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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35화 (35/200)

[35] 35화.

“고민하는 걸 보니 그녀가 알면 좋지 않을 거란 생각이군!”

“네…….”

아니 무슨 이런 상황에서 ‘괜찮아요.’ 할 여자가 어디 있겠는가. 결혼 전 생긴 딸이었으니 외도는 아니라 하더라도, 존재도 모르던 사람이 가족으로 들어오게 되는 일인데.

게다가 강재훈의 재산이 더 큰 문제였다.

지금 당장도 아내와 다 큰 아들 둘, 그리고 딸까지 셋이 호시탐탐 자신들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터. 이미도의 출연은 그들에게 있어서 경쟁자가 늘어날 뿐이었다.

지원재는 이렇게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차마 이런 문제를 전부 그에게 말로 꺼내 놓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절대로 지금 당장 알리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대표님.”

지원재가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을 턱을 괴고 흥미로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강재훈은 의외로 단호한 그의 대답에 다시 등받이에 등을 댔다.

얼굴을 양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내리고는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갔다.

조금은 피곤해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도 알아.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자네랑 주현필뿐이니 조심하라고. 적어도 지금은 아니겠지. 얼른 이미도나 들키지 않게 조심해서 도와주게.”

지원재는 이 말을 하는 강재훈의 모습이 바로 전보다 10년은 더 나이 들어 보인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쇼. 대표님.”

* * *

“자, S 아카데미의 성공을 위하여!”

“위하여!”

S 아카데미 론칭 첫 달, 가입자 수 4만 7천명을 돌파했다.

물론 계속 오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조금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아직은 꾸준히 오르는 단계.

그리고 그중 결제 회원은 애초 목표치인 1,500을 훌쩍 넘겨 3,800에 근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돈 자체는 별로 들어온 것이 없는데, 이는 론칭 이벤트로 한 달 내 결제할 시 수강료 절반 할인, 그리고 거기에 200명은 추첨으로 무료 수강권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사실 무료 수강권은 결제 회원이 목표치를 웃돌면서 갑작스레 진행한 이벤트였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2000 정도에 머물던 결제 회원 수가 이벤트 진행 기간인 1주일 동안 3500을 넘겼으니.

아무튼 대략적인 수익을 계산하자면 3800에서 200명 무료 수강자 빼고 3600명.

거기에 반액 결제 이벤트로 10만 원을 곱하면 총 3억 6천만 원 정도 매출이 나왔다.

각 강사에게 돌아가는 비율이 75%였으니 하나의 강의를 하는 경우 1500만 원, 두 개는 3000만 원까지 받아 가게 된다.

다들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학원 강의를 빼고 인강만 한 것이 아니라, 기존 강의는 그대로 하면서 인강을 추가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몸은 엄청 피곤했겠지만 마치 보너스가 왕창 들어온 기분일 터.

거기에 인원수로만 보자면 업계 최대 규모의 맥스스쿨 급 강사로 인정받게 되는 발판이 될 기회였다.

하지만 술자리는 힘든데…….

게다가 사실 나는 액수로는 크게 벌지는 못했다.

운영비는 장사가 잘되든 그렇지 않든 똑같이 든다.

총 7200만 원이 운영비로 들어왔지만, 그중 우리 윤형의 월급과 사이트 운영비를 빼면 크지 않다.

적자가 나는 것은 안정적으로 피했으나, 아직 기대했던 수준에 도달하려면 적어도 1년 이상 밀고 나가야 할 듯.

기대가 얼마냐고? 그건 비밀이다.

“대표님, 더 드셔야죠!”

“고생 많으셨네요. 완전 젊으신데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셨습니까?”

“유현덕 선생! 이리 와서 같이 한 잔 더 해야지!”

사방에서 불러 대는 통에 못 먹는다고 빼기도 어려웠다. 거기에 나이가 터무니없이 어리다는 사실이 이런 자리에서는 단점이 됐다.

전생에서 서른을 넘기고부터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다시 어려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도대체 누가 흰머리가 하나씩 늘어나며 지나가는 세월을 느낀다고 했는가?

흰머리는 절대로 하나씩 늘지 않는다. 뭉텅이로 늘어나는 흰머리들, 그리고 주름들.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하는 10대, 20대의 그런 몸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오는 배를 보며 매일 아침 운동을 해야지 하고 마음만 먹고 실행은 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로 지내다 보면 당연히 젊음이 그리워진다.

하지만 막상 어려지니 이건 뭐 완전 애 취급 받기 십상.

아무리 대표라고 하더라도 보이는 인상이 이런 이상 술을 뺄 수가 없다.

화를 한 번 내 볼까 했지만…….

“뭐야, 돈 벌더니 형들한테 화까지 내네?”

그러면서 저쪽 건너편에서 술을 마시던 주현필이 끼어드는 바람에 결국 벌주로 한 잔 더.

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여기 계산은 유현덕 대표님이 하시는 거죠?”

도대체 누구냐? 저런 망언을 하다니.

“와!”

“감사해요!”

그런데 그에 대한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내가 낸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들, 단합이 이렇게 잘 되는 사람들이었나?

왜 꼭 일할 때는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 놀 때는 180도 돌변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멀쩡한 정신이었다면 ‘미쳤어요? 이번 사업 덕에 보너스 왕창 받으신 강사님들께서 내 주셔야죠!’ 했겠지만, 나는 이미 대답할 기운도, 정신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의 의식이 잠시 사라졌다 돌아오니 누군가의 부축을 받은 채 거리를 걷는 중이었다.

“많이 취한 것 같네요, 유 선생님.”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어려서 내일이면 또 팔팔해질 겁니다.”

내일이면 나는 화장실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을 게다, 이 사람아!

나는 내일 근무 땡땡이다~!

“주현필 선생님께서 신경 좀 써 주세요. 이 상태로는 혼자 집까지 갈 수도 없을 테니.”

이미도 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들 둘도 술을 많이 먹는 것 같았는데 멀쩡하게 들렸다.

아니면 내가 워낙 취해서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은 하나도 안 취한 것처럼 느끼는 걸까?

왜 그런 경우 있잖은가. 배에 아주 오래 타던 선원들은 육지에 오르면 오히려 멀미를 느낀다고.

전혀 적절하지 않은 예를 생각해 낸 것 같다.

“원장님, 강재훈 대표님은 조만간 뵐 생각 없으십니까?”

강재훈 대표? 꽤 익숙한 이름이었다.

누구더라…….

“없는데요? 호호. 갑자기 왜 그러시죠?”

“지원재 실장이 연락했습니다.”

지원재 실장은 확실히 기억할 수 있었다. 20대 중후반의 젊은 나이에 맥스스쿨 업무실장 자리에 올랐다는 사람.

남자가 보더라도 부러울 만한 외모에 거대 기업 맥스스쿨 안에서 능력도 인정받은 사람이었다.

주현필이 분명 맥스스쿨에 있었고, 지원재 실장과도 잘 아는 사이 같았는데.

서로 좋은 관계는 아닌 것처럼 보였지만 어쨌든 이 사람들 맥스스쿨이랑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궁금해졌다.

‘지원재 실장이 연락을 했다고요?’

분명 머릿속으론 저렇게 말을 하자고 입에다가 명령을 내렸을 텐데,

“으……. 에웨이……. 에?”

제길, 이게 도대체 무슨 괴성이냐.

신체가 뇌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아니면 뇌가 알코올에 너무 절어 제대로 명령을 보내지 못한 것일 수도.

“어? 토하려고 하나?”

아니라고요, 이 사람아!

답답했다.

“등 두드려 줄게. 잠깐 숙여 봐.”

안 돼! 등을 두드리며 안 돼!

주현필의 손아귀 힘은 강했다.

순식간에 허리가 숙여지고 속이 뒤집히는 기분이 들었다.

“우에엑. 우에에엑!”

“많이도 나오네.”

“그러게요. 먹은 거 다 나오는 것 같은데요?”

아니, 왜 이 둘은 남 토하는 걸 이렇게 쳐다보고 있나.

하지만 지금은 민망함보다도 속을 빨리 정리하고픈 생각뿐이었다.

그나저나 머리가 거꾸로 내려와 있어서 정신이 조금 들기 시작했다.

피가 쏠려서 그런가 보다. 조금 나아지면 바로 지원재 실장과 맥스스쿨과 관계된 이야기를 물어봐야지 싶었는데.

“으……. 괜찮아요. 등 때리지 말. 읍!”

“아직 덜 나왔어!”

내 몸속의 장기들은 격하게 술을 거부하고 있었다.

도저히 진정될 기미가 보이질 않다니.

주현필이 내 등을 두드려서 몸속의 모든 것을 꺼내는 사이 이미도 원장은 편의점에 가 꿀물을 사 왔다.

“이거 좀 먹어 봐요.”

“읍. 감사합니다.”

한 모금 들이키자 속은 일단 조금 편해졌다. 머리는 엄청 아팠지만.

그래도 수분 섭취로 정신은 드는 느낌인데.

“얼굴이 창백한 걸? 얼른 들어가 쉬어야겠어. 무슨 아직 팔팔한 나이가 이리 약해, 술이?”

이건 내가 술에 약한 것도 있지만 워낙 많이 마셔서 그러는 거다.

내가 제안한 회식 자리고, 내가 대표다 보니 10명도 넘는 나이 많은 강사들의 술을 뺄 수가 없잖은가.

주현필이나 이미도 원장은 급이 다르니 조절해서 마실 수 있었을 테고.

아무튼 다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주현필의 부축을 받고 어떻게 집까지 왔고, 이미도 원장과 주현필은 가 버렸다.

결국 또 궁금했던 것들의 해답은 다음번으로 미뤄야 했고.

2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같이 지내며 이런 궁금증 하나 풀지 못했냐고 묻는다면 뭐, ‘어쩔 수 없었다.’라고만 대답할 수밖에.

예민해 보이는 문제라 학원 생활 초반 주현필과 이미도 원장에게 들은 이야기가 전부였고, 나도 그간 워낙 바빴던 것이 핑계가 될까.

술에 적당히 취했을 때는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몸이 받지 않는 알코올을 해독하느라 개고생을 해서 그렇지 이런 안도감과 편안함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2003년 9월, 내가 지금 대학교 3학년이고, 신성 학원에 처음 들어왔던 것이 2001년 늦겨울이었다.

그리고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쉼 없이 달린 결과 여기까지.

S 아카데미, 국내 두 번째 온라인 교육업체 대표 유현덕.

괜찮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아직 배고프다.’ 아니 ‘목마르다.’인가?

내신 전문 강의, 인터넷 무료 강의를 통한 홍보, 성공 대입학원과의 전쟁, 땅 투자, 그리고 3개월의 혼수상태 후 온라인 교육업체 론칭까지.

길게 봐야 매 년, 짧으면 몇 달마다 계약을 고민하고 일자리를 찾던 전생과 비교하면 엄청난 일들이 짧은 시간에 일어났다.

이것들이 과연 내 힘으로만 이룬 일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힘만은 아니겠지.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성공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야 훨씬 의미 있게 노력하지 않았는가.

아무튼 잠이 오니 이제 자야겠다. 통화 온 것은 없었겠지만 그래도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한 번 보고.

“아…….”

방금 긁은 카드 내역이 문자로 와 있었다.

술기운인지 실제인지 모를 정도의 숫자.

여기 0이 하나가 더 붙어 있는 거로 보이는 건가?

[산들바람, 1,720,000원 결제 완료]

“젠장. 뭐, 이 정도야.”

생각해 보니 하룻밤에 회식값으로 긁은 저 금액은 전생에 내가 받던 월급 액수였다.

* * *

삐빅. 삐빅. 삐빅.

간밤에 꾼 꿈에서 왠지 죽었을 때 만난 흰머리 할아버지를 본 것 같다. 설마 술 때문에 또 죽을 뻔했던 건가.

삐빅. 삐빅. 탁.

계속 울려 대는 알람을 무시해 보려 했으나 더 이상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너무 시끄러워서.

알람을 끄고 나서 일어나 보려고 침대에 웅크려 자던 자세에서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곧 머리를 마구 때리는 듯한 어지러움에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내가 도대체 어제 얼마나 마신 거지?

그렇게 한 1시간 정도 멍하니 웅크려 끙끙대고 있었는데…….

삐비빅. 삐비빅.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힘겹게 일어나 전화기만 집어 들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주현필이었다.

-괜찮아? 어제 상태 엄청 안 좋던데?

아주 안 좋았지.

“죽겠습니다, 부원장님. 으…….”

-아직도 골골대고 있나 보네. 오늘 나올 수 있겠어?

한 번 펑크를 내 보면 어떨까 생각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학원 일이란 것이 강의 펑크를 내면 결국 본인 강의 수강생들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이런 몸 상태라도 반드시 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월급이 줄어든다.

100일 중 99번을 완벽하게 하더라도 마지막 한 번의 실수로 1000을 얻을 수 있는 상황에서 100도 못 받을 수 있다.

“나가야죠. 아직 시간이……. 벌써 1시네요.”

9시 쯤 됐나 싶었는데…….

공부하고 일할 때 시간은 정말 천천히 가지만 쉴 때는 시공간이 비틀린 것처럼 날아간다.

-대충 씻고 2시까지 나와. 해장국이나 같이 먹게.

“2시요? 너무 빠른데.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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