….”
“응?”
“지원재 실장, 믿을 만한 사람이야?”
“믿을 만하냐고? 글쎄다. 지금은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은데……. 왜?”
믿을 만한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나에게 선택지는 별로 없으리라. 내가 합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은 그의 계획에 참여할 것이고.
“아냐. 너한테 왜 그리 유독 잘해 주나 싶어서 그렇지.”
“뭐야. 잘해 주는 사람 있으면 좋은 거지. 속은 모르겠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서울 본원에 연수 가 있을 때도 신경 써 주고. 그리고 강사님들은 그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나름 대표님한테도 완전하게 인정받은 거의 유일한 사람인 것 맞는 것 같았어.”
잘해주 는 사람 있으면 좋은 거다…….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잘해 준다고 하면 뭔가 있는 거다.
그게 막 엄청 나쁜 이유가 아닐지라도, 별 이해되는 이유 없이 보여주는 호의는 없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의 심리인데.
도대체 지원재는 왜 유독 준서를 신경 쓰는 것 같아 보이는 걸까.
“근데 너 군대는 언제 가냐?”
이 자식이…….
* * *
2004년 4월.
사범대학을 다니는 학생이라면 졸업 전 한 번은 무조건 가게 된다는 교생실습.
4월 한 달간 일선 중학교나 고등학교에 가서 학교 체험을 하고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이다.
수업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 행정 업무도 도와주면서 배울 수 있다.
뭘 배울 것이 있을까. 다 해 봤던 일들인데.
어느 직업이든 간에, 물론 나는 교사와 강사, 이 두 가지밖에 모르지만, 실패하지 않는 법은 어차피 비슷하다.
빼지 않는 것.
그리고 모르면 물어보는 것이리라.
“이미도 원장님, 아이두 학원에서는 몇 명 참여하시는 거죠?”
“세 명 참여하겠다고 했어요.”
교생실습 이야기에서 갑자기 다시 학원으로 돌아왔냐고?
실습은 별 것 없다. 물론 중요한 기간이긴 하지만 나는 한 번 겪었던 것이고 성적에도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주어진 시간 동안 주어진 일과 수업만 잘하면 되는 것.
전생에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만 하더라도 이런저런 기대로 부풀어 있었고 나름 긴장감도 있었다.
하지만 학교 근무를 몇 년간 해 본 나로서는 더 이상 실습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웠다.
모든 집중은 내 성공만을 향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4월은 바로 S 아카데미의 투자를 받은 학원들에서 강사를 지원해 주는 달이었다.
“그러면 서울 맥스스쿨 주변 네 곳에서 총 11명 오시는 거네요?”
“촬영 가능하겠어요?”
예상보다 약간 많은 학원 수와 인원이었다.
당초 계획은 세 곳의 대형 학원에 내가 일정 금액씩 투자를 하고 강사를 둘씩 지원받는 것.
말이 투자지 사실 전속 계약된 강사를 쓰기 위한 계약금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막판에 대형 학원 한 곳에서 어차피 일을 할 거면 확실히 하자며 자기네 투자금을 줄이고 학원 하나를 늘렸다.
왜 굳이 이런 기형적인 투자를 하냐고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조금 복잡할지 모르나 서로 원하는 부분이 약간 달랐다고 하면 될까?
우선 우리가 투자하고 강사를 지원받는 것은, S 아카데미에는 현재 맥스스쿨 온라인 전담 강사들에 비해 네임드 강사가 전무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맥스스쿨 온라인 대표 강사들은 각자가 본인의 학원을 따로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 개개인의 인지도가 현 S 아카데미 인지도와 맞먹는 정도.
따라서 우리는 일단 비슷한 수준의 인지도를 가지면서 아직 온라인 시장에는 들어가지 않은 강사들을 스카우트할 필요가 있었다.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학원에 10억씩 투자를 하고 전속 강사에 대한 협상권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그 강사가 싫다고 하면 끝.
“내가 그런 작은 사이트에 왜 강의를 올려야 합니까? 돈? 얼마라고요? 5억? 그거 없어도 내 강의료로 충분해요.”
이렇게 반응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10억은 받아야 이적하는 거야.”
“그건 너무 큽니다. 그리고 이적이 아니라 선생님 강의를 온라인으로 팔아 준다는 거라니깐요?”
“온라인? 그거 해서 뭐하는데? 불법 다운로드는 어쩔 거고? 내 실강 들으러 오는 학생 수가 5백이야!”
이런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치트키가 하나 존재함을 늦지 않게 깨달았다.
“맥스스쿨이 그걸로 지금 엄청 커진 것 모르세요? 거기 이xx 강사님, 그분 이제 실강 안 하십니다. 온라인으로 강의 듣는 학생 수가 천이 넘어요. 선생님 라이벌이시라면서요?”
“뭐? 이xx? 그 자식 이야길 왜 해?”
“원생 수로 평가받는 거라면 저희와 같이 하시면 그분 아무것도 아닐 겁니다. 실강 때 인원은 분명 선생님께서 더 많으셨잖아요.”
이 판은 시작부터 끝까지 자존심이었다.
지방 학원가의 싸움과는 다른 양상.
이곳에서 살아남는다는 것 자체가 강함을 인정받는 것이었는데, 맥스스쿨이 몇 년 전 시작한 온라인 시장 때문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던 것.
물론 부익부는 맥스스쿨이었고, 이들의 자존심은 금이 간 상태였다.
우리는 결국 충분한 강사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촬영이야 항상 가능하죠. 여기 윤 형이 얼마나 능력이 좋으신데요. 하하.”
늘어난 강사 수만큼 촬영 시간도 길어졌다.
다만 나는 오전부터 오후 4시까지는 교생실습으로 학교에 있기 때문에 윤 형의 역할이 커졌고.
S 아카데미가 론칭 후 초반 선전으로 번 돈은 거의 다 이 투자금으로 쓰였다.
뭐, 앞으로도 들어오는 돈은 계속 들어올 것이고, 신규 네임드 강사진의 강의 수익금도 추가될 것이니 현금 흐름은 괜찮을 것이다.
이제 승부는 12월 이전까지 얼마나 S 아카데미가 성장하느냐, 곧 맥스스쿨의 시장을 잠식해 들어가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내 투자금 30억은 학원 투자로 곧바로 바닥났지만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의 50억은 흔들리는 맥스를 잡기 위해 그대로 대기 중.
타이밍은 지원재 실장이 알려 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두 번째 교생실습 기간을 굉장히 학생답지 않게 보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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