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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회귀해도 개고생이네-34화 (34/200)

[34] 34화.

“자, 이제 시작합니다.”

모니터 앞에 내가 앉아 있고, 내 뒤로 이미도 원장, 주현필 부원장, 오광필 할아버지, 그리고 김윤지 원장까지 총 넷이 각각 의자에 앉아 화면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

아침 9시 정각에 S 아카데미 홈페이지에 총 10개의 유료 강의가 올라간다.

방금 전 사이트 관리 업체에 전화를 해 다시 한 번 시간 확인을 받고 이제 9시가 되기 직전.

다들 이 시간에는 원래 잠을 자고 있을 때이기에 얼굴들이 부스스했다. 평소에는 광이 나던 김윤지 원장도 마찬가지.

“왜 아무것도 안 뜨는 거야?”

유료 강의가 업로드되기 전까지는 내가 기존에 학원 홍보용으로 찍어 놓은 강의들과 주현필, 유환 선생님이 각각 새로 찍어 올린 맛보기 강의들이 올라가 있는 상태.

그리고 계속 그런 상태로 화면이 바뀌지 않았다.

“아직 9시 안 됐어요, 주현필 선생님.”

이미도 원장이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성질 급한 주현필을 진정시켰다.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더라도 여기 있는 각자의 표정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뒤통수와 화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을 오광필 할아버지.

아무 말 없이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만 쳐다보고 있을 김윤지 원장.

흥분하는 주현필.

그리고 그의 등을 토닥여 주는 이미도 원장까지.

“떴다!”

드디어 유료 강의가 일제히 업로드된 화면이 떴다.

화면에는 10종류의 유료 강의 목록이 올라갔고, 그와 동시에 배너가 두 개 올라왔다.

론칭을 알리는 공지문과 각 강사들의 홍보가 돌아가며 뜨도록 만들어진 창 한 개.

첫 번째 창에는 운이 좋게도 주현필의 얼굴이 보였다. 순서는 완전히 랜덤으로 되어 있기에 첫 번째로 보이는 강사가 누군지 궁금했는데.

“인상 좋지 못한 친구가 올라왔구먼.”

오광필 할아버지의 말에 다들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주현필만 빼고는.

“거참.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죠.”

“지금 이 화면을 보고도 그 말이 나오는가?”

확실히 내가 봐도 오광필 할아버지에게 한 표를 줄 상황.

주현필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외모로 보이지가 않았다. 뭐, 그렇기 때문에 원생 관리에 있어서는 엄청난 능력을 보여 주고 있기는 하지만.

이 사람 앞에만 가면 그렇게 산만하던 아이들도 순한 양이 되고, 매일 잠만 자는 아이들도 힘을 내서 눈을 뜨게 된다.

그렇더라도 메인 배너에 주현필이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뜨니 기분이 조금 걱정스럽기는 했다.

차마 본인은 웃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가만히 웃음을 참고 있던 김윤지 원장이 입을 열었다.

“강의 1종당 30개 타임인 건가요?”

“네, 그렇게 촬영했습니다. 그중 다섯 개에서 여섯 개는 무료 맛보기 강좌고요.”

“그리고 결제는…….”

“결제는 사이트 관리업체에서 소개해 준 곳으로 했어요. 카드 결제, 무통장입금, 심지어 문화 상품권 같은 거로도 되는 곳으로요.”

그런데 문화 상품권으로 학원 강의를 결제할 원생이나 학부모가 과연 있을까? 나 같으면 안 할 텐데.

“여기 아래 숫자는요?”

“네?”

그녀가 가리킨 곳에 작게 숫자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 변동은 계속해서 있었지만 그러면서도 꾸준히 올라갔다. 지금은 대충 5,000 언저리에서 오르는 중.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유현덕 대표님? 지금 사이트에 강의들 올려놨는데 확인 하셨나요?

사이트 관리업체 대표 조진웅이었다.

“네, 지금 보고 있습니다. 원장님들도 다들 같이 계세요.”

-강의 잘 돌아갑니까? 한 번 눌러서 틀어 보시죠.

그러고 보니 리스트가 업데이트 된 것만 확인하고 정작 강의가 제대로 플레이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었다.

조진웅 대표의 말대로 리스트를 하나 클릭해서 유료 강의를 재생시켰다.

주현필 강의는 얼굴을 보기 싫어서 틀지 않고, 대신 나도 얼굴만 보고 인사만 했던 성공 학원 여자 선생님의 강의.

잠시 후에 버퍼링 숫자가 떴다. 1%부터 100%까지 올라가는데 대략 30초 정도 걸렸나?

강의는 제대로 돌아갔다.

“아, 잘 나오네요. 그런데 이거 조금 느린 것 아닌가요?”

-느리긴요. 맥스스쿨보다 빠른 서버로 돌리는 건데요. 지금 접속자 수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사이트 메인 화면을 보시면요, 거기 아래쪽에 숫자 변동되는 것 보이시죠?

“네, 그렇잖아도 김윤지 원장님께서 이거 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게 동시 접속자 수입니다. 그러니깐, 지금 저희 화면으로는 1만이 넘어가고 있네요. 1만 명이 지금 사이트 안에 들어와서 뭔가를 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1만 명이라.

이게 많은 건지 적은 건지 감이 잘 오질 않았다.

뭐, 동시 접속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전부 돈을 내고 강의를 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만히 있는 나에게 조진웅 대표가 큰 블로우 한 방을 내질렀다.

-맥스스쿨 사이트는 지금 동시 접속자 수 2천도 안 나와요. 결제 대행 업체에 전화로 곧바로 확인을 해 보겠지만, 어쨌든 이거 대박입니다!

뭐라는 것인지.

아직 누가 강의를 보는 것도 아닌데 웬 호들갑인가.

동시 접속자 수는 동시 접속을 한 사람들 수일 뿐, 이것만 가지고 직접적으로 수익을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스피커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기에 다들 조진웅의 대박이란 소리를 듣고는, 의외로 가만히 반응이 없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잠깐만요. 계산 좀…….”

나는 이미 계산 중이었다.

이미 일전에 수강료를 정할 때 계산을 여러 번 했던 것이지만, 우리 사이트가 제대로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결제액이 존재했다.

월 20만 원으로 사이트 내의 모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정액제 조건.

일단 시작은 정액제였다.

강의마다 따로 수강료를 설정하지 않은 것은 맥스스쿨과의 차별화를 위함이다.

가격은 싸면서 질은 같은 수준이라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초반 6개월 동안은 참여하는 모든 강사들의 수익이 균등하게 배분되도록 계약서 조항에 넣었고, 강사들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것을 이해했기에 이에 동의했다.

대신 운영비는 아직 총알이 충분하니 6개월간 30%에서 20%로 줄이고, 신성 학원과 성공 대입학원의 몫도 각각 2.5%씩 정했다.

따라서 강사의 몫은 나머지 75%가 된다.

강의 종류가 총 18개.

성공의 척도가 되는 금액은 강좌당 월 천만 원 기준으로 삼는다면, 적어도 수익의 75% 되는 액수가 1억 8천만 원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총 수익은 2억 4천만 원.

그리고 총 액수 2억 4천만 원이 결제가 되려면 1200명이 우리 사이트에 가입하고 수강해야 한다.

운영비와 이것저것 제대로 생각하면 이번 달 목표치는 1500명 수준. 그리고 앞으로 그것보다 훨씬 많아져야 했다.

맥스스쿨은 현재 가입자 수만 1만 명을 넘어선 상태.

물론 단순 비교는 어려운 것이, 그쪽은 강의마다 금액도 상이하고 강의 개수도 우리보다 훨씬 많다.

-지금 9시 10분 기준으로 동시 접속자 1만 5천명 넘었습니다! 방금 결제 대행업체에서 연락 왔는데 24시간 총 결제 수 계산해서 내일 알려 준다고 하네요. 이거 느낌이 아주 좋습니다, 대표님.

이거, 내일까지 또 기다려야 하는 구나.

다들 생각보다 많은 동시 접속자 수에 흥분했으면서도 사뭇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 * *

2003년 9월.

맥스스쿨이 가장 먼저 진출하고 2년 동안 독점적 지위를 누려 온 온라인 교육 시장에 S 아카데미가 진출한 뒤 한 달.

첫 달 매출은 론칭 이벤트로 인해 간신히 적자만 면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건 반액 할인 쿠폰 이벤트의 착시였고, 사실 그 한 달 동안 가입한 인원수를 보자면 성공적이었다.

“괜찮은걸? 그런데 여기 대표가 이미도가 아니네?”

거대하고 비싸 보이는 원목 책상 뒤에 앉아 지원재가 들고 온 보고서를 넘기던 강재훈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지난번에 말씀 드렸습니다만…….”

“그렇지. 기억났어, 이제. 만나 봤다고?”

“유현덕 대표 만나 보고 왔습니다. 아직 햇병아리는 햇병아리인데 능력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말을 하며 그는 유현덕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아직 20대 초반의 나이라 과외라면 몰라도 학원가에서 이름이 알려질 시점이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그 지역에서는 유명한 강사로, 그리고 이제는 맥스스쿨에 이은 국내 두 번째 온라인 교육업체 대표이다.

“신기하구먼. 이 나이에 이 정도 능력을 보여 줄 만한 사람은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원재, 너나 유현덕이란 친구나 신기하단 말이지.”

“저야 대표님께서 잘 봐주시고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아냐, 아냐. 요즘은 대표 강사들이 머리들이 커 가지고 잘 움직이려 하질 않는단 말이지. 돈줄은 점점 말라 가는데 말이야. 이럴 때는 새로운 시장을 계속해서 개척해야 하는데. 온라인 교육 사업 제안도 네가 했고, 시스템 구축도 네가 했으니 나에게 있어서 복덩이였지. 이미도도 복덩이 하나 받았나 보구먼. 허허.”

강재훈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지만 이건 그의 내면 일부분만 드러난 것.

그에게는 기 센 아내에 아들 둘, 딸 하나가 있었다.

딸은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두 명의 아들은 곧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입국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분명히 조만간 학원을 흔들 만한 사람이었다.

아직까지 강재훈의 앞에서는 발톱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그런데, 이미도에게 가는 수익은 그리 크지는 않구먼.”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이야기를 해 보니 S 아카데미 초기 자본금은 유현덕 대표 혼자 부담했다고 합니다. 신성 학원과 성공 학원 맥스스쿨 지방 본원은 단순히 강사만 지원하고요.”

“그래도 이거 너무 적어, 학원 몫이. 강사 지원이 얼마나 큰일인데. 쯧쯧. 아직 사업력이 약간 부족한가 보네. 주현필 좀 쪼아. 이래서 어디 돈 좀 모으기나 하겠어?”

지원재는 이런 분위기가 조심해야 할 때임을 알았다.

별것 아니라 생각하고 소홀히 하면 끝이었다.

툭 던져 놓고 나중에 갑자기 ‘그거 했어?’ 했는데 기억을 못 한다거나 하면 한 방에 자리가 날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강재훈은 분명 겉보기보다 훨씬 고단수. 그러니 서울이라는 정글에서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으리라.

“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이것저것 사업적인 부분 좀 신경 쓰라고. 그래서 그 녀석 거기 붙여 놓은 거니깐. 요즘은 보고 내용도 뭐 별 것 없더만.”

“S 아카데미 때문에 강의 촬영과 법인 만드느라 조금 바쁘다는 연락 받았습니다. 바로 전달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그리고…….”

갑자기 강재훈이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동시에 지원재도 몸을 꼿꼿이 펴고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내 아내, 어떻게 생각하나?”

뜬금없는 질문에 지원재는 당황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사람이 이미 지금 시기에 아내 유미진의 야망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녀의 검은 야망과 계획은 지원재 자신만 알고 예상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나저나 나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정도라면 강재훈이 이미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것.

“무슨 말씀이신지…….”

하지만 이런 질문에 곧바로 나의 생각, 또는 내가 아는 것을 다 말해 버린다면 하수 중에 하수이리라.

신뢰를 해서 이런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떠보려는 것인지 확인되기 전까지는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강재훈이 이제까지 시원시원했던 지원재의 말투 변화에 눈을 가늘게 떴다. 이미 그의 몸은 책상 앞으로 팔을 괴고 깊이 숙인 상태.

“혹, 사모님께서 회사 경영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지에 대한 저의 의견을 물어보시는 겁니까?”

“경영? 그녀가 경영까지 관심이 있어? 나는 그 이야기가 아니었는데.”

“아니면 어떤 부분이신지…….”

“이미도의 존재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 사람이라 생각하느냐 이 말이야. 허허. 자네 너무 심각하게 생각했구먼.”

‘그건 강재훈 당신이 제일 잘 알 것 아닙니까?’

이건 분명 떠보려는 것. 그런데 그 목적이 어디냐에 따라 대답을 달리 해야 했다.

만약 그가 지원재의 능력과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하려는 것이라면 대답은 솔직하게 ‘사모님도 주의하셔야 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반면에 한 번 뒤집어서 지원재의 맹목적 충성 여부와 아부하는 능력을 보려는 것이라면 대답은 ‘사모님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가 될까?

이게 맞는 판단이기는 한 것인지 모르지만.

지원재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을 강재훈은 놓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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