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36화.
전생에 죽게 된 이유가 술 마시고 머리 아픈 상태로 씻고 나서, 머리를 말리기 위해 헤어 드라이기를 젖은 손으로 꽂다가 감전됐는데.
이번 생애에도 또 그러고 있다.
보통 음주 다음날에는 완전히 술이 깰 때까지 씻고 나갈 일을 만들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은 거절하기도 애매했기에 조심스럽게 손을 완전히 말린 뒤 콘센트를 꽂았다.
그때의 고통과 충격을 머리가 기억하는지 심장이 쿵쾅거렸으나 다행히도 별 사고는 없었다.
만약 이번에도 그리 죽었다면, 진짜 너무한 인생인 거고.
곧바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집을 나왔는데 해가 이미 중천을 지나고 있었다.
어두운 곳에 적응했던 두 눈이 아파 왔지만 그것도 잠시뿐.
그래도 어지러움은 계속 되었다.
방금 전 씻는데도 두어 번 빈속에 뭔가를 게워 내고 나오느라 시간이 생각보다는 조금 더 걸렸고.
“얼굴이 아주 창백하구먼?”
식당에 먼저 와 있던 주현필이 반쪽이 된 내 얼굴을 보고 실실 웃으며 말했다.
“죽겠습니다. 아욱.”
“여기서 토하면 안 돼. 억지로라도 배에 채워 넣어.”
“버틸 수 있어요. 그나저나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감사했습니다.”
형식적으로나마 감사 인사를 해야지.
어쨌든 그가 없었더라면 나는 돈을 백 이상이나 쓰고도 어디 길바닥에서 자다 지금쯤 깼을 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주현필이 술자리 뒤에 해장국을 사 준다고 나를 따로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2년 동안 그와 많은 술자리를 가진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이건 조금 의외. 사람이 변한 건지, 아니면 뭔가 할 말이 있는 건지.
“신성 학원 강의랑 S 아카데미 운영은 동시에 할 만해?”
“힘들죠. 진짜 힘들어 죽겠어요. 거기에 방학이니깐 이렇게 했지, 학기 중이면 휴학을 할 수밖에 없는 스케줄 이었잖아요. 그나저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어서 부르신 건가요?”
“응? 아니, 고생하는 것 다 아는데 도와줄 수 있는 건 없으니깐. 내가 너 좀 싫어했냐. 그래도 이제는 자리도 잡았겠다, 미안하기도 하고 해서 밥이나 사 줘야겠다고 생각한 거지.”
정말일까 싶었지만 진심인 것 같기는 했다.
하긴, 진짜 이 사람 나 많이 경계했지. 아니 그의 말마따나 정말 싫어한 수준이었다.
그래도 막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고, 이미도 원장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이런저런 변수를 만들지 않으려는 것 같아서 이해는 했다.
근데 미안하단 말까지? 이럴 때 조금 예민한 궁금증들을 물어볼까?
“근데요, 주현필 선생님은 맥스스쿨에 있다가 도대체 왜 신성 학원으로 오셨던 건가요?”
대답을 해 줄지는 모른다.
다만 예전에 이미도 원장의 아버지 이야기 때처럼 의외로 철저히 숨기고 있는 내용은 아닐 수도 있었다. 그냥 아무도 먼저 궁금해하고 물어보지 않을 뿐.
그리고 그에 대한 주현필의 반응은 역시나.
“그건 또 알아서 뭐하려고?”
냉담했다.
그래도 내 직감은 그가 맥스스쿨에서 신성 학원으로 옮긴 사연과 이미도 원장의 사정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
어차피 이제는 S 아카데미가 맥스스쿨과 경쟁을 앞두고 있으니 조금 더 조르면 말해 주리라 생각했다.
“아뇨, 그냥 궁금해서 그렇죠. 방금 전에 미안하다 하시더니 또 어렵게 하십니까.”
“궁금하긴. 너는 그냥 S 아카데미 잘 운영해서 맥스스쿨 따라잡을 생각만 해.”
“안 좋은 일이 있던 건가요?”
당연히 안 좋은 일이 있었겠지. 그렇지 않았으면 굳이 거기를 왜 나왔을까.
“그런 건 아냐. 지금은 이야기하기가 조금 애매해.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너는 조금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이미도 원장님은 네 사업 전폭적으로 지원 중이야. 가능한 선에서는 말이지. 맥스스쿨 잡겠다며?”
이미도 원장은 사실 현 신성 학원 강사 지원과 촬영 장소 임대밖에는 해 주는 것이 없었다.
아쉽거나 서운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를 전적으로 밀어주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았는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맥스스쿨 잡아야죠. 이 판에 뛰어들긴 했으니 그쪽 잡지 못하면 그냥 적당히 돈만 벌고 끝날 겁니다. 시작했으니 이기고 그 자릴 차지하든가, 아니면 도저히 안정화 수준에서 힘이 부치는 경우엔 팔아 버릴 거예요.”
“팔겠다는 생각은 벌써부터 하지 말고. 죽을 듯이 잡아 봐. 너만 그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니깐. 다만 이제는 시장 독점이 무너지면서 다른 대형 학원들도 뛰어들 수 있어. 우리도 타깃이 되는 거지.”
맞는 말.
그동안은 이 시장의 사업성이 좋더라도 맥스스쿨의 선점 효과를 깰 수 있을지가 불투명했다.
아니, 맥스스쿨 급 규모의 다른 대형 학원들은 그리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실강이라면 강의실 크기의 제한, 강사가 수업할 수 있는 시간의 제약 등이 있기에 성장에 한계가 있겠으나, 온라인은 그런 것들이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정말 천재적으로 잘 가르치는 강사가 있다면 전국의 학생들을 한 번에 다 끌어모을 수도 있는 시장이 바로 이곳.
나는 오히려 맥스스쿨의 선점이 그렇게 여겨지기 쉽기에 그 부분을 파고든 것이었다.
예컨대 맥스스쿨의 강좌가 전부 수능시험 준비를 위한 것들이라면, 우리는 거기에 내신 대비 교과서 분석 강좌가 있었다.
거기에 내가 조금 더 계획하고 있는 것들도 있었고.
엄연히 따지자면 내가 계획한 것은 아니고 전생에 봤던 온라인 학원의 전략들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우리가 일단 거대한 댐에 구멍을 뚫었으니, 이제는 여기저기 우리보다 펀치력이 좋은 대형 학원들이 들이밀 것이다.
이제 또다시 생존경쟁.
맥스스쿨 뿐만이 아니라 현금으로는 그에 버금가는 여러 대형 학원들. 그들보다 한 발자국씩 먼저 내딛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면 초반에 떼돈을 벌어서 정면 승부를 해 보던가.
“근데 이미도 원장님이 많이 도와주시기는 해도 전적으로 지원하고 계시지는 않잖아요? 신성 학원 운영도 있고 하니…….”
“글쎄. 지금 네가 아는 것보다는 훨씬 많이 도와주는 중이야. 결국 신성 학원도 5%를 크게 먹으려면 S 아카데미가 성공하는 편이 좋으니깐. S 아카데미 가입자와 결제 회원 정보 찾아봐. 전국적이야 이미.”
그건 맞는 말이었다. 따로 홍보가 크게 들어간 것은 아직 없었는데도 예상을 훨씬 웃도는 가입자 수. 단순히 이 지역 학생들 수로는 절대 그 인원이 나올 수는 없다.
“홍보를 해 주셨던 건가요?”
그리고 그가 내 생각을 확인해 주었다.
“응. 네가 5 대 5로 신성 학원에 벌어다 준 돈, 그거 다 쏟아부으셨어.”
생각보다 컸다.
내가 땅으로 불린 돈보다는 작겠지만, 2년간 내가 실강으로 번 돈은 적어도 5억 이상.
그걸 다 홍보에?
“이미 지난 번 설명회 끝나고부터 우리나라 대도시 학교 주변에는 S 아카데미가 온라인 강의실 여는 내용의 홍보지가 적어도 한 번씩은 돌아다녔을 거야.”
학교 하나에 들어가는 홍보는 홍보지 제작 포함해서 회당 100만 원 수준. 5억이면 500개 학교였다.
“허……. 그런데 왜 저에게는 알려 주질 않으신 거예요? 홍보비로 책정한 예산도 있는데.”
“그거 쓰면 너는 다시 0에서 시작해야 하잖아. 고작해야 실강으로 들어오는 돈 다시 모으려면 한참 걸릴 테고. 일단 홍보비랑 여유 자금 그냥 들고 조금만 기다려 봐. 원장님이 S 아카데미 이렇게 돕는 건 이유가 다 있으니.”
여기까지가 그가 오늘 나에게 말하기로 작심한 전부였다.
제4강 강재훈의 계획
그리고 세 달간 이미도 원장은 별다른 이야기를 나에게 하지 않았다.
2003년 12월. 또 다시 월말이 다가오고, 나이를 한 살 더 먹을 준비를 하고 있을 시점.
이때까지 그러면 뭘 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그냥 돈을 계속 벌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학교도 계속 다니고 있었고.
2004년이 되면 나의 강의나 사업에 있어서 한 가지 걸림돌이 생긴다.
“원장님, 저…….”
“유현덕 선생님, 내년에 4학년이죠?”
“네, 맞습니다. 그래서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사범대학 4학년 학생이라면 뻔한 일 아니겠는가.
물론 동대 출신이 아니라면 모를 수도 있는 일이라 굳이 설명을 하자면, 사범대학 4학년 때는 교생실습을 나가야 한다.
나가지 않을 수도 있는데 그러면 졸업장이 나오질 않고 수료증이 나온다나.
전생에도 교생실습은 준비된 대로 다녀왔기 때문에 안 나갔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모른다. 그냥 사범대 학생은 졸업 전에 전부 나갔다 오는 것이라 알아 두면 좋겠다.
“교생실습 때문에 수업 어렵다는 말씀이시잖아요?”
이미도 원장이야 가끔씩 사범대생을 단기 강사로 채용했던 적이 있었기에 알고 있는 것이고.
“네, 그래서 강의 부분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쭤보려고요.”
“강의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강의 숫자가 지금은 거의 없으니 임시로 맡아서 하면 되고요. 한 달 다녀오는 거죠? 즐겁게 다녀오셔요.”
교생실습은 한 달간 일선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 교육실습생 신분으로 학교생활을 체험하는 활동이다.
그리고 여고, 여중들에서 남자 교생 선생님들의 인기는 그냥 사람이라면 평생 느껴 보지 못할 수준을 경험할 수도 있고.
뭐,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실습을 거치며 평범한 대학생이 교사로 거듭난다는 나름의 의미를 가진 시간.
하지만 두 번 나가기는 귀찮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다시 나갔다 와야 하다니.
게다가 학원에서 2년 넘게 일을 해 온 나로서는 몇몇 학생들이 알아볼 수도 있다. 문제가 생길 것은 없지만, 그래도 조금 민망할 수 있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런 걱정들은 나갈 때 하면 되고, 지금은 일단 내 강의들을 이미도 원장이 직접 맡아 준다고 하니 다행이었다.
“원장님께서요? 네, 감사합니다. 하하.”
“그리고, 돈은 잘 모으고 있어요? 아니면 벌써 지난번처럼 다른 투자처를 찾으셨나?”
주현필이 짧게나마 언급했던 이야기.
이미도 원장이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S 아카데미의 홍보와 성장에 뒤에서 큰 지원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려나?
드디어 세 달 만에?
“돈이요? 그냥 쓸 곳도 없어서 모아 두고 있습니다. 투자도 투자할 곳이 있어야 하죠.”
투자할 곳은 어디든 찾으면 나온다. 심지어 경제가 어려워도 그에 특화된 투자처는 있다.
하지만 주현필의 언질도 있고 해서 모이는 돈을 그대로 모아 두고 있는 중.
내가 실강을 통해 버는 돈은 어차피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 지금 중요한 것은 S 아카데미를 통해 들어오는 수익이다.
사실 내 돈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는 것이, 법인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이고 내가 대표일 뿐 마음대로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라…….
아무튼 2003년 9월 론칭한 S 아카데미는 첫 달, 그러니깐 9월 한 달에는 이벤트를 쏟아 부어 큰 수익은 없는 상태로 지나갔다.
그리고 수익이 거의 고스란히 쌓이게 된 것이 10월부터.
9월 결 제회원은 3,800명 수준. 그들의 절반 특가 이벤트 기간은 3개월이었다.
즉, 무료 수강권에 당첨된 200명을 제외한 3,600명의 결제액은 10만 원으로 11월까지 이어진다.
달이 바뀔 때마다 약간 숫자가 빠진 것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3,400명 이상이 11월까지 이어서 강의를 듣는 상황.
이들만 하더라도 월 3억 5천만 원 가량이다.
거기에 10월, 11월에는 결제 회원 가입자 수가 각각 1,100명과 800명 늘었다.
이들은 20만 원을 그대로 내다 보니 2억 2천씩 두 달, 거기에 1억 6천 한 달이 3억 5천씩 세 달에 추가되는 것.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물론 늘어나는 상승세는 꺾였으나, 원래 이 시장이 초반 기세는 곧바로 꺾이기 마련이다.
사실 수능 강의는 맥스스쿨에서 아직도 꽉 잡고 있는 상태.
그래도 나름 의미 있는 수치라고 생각을 하는 이유는 그래도 첫 달 가입자들 중 상당수가 계속 결제를 하며 강의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강의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신호이며, 앞으로 마케팅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경쟁력을 키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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